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부조리한 돈의 이치에 수긍하고 스스로 기계에 손을 넣었던 ‘기타남’. 영화 <피에타> 속 ‘기타남’의 말간 얼굴,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감춘 채 동그랗게 달려들던 눈의 잔상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건만 현실의 권세인은 살짝 능글맞다 싶을 만큼 유려하다. “하하하. 아까 (촬영장에서는) 왜 일찍 가버리셨어요? 음식 맛없는데 더 먹일까봐?” 전형적인 인사는 거두고 만나자마자 서글서글하게 농치는 모습에 ‘참 둥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려던 찰나, 또 그는 전혀 다른 결을 보여준다. 사진 촬영이 시작됨과 동시에 온전히 몰입해 농담 한 마디 없다. 스스로가 한 곳에 핀을 맞춘 렌즈가 되어 조리개를 조였다 풀었다 하는 듯 자유롭게 자신의 명암을 그려낸다. 그러다 한 번, 다른 톤의 조명으로 바뀌자 매끈하게 정돈돼 있던 머리를 거리낌 없이 헝클어뜨리며 스스로 무드를 바꾼다. 영리하다. 그리고 직관적이다. 명확하게 순간에 집중하고, 집중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그 찰나를 이용한다.

“‘삭발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던 때가 있었어요”



<피에타>의 `기타남`으로 권세인을 알게 된 이들에게 예능의 호흡에 능숙한 <윤계상의 원테이블> 속 그는 재발견이다.
올해 서른하나.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는 외모는 단단한 프레임이 되어 그를 귀엽거나 말간 이미지 속에 가두곤 했다. 어려서부터 “그저 아주 자연스럽게” 연기에 대한 꿈을 꾸던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과에 들어갔고, 군대를 다녀온 후 SBS <달려라! 고등어>의 주연에 캐스팅되며 데뷔했다. 스스로도 배우 인생에 박차를 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 순조로운 출발이었지만, ‘꽃미남’이미지로 점철된 캐릭터와 자신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했다. 지난 해 방영된 KBS <브레인>에서 연기한 레지던트 1년차 여봉구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뭉툭한 안경을 쓰고 백설기 같은 얼굴로 꾸벅꾸벅 졸던 그에게 시청자들은 ‘꽃봉구’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와 대중에게 인식된 이미지가 밀착되어 굳어진 오해들이 배우 권세인을 꽉 쥐고 꽤나 괴롭혔을 법 하다. 그러나, 그는 버거워하기보다 그저 통째로 껴안아 버린다. “‘삭발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던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또 그런 역을 맡더라도 캐릭터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제가 뭔가 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권세인이 출연 중인 O`live <윤계상의 원테이블>(이하 <원테이블>)은 타인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은 그의 또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윤계상의 파트너로 출연 중인 그는 요리에는 관심 없고 그저 어슬렁대는 것 같지만, 실은 친한 형이자 프로그램의 중심인 윤계상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툭툭 자극하며 호흡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배우 권세인의 모습만을 아는 사람에게는 재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예능, 특히 진행에 꽤나 능숙한 모습이건만 정작 본인은 덤덤하게 자신의 반경을 분명히 그려두었다는 말을 던진다. “제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있어요. 저는 골을 넣지 않아요. 계상이 형이 박주영 선수가 되어 골을 넣으면 되는 것이죠. 저는 도울 뿐이에요.”

시행착오와 기다림으로 펼친 6첩짜리 화폭



지금도 권세인은 이름 석 자보단 ‘윤계상 파트너’, ‘<피에타>의 기타남’으로 더 많이 회자된다. 지난 시간들에 대해 무던하게 말하고, 자신의 영역을 정확하게 찾는 영민함을 보이지만 초조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굉장히 의미 있는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스펙트럼을 계속 넓히고 싶어요.” 그렇게 권세인은 지난 6년 간 확장시켜온 자신의 너른 화폭 앞에 섰다. 이제는 누군가 매끈하고 어려보이는 외모만 보고 자신을 오해하더라도 괜찮다. 다른 모습의 스스로를 보여줄 자신이 있으니 말이다. 그는 지금 막 가장 크고 둥근 원 하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선, 어떤 색깔과 모양으로 채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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