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중│내 귀를 사로잡은 목소리들
영화 <나의 PS 파트너>의 윤정(김아중)은 남성들의 판타지를 집약시켜놓은 인물이다. 누구나 한 번 뒤돌아보게 만들 만한 미인이지만 연애에는 숙맥에 가깝고,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라는 무리한 요구까지 수용할 정도로 남자친구에게 헌신적이다. 결혼을 끝내 입에 올리지 않는 애인의 마음을 돌리려고 이벤트까지 벌이는 윤정은 흰 셔츠에 얽힌 남자들의 판타지를 완벽하게 소화해낼 정도로 섹시하기까지 하다. 그런 윤정을 흠잡을 데 없는 몸과 이국적인 얼굴을 가진 김아중이 연기하게 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는 그녀를 본 남자들이 모두 넋을 잃을 정도였고, SBS <싸인>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법의학자일 때에도 김아중은 예뻤다. 그러나 윤정을 현실에 사는 여자에 가깝게 만든 것은 그녀의 외모가 아니다.

“캐릭터가 확실하게 이해되지 않으면 연기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본능처럼 확확 해내는 배우들이 부럽기도 해요. 스스로도 답답하니까. 연기하면서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제 경험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는데 답이 없을 때는 너무 힘들죠.” “섹시 코드 코미디에서 여주인공이 수줍어하지 않고 야한 대사를 내뱉는 게 흔치 않아서 재미”있었던 반면 같은 여자로서 납득되지 않는 부분에서는 치열하게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다. 윤정이라는 인물의 전사를 레포트로 써서 감독에게 제출하고, 남성의 시선이 아닌 여자가 느낀 마음을 반영시키려 애쓴 결과 윤정은 섹시 코미디의 ‘오 나의 여신님’이 아니라 프러포즈하지 않는 애인이 답답하고, 털컥 회사를 그만둔 앞날이 불안한 와중에 새로 나타난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보통 여자”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녀만큼 노래를 하는 보통 여자는 흔치 않다. <나의 PS 파트너>에서 역시 신음 소리만으로도 곡이 완성될 정도로 탁월한 목소리를 들려줄 정도니까. <미녀는 괴로워>의 ‘Maria’로 주목받은 이래 <나의 PS 파트너>의 ‘섹시 징글벨’까지, 노래하는 배우 김아중의 귀를 사로잡은 목소리들을 청해 보았다.



김아중│내 귀를 사로잡은 목소리들


1. Eric Benet의 < Love & Life >
“배우라면 영화 음악 같은 걸 말씀드려야 하는데. (웃음)” 그러나 김아중의 노래 실력은 그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고, 그에 걸맞게 뛰어난 보컬들의 음악을 추천해주었다. “노래 부를 기회가 있으니까 그럴 때마다 좋아해서 듣는 노래들을 우선순위에 두게 되는 것 같아요. 에릭 베넷은 원래 좋아했고요.” 김아중이 최근 즐겨 찾는 플레이리스트의 상단에 위치한 ‘Chocolate Legs’는 핫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뜨거운 에릭 베넷의 보컬이 돋보이는 곡이다. 리듬을 넘나드는 매력적인 가성으로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는 이 남자의 목소리를 어떤 여자가 거부할 수 있을까.

김아중│내 귀를 사로잡은 목소리들
2. 라디(Ra. D)의 <2집 Realcollabo>
“참 달콤한 노래예요. 한 번씩 기회가 돼서 노래방 가면 불러보기도 하고요, 노래 녹음할 기회나 일본 팬 미팅을 준비할 때 부를 노래로 연습해보기도 해요.” 폭발적인 가창력, 화려한 무대 매너가 좋은 가수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한 번에 시선을 끌지 않아도 귀 기울여 들을수록 깊이 빠지게 되는 목소리를 가진 라디. 그의 숨소리마저 가창의 한 부분이 되는 ‘I`m in love’에 빠진 이는 김아중뿐이 아니었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나르샤가 다시 부르면서 뒤늦게 한층 더 주목받게 된 라디의 원곡은 요즘처럼 눈이 내리는 겨울, 프러포즈 곡으로 더할 나위 없다.



김아중│내 귀를 사로잡은 목소리들
3. George Benson의 < Irreplaceable >
“이번에 조지 벤슨 노래까지 해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곡들이 다 끈적이는 노래들이네요. (웃음)” 전설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의 앨범 < Irreplaceable >이 처음 등장했을 때,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미에서만 10번이 넘는 수상 기록을 가진 그가 지나치게 상업적인 방식으로 선회했다는 볼멘소리와 이제까지 조지 벤슨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젊은 감각의 팝이 반갑다는 호평을 동시에 들었던 앨범에서 귀를 사로잡는 건 단연 ‘Six Play’다. 평범한 R&B 곡으로 지나칠 수 있었던 빈틈을 조지 벤슨의 기타 연주와 목소리가 빼곡히 채우면서 한 번 듣고 넘길 수 없는 흡입력을 가지게 되었다. 클래식으로 평가받았던 뮤지션이 보여준 또 다른 현재진행형이 흥미롭다.



김아중│내 귀를 사로잡은 목소리들
4. 나윤선의 <5집 Memory Lane>
“나윤선 씨를 좋아해요. 제 휴대폰 벨 소리가 ‘Jockey Full Of Bourbon’일 정도예요. 그런데 나윤선 씨가 워낙 노래를 잘 부르셔서 제가 직접 부르기엔 굉장히 힘들어요. (웃음)” 나윤선이 부르는 ‘아리랑’이 한국을 넘어 세계인을 감동시킨다는 표현은 광고의 카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먼저 인정받은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은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빼놓지 공연으로 지금의 K팝 열풍보다 훨씬 앞서 유럽의 귀를 사로잡았다.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버전으로 녹음된 <5집 Memory Lane>은 국내외 리스너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앨범. 담담하지만 서늘한 바람 한 줄기와 뜨거운 햇살 한 줌이 동시에 느껴지는 목소리는 “이 시대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는 미국도 유럽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온 나윤선이다”라는 프랑스 일간지의 평에 동의하게 만든다.



김아중│내 귀를 사로잡은 목소리들
5. Jessie J의 < Domino >
김아중의 스마트폰에서 흥겨운 제시 제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요새 가장 많이 듣는 노래는 제시 제이의 곡들이에요. 오늘 말한 노래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곡이기도 하고요. (웃음)” 직접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뒤져 들려준 제시 제이의 곡은 ‘Domino’.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영국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 보컬들이 끊이지 않고 나온단 말인가’라는 감탄에 이르게 된다. 더피, 에이미 와인하우스, 최근의 아델까지 매력 넘치는 영국 여성 보컬들의 리스트에 새롭게 추가될 만한 제시 제이는 특유의 악동 같은 에너지와 패션으로 ‘영국의 레이디 가가’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현재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싱어송라이터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Who You Are’나 ‘Price Tag’를 부를 정도로 목소리 자체가 가진 힘이 강력하다.

김아중│내 귀를 사로잡은 목소리들


김아중은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수 데뷔를 준비했고, 연기를 시작한 이후에는 여배우라면 피할 수 없는 외모에 대한 품평을 들어왔다. 자신을 지키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그녀는 이제 “김아중, 변화무쌍한 롤러코스터 얼굴” 같은 기사에도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웃어넘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얘기를 나눌수록 관상보다 대화에 적합한 여배우가 들려준 험난한 연예계에서 자신을 지키는 법이다. “어떤 환경에 놓여있어도 스스로를 비난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금 ‘자뻑’에 빠져서 일을 해도 되니까 사람들이 하는 얘기에 위축되지 않으려고 해요. 물론 쉽지가 않죠. 계속, 분기별로 마음을 다잡아야 해요. (웃음) 제가 좋아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너무 대중들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마음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20대에는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거든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어리니까 실수하고 잘못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더 많이 도전하고 솔직하게 다가가야 30대에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그래서 이제는 고민을 덜 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 드리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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