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주의 10 Voice] <두 개의 문>, 이것은 타인의 비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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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25시간이었다. 생존권을 호소하며 망루에 올랐던 다섯 명의 철거민과 한 명의 경찰 특공대원이 주검이 되어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은 하루를 겨우 넘긴 25시간이었다. 지난 2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은 말한다. 지금 이 나라의 정권이 국민에게 용인하는 시간이 겨우 그만큼이라고. 그것도 단 한 번의 대화나 협상 시도, 최소한의 안전 보장도 없이 경찰특공대를, 크레인을, 컨테이너를 투입해 ‘진압’할 뿐이라고. 지난 2009년 1월 19일 서울시의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발생한 원인불상의 화재로 여섯 명이 목숨을 잃고 스물네 명이 부상당했다. ‘용산 참사’라 명명된 이 비극은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수많은 과오 중 가장 참혹한 사건이고 가장 아픈 기억이다. 비단 많은 목숨을 잃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사건의 시작부터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까지 분명한 사실 하나가 우리 모두에게 죄책감을 안긴다. 이 무고한 죽음은 막을 수 있는 비극이었다는 것이다.

이 던지는 가장 무서운 화두
[김희주의 10 Voice] <두 개의 문>, 이것은 타인의 비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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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라고 했을 때 쉽게 예상되듯 ‘철거민=피해자’의 프레임을 앞세우지 않는다. 철거민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안전 보장 없이 성급하게 진압에 투입된 경찰특공대원이 그 날 그 화옥에서 경험한 공포와 트라우마까지 이야기한다. 이러한 태도가 중요한 이유는 철거민의 적이 경찰이 아니고 경찰의 적이 철거민이 아니라는 아주 상식적인 사실이 쉽게 간과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은 당시 망루가 설치된 남일당 건물의 옥상으로 향하는 두 개의 문 중 하나는 막혀있고 하나는 망루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진압을 위해 도착한 경찰특공대가 어느 쪽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지조차 몰랐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철거민의 시위가 “치안을 해칠 정도”여서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경찰특공대를 일부러 투입시켰다는 공권력의 변명과 달리 화염병 등장 두 시간 전인 초기 망루 설치 단계에 이미 누군가의 전화 한 통으로 성급하고 무리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없었다. 아니 공권력은 그럴 의지조차 없었다. 그 결과 철거민과 경찰이 함께 그 뜨거운 지옥에서 스러져갔다.

을 만든 김일란, 홍지유 감독이 밝힌 연출의 변 중 가장 가슴을 친 문구는 “모두가 노예인 검투사”다. 재판 과정에서 “망루 구조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시위대가 인화물질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 했다”고 진술한 경찰특공대원과 시위를 시작한지 겨우 25시간 만에 눈이 감긴 채 내려 온 철거민도 모두 권력자에 의해 원형경기장에 갇혀 서로에게 검을 겨누었던 검투사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훈련된 검투사들보다 못 한 처지였다. 철거민은 물론 고도로 훈련되었다는 경찰특공대도 허술한 장비와 준비 없는 투입 작전으로 인해 눈앞의 화염 속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신분이라는 이름으로 등급이 나누어지던 시대에 전쟁 포로나 흑인 노예들이 대부분이었던 검투사들은 찬란했던 로마 제국에 드리워진 가장 어두운 그림자다. 이 같은 야만의 기억이 지금 이 땅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 이 던지는 가장 무겁고 무서운 화두 중 하나다.

결코 이유 없는 사건도, 죽음도 없다. 하지만 ‘용산 참사’를 두고 공권력과 정부가 보인 태도는 사건 당사자는 물론 이를 지켜 본 국민들을 의아하게 만들 뿐이었다. 사건 발생 직후 시신 부검은 유가족의 동의 없이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8일 만에 구속되었다. 반면 과잉 진압을 한 경찰에 대해서는 무혐의 결론이 났다. 여론의 연쇄 반응이 두려웠던 정부는 “용산 참사로 벌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라는 홍보지침을 하달했다. 진실이 밝혀지길 바랐던 재판은 공개되지 않는 3,000여 쪽의 수사기록과 삭제된 경찰 측 채증 영상을 비롯해 오히려 진실을 은폐하는 과정이었다.

돌아온 야만의 망령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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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재판은 궁극적 가해자의 얼굴은 누구도 보지 못 한 채 철거민 생존자에 대한 실형 선고로 마무리되었다. 두 감독은 재판을 지켜보며 슬픔, 공포, 그리고 모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무고한 죽음과 우리의 공포와 무력감을 먹이삼아 공권력이 자행하는 야만은 점점 강해질 뿐이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최근 발간한 자서전에서 또 하나의 과잉 진압이었던 2009년의 쌍용차 평택공장 진압 작전에 대해 “안전하게 마무리된, 성공적인 진입이었다”고 자평했다. 이토록 모욕적인 언사가 가능한 이유는 용산 참사와 한미 FTA 반대 시위와 쌍용차 사태가 공권력에게 ‘이렇게 해도 국민이 참아주는구나’라는 “나쁜 교훈”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의 배급위원으로 참여한 영화 의 정지영 감독은 차기작으로 작년 12월 타계한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고문의 일대기를 극화한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유린당한 김근태의 이야기를 그리는 이 작품의 제목은 다. 한편, 지난 20일 해고당한 MBC 최승호 PD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야만의 시대, 불의의 시대에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특별한 감상도 없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 섬뜩한 기시감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의 또 하나의 핵심은 “국가가 무리한 요구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이다. 철거민에게 잘못이 없어서가 아니라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무리한 요구라 하더라도 일단 들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대화와 소통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폭력과 억압의 경험을 몸에 새기고 있는 이 야만의 시대에 용산 참사나 쌍용차 사태, 언론 노조의 파업은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비극이 아니다.

무고한 목숨을 수없이 잃어도 멈추거나 반성하지 않는 현 정권은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유린되고 비민주의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원칙과 질서를 입에 담는 얄팍한 위선에 기댄 난파선이다. 무엇보다 지난 민주화 투쟁의 경험으로 극복되었다고 믿고 싶었던 야만의 폭력이 유령처럼 부활했다. 그래서 설명이나 재현이 아니라 경험과 목격의 다큐멘터리로 기억될 은 관객에게 뒤늦은 목격자의 의무와 잠재적 피해자의 결의를 고민하게 한다. 돌아온 야만의 망령이 위협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피권력자인 우리들은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 하고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용산 거리에서 남일당 건물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날 그 곳에서 여섯 명의 목숨을 집어삼킨 화염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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