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가 발견되었다. 얼굴은 훼손되었고, 소지한 물품은 전무하다. 전문가들은 손가락은 물론 발가락의 지문까지 소실된 시신의 상태를 근거로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으나, 사라질 대로 사라진 흔적을 통해 수사를 진행하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지난 1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지워진 이름-그녀는 누구인가’는 범인은커녕 피해자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사건을 한편의 수사물처럼 전개해 나갔다. 탐문과 같이 기본적인 수사와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한 과학수사까지 다양한 방법이 등장했으며, 심지어 미국의 최신 사례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결국 신원 불명으로 분류된 시신을 화장했다는 소식에 맞닥뜨렸고, 추적은 거기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좌절의 냉소를 예방의 고민으로 바꾸는 방송
결국 이 방송은 실패의 기록이 되었다. 살아남기에 실패한 피해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고, 범인을 찾기 위해 분투한 형사는 행정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미스터리를 풀어내지 못한 채 원점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했던 제작진에게도 이것은 실패의 순간이며, 방송은 시신을 화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하는 제작진의 감정을 그대로 노출했다. 그러나 개인들의 실패를 통해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오히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도달하고자 하는 새로운 성취를 설득시킨다. 세상은 어둡고,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진실을 알고 싶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무지함에 대한 대가는 두렵기만 하다. 그리고 이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상 많지 않다는 것을 방송은 냉정하게 진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것을 냉소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스스로 영웅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대신, 관찰자로서 자신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고자 한다. 거의 유일한 증거였던 시신을 잃은 상황에서 제작진은 행정 담당자와, 담당 형사, 행정 이론 전문가의 의견을 집요하게 취합했다. 그리고 좌절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좌절을 예방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려 했다. 이러한 방송의 지향은 지난해 9월 방송된 2부작 ‘무방비 도시’를 통해 뚜렷하게 감지된 바 있다. 새로운 미스터리를 제공하는 대신, 이미 알려진 사건의 틈새를 되짚어 보았던 이 방송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어떤 순간을 간절하게 예측했었다. 지난 11월 방송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어느 시골마을의 경고’편에서도 응급 환자를 살려내지 못한 의사와의 인터뷰에서 직업인이자 개인으로서의 실패를 토로하는 그의 눈물을 담아 낸 바 있다. 비난하고 고발하는 일은 오히려 쉽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는 손가락질을 하는 대신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키고자 한다. 영웅이 나타날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괴물이 오는 통로를 찾아내고, 주시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막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좌절로 본 사회의 실패
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S10HVz3SbSMP.jpg" width="555" height="185" border="0" />
지난해의 성취가 방향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연말 방송된 ‘2012, 눈먼 자들의 도시’는 그 방법에 대한 확신이 드러난 방송이었다. 피해자들을 구해냈지만 결국 그들의 안전을 회복해 주는데 실패했음을 보고한 사냥꾼 사건으로부터 출발한 이 방송은 개인의 목격과 의심으로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발생함을 호소했으며, 외면이 곧 괴물의 배양액임을 강조했다. 물론, 이날 방송이 외면의 담합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문제에까지 도달하게 하는 방식은 거칠었고, 비극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것과 책임소재가 분명한 일을 동일 선상에서 거론 하는 것은 낭만적인 시선에서 비롯된 오류에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일부 회차는 선정주의가 의심되는 소재와 화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고 조금 더디더라도 방송이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목적지가 꿈에서 본 선명한 풍경이 아니라 어둠 속에 도사린, 흐릿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장소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제 제작진이 알고 싶은 것은 사건의 해결에 성공하는 비결이 아니라, 개인들이, 사회가 그토록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다.
둑에는 이미 금이 가기 시작 했고, 구멍을 모른 척 한다면 누수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누군가는 지레 포기하고 편하게 마음먹을 것을 권하고, 누군가는 개인의 희생으로 구멍에 팔뚝을 들이 밀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것을 고쳐 낼 수 있는 다수의 합의에 근거한 절차,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방송에 부여할 수 있는 의무라면 계속해서 시스템의 필요성을 이해시키고, 시스템을 감시하는 일일 것이다. 시신의 이름은 여전히 미궁 속에 남아 있지만, 이제 우리는 어째서 신원 미상의 시신을 계속해서 붙들어 둘 수 없는지 이유를 안다. 참을 필요도 없고, 희생할 이유도 없으며, 문제를 고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새롭게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듬성듬성한 희망보다 촘촘한 고민이 위로가 되는 시절, 많은 방송들이 얼굴과 지문을 잃어버린 시절에 아직도 힘이 되는 방법을 잊지 않은 방송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든든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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