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것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볼수록 민망하고, 오래 볼수록 억울해지는 것들도 분명 있다. 한 편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땀 흘린 이들의 노고를 인정하면서도 <텐아시아>가 2012년 드라마계의 ‘노땡큐’를 선정한 것은 그 때문이다. 올해의 ‘기승전붕’ 엔딩부터 ‘강제동안’ 캐스팅까지, 즐거이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마주쳐야만 했던 황망한 순간들 속으로 고고! 고고!
올해의 푸른클럽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 차은결의 뚜껑머리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 했다. 그러나 얼굴 자체가 애교덩어리인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의 차은결(이현우)마저도 도토리 머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전학생 재희(설리)를 살뜰히 챙겨주는 고운 심성과 수시로 SNS에 ‘셀카’를 올려주는 팬 서비스도 풍향을 무시한 채 오로지 위아래로만 흔들리는 차은결의 뚜껑머리에 가려진다. 그나마 열여덟 차은결의 무리수는 청춘이라는 이유로 눈감아줄 수 있지만, KBS <전우치> 속 두 삼십대 남성의 이마 공개는 어쩐지 안타까움마저 자아낸다. 2:8 가르마 사이로 이마가 수줍게 인사하는 전우치(차태현)의 헤어스타일은 물론, 긴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강림(이희준)은 마치 m자 이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로 도술을 부리는 듯하다. 역시 드러내서 좋은 것은 복근뿐이던가.
올해의 무리수 패러디
MBC <마의> 백광현의 작업법
타임워프라도 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MBC <마의>의 백광현(조승우)은 분명 조선 시대 사람이건만, 유머코드만큼은 시간을 훌쩍 넘어 2012년에닿아 있다. 혜민서 의녀 강지녕(이요원)에게 “과연 낮에는 정숙하고 밤에는 놀 줄 아는 여인”이라며 ‘강남스타일’의 한 구절을 읊어 발끈하게 한 것도 모자라, 특별히 침 잘 놓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KBS <개그콘서트> ‘거지의 품격’ 허경환의 유행어를 응용, “궁금해요? 궁금하면 다섯 푼”을 시전해 매를 번다. 그러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지, “때릴 거면 일곱 푼. 그런데 제가 진짜 계속 다섯 푼, 일곱 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궁금해요? 궁금하면 다섯 푼”이라고 끝까지 외치는 근성마저 뽐낸다. 이래도 광현이 조선 여인네들에게 인기폭발인걸 보면, 시대를 앞선 유머 감각이야말로 그의 숨겨진 매력 포인트인가 싶다.
올해의 아동청소년 지못미
MBC <보고싶다>의 트라우마
드라마 초반 아역의 영향력이 이후의 시청률을 좌우할 만큼 커졌다고 해서 그들에게성인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까지 안겨주는것은 곤란하다. 배다른 형제 지호(강이석)에게 “넌 우리 아빠 Y 염색체를 도둑질해서 잘못 태어난 불량품이란 얘기야”, “걸음마 시작하니까 히말라야 오르겠다 그거야?”라고 말하는SBS <다섯 손가락>의 인하(김지훈)처럼제아무리 생물학적 지식과 문학적 비유를 아우르는 어른스러운 멘트를 해도, 어린이는 어린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뒤쫓아 오는 사채업자들을 피하려 열세 살 해주(김유정)가 바닷물에 뛰어드는 MBC <메이퀸>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데, 하물며 정우(여진구)가 보는 앞에서 열다섯 수연(김소현)의 성폭행을 암시하는 MBC <보고싶다>는 이 어린 배우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그야말로 ‘은팔찌 철컹 철컹’이란 소리가 귓가에 절로 울려 퍼지는 듯하다.
올해의 ‘그 음악을 멈춰줘요, DJ’
SBS <유령>의 팬텀 등장
아무리 좋은 음악도 자꾸 들으면 질리게 마련이다. 흔하디흔한 OST용 발라드가 아니어서 신선한 것도 잠시, 드라마 속 수시로 반복되는 BGM은 긴장감을 떨어뜨리다 못해 헛웃음마저 짓게 했다. SBS <유령>에서는 제목 그대로 ‘팬텀’ 조현민(엄기준)이 등장할 때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OST인 ‘The Phantom of the Opera’를 틀었고, 그가 자살하는 장면에서마저 어김없이 이 음악을 끼얹었다. 또한 KBS <적도의 남자>에서는 불타오르는 태양과 함께 첫 회 첫 장면부터 등장했던 메인테마 ‘Man from equator’가 한 회에도 몇 번씩 흘러나왔으며, JTBC <아내의 자격>에서는 7,80년대 히트했던 제인 버킨의 ‘Yesterday Yes A Day’를 꾸준히 들려주며 타깃 시청 층을 강하게 공략했다. 이 결과 작품의 내용보다 BGM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반복 학습의 성과라고 해야 할까, 폐해라고 해야 할까.
올해의 X맨 중의 X맨 CG
SBS <패션왕>의 어색한 바다
우리는 알고 있다. CG 작업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즉 찰칵, 찍고 휘릭, 돌려, 샥샥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배우를 ‘디스’하는 수준의 CG라면 얘기는 다르다. SBS <패션왕>의 선상반란 장면은 강영걸(유아인)의 눈빛보다 넘실대는 파도 위에 강영걸만 달랑 얹은 어설픔으로 보는 이를 압도했고, 이가영(신세경) 뒤로 늘어선 뉴욕 역시 장난감 빌딩이라면 차라리 믿을 만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세트를 뿌옇게만 처리하곤 ‘하늘세계’라 우기는 MBC <아랑사또전>은 애교였을지 모른다. 공격을 받고 얼음이 되어 버린 <전우치>의 전우치(차태현)는 시청자를 오금저리고 얼어붙게 한 데다, 고려로 가는 SBS <신의>의 하늘 문이 엉성하게 열릴 땐 한없이 불안하기까지 했으니 어쩌면 드라마를 볼 땐 이렇게 외쳐야 하는 것일까. CG는 기술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올해의 무법자 The Outlaw
SBS <드라마의 제왕>의 앤서니 김
허구의 세계를 현실의 잣대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무리하게 벌이는 파괴적인 행태는 종종 공감을 잃는 것을 넘어 캐릭터의 개연성을 떨어뜨리고 이야기의 의미마저 뒤틀어놓는다. KBS <빅>에서 실종된 경준을 찾아다니던 장마리(배수지)는 경준과 똑같은 말투, 습관을 지닌 윤재(공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끝에 경준의 집 유리창을 망설임 없이 의자로 깨고 들어간다. 4차원 소녀 마리의 돌발 행동처럼 보여도, 수지니까 귀여워 보일 뿐 명백한 무단가택침입이다. SBS <드라마의 제왕> 앤서니 김(김명민)은 촌각을 다투는 촬영 테이프의 배달을 위해 퀵서비스 기사에게 목숨을 건 주행을 주문하고는, 사고가 나자 테이프만 챙겨 자리를 떠 버린다. 결국 기사가 사망한 후 가책을 느낀 앤서니 김은 유가족에게 1억의 위로금을 건네고 대표 자리에서 내쫓기는 등 나름의 대가를 치르지만 생명의 무게란 현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결코 가벼울 수 없는 것이다.
올해의 ‘이럴 거면 건드리지 마’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 MBC <닥터 진>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는 콘텐츠 과잉의 시대에 피고름으로 쓴 새로운 이야기만이 능사는 아니다. 좋은 원작을 바탕으로 장르 전환의 묘미를 살리거나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이식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드라마가 만들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만화를 리메이크 한 <아름다운 그대에게>와 MBC <닥터 진>의 경우, 전자는 야심이 너무 없었고 후자는 야망에 잡아먹혔다. 만화 <아름다운 그대에게>가 남장여자의 좌충우돌 기숙학교 잠입기에 순정만화의 A-Z를 세세하지만 담백하게 그려냈다면, 감수성을 놓친 드라마는 설리와 민호의 고화질 ‘짤방’ 제공에 머물며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일본의 역사와 시대 배경에 최적화된 원작을 우리나라에 이입하는 첫 단추부터 무리수일 수밖에 없었던 <닥터 진>은 원작의 재해석은커녕 에피소드를 기계적으로 나열하다 끝내 무려 평행우주라는 우주적으로 생뚱맞은 결말에 도달하며 과욕의 씁쓸한 끝 맛을 남겼다.
올해의 ‘기승전붕(起承轉崩)’
KBS <빅>의 자기부정
‘멘붕’이란 단어가 없었다면 이 기분을 뭐라 형언할 수 있었을지 모를 결말을 맺은 드라마가 쏟아졌다고 느낀다면 기분 탓일까. <패션왕>의 마지막은 영걸(유아인)이 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죽었는지 설명하지 못한 채 익사설과 백곰 오인설 등 각종 추측을 낳았고,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의 마루(송중기)는 사망률 20%의 뇌수술에서야 운 좋게 살아날 수 있다 하더라도칼에 찔린 채 추운 길거리에 한참을 방치되고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회복력으로 살아났다. <빅>이 맥락상 서윤재(공유)가 나와서는 안 될 마지막 장면에 기어이 그의 등짝이라도 보여준 것은 침몰하는 드라마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공유를 향한 시청자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시도였을까. 심지어 부부의 영혼을 바꾸면서까지 결혼의 허상을 그리고자 했던 KBS <울랄라 부부>는 긴 소동이 허무하게도 재결합에 이르렀다. 내가 끝까지 본 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외치고 싶게 만든 ‘기승전붕’의 드라마들이다.
올해의 끼워팔기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에서 강마루(송중기)는 맨발로 집에서 탈출해 자신을 찾아와서는 함께 바다에 가자고 말하는 서은기(문채원)에게 노스페이스 등산복과 신발을 선물했다. 이를 입고 신고 바다에 간 서은기는 갤럭시3 휴대폰을 들고 8연속 사진 촬영을 했다. 마치 광고의 일부를 붙여 넣은 것 같은 무리한 PPL 끼얹기는 극의 감정선을 무시하며 보는 이의 몰입은커녕 실소를 유발하며 드라마의 완성도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MBC <더킹 투하츠>의 주인공들이 굳이 지펠 냉장고 앞에서 키스를 하고, <유령>의 유강미(이연희)가 하필 SK-II 화장품을 선물 받으며 <메이퀸>에 등장한 로봇 청소기가 돌연 방범 기능을 어필하는 광경도 마찬가지다. 제작비의 흐름을 원활하게 돕는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 PPL이 작품의 외부적 윤활유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시청자는 드라마를 보는 것이지 홈쇼핑을 보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올해의 강제동안
KBS <대왕의 꿈> 김춘추
탄력 없는 피부와 걸진 말투, 듬성듬성한 치아 상태만 보고 오해해선 안 된다. 믿기 어렵겠지만 <전우치>의 사복시 관노 봉구(성동일, 46세)는 20대 중반으로 20대 후반인 내금위 부사관 서찬휘(홍종현, 23세)보다 어리며, <아랑사또전>의 염라대왕(박준규, 49세)은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과 달리 꽃 같은 미모의 옥황상제(유승호, 20세)와 이란성 쌍둥이다. KBS <대왕의 꿈> 속 청년 김춘추(최수종, 51세) 역시 축국 도중 공중으로 뛰어올라 공을 차고 말술을 마음껏 마시며 청춘의 호기를 부리지만, 핼쑥한 두 볼과 피곤해 보이는 두 눈만큼은 감출 수가 없다. 어째서 세월은 이들에게만 직격탄을 날린 것인지, 그 억울함에 보는 이마저 목이 메어 올 정도. 그러니 봉구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거나, 김춘추에게 함부로 반말을 했던 이들은 이제라도 고개 숙여 사과할 일이다.
올해의 푸른클럽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 차은결의 뚜껑머리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 했다. 그러나 얼굴 자체가 애교덩어리인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의 차은결(이현우)마저도 도토리 머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전학생 재희(설리)를 살뜰히 챙겨주는 고운 심성과 수시로 SNS에 ‘셀카’를 올려주는 팬 서비스도 풍향을 무시한 채 오로지 위아래로만 흔들리는 차은결의 뚜껑머리에 가려진다. 그나마 열여덟 차은결의 무리수는 청춘이라는 이유로 눈감아줄 수 있지만, KBS <전우치> 속 두 삼십대 남성의 이마 공개는 어쩐지 안타까움마저 자아낸다. 2:8 가르마 사이로 이마가 수줍게 인사하는 전우치(차태현)의 헤어스타일은 물론, 긴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강림(이희준)은 마치 m자 이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로 도술을 부리는 듯하다. 역시 드러내서 좋은 것은 복근뿐이던가.
올해의 무리수 패러디
MBC <마의> 백광현의 작업법
타임워프라도 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MBC <마의>의 백광현(조승우)은 분명 조선 시대 사람이건만, 유머코드만큼은 시간을 훌쩍 넘어 2012년에닿아 있다. 혜민서 의녀 강지녕(이요원)에게 “과연 낮에는 정숙하고 밤에는 놀 줄 아는 여인”이라며 ‘강남스타일’의 한 구절을 읊어 발끈하게 한 것도 모자라, 특별히 침 잘 놓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KBS <개그콘서트> ‘거지의 품격’ 허경환의 유행어를 응용, “궁금해요? 궁금하면 다섯 푼”을 시전해 매를 번다. 그러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지, “때릴 거면 일곱 푼. 그런데 제가 진짜 계속 다섯 푼, 일곱 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궁금해요? 궁금하면 다섯 푼”이라고 끝까지 외치는 근성마저 뽐낸다. 이래도 광현이 조선 여인네들에게 인기폭발인걸 보면, 시대를 앞선 유머 감각이야말로 그의 숨겨진 매력 포인트인가 싶다.
올해의 아동청소년 지못미
MBC <보고싶다>의 트라우마
드라마 초반 아역의 영향력이 이후의 시청률을 좌우할 만큼 커졌다고 해서 그들에게성인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까지 안겨주는것은 곤란하다. 배다른 형제 지호(강이석)에게 “넌 우리 아빠 Y 염색체를 도둑질해서 잘못 태어난 불량품이란 얘기야”, “걸음마 시작하니까 히말라야 오르겠다 그거야?”라고 말하는SBS <다섯 손가락>의 인하(김지훈)처럼제아무리 생물학적 지식과 문학적 비유를 아우르는 어른스러운 멘트를 해도, 어린이는 어린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뒤쫓아 오는 사채업자들을 피하려 열세 살 해주(김유정)가 바닷물에 뛰어드는 MBC <메이퀸>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데, 하물며 정우(여진구)가 보는 앞에서 열다섯 수연(김소현)의 성폭행을 암시하는 MBC <보고싶다>는 이 어린 배우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그야말로 ‘은팔찌 철컹 철컹’이란 소리가 귓가에 절로 울려 퍼지는 듯하다.
올해의 ‘그 음악을 멈춰줘요, DJ’
SBS <유령>의 팬텀 등장
아무리 좋은 음악도 자꾸 들으면 질리게 마련이다. 흔하디흔한 OST용 발라드가 아니어서 신선한 것도 잠시, 드라마 속 수시로 반복되는 BGM은 긴장감을 떨어뜨리다 못해 헛웃음마저 짓게 했다. SBS <유령>에서는 제목 그대로 ‘팬텀’ 조현민(엄기준)이 등장할 때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OST인 ‘The Phantom of the Opera’를 틀었고, 그가 자살하는 장면에서마저 어김없이 이 음악을 끼얹었다. 또한 KBS <적도의 남자>에서는 불타오르는 태양과 함께 첫 회 첫 장면부터 등장했던 메인테마 ‘Man from equator’가 한 회에도 몇 번씩 흘러나왔으며, JTBC <아내의 자격>에서는 7,80년대 히트했던 제인 버킨의 ‘Yesterday Yes A Day’를 꾸준히 들려주며 타깃 시청 층을 강하게 공략했다. 이 결과 작품의 내용보다 BGM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반복 학습의 성과라고 해야 할까, 폐해라고 해야 할까.
올해의 X맨 중의 X맨 CG
SBS <패션왕>의 어색한 바다
우리는 알고 있다. CG 작업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즉 찰칵, 찍고 휘릭, 돌려, 샥샥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배우를 ‘디스’하는 수준의 CG라면 얘기는 다르다. SBS <패션왕>의 선상반란 장면은 강영걸(유아인)의 눈빛보다 넘실대는 파도 위에 강영걸만 달랑 얹은 어설픔으로 보는 이를 압도했고, 이가영(신세경) 뒤로 늘어선 뉴욕 역시 장난감 빌딩이라면 차라리 믿을 만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세트를 뿌옇게만 처리하곤 ‘하늘세계’라 우기는 MBC <아랑사또전>은 애교였을지 모른다. 공격을 받고 얼음이 되어 버린 <전우치>의 전우치(차태현)는 시청자를 오금저리고 얼어붙게 한 데다, 고려로 가는 SBS <신의>의 하늘 문이 엉성하게 열릴 땐 한없이 불안하기까지 했으니 어쩌면 드라마를 볼 땐 이렇게 외쳐야 하는 것일까. CG는 기술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올해의 무법자 The Outlaw
SBS <드라마의 제왕>의 앤서니 김
허구의 세계를 현실의 잣대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무리하게 벌이는 파괴적인 행태는 종종 공감을 잃는 것을 넘어 캐릭터의 개연성을 떨어뜨리고 이야기의 의미마저 뒤틀어놓는다. KBS <빅>에서 실종된 경준을 찾아다니던 장마리(배수지)는 경준과 똑같은 말투, 습관을 지닌 윤재(공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끝에 경준의 집 유리창을 망설임 없이 의자로 깨고 들어간다. 4차원 소녀 마리의 돌발 행동처럼 보여도, 수지니까 귀여워 보일 뿐 명백한 무단가택침입이다. SBS <드라마의 제왕> 앤서니 김(김명민)은 촌각을 다투는 촬영 테이프의 배달을 위해 퀵서비스 기사에게 목숨을 건 주행을 주문하고는, 사고가 나자 테이프만 챙겨 자리를 떠 버린다. 결국 기사가 사망한 후 가책을 느낀 앤서니 김은 유가족에게 1억의 위로금을 건네고 대표 자리에서 내쫓기는 등 나름의 대가를 치르지만 생명의 무게란 현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결코 가벼울 수 없는 것이다.
올해의 ‘이럴 거면 건드리지 마’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 MBC <닥터 진>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는 콘텐츠 과잉의 시대에 피고름으로 쓴 새로운 이야기만이 능사는 아니다. 좋은 원작을 바탕으로 장르 전환의 묘미를 살리거나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이식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드라마가 만들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만화를 리메이크 한 <아름다운 그대에게>와 MBC <닥터 진>의 경우, 전자는 야심이 너무 없었고 후자는 야망에 잡아먹혔다. 만화 <아름다운 그대에게>가 남장여자의 좌충우돌 기숙학교 잠입기에 순정만화의 A-Z를 세세하지만 담백하게 그려냈다면, 감수성을 놓친 드라마는 설리와 민호의 고화질 ‘짤방’ 제공에 머물며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일본의 역사와 시대 배경에 최적화된 원작을 우리나라에 이입하는 첫 단추부터 무리수일 수밖에 없었던 <닥터 진>은 원작의 재해석은커녕 에피소드를 기계적으로 나열하다 끝내 무려 평행우주라는 우주적으로 생뚱맞은 결말에 도달하며 과욕의 씁쓸한 끝 맛을 남겼다.
올해의 ‘기승전붕(起承轉崩)’
KBS <빅>의 자기부정
‘멘붕’이란 단어가 없었다면 이 기분을 뭐라 형언할 수 있었을지 모를 결말을 맺은 드라마가 쏟아졌다고 느낀다면 기분 탓일까. <패션왕>의 마지막은 영걸(유아인)이 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죽었는지 설명하지 못한 채 익사설과 백곰 오인설 등 각종 추측을 낳았고,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의 마루(송중기)는 사망률 20%의 뇌수술에서야 운 좋게 살아날 수 있다 하더라도칼에 찔린 채 추운 길거리에 한참을 방치되고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회복력으로 살아났다. <빅>이 맥락상 서윤재(공유)가 나와서는 안 될 마지막 장면에 기어이 그의 등짝이라도 보여준 것은 침몰하는 드라마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공유를 향한 시청자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시도였을까. 심지어 부부의 영혼을 바꾸면서까지 결혼의 허상을 그리고자 했던 KBS <울랄라 부부>는 긴 소동이 허무하게도 재결합에 이르렀다. 내가 끝까지 본 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외치고 싶게 만든 ‘기승전붕’의 드라마들이다.
올해의 끼워팔기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에서 강마루(송중기)는 맨발로 집에서 탈출해 자신을 찾아와서는 함께 바다에 가자고 말하는 서은기(문채원)에게 노스페이스 등산복과 신발을 선물했다. 이를 입고 신고 바다에 간 서은기는 갤럭시3 휴대폰을 들고 8연속 사진 촬영을 했다. 마치 광고의 일부를 붙여 넣은 것 같은 무리한 PPL 끼얹기는 극의 감정선을 무시하며 보는 이의 몰입은커녕 실소를 유발하며 드라마의 완성도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MBC <더킹 투하츠>의 주인공들이 굳이 지펠 냉장고 앞에서 키스를 하고, <유령>의 유강미(이연희)가 하필 SK-II 화장품을 선물 받으며 <메이퀸>에 등장한 로봇 청소기가 돌연 방범 기능을 어필하는 광경도 마찬가지다. 제작비의 흐름을 원활하게 돕는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 PPL이 작품의 외부적 윤활유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시청자는 드라마를 보는 것이지 홈쇼핑을 보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올해의 강제동안
KBS <대왕의 꿈> 김춘추
탄력 없는 피부와 걸진 말투, 듬성듬성한 치아 상태만 보고 오해해선 안 된다. 믿기 어렵겠지만 <전우치>의 사복시 관노 봉구(성동일, 46세)는 20대 중반으로 20대 후반인 내금위 부사관 서찬휘(홍종현, 23세)보다 어리며, <아랑사또전>의 염라대왕(박준규, 49세)은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과 달리 꽃 같은 미모의 옥황상제(유승호, 20세)와 이란성 쌍둥이다. KBS <대왕의 꿈> 속 청년 김춘추(최수종, 51세) 역시 축국 도중 공중으로 뛰어올라 공을 차고 말술을 마음껏 마시며 청춘의 호기를 부리지만, 핼쑥한 두 볼과 피곤해 보이는 두 눈만큼은 감출 수가 없다. 어째서 세월은 이들에게만 직격탄을 날린 것인지, 그 억울함에 보는 이마저 목이 메어 올 정도. 그러니 봉구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거나, 김춘추에게 함부로 반말을 했던 이들은 이제라도 고개 숙여 사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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