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사이렌이 교내의 적막을 깨뜨린 순간, 한 아이가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어둠 속에 홀로 밝혀진 ‘Exit’ 조명을 따라 올라간 계단 끝에 출구가 아닌 옥상이 있었다. 난간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아이 대신, 그를 짓누르던 “바위덩이처럼 무거운” 가방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학교 2013> 13회 초반부다. 첫 회에서는 교실의 의자가 차가운 교정 바닥으로 떨어졌고, 3회에서는 한때 ‘자살대교’로 불렸던 마포대교 위에서 하경(박세영)의 교복이 허공에 내던져졌다. 추락의 이미지는 십대들의 막다른 절망의 한 징후로 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 비상 사이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울려왔다. 한국은 지금 청소년 자살률, 불행지수, 학업시간 부문에서 세계 최상위 국가다.
2013년의 학교는 울고 있다
관계의 폐허 속에서 가장 상처 입는 것은 아이들이다. 과거의 아이들은 다양한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공감과 소통의 능력을 배웠지만, 관계가 해체된 시대의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은커녕 자신의 “진심”조차 표현할 줄 모른다. 이해하는 법도, 받는 법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혼잣말로 “괜찮다”를 반복하다가 막다른 길까지 떠밀리거나 어둠 속에 스스로를 유폐하고 문을 잠근다. <학교 2013>이 학교폭력에 집중하는 이유도 그것이 이러한 문제를 가장 병리적으로 드러낸 현상이기 때문이다. 극의 중심 2학년 2반에는 오정호(곽정욱) 패거리의 물리적 폭력부터 남경민(남경민) 파의 정신적 폭력, 그것을 방관하는 아이들까지 여러 형태의 폭력이 만연해 있다. 그것은 어른 세계의 폭력을 그대로 닮았다. 정호는 아버지와 당구장 양아치들의 폭력을 재연하고, 경민은 성적에 따른 차별사회의 폭력을 모방하며, 방관학생들은 이 모든 문제를 “어쩔 수 없다고 그냥 내버려두는” 학교의 방치를 따라한다. 폭력을 더 큰 폭력이 감싸고 있는 폐쇄 구조의 제일 안쪽에 고립된 아이들은 상처받는 게 두려워 서로를 먼저 상처 입힌다. 흥수(김우빈)가 자신을 ‘버리는 게 무서워서’ 다리를 망가뜨린 남순(이종석)이나, 강주(효영)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봐 무서워서’ 모진 말로 상처를 주는 하경(박세영)처럼.
얘들아, 괜찮니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교사 정인재의 진정한 가치는 지식전수보다 갈등하고 중재하는 자로서의 활약에 있다. 갈등하는 자로서 그녀는 ‘흔들리고 부딪히는 과정’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존재이며, 그 가치는 결과와 합의만을 중시하는 교육계와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 잃어버린 능력이다. 중재자로서 그녀는 파편화된 관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존재이며, 이 역할은 관계 회복의 서사로서 이 작품의 주제를 구현한다. 10회에서 인재가 2반 아이들에게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를 읊어주는 장면은 그 주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시가 흐르는 동안 카메라는 저마다의 고민이 극에 달한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비춘다. 시험을 망치고 “멘붕”에 빠진 아이들부터 논술대회로 고민에 빠진 민기와 강주와 하경, 교실 밖에서 헤매는 정호와 지훈(이지훈)과 이경(이이경), 차가운 담벼락 앞에 마주 선 흥수와 남순까지. 각각의 세계에 고립돼 있던 아이들은 인재의 시를 통해 상처의 연대로 묶여진다. 화해는 결과가 아니라 그렇게 상처에 대한 공감에서 단절된 관계의 복원으로 나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래서 <학교 2013>은 모든 관계가 파편화된 시대에 ‘흔들리는 꽃’들이 피워낸 화해의 서사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