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셰코>의 서문기, 박준우 도전자. (왼쪽부터) |
올`리브 <마스터셰프 코리아>(이하 <마셰코>)가 방송되는 동안 쌓인 건 맛뿐만이 아니다. 요리를 하는 목적도, 스타일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뭉클한 성장의 서사야말로 이 프로그램이 차곡차곡 쌓아 온 것이다. 방송을 보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도전자들 역시 다른 이들의 음식에 담긴 인생을 읽어냈으며, 그 결과 <마셰코>는 경쟁의 냉혹함이 아닌 뜨거운 동료애라는 온도를 띠게 됐다. 준결승과 결승 방송만을 앞두고 있는 현재, <10 아시아>가 최종 5인의 도전자 중 박준우와 서문기를 만났다. “요리는 유희 중 하나”라는 박준우와 “반드시 ‘내 요리’를 만들고 싶다”는 서문기는 너무나 달랐지만 서로의 가치를 침범하지 않은 채 조화로웠고, 여기서 <마셰코>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뚜렷한 주관과 의외의 수줍음을 동시에 갖춘 두 사람 역시 매력적이었음은 물론이다.
두 사람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마셰코> 3화 두부요리 미션에서 서로의 요리를 냉정하게 평가할 때부터였던 것 같다. 박준우: 문기는 최종 본선 진출자 15인 중에서 플레이팅으로만 따지면 굉장히 잘하는 친구다. 그런데 나이가 어리다 보니 내가 지금껏 먹어온 음식들에 비해 간이나 조화가 좀 부족했다. 예쁜 요리를 보고 기대했는데, 아주 미세한 부분들이 미흡하니까 실망이 컸다.
서문기: 내가 생각해도 내 음식이 맛있진 않았다. 심사위원분들이 다른 가능성을 보고 뽑아주신 거다. 준우 형의 요리는 처음 접해보는 맛이어서 이게 맛있는 건가, 없는 건가 긴가민가했다. 심사위원분들이 유럽식 요리라고 하시기에 그때야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았다.
둘의 요리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던 건데.
박준우: 문기는 파인 다이닝(고급 요리)을, 나는 가정식을 한다. 그리고 문기는 요리를, 나는 요리 평론을 하고 싶어 한다. 요리에서 통하는 부분이 크게 없기 때문에, 만약 같은 위치에서 같은 무언가를 했다면 마찰이 많았을 것 같다.
“심사위원들이 어떤 평가를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르지만 서로의 가치를 침범하지 않고 조화로웠던 박준우, 서문기 도전자는 <마셰코>의 매력을 확인시켜준다. |
서문기: 시그니처 디쉬 오디션 땐 호주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온 상태라서 압박감이 있었다. 출국하기 전날 새벽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삭막한 주방에서의 신경질적인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내 요리에 대한 김소희 셰프님의 지적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사실 셰프님은 요리사로서의 마음가짐을 보겠다는 거였는데, 좀 무례하게 대했던 것 같아서 첫 방송 후에 많이 반성했다.
박준우: 먼저 노희영 고문님의 평가를 신뢰하기 시작한 건 관점이 파악됐을 때부터였다. 시장성과 상품성이라는 부분을 이해하고 나니 고문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더라. 강레오 셰프님이 운영하시는 레스토랑에 몇 번 가본 후에는 ‘이런 철학과 기술을 가진 분의 이야기라면 수긍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내가 유럽 요리를 하는 사람이다 보니 김소희 셰프님의 유럽적인 감각도 신뢰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처음부터 심사위원들에게 쓴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오기도 생겼을 텐데.
박준우: 원래 목표는 세 번째 미션에서 탈락하는 거였다. 첫 미션에서 떨어지면 자존심이 상할 테고, 두 번째는 좀 아쉽지만 세 번째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강레오 셰프님의 달고기 요리를 따라 만들었던 5화부터 오기가 생겼다. 늘 미식평론에 대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음식을 파악하는 미션에서는 잘하고 싶었던 거다. 결과적으로 1등을 했다. 나 스스로도 잘한 것 같다고 말했는데, 거기서 못 했다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웃음) 칼질이나 불질보다는 음식의 구성 파악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했기 때문에 약한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애초부터 요리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니어서 다른 도전자들 사이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박준우: <마스터 셰프> 프랑스 편을 봤는데 주로 가정식을 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이 정도면 나도 3억을 노려볼만하다 싶어서 지원했더니 요리사도 있고, 요리학교 학생도 있는 거다. 나에겐 요리가 인생의 일부분이지만, 그 사람들에겐 삶의 전부니까 미안하고 민망했다. ‘괜히 내가 이 판에 끼어서 욕먹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다고 나갈 수는 없으니까, 다른 남자 도전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나름대로 치유 같은 걸 받았다. 조금은 더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있겠다 싶더라.
반면 서문기는 요리만 보고 살아온 편 아니었나.
서문기: 어릴 땐 춤을 췄는데 어머니의 반대로 요리학교에 입학을 하게 됐다.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원래 몸으로 하거나 손으로 재주 부리는 일에 좀 뛰어난 편이다. (웃음) 그런데 주방에서 일을 해 보니까 한 곳에 안주하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너무 싫었다. 배우고 싶어서 달려들게 되는 것도 한순간이고, 한 집단에 녹아들기 시작하면 거만해져 버리니까. 그래서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요리를 배웠다. 하나의 형식이나 재료에도 얽매이지 않는 편이다. 다 시도해본 후에 후회하지 않는 거다. 실패해도 배우는 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뭘 하든 별로 겁을 내지 않는다.
둘 다 자신의 성취가 중요한 스타일인 셈이다. 하지만 <마셰코>는 기본적으로 먹는 사람의 입장을 전제해야 하는 프로그램 아닌가.
서문기: (김)승민 형이 늘 “손님이 맛있게 먹을 걸 생각해서 음식을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먼저 요리를 즐겨야 하고, 하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먹는 사람들도 만족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박준우: 미션을 받으면 ‘이 주제로 내가 이걸 해먹어야겠다’, 오로지 그 생각이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혼자서 글을 썼기 때문에 뭔가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그가 행복해하는 걸 보면서 가치를 찾는 일이 거의 없었거든. 먹는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지만 마음에는 진동이 오지 않았다. 고민도 많이 했는데 결론은 모르겠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맛있다’는 거니까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하고, 나는 만족하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어떤 평가를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세계에서는 나름대로 기준이 확고한 거다.
“어디에 어떻게 끼어야 재미있는 게 나올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서문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드림팀이었고, 사전에 충분한 회의를 거쳤기 때문에 돌발상황에서만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되는 거였다. 다만 내가 고집이 좀 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맡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으면 그냥 내가 해야 한다. 음식이 손님 앞에 제대로 나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고집이 나쁜 고집은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시면 좋겠다.
박준우가 맡았던 레드팀은 대결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만두 재료를 맞히는 탈락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내가 더 많이 맞히면 다른 사람이 떨어지는 시스템이라 스트레스가 특히 심했을 것 같다.
박준우: 그때 가장 크게 느낀 건 누구에 대한 미움도 걱정도 아닌 미안함이었다. 탈락미션을 받게 된 계기가 있었던 거니까. 팀장으로서 거기까지 가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탈락할 때마다 모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서는 특이하게 느껴졌다. 경쟁심보다 동지애가 부각될 수 있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박준우: 남자들과 여자들이 각각 한 방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나이가 다 다르고 크게 모가 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가족처럼 관계 형성이 돼 버린 거다. 우승 상금 3억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단 이 사람들의 가치가 더 크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누군가 탈락하면 경쟁자라기보다는 ‘내 동생 떨어진다, 우리 형 떨어진다’ 그런 마음이 된 것 같다. 나와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운이 좋았다.
둘 다 성격이 확실하고 자존심도 강한데 자신의 사적인 모습을 노출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
박준우: 내가 바닷가재를 잡지 못한다거나, 토끼 잠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방송으로 나갈 줄은 몰랐다. (웃음) 그리고 내가 앙탈도 막 부리던데?
서문기: 형이 항상 프로페셔널을 강조하시기 때문에 (방송을) 할 때는 확실히 하시는 거다.
박준우: 우리가 생활하는 모습을 찍는 분들이 항상 함께 있었다. 차차 친해져서 나중에는 편하게 막 이야기했는데, 알고 보니 그분들에게는 그게 일이었더라. (웃음)
서문기: “힘들다, 나 안 해” 그러면서 다 찍고 계셨던 거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마셰코 100일간의 이야기>뿐 아니라, 본방송에서도 뒤로 갈수록 편하게 임하는 것 같았다. 특히 서문기는 사투리를 점점 많이 쓰던데. (웃음)
서문기: 원래 억양이 굉장히 센 대구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서울말을 계속하고 싶었다. 숙소에서는 사투리를 편하게 썼지만, 방송에서는 진지하게 임하고 싶어서 사투리를 쓰지 않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쓰고 있더라. PD님이나 작가님과 점차 친해지다 보니 웃겨 드리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비록 방송으로 보니 썩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강레오 셰프님 흉내를 낸 것도 묻어가려고 그런 거다. 어디에 어떻게 끼어야 재미있는 게 나올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다.
“우승 상금 3억은 기부를 할 예정”
박준우: 사람이 그렇게 금방 변하지는 않는다. 요리하는 건 좋아하지만, 요리사라는 직업을 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사실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만약 내가 스무 살 정도라면 요리가 재미있으니까 맨 밑 단계부터 시작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리는 유희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변함이 없다. 다만 요리가 유희 이상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실제로 보면서 그들에 대한 감정은 많이 바뀌었다.
서문기: 이 생활이 굉장히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됐고. 이게 셰프라는 직업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가 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득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 계속 있었다면 이런 기회와 관심조차 얻지 못했을 테니까. 예전 생활보다는 나아졌다는 것, 내 꿈을 빨리 실현할 수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다. 조금 더 내공을 쌓아야 할 테지만 어쨌든 ‘내 음식’을 만드는 게 목표다.
우승해서 상금 3억을 받는다면 뭘 하고 싶나.
서문기: 학교에 전액 기부를 할 거다. 애들하고 약속했다. (웃음)
박준우: ……….나도 기부를 하려고 한다. (웃음) 사실 처음에는 3억을 굉장히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차와 술, 밥을 팔면서 예술 하는 사람들과 모여 먹고 마시며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그려왔거든. 그런데 문기와 (박)성호는 기부를 한다고 해서 감명을 받았다.
과감하게 전액 기부를 한다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나.
박준우: 내가 약간 회의론자다. 내가 참여해서 뭐가 얼마나 바뀌겠냐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성호와 문기한테서 진짜 많은 걸 느꼈다. 기부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열정이나 삶과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거니까. 내가 그래도 얘네보단 몇 살이나 많은데, 그동안 힘이 없는 개인이라는 핑계로 너무 방관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린 친구들에게 요리도 많이 배웠지만 삶에 대한 자세도 많이 배웠다. 내가 어떤 결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배운 걸 잊지는 않을 거다.
박성호와 서문기가 상대적으로 어리기 때문에 아직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박준우: 기본적인 성향의 문제다. 나는 어릴 때도 이랬다. (나를) 너무 포장하면 안 된다. (웃음) 훈훈한 건 우리 문기만….
이런 모습을 보면 나중에 둘이 함께 <샘&레이먼의 쿠킹타임> 같은 걸 해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문기: 그러려면 성호 형이 필요하다. 준우 형과 내 성격이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성호 형에겐 우리 두 사람에게 없는 부드러움이 있다. 우리의 관계가 좀 더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요소가 되는 자상함 같은 거랄까.
박준우: (서문기의 무릎을 만지며) 아니야, (우리) 안 맞아. (웃음)
서문기: 형이 원래 이렇다는 걸 아니까 내가 신경 쓰지 않고 애교를 부릴 수 있는 거다. 형 옆에 계속 있을 수도 있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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