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무릇 질문이란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 의심나는 점을 타인에게 물음으로써 답을 얻고자 하는 행위이다. 즉 자문자답이 아니고서야 우리는 ‘문(問)’에 대한 ‘답(答)’을 통제할 수 없으며, 자신이 예측하거나 소망했던 범주에서 벗어나 돌아오는 답변은 현실과의 직면 혹은 새로운 깨달음의 계기가 된다. 그러나 죽비소리처럼 매섭지만 자신에게 꼭 필요한 직언을 외면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인간들은 질문자의 강압적 태도를 통해, 또는 질문의 테크닉을 통해 오로지 하나의 답만을 허락하려 한다.
1.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2. 자랑하고 싶어 이젠 자랑하고 싶어라 의미 없이 지나는 하루하루 속에서 자~랑~을 하고 싶어
cf. 넌씨눈
이러한 ‘답정너’의 케이스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엄마의 “맛있냐?”(정답: 응) 혹은 애인의 “나 살쪘지?”(정답: 아니) 등 답변자가 갈등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관성적으로 정해진 답을 내놓도록 유도하는 것은 ‘시험형 질문’에 속한다. 보다 복잡한 형태로는 “이 여자(남자)와 헤어져야 할까요?”라는 주제의 연애 상담을 통해 애인의 치명적인 결점과 단점들에 대해 토로한 뒤 결별을 추천하는 상대에게 “그래도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 나름대로 고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와 같은 ‘쉴드’를 치며 논의를 제자리걸음하게 만드는 방식도 있다. 또 다른 하나인 ‘자랑형 질문’은 슬림 55 사이즈의 몸매 사진과 함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리는 “저같이 뚱뚱한 사람이 핫팬츠 입고 다니면 욕먹을까요?” (원하는 답: 제가 님 몸매면 하의를 실종시키겠어요 or 제발 저랑 종아리 바꿔 신어요. 원치 않는 답: 입고 싶으면 그냥 입으세요)나 “아버지 연봉이 억대면 많이 버는 건가요?” (원하는 답: 우와, 전문직이신가 봐요 or 상위 3% 안에 드니까 대단한 거죠. 원치 않는 답: 이건희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신 듯)가 대표적이다. 특히 주변인은 물론 불특정 다수의 타인에게까지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강렬한 욕망은 이러한 ‘자랑형 질문’을 점점 교묘하고 집요하게 만드는 원인이지만, 상대가 ‘답정너’임을 눈치 채는 순간 목표는 물 건너가고 관계에는 금이 가는 법이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솔직하게, 맑게, 눈치 있게 마음을 열어야 하는 이유다.
용례 [用例]* ‘답정너’의 3단계 정면 돌파
1) 오는 길에 어떤 남자가 나한테 시간 있냐고 세 번이나 물어보는 거야. 빨리 가야 된다는데도 잠깐 얘기 좀 하자고 연락처 좀 달라고, 키도 크고 얼굴도 멀쩡하게 생겼던데. 뭐지?
정해진 답: 너한테 관심 있나 보다!
무허가 답: 도나 기를 믿으라고.
2) 근데 나는 꼭 폐인같이 하고 나오면 남자들이 번호 달라 그런다? 저번에 신촌에서도 그랬고, 너랑 강남역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잖아. 오늘 화장도 못하고 나왔는데. 왜 그러지?
정해진 답: 넌 안 꾸며도 원래 예쁘잖아.
무허가 답: 텔레마케팅 하려고.
3) 아니,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아까 그 사람도 그렇고 남자들이 보기에는 내가 한가인 이미지래. 난 한가인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만날 그러더라. 어디가 닮았다는 거지?
정해진 답: 좋겠다……
무허가 답: 코에 점 있는 거.
글. 최지은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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