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낯선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채점하는 시험지
는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녀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되짚어본다."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S10tVsbkSFat8Ur6PtgV.jpg" width="555" height="185" border="0" />
연애가 두 사람만으로 완성되는 행복한 세계였다면 결혼은 각자가 살아온 익숙한 세계에 이질적인 상대를 데려오며 발생하는 무수한 갈등의 시작이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힘들게 딸들을 키워 온 들자(이미숙)는 초등학교 교사인 둘째딸 혜윤(정소민)이 중소기업 신입사원 정훈(성준)과 결혼하겠다고 공표하자 극구 반대하지만, 정작 혜윤은 자신의 현실적 조건이 엄마의 믿음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복한 집안에서 어려움 없이 자란 정훈은 들자가 “연봉 3천도 안 되는 월급쟁이”인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사실에 충격 받고, 어머니 은경(선우은숙)이 혜윤에게 요구하는 수준의 예단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는 자신의 경제력에 새삼 초라해진다. 이렇듯 대한민국에서 결혼은 성인들이 사적인 관계에서조차 낯선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채점하게 되는 불편한 경험인 동시에, “엄마가 창피하다”고 고백하는 혜윤과, “결혼 준비하면서 엄마 얼굴 여럿 봤다”고 실망하는 정훈처럼 자녀가 부모를 객관화해 거리를 두게 되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진학이나 취업으로 주거지가 바뀌는 등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으면 계속 부모와 동거하고 금전적 지원을 받거나 가사노동을 제공받는 자녀가 오직 결혼만을 독립적으로 이뤄내고 싶어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바람이다. 애정으로 포장된 착취와 간섭의 악순환 속에서, 부모는 자신의 투자와 희생으로 키워낸 자녀가 “여자(남자)한테 미쳐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종종 갈등의 원인을 외부자인 예비 며느리(사위)로부터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결수>, 미친 세상을 향한 용감한 걸음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며 두 번의 헤어짐을 경험한 혜윤과 정훈이 비싼 호텔 대신 사촌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공짜로 빌려 결혼하기로 하고, 정훈의 부모가 물려주는 아파트 대신 함께 대출을 받아 월세를 구하려 하거나 들자의 집에 들어와 살며 돈을 모으는 길을 고민하는 것은 이들이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 얻은 성장의 일면이다. 혜윤은 결혼을 포기하려던 가장 큰 이유였던 엄마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정훈은 결혼을 반대하는 어머니에게 “실패를 해도 내가 하고, 실패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진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흔한’ 결혼 이야기 속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 부부가 되고자 하는 이들 간의 관계, 새롭게 가족의 울타리에 들어오게 된 이들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고찰해 낸 <우결수>는 여러 차례 무너지고 도망쳤던 혜윤을 통해 이야기한다. “도망가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거 가질 거고 지켜낼 거야. 싸워서 이겨야만 가질 수 있는 거면 싸워서 이길래.”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는 것이 위험한 투기처럼 인식되는 이 미친 세상을 향한 용감한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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