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프로그램을 꼽는 제 나름의 잣대가 있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방송이 끝나고 난 후 마치 책에 밑줄을 긋듯이 노트를 찾아 기록해두고 싶은 부분이 생긴다면 저는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그처럼 마음에 드는 것들을 찾아내면 다음 날엔 꼭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거 봤느냐고. 그 얘기 정말 가슴에 와 닿지 않았느냐고. 오지랖 넓은 것 하나만 봐도 영락없는 아줌마죠? 그러나 한참 잘 나가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일 경우에는 반색을 하며 맞장구들을 쳐주지만 시간대 때문인지 지상파 방송이 아니기 때문인지 반응이 영 아쉬울 때도 있어요. tvN 가 바로 그런 프로그램입니다.
얼마 전에도 제 정신을 번쩍 들게 했던 장면이 있었어요. 거장 뤽 배송 감독이 초대된 날이었는데요. “아이디어가 없다던가, 창의력이 떨어진 적이 있습니까?”라는 백지연 씨의 질문에 이런 답을 하시더군요.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근육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매일 한 시간이라도 트레이닝을 하면 그 이후에는 더 하기가 쉽습니다.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상상력은 그래서 근육입니다. 더 매일 꾸준히 일할수록 더 쉬워지기 마련이죠.” 주야장천 지난 날 받은 주입식 교육 핑계만 대오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루 진종일 가둬두고 달달 외우고 베껴 쓰기나 시켰으니 상상력이 발달할 리가 있어? 뭐 이런 식의 변명을 하며 살아왔거든요. 물론 비슷한 얘기를 책을 통해 접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활자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생생한 울림, 이런 것이 토크쇼의 묘미가 아닌가 싶어요.
화려한 출연자들과 흐뭇한 대화 불쑥 뤽 배송 감독 얘기부터 꺼냈지만 출연진 면면을 살펴보면 제 눈이 의심스러울 때가 참 많죠. 근래의 기억만 짚어 봐도, 팝스타 제이슨 므라즈에서부터 피겨 스케이팅의 전설 미쉘 콴, 거스 히딩크 감독 등 일일이 거론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들과 직접 영어로 대화를 하며 내면의 얘기들을 술술 끄집어내는 백지연 씨를 보고 있자면 왜 제가 다 흐뭇한지요. 차가워 보이는 외양으로만 보자면 사람들이 여간해선 속을 잘 털어놓지 않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매번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얘기들이 나온단 말입니다. 그 비결이 과연 뭘까요?
지난주에는 그룹 씨엔블루가 출연했었죠. 네 사람 단독 토크쇼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을 제대로 보내고 난 후 데뷔한 연예인으로서의 소회라든가 함께 동고동락하는 사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갈등, 밴드이기에 동반 입대를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 등 진솔한 속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사실 실력보다는 외모에 비중을 둔 그룹이 아닌가, 삐딱하니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인지라 뜨끔해지는 부분이 꽤 있었어요. 혹시나 핸드싱크가 아닌지 유심히 살펴본 날도 있었거든요. 그러나 큰 노력 없이 SBS 의 인기에 편승한 데뷔가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일본에서 거리 공연을 비롯한 라이브 공연을 매일같이 하는 동안 나름 고생이 많았다는 말을 전하는데 억울한 구석이 있을 법도 하련만 담담한 어조로 지난 일들을 풀어 놓더라고요.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죠? 숱하게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해온 그들이지만 노래를 만드는 작업에 대한 질문 같은 건 처음이지 싶어요. “곡을 써 보면 하루하루가 달라요. 오늘 썼던 곡을 다음 날 또 들어보면 이상해서 또 고쳐보고. 그런 것들이 재미있어요.” 상기된 표정으로 리더 정용화는 이렇게 대답했고요. 또 이종현은 경험해본 것들이 별로 없어서 간접경험을 통해 그 느낌을 살려보려고 노력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정신은 꾸준히 노력해 언젠가는 자신도 곡을 써보겠다고, 그래서 네 사람이 만든 곡으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진정한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했고요. 강민혁은 SBS 의 주인공들처럼 서른이 되든 마흔이 되든 한결 같은 우정을 간직하고 싶다고 했죠. 그런 청년들의 장대한 포부를 백지연 씨는 엄마처럼, 또 누나처럼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고 있었습니다. 백지연 씨는 정용화와 이종현이 쓰는 곡의 색깔이 다르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고, 물론 어떤 드라마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죄다 알고 있었죠. 사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백지연’하면 연상되는 단정한 정장 대신 캐주얼한 의상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막내’라는 한 가지로 자리를 함께 한 다섯이 하나가 됐던 시간 아마 씨엔블루, 그들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일 겁니다. 이런 맞춤 인터뷰, 초대 손님에 따른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죠?
이처럼 국내외 스타들이 초대되고 있지만 사실 스타만을 위한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지난주만 해도 씨엔블루 전날인 수요일에는 안철수의 최측근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금태섭과 보수 논객 김진, 또 화요일에는 조두순 사건 피해아동의 아버지와 광고전략가 유정근, 월요일에는 지휘자 금난새가 초대 손님이었으니까요. 스타든 유명 인사든, 어려움에 직면한 보통 사람이든, 어느 누굴 만나든 흔들림 없이,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그들의 삶을 대하는 백지연 씨. 그리고 어쩌면 모험이었을, 그 흔한 보조 진행자며 방청객 하나 없이 오롯이 초대 손님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제작진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표하고 싶네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얼마 전에도 제 정신을 번쩍 들게 했던 장면이 있었어요. 거장 뤽 배송 감독이 초대된 날이었는데요. “아이디어가 없다던가, 창의력이 떨어진 적이 있습니까?”라는 백지연 씨의 질문에 이런 답을 하시더군요.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근육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매일 한 시간이라도 트레이닝을 하면 그 이후에는 더 하기가 쉽습니다.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상상력은 그래서 근육입니다. 더 매일 꾸준히 일할수록 더 쉬워지기 마련이죠.” 주야장천 지난 날 받은 주입식 교육 핑계만 대오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루 진종일 가둬두고 달달 외우고 베껴 쓰기나 시켰으니 상상력이 발달할 리가 있어? 뭐 이런 식의 변명을 하며 살아왔거든요. 물론 비슷한 얘기를 책을 통해 접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활자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생생한 울림, 이런 것이 토크쇼의 묘미가 아닌가 싶어요.
화려한 출연자들과 흐뭇한 대화 불쑥 뤽 배송 감독 얘기부터 꺼냈지만 출연진 면면을 살펴보면 제 눈이 의심스러울 때가 참 많죠. 근래의 기억만 짚어 봐도, 팝스타 제이슨 므라즈에서부터 피겨 스케이팅의 전설 미쉘 콴, 거스 히딩크 감독 등 일일이 거론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들과 직접 영어로 대화를 하며 내면의 얘기들을 술술 끄집어내는 백지연 씨를 보고 있자면 왜 제가 다 흐뭇한지요. 차가워 보이는 외양으로만 보자면 사람들이 여간해선 속을 잘 털어놓지 않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매번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얘기들이 나온단 말입니다. 그 비결이 과연 뭘까요?
지난주에는 그룹 씨엔블루가 출연했었죠. 네 사람 단독 토크쇼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을 제대로 보내고 난 후 데뷔한 연예인으로서의 소회라든가 함께 동고동락하는 사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갈등, 밴드이기에 동반 입대를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 등 진솔한 속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사실 실력보다는 외모에 비중을 둔 그룹이 아닌가, 삐딱하니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인지라 뜨끔해지는 부분이 꽤 있었어요. 혹시나 핸드싱크가 아닌지 유심히 살펴본 날도 있었거든요. 그러나 큰 노력 없이 SBS 의 인기에 편승한 데뷔가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일본에서 거리 공연을 비롯한 라이브 공연을 매일같이 하는 동안 나름 고생이 많았다는 말을 전하는데 억울한 구석이 있을 법도 하련만 담담한 어조로 지난 일들을 풀어 놓더라고요.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죠? 숱하게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해온 그들이지만 노래를 만드는 작업에 대한 질문 같은 건 처음이지 싶어요. “곡을 써 보면 하루하루가 달라요. 오늘 썼던 곡을 다음 날 또 들어보면 이상해서 또 고쳐보고. 그런 것들이 재미있어요.” 상기된 표정으로 리더 정용화는 이렇게 대답했고요. 또 이종현은 경험해본 것들이 별로 없어서 간접경험을 통해 그 느낌을 살려보려고 노력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정신은 꾸준히 노력해 언젠가는 자신도 곡을 써보겠다고, 그래서 네 사람이 만든 곡으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진정한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했고요. 강민혁은 SBS 의 주인공들처럼 서른이 되든 마흔이 되든 한결 같은 우정을 간직하고 싶다고 했죠. 그런 청년들의 장대한 포부를 백지연 씨는 엄마처럼, 또 누나처럼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고 있었습니다. 백지연 씨는 정용화와 이종현이 쓰는 곡의 색깔이 다르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고, 물론 어떤 드라마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죄다 알고 있었죠. 사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백지연’하면 연상되는 단정한 정장 대신 캐주얼한 의상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막내’라는 한 가지로 자리를 함께 한 다섯이 하나가 됐던 시간 아마 씨엔블루, 그들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일 겁니다. 이런 맞춤 인터뷰, 초대 손님에 따른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죠?
이처럼 국내외 스타들이 초대되고 있지만 사실 스타만을 위한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지난주만 해도 씨엔블루 전날인 수요일에는 안철수의 최측근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금태섭과 보수 논객 김진, 또 화요일에는 조두순 사건 피해아동의 아버지와 광고전략가 유정근, 월요일에는 지휘자 금난새가 초대 손님이었으니까요. 스타든 유명 인사든, 어려움에 직면한 보통 사람이든, 어느 누굴 만나든 흔들림 없이,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그들의 삶을 대하는 백지연 씨. 그리고 어쩌면 모험이었을, 그 흔한 보조 진행자며 방청객 하나 없이 오롯이 초대 손님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제작진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표하고 싶네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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