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에게 아버지란?"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2110508185842688_1.jpg" width="250" height="170" /> <드라마 스페셜- 저어새, 날아가다> 일 KBS2 밤 11시 45분
부모의 이혼 후 30년 가까이 아버지(이주석)와 교류가 뜸했던 소설가 경호(송종호)는, 아버지 사후 유품을 정리하다 민박집 주인 주희(김정난)의 사진을 발견하고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민박집을 찾는다. 2011년 KBS 단막극 극본공모 최우수상 수상작인 <저어새, 날아가다>는 경호가 빈칸으로 남겨져 있던 아버지의 과거를 복원하며 제 삶을 돌아보는 과정을 그린다. 유보라 작가는 이젠 문단에서 한물간 이름이 된 경호가 느끼는 열패감이나, 친구의 아내가 된 옛 애인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경호의 질척거리는 일상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경호의 아버지가 있던 세계가 있다. 멸종 위기의 저어새와 억새밭, 그리고 우직한 순정이 고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너무 순수해서 대상화가 되었다는 점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세계.

이분법적 세계관은 둘째 치더라도, 이것이 지독한 도피라는 점은 입맛을 쓰게 만든다. 아버지 생전엔 그의 삶에 대해 직접 물어볼 생각도 없던 경호는, 그의 사후에는 왜 아무도 아버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느냐며 남 탓을 한다. 사진 몇 장, 기억 몇 점에 의지해 아버지의 흔적을 쫓던 경호는 아버지를 평생 어머니만 사랑한 순정남으로 이상화하더니, 급기야 그에 대한 소설까지 쓴다. 아버지를 신화적인 존재로 박제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상상으로 복원된 아버지와 질척하고 방탕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비교하면서, 경호는 아버지의 삶을 자기연민의 도구로 삼아 진짜 성장을 유예한다. 한 가지 더 의미심장한 것은, 경호에겐 또 한 명의 아버지인 계부가 있지만 계부 또한 단 한 차례도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은 생부든 계부든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아버지는 기를 쓰고 외면하고 배제한다. 아버지(들)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해 극복함으로써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외면함으로써 안도하는 수컷의 이야기라니. 칭얼거림을 그치지 못한 주인공에 대해 무엇을 느낄 수 있을지 당혹스럽다.

글. 이승한(자유기고가) 외부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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