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못했다. KBS <학교 2013>에서 교내의 온갖 뉴스를 수집하고, 수업시간이든 쉬는시간이든 목소리 높여 떠드는까불이 변기덕이 숨길 것도 더할 것도 없는 김영춘의맨얼굴 그대로임을 말이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에 필요한 옷을 “간지나는 걸로” 준비해오겠다고 보내온문자부터,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가랑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쭈그려 앉거나 양팔을 높이 쭉뻗으며 익살맞은 표정을 연이어 지어 보이던 그의포즈는 심증을 더욱 굳히는 것이었다. 준비해놓은 음료를 보며 “와, 초코밀크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라고 해맑게 외치는 김영춘을 마주하고 난 후 마음속으로내렸던 결론은 그의 답변 하나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책 읽는 걸 좋아해서 많이 읽어요. <공자>, <논어> 이런 거요. 사람의 도리나 됨됨이에 관해적어놓은 책들이니까요. <손자병법>도 좋아해요. 이런 책에 적혀 있는 글들은 다 명언이고, 살아가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춘드래곤이 변기덕이 될 때까지
사뭇 진지했던 그의 표정을찬찬히 살피며진위를의심할 필요도, 그의 본모습에 대해 다시금 추리를 시작할 필요도 없다. 우연한 기회로 관심도 없던 연기를 시작하게 됐고,<학교 2013> 촬영에 들어가기 전 “잘 못하거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현장에 피해를 주면 잘리는 거”라고 각서까지 써야 했던 김영춘이 변기덕으로 살아남은 과정, 그 속에 이미 힌트는 있다. “지각한 벌로 시를 읽을 때, 원래는 송하경(박세영)한테 읽어주는 게 아니라 저 혼자 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대본을 읽다 보니 송하경이 여자주인공이니까 제가 좋아하는 것처럼 설정하면 분량도 확보되고, 재미도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리허설 때 과감하게 시도했죠.” 해죽해죽 순하게웃는 얼굴 뒤에 감춰 둔 여우 같은영리함이 놀랍지만,정작 대답을 마친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샌드위치를 집어들며“저 이것 좀 먹고 이야기할게요”라 말하고 또 웃는다.그러나 다시 깜빡속아선 안 된다. 사람들 눈에 띄기 위해 극 중에서 “교복 마이(상의)”를 거꾸로 입고,역할에 대해 “내가 빛날 필요 없이 순간순간 정보만 전달해주면 되고, 화면에 지나갈 때 루즈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판단한 것 역시그 자신이기때문이다.
물론, 방송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한 그의 분석과 훈련은예능에서시작됐다. 고등학생 무렵 전교생을 웃기는 일에 골몰하며 “이 일로 밥 벌어 먹고살고 싶다” 생각했던 김영춘이 2008년 SBS 공채 개그맨에 합격하고, 이후MBC <무한도전> ‘돌+I 콘테스트’에서 “힝, 속았지?”를 연발하며 춘드래곤으로알려지기까지는 우연보다 필연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모니터링 하거든요. 방송에는 콘셉트가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돌+I 콘테스트’에도그냥 나가기보단 춘드래곤이라는이름을 지어서 나간 거예요.”이어 ‘전국돌+I연합’의 지속적인 활동 여부를묻자, 그는 “에이, 그건 이벤트였죠”라며 <무한도전>이 아이템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야무지게 설명한다. 그래서김영춘이 습득한 방송의 지혜란,노하우라 쓰고 깊은 관심과 고민이라 읽어야 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매듭지어진 리본을스스로풀 줄몰랐다면, 선물상자 같은 기회가 뚝 떨어진들 소용이 있었을 리 없다.
“열심히 해서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행히도 제 운은 좋은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현재까지 그 그래프의 세로축을 결정지어 온 건 자신이란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더 빨리, 멀리, 높이 가고 싶다고 마음껏 욕심을 부려도 시원찮을 지금, 일을 꾸준히 하는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할 뿐이다. “소속사가 없으니까 <학교 2013> 끝나고 나면 일을 못잡을까 봐 불안해요. 올해는 혹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일할 수 있게 해주는 회사랑 꼭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열심히 해서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렇게 되려면일을 계속한다는전제가있어야 하니까요.” 당장의 성취를 좇느라 많은 이들이 놓치는 것, 요컨대 오래 남아야 결국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이쯤 되면그의 현명함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여태까지 우리를 속여도 정말, 단단히 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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