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박세영│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박세영은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SBS 에서 두르고 있던 노국공주의 비단옷이 꽤나 무거웠으리라 생각될 만치 가벼운 차림, 물 빠진 검정 스키니 진에 다갈색 후디를 헐겁게 쓰고 뉘엿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그녀의 템포에 맞추어졌다. 거울 앞에 서서 한두 번 머리를 쓸어 정리하고, 스타일리스트에게 다가가 허리가 큰 옷에 찔러둔 옷핀을 고쳐 꽂고, 다시 거울 앞으로 돌아와 가만히 본다. 찬 공기가 미처 데워지지 않은 스튜디오에서 시작된 촬영. 촬영 의상인 짧은 쇼츠를 입고 조금 추운 듯 다리를 꼬면서도 “아, 너무 웨딩 촬영 포즈 같죠? (웃음)”라며 은근하게 온기를 불어넣는 그녀에게선 특유의 리듬이 느껴진다. 촬영 시간은 조금 지연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여유로웠다. 간혹, 소리도 없이 그 시간과 공간을 흡수하는 사람이 있다. 박세영이 그랬다.

도도한 표정 뒤에 숨겨진 장난기

박세영│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박세영│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멀리서 보니 뚜렷했고 가까이에서 보니 정교한 얼굴선. 조금은 차가운가 싶었던 것은 잠시의 오해였다. 함께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녀는 연신 말끝마다 약간의 웃음기를 묻힌다. KBS 에서 반 아이들에게 “시인, 나태주. 제목, 풀꽃”이라 알려준 바로 그 시의 어구와 닮았다. 단단한가, 싶다가도 밝고 무른 속이 느껴져 자꾸만 더 자세히 보게끔, 오래 들여다보게끔 만든다. “도도하고 차갑고 새침데기에 깍쟁이 같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저는 사실 허당 같은 구석도 많고 말도 많은데. 편하게 이야기하는 거 정말 좋아하고, 캐주얼도 많이 입고… (웃음)” 딸 부잣집의 막내 딸, 초등학교 6학년생 언니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1학년 여자아이는 “학교에서 아는 척 하지마”라던 언니의 뒤를, 그래도 “언니~”하며 계속 따랐다. 이목구비 주변의 콘트라스트가 강한, 그렇게도 선이 분명한 얼굴에서 이야기 하는 내내 서늘함보다는 애교와 장난기가 보인 건 그녀의 타고난 성격 탓인 듯했다.

박세영이 “본격적인 배우 생활”을 시작한 건 지난겨울이다. SBS 에서 “연습 한번 해보고 싶어 그런다”며 상대역인 일봉(이규한)에게 태연하게 입술을 내밀만큼 당돌한 서유진 역을 지나, KBS 에서는 “엄마는 없고 아버지는 무당인” 수미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수미의 불행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아직 연기가 쉽지는 않”기에 수미를 분명하게 이해해야만 했고, 문자 그대로 “수미는 어땠을까”에 대해 생각하면서 연기의 재미와 맛을 봤다. 이후 톡톡 튀는 패션모델 이미호 역으로 등장했던 KBS 를 거친 뒤 만나게 된 SBS 의 노국공주는 그녀에게 하나의 관문과도 같았다. 역할을 경중을 떠나 단단한 겉과 부드러운 속, 복잡한 심리를 표현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의 마지막 촬영이 끝나자마자 에 달려들기 위해 오디션을 봤다. 데뷔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박세영은 이렇게 의 송하경 역으로 다섯 번째 작품에 빠져들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우선인 스물다섯

박세영│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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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영│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박세영│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여름이 될 무렵 시작해 6개월을 오롯이 함께한 는 “사극이니까, 어려울 테니까, 그만큼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꼭 해야 했고, 은 “시간은 계속 흐를 테니” 지금이어야 할 수 있는 청춘물을 해보고 싶었기에 또 해야 했다. 오디션에서는 다른 여자배우들이 해사하게 웃고 예쁜 모습으로 어필할 때 “떨려 죽을 것 같으면서”도 굳이 표정을 만들지 않았고, 느린 말투와 긴장한 모습, “이왕 할 거면 주인공도 해보고 싶다”는 솔직한 자신을 모두 보이며 역할을 따냈다. 그녀에게는 지금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늘 우선이다. “신기한 건요. 작품 들어가기 전엔 다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다가도 하다보면 당장 하는 게 제일 재밌고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는 거예요. 모르겠다가도, 하다보면 맡는 역마다 저와 닮은 구석을 발견하고요.” 박세영은 온통 눈으로 덮여 어디에 길이 있는지 조차 보이지 않는 눈밭 같은 이 곳을 겁내지 않는다. 그리고 태연히, 꼭 자신의 발로 발자국을 새겨 찍으며 걷고 있다. 이렇게, 배우 박세영의 두 번째 겨울이 시작됐다.



글. 이경진 기자 twenty@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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