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드라마는 늘 있었다. 사랑이 꽃 피는 병원을 그렸던 MBC 부터 거대한 권력의 각축장을 그린 MBC 까지. 병원에서 연애하고, 정치하고, 환자를 구하는 의사들은 드라마에 알맞은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로맨틱한 러브라인도 없고, 거창한 암투도 없는 은 조금 다른 현실을 비춘다. 왜 의사들은 응급 환자를 책임지지 않는가, 왜 의사들은 저렇게까지 과로해야 하는가. 이가온 기자와 정지혜 TV 평론가가 조직사회의 리얼리티, 의료 시스템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을 살펴보았다. / 편집자주

화근덩어리, 골칫덩어리, 총알받이. 의 해운대 세중병원 의사들은 경계도 영역도 없이 환자를 치료하는 최인혁(이성민) 교수를 이렇게 부른다. 최인혁 교수는 응급실 및 중환자실 수용규모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응급환자를 받고 보는 열의가 있지만 조직의 울타리가 감당할 수 없는 능력과 책임감을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조직의 융화를 해치는 인물”로 낙인찍혔다.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병원을 좌지우지하는 대신 면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는 최인혁 교수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은 MBC 이나 SBS 와는 다른, 의학 드라마의 외피를 두른 구질구질한 오피스 드라마다. 의 장준혁이 목숨 걸고 외과 과장직을 쟁취하려 했던 야망 있는 의사였다면, 최인혁 교수는 의사직에 대해 “사람 목숨 걸고 지킬만한 자리가 아니”라며 그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직장인에 가깝다.

수술대에 오른 조직 사회의 리얼리티
<골든타임> vs <골든타임>│응급실에서 새로 태어난 의학 드라마
vs <골든타임>│응급실에서 새로 태어난 의학 드라마" />“언론이 좋아할 만한” 박원국 환자의 주치의를 자청했다가 환자가 위독해지자 곧바로 최인혁 교수에게 ‘폭탄’을 넘겨버리는 김민준(엄효섭) 외과과장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조직사회의 살벌한 법칙을 몸소 실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인턴이 옳은 소리를 해도 “인턴 군기”를 운운하는 과장님들, 환자가 “초응급”이라는 사실보다 감히 인턴이 빨리 내려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사실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는 선배들이 있는 세중병원은 개인의 의지가 조직의 서열과 관습에 억눌리는 관료주의 사회나 다름없다. 씁쓸하지만 생존을 위해 “교수님께 말대답하지 말라”는 선배의 조언을 반드시 새겨들어야 하는 이유다. 서로 책임을 미루며 수술 순서를 정하다가 결국 환자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합리화하는 모습 역시 어느 조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늘 중간에서 “속 터지는” 응급실은 조직 사회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장치다. 숭고한 생명을 다루고 웅장한 배경음악 아래 수술을 이뤄지는 신성한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시시각각 피범벅이 된 환자가 실려 오고 시도 때도 없이 ‘어레스트’가 나는 정신없는 공간. 하얀 와이셔츠 대신 하얀 가운을 입었을 뿐, 매일 반복적으로 사람과 업무에 치이는 환경은 여느 직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2년 전에 써놓은 사표를 꺼내는 최인혁 교수의 모습에서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진다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처럼 현실정치 뺨치는 치열한 권력다툼도 아닌 치졸한 기 싸움, 그 벽에 가로막혀버린 개인의 능력, 유능하되 튀지 않는 인재를 원하는 조직의 보수성 등 은 수술 장면의 리얼리티에 초점을 둔 기존 의학드라마가 담아내지 못했던 조직으로서의 병원의 리얼리티를 그리고 있다.

조직 안에 있는 개인을 비추다
의 세중병원에서 의사 개인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가. 한 개인이 조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또 얼마나 순진한 발상인가. 권석장 감독의 전작 MBC 는 훌륭한 리더십을 갖춘 셰프가 주방을 바꾸는 기적을 보여줬다. 그러나 은 보다 더 절망적인 시선으로 조직사회를 들여다본다. 세중병원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추진하게 만든 힘은 최인혁 교수의 집념이 아니라 청와대 오찬에 초대받았던 환자였다. 처음의 순수한 열정이 사그라질까봐 두려워하는 후배들에게 “두려움보다 중요한 뭔가가 있다고 스스로 믿는 것 뿐”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멘토는 최인혁 교수뿐이다. 병원의 숨 막히는 공기를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강렬한 러브라인도, 병원이라는 공간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수술 장면도 없는 그 곳에서 은 개인이 조직 안에 편입돼있는 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고민을 드라마틱하게 구현한다. 이것은 분명 새로운 의학 드라마의 탄생이다.
글 이가온

은 끈질기게 “책임”의 문제를 좇는다. 생명의 무게감을 표현하는 이 말은 누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와 연결되면서 어렵고 복잡해진다. “슈바이처 같은 의사될 마음도 없”던 극 초반의 민우(이선균)나 환자 잘못 받아 “불똥 튀는 일” 없길 바라는 각 과의 의사들 모두 의사로서의 판단을 유보하거나 전가해 버린 셈이다. “사고치지 않고 자기 할 일 펑크 안” 낼 인턴을 원하는 이유도 책임질 주체가 부재하거나 불분명하다는 하나의 증거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그러나 결코 책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병원. 그것도 응급 환자들이 널브러져 있는 한가운데서 은 “일개 의사”가 어디까지 “뭘 감당”할 수 있냐를 치열하게 물고 늘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혁(이성민)은 하나의 시스템을 상징하는 중증외상센터의 필요를 역설함으로써 개별 의사와 시스템이 빚을 긴장에 불을 댕긴다. 의 책임론의 진짜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의사와 환자, 개인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시스템
<골든타임> vs <골든타임>│응급실에서 새로 태어난 의학 드라마
vs <골든타임>│응급실에서 새로 태어난 의학 드라마" />세중병원의 룰이 계속해서 위협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키려고 만든 룰을 깨트리고 맞서야 생명을 구하거나 의사의 최선을 다하려면 절차를 어겨야 하는 아이러니의 반복에는 긴급 상황을 대비한 매뉴얼이 미비하거나 문제가 빤히 보이는데도 수정할 의지가 없는 병원의 구조적 허점이 있다. 의사 개인과 시스템은 상보적으로 조우하지 못하고 삐걱거리니 열과 성을 다하는 의사일수록 규칙 위반자가 될 가능성은 높아지고 일개 의사가 감수해야 할 부담은 점점 커진다. 위험이 커지는 건 환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의사가 있다면 인혁처럼 사직서 낼 각오 정도는 서야 하고 중증외상 환자는 자신의 운발을 믿고 ‘환자 최우선주의자’인 인혁 같은 의사만 만나기를 빌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 상황은 결코 의사 개인의 노력과 근성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인혁은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과대평가하는 것을 경계하고 은아(송선미)에게 외상센터에 남아달라고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개 병원” 하나만 개선되면 끝날 문제도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 점에서 은 기존의 의학 드라마와 다른 독보적인 길을 걷는다. 은 의료시스템 전반의 문제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하며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선택에 대해 책임져야할 때 무엇이 전제돼야 하는지에 대한 고집스러운 질문을 시작한다. 장기적 안목으로 책임감 있게 치료를 수행할 조직, 외상센터의 필요를 웅변하는 건 그 하나의 대답이다. 또 이것은 “80억 자금”만으로 “우후죽순” 센터를 늘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 “최대한 손상을 줄여 재수술 받을 컨디션”을 만드는 중증외상 수술의 의도를 닮아야 한다. 즉, 당장 완벽한 결론을 만들지는 못해도 잘 준비된 가이드라인을 통해 오류를 바로잡고 다음을 예비할 수 있는 안정된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리하여 조직적으로 책임을 지고 책임의 내용과 주체를 체계화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사의 부당한 피로감과 병원 문턱조차 넘어보지 못한 채 죽는 환자를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한 수 앞까지 내다보는 의 책임론
그래서 극 초반에 “큰 병원이 뼛골 빼지만 백(back)을 봐”준다는 재인(황정음)의 말은 의 전개 속에서 백만 믿고 오만불손하거나 만능 구원투수 격의 백을 만들자는 것이 아닌 외상센터로 대표되는 의료복지, 나아가 위험에 대비한 사회적 완충지대의 다른 말로 전환돼 나간다. 비록 의사로서 “외롭게 혼자 선택” 해야 할 순간이 오더라도 이런 백이 있다면 두려움을 더는 대신 새로운 경험을 쌓는데 한 발 다가설 용기를 내게 해 자신의 일에 대한 건강한 책임감을 회복할 가능성을 높인다. 병원 문턱도 넘지 못한 채 죽는 환자를 줄일 가능성도 자연스레 커진다. 이처럼 은 책임의 문제를 눈앞의 선택의 결과로 한정짓지 않고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게 만드는 것까지로 확장하면서 치밀한 고민의 흔적을 남겼다. 모든 책임의 화살을 개인에게 돌리거나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부터 사회화하는 현실에서 은 개인의 선택의 결과에 따를 위험을 예비하고 함께 나눌 시스템, 백이 없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사이의 선택”에만 머물지 않고 “좋은 것”을 찾아 볼 수 있게 끌어당기는 것. 의 책임론은 이미 여기까지 내다보는 탁월한 한 수다.
글 정지혜

글. 이가온 thirteen@
글. 정지혜(TV평론가) 외부필자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