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화 같은 일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신기한 일이 있을 리 없다고. 하지만 이건 틀림없는 우리 엄마의 이야기예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는 늑대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아이, 유키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한 평범한 여성이 100년 전 멸종된 늑대의 후예와 사랑에 빠지고, 그의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룬다는 이야기는 분명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이후,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 하나의 육아기는 영화 밖의 현실만큼 고단한 것이다. 그녀는 늑대아이인 유키와 아메의 정체가 발각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동시에, 이들이 세상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 그렇게 꼬박 12년을 바쳤건만 유키는 중학교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고, 아메는 늑대가 되며, 하나는 홀로 남는다. 작품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가족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한가요?

헌신을 무기 삼지 않는 부모의 미덕
[황효진의 10 voice] <늑대아이>, 육아일기에 담긴 인생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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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늑대아이들의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포기했다. 다니던 대학을 휴학했으며, 두 시간 간격으로 수유하느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도 못했다. 그녀도 보육에 매달려야 하는 대부분의 부모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헌신을 무기 삼아 유키와 아메의 인생에 섣부른 지침을 내리지 않는다. 아이들 때문에 삶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몰랐던 것들을 배워나가며 자신 또한 자랐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도 성장의 한 지점이며, 이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선 먼저 현재의 자신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가 얼룩 고양이에게 지고 돌아온 아메를 다독이고, 늑대로 변해 친구 소헤이를 다치게 한 유키의 등을 문지르며 단지 “괜찮아, 괜찮아”라고만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네가 어떻든 그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는 메시지야말로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이로써 아이들은 가족의 일원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인정받는다. 내가 고생해서 키운 딸, 혹은 아들이기에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의미하다. 하나는 ‘늑대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 걸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줄곧 노력하지만,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이 문제의 답은 이미 아이들 각자가 쥐고 있는 셈이다. 인간이든 늑대든, 선택과 책임은 그들의 몫이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들이 택한 세계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뿐이다. 하나는 늑대가 되어 숲으로 향하는 아메에게 건강하고 행복하라는 인사를 고한다. 갓 태어난 유키를 바라보며 “다 클 때까지 함께 지켜주자”던 늑대인간의 말은, 아마 자식이 타인에 의해 강제로 정체성을 박탈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호소다 마모루가 만든 이상향
[황효진의 10 voice] <늑대아이>, 육아일기에 담긴 인생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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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품은 각기 다른 세계를 지닌 존재들이 공존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반드시 서로 충돌을 일으켜 어느 한 쪽만 살아남거나, 억지로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나와 유키, 아메가 이사한 마을에서는 동물들이 농작물을 망치고, 마을 주민은 화를 내지만 이들을 제거하거나 길들여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요컨대 동물은 동물, 인간은 인간이다. 인간과 인간으로 치환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타인의 세계를 침범하거나 애써 교집합을 끌어내려 하지 않는 세상이 가 생각하는 이상향이다. ‘가족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마련인 이 시대에도 가족이 필요하다면, 어설픈 이해를 들이대지 않고도 누군가를 존중하는 방법을 가장 먼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호소다 마모루의 전작인 에서 마코토는 자신의 타임리프로 인해 다른 사람이 해를 입자 후회한다. 이후 제작된 는 “가족이 저지른 일은 우리가 책임진다”며 문제 해결에 나서는 대가족을 보여주고,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연대하게 하는 것 역시 가족에 대한 애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는 두 작품의 합본 혹은 완결편처럼 보이기도 한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고, 그 속에서 가족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힘이 될 수 있다. 지극히 평범한 메시지라 할 수도 있지만, 가족의 의미가 변함없이 핏줄로만 설명되거나 부모의 희생이 자식을 좌지우지하는 알리바이가 되는 사회에는 유효한 동화다.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면, 변화는 시작될지도 모른다.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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