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답하라 1997>, 1990년대 그 이후

ADVERTISEMENT
–>

그러나 성시원의 가장 고통스러운 5년을 건너 뛴 후, <응답하라 1997>은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는다. 성시원은 이미 윤윤제에 대한 마음을 깨달았고, 윤태웅은 두 사람의 마음을 알자마자 성시원을 포기하며, 그의 앞에는 매력적인 의사(주연)가 등장한다. 어른이 된 그들은 고민보다 결정이 더 부각되고, 모든 문제에는 이상적인 해답이 있다. 그래서 2005년 전후로 <응답하라 1997>의 1990년대는 의미가 달라진다. 첫 회에서 방송작가가 된 성시원은 “작가는 글만 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앵벌이 인생이다”라며 현실에 지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동창회가 끝나는 마지막회의 윤윤제는 “그리하여, 실패해도 좋다”, “기다리는 사람만이 어른의 사랑을 할 수 있다”라는 말로 사랑과 인생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한다.
<응답하라 1997>의 1990년대가 첫 회에서 현실의 시작점이자 돌아올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면, 마지막회에서는 아름다웠으나 이미 지난 회고의 시절이다. “어른의 사랑”이 시작된 후부터 <응답하라 1997>은 더 이상 1990년대의 고민에 응답하지 않는다. 성시원의 현실적인 고민이 상당 부분 남편에 의해 해결되는 것은 이런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다. 성시원의 남편은 판사와 유력 대선 후보 중 한 명이고, 성시원은 필요하다면 두 사람을 자신의 프로그램에 섭외할 수도 있다. 성시원의 주변인들이 대부분 성공하고, 가장 넉넉하지 못한 방성재(이시언)마저도 낙천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연출자 신원호 감독의 말대로 <응답하라 1997>이 지키고자 했던 판타지다.
현실적인 과거, 판타지 같은 현재가 말하는 것

ADVERTISEMENT
–>

과거는 힘들되 낭만적이었고, 현재는 더 이상 치열하지 않은 대신 안정되고 편안하다. 복고를 다루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런 판타지의 힘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10-20대 초반을 보낸 세대는 아직 30대 중반 정도고, IMF 이후 그들 나이에 사회적 안정을 얻는 것은 윤윤제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쉽지 않다. 1999년 KBS <학교>는 10대들의 왕따, 자살, 학교 폭력 등을 전면적으로 다뤘다. 1996년 시작해 1998년 끝나는 성시원의 고교시절은 10대가 낭만의 시절로 인식되던 마지막 순간이자, 당시의 10대가 그래도 현실에서 비켜설 수 있던 시절이다. 자신의 윗세대와 달리 그들은 안정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기도 어렵지만, 그 때보다 더 좋은 시절을 찾기도 어렵다. 완성도만이라면 <응답하라 1997>은 1999년 10대들이 고민과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그 순간에 멈춰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응답하라 1997>의 정서적인 톤은 2005년 이후의 이야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긴 사족, 또는 후일담처럼 보일지라도 동창회가 상징하는 2005년 이후의 삶이 주는 판타지에 가까운 안정감은 시청자가 1990년대를 안전하게 회고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망이다.
그래서 <응답하라 1997>은 무의식적으로 1990년대의 가치를 정의한다. 1990년대에도 10대들은 힘들었고, 고민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 시대를 추억할 대부분의 30대는 지금도 첫 회의 성시원처럼 힘들다. 마지막회에서 성시원의 부모가 나와 성시원의 동창들에게 덕담을 던지는 것은 지금 그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과거를 편안히 회고하기엔, 그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젊고, 가야할 길이 많다. 첫 회의 성시원이 이 세대의 보편적인 현실이라면, 마지막회의 성시원은 이 세대가 꿈꾸는 판타지다. <응답하라 1997>은 이 절충을 통해 아직 회고할 수 없는 시절을 회고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가장 현실적인 디테일로 만들어낸 가장 환상적인 회고.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의 아이들이 그 시절에 보내는 절박한 SOS일지도 모른다. 순도 100%의 꿈은 이제 그 곳 밖에 없다는.
<10 아시아>
ADVERTISEMENT
ADVERTISEMEN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