Q. 요즘 트위터를 보면 요리보다 콘티작업으로 더 바쁜 것 같다.
김풍: 아직 연재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는데, 물귀신을 소재로 한 공포 만화를 일본 지면만화용으로 준비하고 있다. 만화 에이전시 관련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신 암행어사>의 윤인완 작가한테 무서운 얘기를 해줬더니 그걸 만화로 내보자고 하더라. 작년 10월부터 급하게 준비하기 시작했고 지금 일본 쪽 피드백을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만화를 그려보니 신나고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맛있게 먹었던 것을 언제든지 먹으려고 레시피 흉내를 낸다”
Q. 만화 그리느라 잠도많이 못 자는 것 같은데 왜 트위터를 놓지 못하는 건가. (웃음)
김풍: 트위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을까? 특히 난 작가다 보니까 글을 쓸 줄 알고 웃기는 것도 조금 할 줄 아니까 그걸 트위터를 통해 드러내는 것뿐이다. 트위터도 일종의 보여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로 ‘개드립’ 위주로 올린다. 요즘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더 부담된다. (웃음)
Q. 대선 때 속옷 차림으로 찍은 투표 인증샷도 그런 압박감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나.
김풍: 작년 4월 총선 당시 수영복을 입고 해변가에 가는 느낌으로 찍어서 올렸을 땐 내가 대선 때 또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하. 총선으로 판을 뒤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대선은 큰 이슈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되게 큰 이슈가 됐다. (웃음) 사람들이 자꾸 기대된다고 하니까 홀딱 벗고 찍어야 되나, 별 생각을 다 했다. 나도 재밌어서 하는 거지만 솔직히 되게 귀찮은 일이다.
Q. 특히 요리나 먹는 사진을 많이 올리는데 ‘더 만만한 레시피’와는 어떻게 인연이 된 건가.
김풍: 올리브 채널 관계자들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보시고 <올리브쇼> ‘100인의 푸드톡’ 출연을 제의하셨다. 그러다가‘더 만만한 레시피’ 코너를 맡게 된 건, 요리를 잘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만화가니까 뭔가 발상을 독특하게 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작년 봄, 여름에는 베이킹 위주의 방송이었다면 가을부터는 본격 생존요리 콘셉트로 갔다. 일반인한테 와 닿게 하기 위해 재료 분석을 열심히 했다. 예를 들면 김치를 볶을 때, 토마토를 갈아 넣어도 맛있고 거기다 설탕을 조금 넣으면 김치의 신맛이 덜해진다. 토마토와 설탕이면 케첩이다. 이런 식으로 간단한 소스를 만들었다.
Q. 생존요리 레시피는 오랜 자취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들인가.
김풍: 7-8년 정도 자취를 하긴 했지만 자취 노하우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 집엔 없는 소스가 없고 식재료도 정말 많으니까. 거의 업소 수준이다. (웃음) 그런데 일반인한테 그런 재료를활용한레시피를 알려주면 만들기 어려우니까 요리 주제를 받으면 원래 소스로 요리를 만들어 보고 최대한 그 맛과 비슷하게 내기 위해 어떤 소스를 쓰면 되는지 고민한다. 매 회 사람들한테 독특하고 기발한 걸 선보이는 느낌으로 방송을 했다.
Q. 본인에게 있어 요리의 즐거움은 만드는 것에 있나, 만든 걸 먹는 것에 있나.
김풍: 먹는 걸 더 좋아한다. 어디 가서 맛있는 걸 먹었는데 주방장이 다른 곳으로 가고 가게가 사라지면 못 먹으니까 내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레시피 흉내를 낸다. 일종의 소유욕이지. 그래서 한 번 만들고 됐다 싶으면 그 요리는 안 한다.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요리 종류는 정말 많다. 죽을 때까지 새로운 요리를 해도 다 못 할 텐데 뭐. 하하.
Q. 내가 만든 것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요리는 뭐였나.
김풍: 토마토 냉면이다. 토마토, 식초, 마늘, 설탕, 양파를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육수로 쓰면 기가 막히게 맛있다. 이걸 만들 때 집에 토마토가 정말 많았다. 항상 이런 식이다. 집에 부추가 많으면 어떻게든 부추를 없애려고 기존 요리에 부추를 다 넣어보고 ‘아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를 깨닫는다.
“걱정은 별로 안 하는데 신경은 되게 많이 쓴다”
Q. ‘더 만만한 레시피’에서 “요즘 사람들은 내가 만화가라는 걸 잘 모른다”고 말했지만, 데뷔 초에 연재한 <폐인의 세계>와 <폐인가족>은 단순한 만화를 넘어 하나의 문화에 가까웠다.
김풍: 사실 그 땐 만화에 열심히 공을 들이지 않았다. 소위 ‘캐릭터 빨’이라는 게 있었는지 그냥 그리면 사람들이 좋아했고, 만화의 종류도 많지 않아서 더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만화 연재와 함께 캐릭터 회사 운영과 싸이월드 스킨 제작을 병행하면서 잘 나갔는데, 그렇다고 회사 운영에 열중했던 것도 아니었다. 바쁘긴 바쁜데 뭐 하나에 꽂히지 않았던 거다. 돈도 쉽게 벌었고 천성 자체가 노는 걸 좋아해서 짬짬이 놀았다. 점점 나이를 먹다가 스물아홉 살이 되니까 ‘이젠 뭘 해볼까’ 라는 생각을 들었다. 그래, 연극을 해보자. (웃음)
Q. 어쩌다 연극에 빠진 건가?
김풍: 뮤지컬을 좋아했는데 커튼콜 때 박수 받는 게 부럽고 또 다른 인생을 사는 것도 재밌어 보였다. (장)항준이 형한테 물어봤더니 극단에 들어가라고 하시더라. 나름 연기에 소질도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 호기심에 시작할 순 없지 않나.
Q. 그래서 연기는 재밌었나?
김풍: 정말 재밌었는데 이것만 하고 살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게, 연극배우들은 정말 순수하게 꿈만 먹고 사시더라. 하하하. 극단에서는 또 하자고 하는데 연극이 어떤 건지 알았으니 회사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돌아와 보니 다른 직원들이 내 역할을 분담하고 있었고, 버디버디 웹사이트에서 연재하던 만화도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임감이 없었다. 만화냐, 일이냐, 선택의 기로에 놓였는데 서른이 넘으니 회사는 죽어도 아닌 것 같아서 만화를 선택했다. 근데 회사를 그만두고 딱 한 달 만에 후회했다. 월급이 안 나와서. (웃음)
Q. 생계 걱정은 둘째 치고 다시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을 것 같은데.
김풍: <내일은 럭키곰스타>는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서 마지막에 좀 망했고 (웃음) 2년 전 연재했던 <싸드 아일랜드>를 준비할 땐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만화를 그리게 됐다고 좋아했다. 막상 웹툰 담당자는 어른 만화도 아니고 애들 만화도 아닌 게 애매하다면서 옛날 <폐인가족> 스타일처럼 그려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림은 귀여운데 읽다보면 뭔가 생각할 거리가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면 연재가 힘들겠다고 하더라. 이제야 정착하려는데 뭐지? ‘멘붕’이 왔다. 그래? 그럼 놀자. (웃음) 20대에는 그래도 뭐라도 하면서 놀았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정말 놀기만 하자. 그 때 트위터라는 게 생겼다. 어? 이거 재밌는데? 오케이, 본업 트위터리안!
Q. 걱정을 전혀 안 하고 사는 사람 같다. (웃음)
김풍: 걱정은 별로 안 하는데 신경은 되게 많이 쓴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 미니 냉장고에 손을 뻗으며) 예를 들면 아까부터 저 냉장고 문이 열려있는 것 같아서 되게 신경이 쓰였다. (냉장고 문이 굳게 닫혀있자) 아, 아니구나. 하하. 결국 <싸드 아일랜드>는 <스포츠동아> 온라인 페이지에 연재됐는데 41회까지 하다가 중간에 그만뒀다.
Q. <싸드 아일랜드> 연재 중단 이후 ‘본업 트위터리안’으로 활동하는 건 어땠나.
김풍: 2년 정도 놀았는데 사실 놀면서도 불안했다. 재밌는 만화도 많이 나오고 <폐인가족>을 모르는 독자들도 점점 많아졌다. 그렇게 걱정하면서 더 놀았다. (웃음) 그러다가 작년부터 만화를 준비했다.
Q. 오, 드디어 새로운 만화를?
김풍: 남자들은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 몸만 성장했지 마음은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에 있어서 ‘초딩’처럼 서툴다. 그래서 1999년도 홍대를 배경으로 대학교에 갓 입학한 남자 신입생 4명의 솔직한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갑자기 tvN <응답하라 1997>이 방송됐다. 심지어 엄청 떴다. 주인공 연령대는 다르지만 어쨌든 한 시대에 대한 이야기니까 비슷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4편까지 그렸고 포털 사이트에서도 오케이를 한 상태였는데 내가 하기 싫다고 했다.
“열심히 산다는 건 강요의 삶이다”
Q. 관심분야가 자주 바뀌어서 그렇지, 본업인 만화뿐만 아니라 연기, 요리, 트위터, 방송까지 도전하는 걸 보면 굉장히 열심히 사는 것 같다.
김풍: 내 입으로 열심히 산다고 말하는 순간 자기 연민에 빠져버린다. ‘열심히’라는 단어가 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그 단어가 생기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눠졌다. 열심히 산다는 건 강요의 삶이다. 배가 고프니까 요리를 하는 거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겸손한 거다. 이건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당연히 하는 행동들이다. 최선을 다하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모르겠다.
Q. 그렇다면 그동안의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 것 같나.
김풍: 그냥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아왔다. 꽂히는 것에 몰두했지만 올인까지는 하지 않았다. 어디 가서 ‘요런 것 좀 해봤다’고 얘기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한다. 가령 나이트클럽 댄스경연대회에서 1등 해봤다, 이 정도? 하하. 내 성향일수도 있지만 깊게 들어가면 갑자기 하기 싫어지고 호기심도 확 떨어진다. 얇고 넓게 파고드는 편이다
Q. 만화가로서도 ‘얇고 깊게’ 스타일을 추구하는 편인가.
김풍: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는데 사람이 뭐 하나는 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럼 뭘 팔까, 역시 만화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창작만큼 재밌는 건 없는 것 같다. 창작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복 받은 거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건데 질릴 수가 없지. 나처럼 깊이 못 들어가는 사람들한테는 작품 하나 끝내고 또 다른 작품 하고 이런 게 재밌다.
Q. 혹시 인생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짜본 적은 있나.
김풍: 어유,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세우나. (웃음)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스트레스 덜 받고 항상 즐겁고 여유롭게 살면 오래 오래 젊게 살 수 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지금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작곡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MBC <무한도전> ‘박명수의 어떤가요’ 편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약간 레트로한 느낌이나 올드스쿨 힙합 스타일 같은 류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 재밌고 웃기게. 요즘엔 컴퓨터가 있으니까 어느 정도 입력을 하면 알아서 음악이 나온다. 옛날에는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걸로 먹고 살았다면 지금은 기술보다 감각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Q. 구체적인 그림은 아닐지라도 나이 든 김풍을 상상해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김풍: 멋지게 늙고 싶다. 유독 우리나라 남자들이 나이가 들면 할 게 없어진다. 딱히 취미 생활을 배운 적이 없으니까 기껏해야 등산이고 아니면 술 마시는 게 전부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을 보면 나이 들어서 멋진 취미를 갖는다. 굳이 돈이 많이 드는 취미가 아니더라도, 목수가 되기도 하고 엔지니어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집을 짓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거 하면 SBS <생활의 달인>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데. 하하.
Q. 그동안 배운 게 많아서 이미 노년의 취미 생활은 확보해 놓은 것 같다.
김풍: 그 때 재밌게 놀려고 지금부터 이것저것 배워두는 거다. 나이가 60, 70이 되면 눈도 침침하고 필력도 달리니까 만화를 하고 싶어도 못할 거 아닌가. 그러면 다른 곳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는 것만큼 멋있는 게 없는 것 같다. 할 일이 없어지면 늙고, 뇌가 늙어버리면 끝이다. 골방 늙은이처럼 되거나 입만 살아있는 꼰대가 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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