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필경 제자를 진심을 다해 아끼는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을진대 왜 제 학창 시절을 되짚어보면 선생님답지 못하셨던 분들의 기억이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스승으로 믿고 따르기엔 인격적으로 한참 부족한 분들이 많았거든요. 본인의 기분에 따라 변덕을 부려가며 아이들을 들볶던 분도 계셨고 물질과 권력에 유난히 약했던 분, 심지어 여고 시절에는 지금이라면 법의 처벌을 받고도 남을 만큼 성추행을 일삼았던 분도 생각나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고통을 토로하는 환자들과 평생을 마주해야 하는 의사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이지 싶어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준수해가며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을 텐데 의사하면 주로 떠오르는 건 냉랭하다 못해 때론 환자를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의료진들이거든요. 바로 MBC 의 진혁(송승헌) 선생님 같은 분들 말이에요.
미나 씨가 변한 진혁 씨의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기뻤을까요 의료봉사를 나갔다가 실신한 환자를 발견해 응급실로 데려온 유미나(박민영) 씨가 ‘기적이라는 것도 있을 테니 일단 수술부터 해보자’며 통사정을 했건만 이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진혁 씨는 늘 그래왔듯이 단호하게 답합니다. “늦었어. 내 진단은 정확해. 열어보나 마나야. 확률이 1 프로도 안 돼.” 그것도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다는 환자의 어린 아들이 다 보고 듣는 마당에 말이에요. 아이가 받을 상처 같은 건 아랑곳 하지 않더군요. 아니 어쩌면 오히려 알아야 할 일은 애써 감추기보다 빨리 알려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어요. “0.1 프로라도 살릴 수 있다면 살려야지. 환자는 저렇게 죽어 가는데 의사가 가망 없다, 그 한 마디면 끝이야? 오빤 내가 저 환자라도 그럴 거야?” 여자 친구인 내가 죽어가는 순간이어도 그렇게 쉽게 포기할 것이냐며 미나 씨가 다그쳤지만 진혁 씨는 역시나 한결 같은 냉정한 어조로 “미안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라고 답하더군요. 그놈의 원칙, 원칙! 그러나 그 원칙은 불과 10분이 채 안 가서 깨지고 말았어요. 미나 씨가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런 미나 씨를 어떻게든 살려내고자 수술대 앞에 선 진혁 씨, 아마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에요. 그랬던 진혁 씨가 타임슬립한 조선시대에서는 같은 상황과 맞닥뜨릴 적마다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니 말이에요. 미나 씨와 똑 닮은 영래 아씨의 오라버니(진이한)라든지 서슬 퍼런 권력의 좌상(김응수) 대감을 구해낸 것이야 그럴 만도 했지만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토막민 아낙네를 위해서도 위험천만한 뇌수술을 감행했죠. 턱없이 부족한 장비에다가 도울 인력도 마땅치 않았지만 엄마를 살려달라는 어린 아이의 애절한 소망을 뿌리치지 않은 겁니다. 사람이 마치 딴 사람이라도 된 양 달라졌지 뭐에요. 그러다 역병이 창궐하자 활인서로 당장 가서 백성들을 치료하라는 어의의 명을 받게 되는데요. 만약 2012년이었다면 국내 최고의 신경외과의에게 하찮은 전염병 치료가 웬 말이냐며 버럭질을 하고도 남았을 텐데 영래 아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현장에 뛰어들어 괴질 치료에 힘쓰는 진혁 씨. 역병은 귀신의 장난인지라 화타가 환생을 한들 잡지 못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무지몽매한 의원들과 싸우기까지 했죠. 아니 그러다 숨을 거둔 괴질 환자를 두고 눈물을 보이더라고요. 의외였어요. 진혁 씨의 이기적인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했던 미나 씨가 그 장면을 봤더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진혁 씨의 각성이 가져올 변화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변변한 치료약 하나 없이 콜레라를 잡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좌절하고 포기하려는 순간 영래 아씨가 찾아와 무엇이든 돕겠다며 힘을 줍니다. 영래 아씨의 환생이 미나 씨일 텐데요. 얼굴만 같은 게 아니라 성정도 판박이처럼 똑 같더군요. 영래 아씨는 물론 훗날 흥선대원군 자리에 오를 이하응(이범수)과 힘을 합해, 또 영래 아씨의 오라버니 홍영휘의 도움으로 앞으로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게 되지 싶은데요. 그렇다면 진혁 씨는 왜 조선시대로 가게 된 걸까요? 자라서 고종황제가 될 명복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그건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2012년을 사는 진혁 씨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고자 조선시대로 보내진 것일 테지요. 이미 진혁 씨는 달라졌으니까요. 돌아와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조선시대로 날아간 진혁 씨의 힘으로 우리나라 개화기에 변화가 올 수 있다면, 더도 덜도 말고 부패와 타락이 조금이라도 줄어든다면 좋을 텐데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미나 씨가 변한 진혁 씨의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기뻤을까요 의료봉사를 나갔다가 실신한 환자를 발견해 응급실로 데려온 유미나(박민영) 씨가 ‘기적이라는 것도 있을 테니 일단 수술부터 해보자’며 통사정을 했건만 이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진혁 씨는 늘 그래왔듯이 단호하게 답합니다. “늦었어. 내 진단은 정확해. 열어보나 마나야. 확률이 1 프로도 안 돼.” 그것도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다는 환자의 어린 아들이 다 보고 듣는 마당에 말이에요. 아이가 받을 상처 같은 건 아랑곳 하지 않더군요. 아니 어쩌면 오히려 알아야 할 일은 애써 감추기보다 빨리 알려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어요. “0.1 프로라도 살릴 수 있다면 살려야지. 환자는 저렇게 죽어 가는데 의사가 가망 없다, 그 한 마디면 끝이야? 오빤 내가 저 환자라도 그럴 거야?” 여자 친구인 내가 죽어가는 순간이어도 그렇게 쉽게 포기할 것이냐며 미나 씨가 다그쳤지만 진혁 씨는 역시나 한결 같은 냉정한 어조로 “미안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라고 답하더군요. 그놈의 원칙, 원칙! 그러나 그 원칙은 불과 10분이 채 안 가서 깨지고 말았어요. 미나 씨가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런 미나 씨를 어떻게든 살려내고자 수술대 앞에 선 진혁 씨, 아마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에요. 그랬던 진혁 씨가 타임슬립한 조선시대에서는 같은 상황과 맞닥뜨릴 적마다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니 말이에요. 미나 씨와 똑 닮은 영래 아씨의 오라버니(진이한)라든지 서슬 퍼런 권력의 좌상(김응수) 대감을 구해낸 것이야 그럴 만도 했지만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토막민 아낙네를 위해서도 위험천만한 뇌수술을 감행했죠. 턱없이 부족한 장비에다가 도울 인력도 마땅치 않았지만 엄마를 살려달라는 어린 아이의 애절한 소망을 뿌리치지 않은 겁니다. 사람이 마치 딴 사람이라도 된 양 달라졌지 뭐에요. 그러다 역병이 창궐하자 활인서로 당장 가서 백성들을 치료하라는 어의의 명을 받게 되는데요. 만약 2012년이었다면 국내 최고의 신경외과의에게 하찮은 전염병 치료가 웬 말이냐며 버럭질을 하고도 남았을 텐데 영래 아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현장에 뛰어들어 괴질 치료에 힘쓰는 진혁 씨. 역병은 귀신의 장난인지라 화타가 환생을 한들 잡지 못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무지몽매한 의원들과 싸우기까지 했죠. 아니 그러다 숨을 거둔 괴질 환자를 두고 눈물을 보이더라고요. 의외였어요. 진혁 씨의 이기적인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했던 미나 씨가 그 장면을 봤더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진혁 씨의 각성이 가져올 변화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변변한 치료약 하나 없이 콜레라를 잡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좌절하고 포기하려는 순간 영래 아씨가 찾아와 무엇이든 돕겠다며 힘을 줍니다. 영래 아씨의 환생이 미나 씨일 텐데요. 얼굴만 같은 게 아니라 성정도 판박이처럼 똑 같더군요. 영래 아씨는 물론 훗날 흥선대원군 자리에 오를 이하응(이범수)과 힘을 합해, 또 영래 아씨의 오라버니 홍영휘의 도움으로 앞으로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게 되지 싶은데요. 그렇다면 진혁 씨는 왜 조선시대로 가게 된 걸까요? 자라서 고종황제가 될 명복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그건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2012년을 사는 진혁 씨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고자 조선시대로 보내진 것일 테지요. 이미 진혁 씨는 달라졌으니까요. 돌아와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조선시대로 날아간 진혁 씨의 힘으로 우리나라 개화기에 변화가 올 수 있다면, 더도 덜도 말고 부패와 타락이 조금이라도 줄어든다면 좋을 텐데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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