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부당거래>의 순제작비가 32억 원이다. 이 돈을 내가 평생 만져볼 수 있을까 자문해본다. 과연 영화감독이 방직공 노동자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걸까도 고민된다. 영화는 3차 산업이다. 막말로 없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다. 부실공사 때문에 다리가 무너지는 것처럼 영화도 대충 만들면 그게 부실공사가 된다. 나는 적어도 내가 만든 영화를 개봉하면서 한 번도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 늘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후회하기엔 너무 열심히 찍었기 때문이다.”
-류승완, <뉴스엔>과의 인터뷰에서

류승완
성룡: 류승완이 어린 시절 반한 영화배우. 아버지와 함께 극장에 갔다 성룡을 보고 태권도장에 다니고, 중학시절 무술 백과사전을 보며 액션스타의 꿈을 키웠다. 그 후 영화잡지에서 할리우드의 명감독 존 포드가 대배우 존 웨인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진을 보고 감독이 더 멋있다고 생각했고, 8mm 비디오카메라도 구입한다. 하지만 그에게 영화가 정말 중요해진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동사무소에서 쌀을 받아먹고 살면서 동시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삶의 유일한 도피처였고, 이후 살기 위해 호텔 지하 2층부터 33층 계단 청소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영화감독의 꿈을 놓지 않았다. 류승완은 이런 경험 때문인지 영화를 찍을 때마다 “이게 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고, “의식주를 만드는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고. 성룡을 동경하던 태권 소년이 영화 마니아가 되고, 다시 “승자였던 적이 없고, 항상 어떤 상실감에 잡혀”사는 삶의 절박함을 몸에 새기며 영화계로 들어왔다.

박찬욱: 류승완이 ‘박사범’이라 부르는 감독. 류승완은 고교시절 박찬욱이 쓴 영화평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무작정 그를 찾아가 영화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러나 박찬욱은 류승완이 “내 영화 전체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짧은 액션 장면만 좋아했다”며 “액션 영화를 찍으려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류승완은 결국 박찬욱의 영화 <삼인조>의 연출부에 들어가서 일하기 시작했고, 불과 1년 만에 단편 영화 <패싸움>을 연출한다.

장선우: 영화감독. 류승완은 그의 연출작 <나쁜영화>를 찍다 남은 16mm필름으로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제작했다. 제작비 6400만원에 류승완이 액션 감독까지 했던 이 영화는 <패싸움>을 비롯한 네 개의 단편을 합친 것으로,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성으로 영화 제목 그대로 조금만 삐끗하면 죽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좋을 것 하나 없는 인생을 사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사회의 뒷골목에서 위태롭게 살다가 결국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리는 캐릭터는 당시 기존 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어떤 삶이었고, 동시에 당시의 류승완 아니면 누구도 극장에서 보여줄 수 없는 저소득층의 리얼리티였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류승완-류승범 형제가 각자 보여준 액션은 홍콩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멋진 스타일과 섬뜩한 현실성이 공존했다. 도저히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의 인물이 결국 영화를 만들어냈고, 스크린에 새로운 세계를 끌고 들어왔다.



임원희: 류승완이 연출한 영화 <다찌마와리>의 주연. 류승완은 이후 임원희가 출연하고 박찬욱이 연출한 <쓰리, 몬스터>에서 임원희의 사투리 연기를 도와주기도 했다. 인터넷 영화로 제작된 <다찌마와리>는 한국의 옛 액션 영화의 캐릭터와 설정을 패러디하며 당시로서는 엄청난 숫자였던 100만 조회수를 넘기며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류승완의 삶 안에 액션을 녹였다면, <다찌마와리>는 그를 지탱해준 액션 영화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보여준 셈. 형식도 내용도 새로운 영화와 함께 류승완은 자신의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얻는다.

정재영: 류승완이 연출한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독불이라는 캐릭터로 출연한 배우. 전도연-이혜영을 중심으로 액션과 범죄물을 섞은 이 작품은 그 자체로도 화제였고, 여기에 1970-80년대 한국 액션 영화에서 활약한 배우들을 캐스팅하며 그들에 대한 존경을 표한 것은 류승완 개인의 꿈을 이룬 것이기도 하다. 이런 요소들은 역시 영화 마니아이자 범죄물을 기막히게 찍었던 쿠엔틴 타란티노와 자신이 비교되도록 만든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이>에는 자신의 삶을 위해 마지막까지 악착같이 달라붙는 독불이라는 캐릭터가 있었다. 자신의 삶을 절박하게 지켜내려는 인물, 그 인물을 통해 질퍽한 인생의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것은 류승완만의 힘이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다찌마와리>에서 보여준 특징들이 <피도 눈물도 없이>를 통해 류승완의 영화로 완성되기 시작했다.

상환: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비롯, 류승범이 형 류승완의 영화에 출연할 때 맡았던 대부분의 배역 이름. 류승완은 자신이 연기를 할 때는 석환이란 이름을 붙인다. 석환과 상환 모두 중학교 동창의 이름에서 가져왔다고. 어린 시절 <보물섬> 같은 만화 잡지를 좋아하던 류승완은 이현세의 설까치나 허영만의 이강토처럼 여러 작품에서 같은 이름을 쓰는 주인공을 동경하며 이런 작명을 했다. 특히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류승완의 작품 중 만화적인 느낌이 가장 많이 나는 작품. 늘 기죽은 채 지내던 상환의 현실이 살짝 표현되기는 하지만,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그랬던 상환이 장풍을 배운 뒤 악과 싸우는 쾌감이 중요했던 경쾌한 활극이었다. 또한 CG를 활용, 주인공들이 낮에 도시의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가 많은 제작비와 새로운 테크놀로지도 무리 없이 다룰 수 있음을 보여줬다. 데뷔 후 어떤 상황이든, 어떤 내용이든 신기할 정도로 멀쩡하게 영화를 찍어낸 젊은 감독.

최민식: 류승완이 연출한 영화 <주먹이 운다>의 주연. 늦은 나이에 복싱 신인왕전에 도전, 젊은 복서 류승범과 결승전에서 붙는 복서를 연기했다. 그가 류승범과의 대결을 “코가 부러져도 괜찮으니 실제 시합으로 찍자”고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만큼 두 배우가 모든 것을 쏟아낸 이 작품에서, 류승완은 당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집대성한다. 최민식과 류승범의 시합은 그의 액션 테크닉을 집대성했고, 절박한 상황에서 도무지 앞이 안 보이는 두 남자의 인생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상으로 치열해 보였다. 또한 마지막까지 만나지 않는 두 사람의 생활을 교차 편집하며 어느 쪽에도 중심이 기울지 않는 리듬은 문자 그대로 완숙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고, 그 상황에서 꺾이기보다 하나씩 배워가며 성장한 이 감독은 자신의 청춘을 지배했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재능과 결합해 수많은 대중에게 설득시켰다. 권투시합을 보며 “맞는 것을 두려워하면 때리지도 못한다”는 생각을 하던 감독의 첫 번째 정점.

정두홍: 류승완이 연출하고 출연한 영화 <짝패>의 주연. 류승완의 영화에서 액션감독을 도맡아 했다. 현실에 초점을 맞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후 <다찌마와리>로 장르를 비틀었듯, <주먹이 운다> 이후의 <짝패>는 장르, 그 중에서도 액션 영화의 쾌감에 집중했다. 현실적이고 어두운 부분도 다소 있지만, 영화의 재미는 영화 내내 오직 몸으로 보여주는 두 사람의 아크로바트에 가까운 액션에 있었다. <짝패>를 통해 류승완은 정두홍과의 오랜 우정을, 액션 영화에 대한 꿈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키워온 배우의 꿈을 확실히 이뤘다. 그러나, 액션 그 자체에 집중한 <짝패>는 <주먹이 운다>와 같은 절묘한 호흡과 이야기는 갖지 못했고, 이야기보다 액션이 도드라지는 영화는 순간적으로 황홀했지만 대중을 몰입시키는데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찌마와리>를 다시 만든 <다찌마와리-악인이여 급행열차를 타라!>도 장르 비틀기의 재미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관객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영화 제작 미팅을 잡으려 해도 제작자들이 다른 약속을 핑계로 만나지 않았다. 재능과 에너지로 세차게 달려온 감독이 30대에 맞이한 성장통.

강혜정: 류승완의 아내이자 영화 제작자. 류승완의 부탁으로 중학생이던 류승범의 과외를 해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류승범이 “과외를 시킨 게 동생 교육 때문이었는지 연애를 할 목적이었는지”를 묻자 류승완은 “중학교 때 널 생각해봐라. 연애를 할 거였으면 너 같은 동생을 보여주고 싶겠냐”고 받아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연애를 했고, 류승완이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흉내내서 했던 프로포즈에 강혜정이 영화 속 대사를 혈서로 써서 전달하며 결혼했다. 강혜정에 대해 “뛰어난 제작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건강한 기업가다. 원칙을 지키려 하고, 사술을 부리지 않으려 한다”는 류승완은 결혼 이후 인생의 관점이 바뀐다. 아이들이 생기니 “겁도 많아지고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움도 생기”고, “내 삶이 영화 속으로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가면 갈수록 그렇게 되지 않는 듯 해서 스스로 반성”도 했다. 자신의 안에서 영화를 퍼내던 류승완이 “현실을 통해 자극”받으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힘들었던 10대를 생각하며 아이들을 잘 기르고 싶어 탄산음료를 못 먹게 하는 아버지가 됐다.

류승범: 류승완이 연출한 영화 <부당거래>의 주인공. <다찌와리-악인이여 급행열차를 타라!> 이후 “아무 것도 되는 게 없”었던 그는 모토로라의 지원을 받아 만든 단편영화 <타임리스>를 통해 “나를 이루는 여러 요소와 취향, 그리고 변화”를 담았고, 그 결과는 <부당거래>로 이어졌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출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류승완처럼 보일까 고민”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필름메이커의 칭호를 얻고 싶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관여”하며 배우들에게 대사 토씨 하나까지 바꾸지 말라고 하던 감독은 “NG와 OK를 구분하는 것”이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부당거래>는 복잡한 이야기를 명쾌하게 끌고가는 스토리 위에 필요한 순간에만 정확히 들어가는 액션과 영화 전체를 긴장감 넘치게 끌고가는 절묘한 편집, 사회의 부조리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메시지가 완벽에 가까운 균형을 이뤘다. 자신의 힘으로 영화계를 헤쳐 나가던 류승완은 <부당거래>에서 타인, 또는 세상에 관심을 두며 새로운 시야를 얻었고, 그 속에서 액션, 복잡한 스토리의 범죄물, 남자 주인공의 절박한 삶 등 자신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담았다. 그리고, 류승범은 압도적으로 비열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영화를 완성시켰다. 형제가 자신의 분야에서 새로운 정점에 오른 순간, 그들의 대표작이 탄생했다.

하정우: 류승완이 연출한 영화 <베를린>에 출연한 배우. <베를린>에는 한석규, 전지현, 류승범도 출연한다. <부당거래>가 류승완이라는 이름과 개성보다 웰메이드 영화로 부를만한 영화 전체의 완성도가 빛났다면, <베를린>은 거기에 다시 스타 캐스팅과 장르적 쾌감을 더했다. 이야기의 배경은 해외로 옮겨졌고, 배우들은 그들의 이름값에 걸맞는 역량을 보여주며, <부당거래>에서 보여준 현실적인 액션은 <베를린>에서 보다 확대된다. 동시에 류승완의 연출작 중 드물게 주먹이 아닌 총 위주의 액션이 다수 포함됐고, 류승완이 일련의 범죄물에서 보여준 복잡한 스토리는 보다 큰 스케일로 확장됐다. 새로운 스케일과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야기의 호흡은 <부당거래>보다는 매끈하지 않고, 액션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완숙한 연출이 결합돼 만들어내는 빛나는 순간과 다소 진부한 순간이 공존한다. 그러나 <베를린>은 류승완이 영화를 처음 만들던 시절부터 보여주던 어떤 것들을 더 큰 스케일 안에서 담아냈고, 류승완은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영화로 위안을 받던 10대가 자신의 힘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을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자신의 색깔이 강하고, 동시에 대중에게도 사랑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또한 영화를 만들며 가족을 이룬 남자. 어떤 사람은 그렇게 성장한다.

Who is next

류승완이 연출한 <부당거래>에 출연한 이성민과 MBC <골든타임>에 나온 황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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