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경│그 소녀를 쫓아요
김진경│그 소녀를 쫓아요
새하얀 토끼의 뒤를 쫓는 일 같았다. “TV에서 캐스팅 콜을 보고 언니가 나가보라고 해서 엄마도 모르게 서류를 접수 했어요. 어려서부터 키가 좀 크기도 했고, 가수 같은 연예인보다 모델이 더 멋있는 것 같았거든요” 라고 할 만큼, 열여섯 김진경이 온스타일 (이하 )에 지원한 동기는 팔랑팔랑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소녀의 등 뒤로 행운의 미풍을 불어 주었고, 김진경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나라의 한 가운데에 도착하고 말았다. 수줍음 많은 소녀가 용기를 내 사진에 수많은 이야기를 담게 하고, 그 사진으로 전력투구하는 언니들을 이기게 만들고, 그 드라마로 자신보다 곱절씩 나이 많은 시청자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그런 나라 말이다.

아기의 얼굴, 어른의 마음

김진경│그 소녀를 쫓아요
김진경│그 소녀를 쫓아요
입성은 쉬웠지만, 낯선 세상의 규칙을 알아내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서른 명 넘는 모델 지망생들과 함께 프로그램 본선 진출자를 가리는 최종 선발 무대에 서서 ‘여기서 바로 떨어지지만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여정은 본인이 이유를 분석할 틈도 없이 길게 이어졌다. 숫자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질서를 읽어내기 벅찬 것은 스무 살 남짓의 동료들도 마찬가지라 그녀의 재능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언니들이 그런 생각을 한 건 나중에 방송을 보고 알았어요. 에이, 진작 알았으면 언니들 말 잘 안 들었을 텐데. 하지만 워낙 다들 예민한 상황이었고 제가 진짜 못했던 미션도 있었으니까요” 라고 덤덤하게 감정을 희석시켜 버리는 그녀의 성격은 기특하게도 교훈은 남기고 상처를 걸러버린다. 마지막 결승을 앞두고는 다이어트와 기본기 연습에 매진하는 것은 물론 낯가림 심한 성격을 고치지 위해 스피치 강의를 하는 고모의 도움을 받아 말하는 법까지 연습할 정도로 승부욕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얀 얼굴에는 아직도 아기 같은 곡선들이 남아있지만, 야무지게 모서리가 잡힌 그녀의 마음은 훌쩍 어른스러운 모양을 갖추었다.

경쟁이 진행되는 내내, 그리고 준우승자로 결정된 후에도 김진경에게 자꾸만 눈이 가는 것은 바로 그 말랑말랑한 순수함과 반듯한 태도가 빚어내는 의외의 간극 때문이다. “일찍 일을 시작하니까 좋아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어리지만, 금방 더 어린 친구들이 나올 것 같아요. 저 때문에 자극을 받아서 트위터로 상담해 오는 중학생 지망생들도 많고요” 라고 업계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할 때의 그녀는 사뭇 각오가 단단한 프로페셔널이다. “이번 서울 패션 위크에서 쇼를 4개 정도 했는데, 그 중에 두개는 저에게 직접 캐스팅 전화를 주셨거든요. 이제 진짜 모델이 되었다는 생각에 정말 뿌듯했어요. 그런데 (최)소라 언니는 우와, 막 12개씩 해요. 저도 빨리 그렇게 되고 싶어요” 라고 일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김진경에게 패션이란 그녀를 흥분시키는 이벤트가 아니라, 오히려 차분하게 먼 길을 내다보게 하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키가 더 커야 해서 우유랑 멸치를 먹고 있어요”

김진경│그 소녀를 쫓아요
김진경│그 소녀를 쫓아요
하지만 아무리 긴 여행이라 하더라도 첫날밤은 설레어 뒤척이기 마련이라 모델로서 첫 계절을 보내고 있는 김진경은 주먹을 꼭 쥘 때보다 신나게 손을 흔드는 일이 더 많다. 파티에 초대되는 일도, 유명한 모델들을 만나게 되는 일도,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 만난 포토그래퍼들이 자신을 기억해 주는 일도 그녀에게는 마냥 신나고 신기한 일투성이다. 심지어 촬영을 하면서 숙소에서 언니들과 지냈던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빨리 뉴욕에 진출해서 모델 하우스 생활을 해보고 싶을 정도다.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키가 커야 해요! 요즘 우유도 많이 마시고, 멸치도 먹고 있어요.” 물론, 어른들의 세상은 이상한 일투성이고 화려하고 바쁜 패션계는 더욱 이상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앨리스처럼 불쑥 그 세계에 등장한 김진경이 그다지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세상에 대한 낙관보다는 그녀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호기심이라는 작은 쿠키 한 조각이면, 그녀는 얼마든지 너무 작거나 너무 큰, 혹은 너무 신기해서 눈을 뗄 수 없는 소녀로 변신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세상이 할 일은 그 과정을 그저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뿐인지도 모르겠다.



글. 윤희성 nin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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