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일 어떤 장면을 찍는다’ 하면 그 장면에 대해 생각을 하고 대사도 외우고 이렇게, 저렇게 연습을 해보긴 해요. 근데 현장에서는 그런 걸 다 지워버리려고 하죠. 막상 갔을 때 소품이나, 상대 배우와의 호흡 이런 거에 따라 완전 달라지거든요. 피부로 와 닿는 게 확 달라요. 그 느낌에 집중하는 거예요.” 오랜 시간 연극을 하면서 “어떤 상황만 주고 감정이 가는대로 하는 연습을 많이 한” 윤제문이기에 지금 느끼는 감정, 지금 드는 생각을 표현하는 게 익숙하다. 말하자면 윤제문의 연기는 ‘왜’, ‘어떻게’ 보다 ‘지금 무엇’을 표현하는 게 핵심인 셈이다. 윤제문 스스로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연기는 그렇게 짧은 순간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힘을 발휘한다. 물론 그의 연기가 최고라곤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힘은 묻고, 따지지 않아도 그가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제문이 추천한 남자들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다음 영화들 또한 한 번에 빨려 들어가는 힘을 느끼게 한다.
1980년 | 마틴 스콜세지
“로버트 드 니로 연기를 좋아한다. 그 배우가 나오는 여러 영화를 봤는데 특히 이 작품의 연기가 기가 막히더라. 그가 맡은 극중 인물이 원래 복싱 선수였는데 은퇴하고 살이 이렇게 쪄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배가 불뚝 튀어나오는데, 그 때 그 배우가 너무 멋있었다. 나중에 이 사람이 거울을 보면서 “난 챔피언이야! 난 챔피언이야!” 외치는 마지막 장면도 참 인상적이었다.”
1941년 미들급 챔피언을 위해 훈련하는 라 모타(로버트 드 니로)는 성난 황소처럼 살아간다. 과거의 성공과는 다르게 자꾸만 자신을 학대했던 라 모타는 결국 아내의 외도에 극심하게 집착하며 스스로 파멸을 자초한다. 로버트 드 니로는 모든 걸 잃고서야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어 더 어리석은 인간, 라 모타를 연기하며 배우로서 큰 명성을 얻는다.
1998년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베트남의 어떤 마을을 폭격하려고 여러 헬기가 뜨는 장면이 있다. 물론 작품 속 슬프고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그 장면은 굉장히 웅장했다. 그 때 클래식 음악도 깔리는데 그 게 정말 장관이었다. 그 음악이 바그너의 곡이었던 것 같은데 헬기는 마을을 향해 가고 음악은 웅장하게 깔리는 장면. 그게 너무 멋지다.”
인간은 스스로 지옥을 만든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빠져나오려 애를 쓰지만 그 때마다 더 깊은 지옥으로 빠진다. 153분에 달하는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전쟁이라는 늪에서 인간이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파괴되어 가는지를 느낄 수 있다. 감정 없이 내뱉는 윌라드 대위(마틴 쉰)의 내레이션과 붉은 색으로 물들어간 화면 또한 폐허의 느낌을 잘 드러낸다. 영화는 끊임없이 우울하지만 실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이 작품으로 제 3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며 명성을 얻기도 했다.
2006년 | 유하
“이 작품에서 상철(윤제문)이 병두(조인성) 싸대기 때리는 장면이 있다. 누가 했는지 그 장면이 참 좋더라고. (웃음) 원래 복싱 경기나 격투기 경기 보는 거 좋아한다. 효도르도 좋아하고. 운동도 피트니스 클럽 가는 것보다 혼자 복싱 체육관 가는 걸 더 좋아한다. 가고 싶을 때 할 수 있으니까. 가면 보통 2시간 하고 많이 할 땐 쉬어 가면서 3시간 반 정도 한다. 야구나 축구, 농구 공 갖고 하는 건 못하고 보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축구는 월드컵 때만 본다. 이번 올림픽 땐 기회 되면 볼 거다.”
영원한 권력이란 없다. 완전할 것 같은 권력은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지만, 끊임없는 배신과 욕망에 의해 뒤엎어지기도 한다.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는 그러한 덧없는 조직의 세계를 쓸쓸하게 보여준다.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병두(조인성)가 잠깐의 짜릿함을 맛본 후 종수(진구)에 의해 쓰러지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한다.
2006년 | 이정범
“재문(설경구)이 자기가 의지하던 민재를 죽인 대식(윤제문)에게 복수를 하려고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재문은 모든 걸 걸고 복수를 하려고 벌교의 한 초등학교에 온다. 그 때 학교에서는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었고 결국 그 둘이 교실에서 대면한다. 대식은 그런 재문을 처음엔 낯설어하는데 그 긴장감이 좋았다.”
2006년 개봉한 이정범 감독의 <열혈남아>는 왕가위 감독의 동명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을 담은 영화다. 조폭들의 이야기 뒤로 모정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이 지배적인 이 영화는 원수의 어머니에게서 연민과 정을 느끼며 흔들리는 주인공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전라남도 벌교의 평화로운 풍경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인물들의 증오심과 대비되며 더 큰 긴장감을 낳는다. 대식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 나문희는 이 영화로 제 2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1977년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대부> 시리즈는 그냥 다 재밌다.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한다. 음악도 좋고.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같은 사람들이 연기를 하면 훅 빨려 들어간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 눈빛을 정말 믿게 되는 거다. 그게 너무 좋다. 분명 연기지만 믿음을 주고 그 순간에 몰입하게 하는 연기가 정말 좋다.”
1972년 세상에 나온 영화 <대부>는 우울하고 비극적인 정서를 장시간 힘 있게 이끌어간다. 돈 코르네오네(말론 브란도) 일가의 붕괴 직전 상황을 보여준 대서사시, 음울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음악도 그 힘의 원천이지만 무엇보다 <대부>의 가장 큰 장점은 윤제문이 말한 대로 배우들의 명연기다. 하지만 말론 브란도는 할리우드 영화가 미국 원주민을 묘사하는 방식에 항의하며 제 45회 아카데미가 준 남우주연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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