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웍스에서 꿈을 꾸는 법
드림웍스에서 꿈을 꾸는 법
영화 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뉴요커 알렉스를 위해 친구들이 만들어 준 생일선물은 뉴욕이었다. 불시착한 아프리카의 모래로 만든 타임스퀘어와 브로드웨이, 브롱크스 동물원은 영영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던 뉴욕을 알렉스 눈앞에 데려왔다. 이들처럼 의 모험이 요동친 몬테카를로와 로마, 런던, 파리를 우리의 눈앞에 펼쳐 보인 송정진, 김정현 애니메이터를 만났다. 이제는 드림웍스에만 한국인 직원이 40여명에 이를 정도고, 픽사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크레딧에서 한국 이름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줄곧 이곳에서 살아온 이들이 ‘꿈의 공장’에서 일하게 된 과정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다만 두 사람의 행복하다 못해 비현실적인 회사 생활기는 이 땅의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월요일부터 ‘이게 사는 건가’라는 탄식을 절로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애니메이션은 한 편을 제작하는데 굉장히 많은 인력이 동원되고 개개인의 작업도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본인이 맡은 파트에 대해 소개해 달라.
송정진: 보통 사람들한테 드림웍스에서 일한다고 하면 열이면 아홉이 “그럼 거기서 누구 그렸어요?”라고 물어본다. (웃음) 디즈니처럼 예전의 셀 애니메이션은 수많은 프레임을 일일이 다 그리지만 우리는 컴퓨터에 가상공간을 만든다. 그 안에 슈렉이나 쿵푸 팬더 같은 등장인물이 있고, 카메라도 있어서 입체적으로 여러 각도에서 캐릭터들을 볼 수 있다. 거기에는 캐릭터를 움직이는 모션 애니메이터, 슈렉 발밑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서부터 뒤에 있는 하늘, 나무를 만들어내는 사람, 갖가지 텍스처의 질감을 입히는 사람까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나는 라이팅, 조명을 세팅하는 일을 한다.

“항상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관심사가 맞춰진다”
드림웍스에서 꿈을 꾸는 법
드림웍스에서 꿈을 꾸는 법
빛은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공간에 가장 현실적인 질감을 부여하는 작업인데.
송정진: 그렇다. 실사영화는 숲을 찍는다고 하면 밖에 나가서 야외촬영 하면 되는데 가상공간은 배경이 숲이면 숲에 맞는 조명을 다 세팅 해줘야 한다. 그래서 컴퓨터 안에도 라이트라는 조명이 있다. 만약 배경에서 해가 저문다고 하면 그 빛의 느낌이 나게 캐릭터마다 다 다른 라이트를 주고, 배경 하나 하나에도 그 색깔과 형태에 맞게 다른 라이트를 줘야한다. 조명 하나에 리액션이 다 다르니까 같은 느낌으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다 제각기 특성에 맞게 세팅해야한다. 그나마 다행인건 그걸 한 장, 한 장 그리는 게 아니고 내가 조명을 세팅 해놓으면 컴퓨터가 쫙 그려낸다. (웃음)
김정현: 이런 작업을 아티스트들이 하는 거고, 나는 아티스트들이 손으로 일일이 하기 힘든 작업들을 가져와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만든다. 를 예로 들면 서커스를 구경하는 관중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다 다르다. 피부색, 눈 색깔, 머리 모양, 나이, 옷 입는 것도 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봤을 때 같은 그룹이라도 다 다르지 않나. 그런 걸 아티스트가 한 사람, 한 사람 그리면 정말 노동집약적인 일이 되는데 나는 랜덤 프로그래밍으로 옷을 쫙 입힌다. 그러면 수천 명의 관중이 탄생하는 거다.

그렇게 랜덤으로 프로그램을 돌리면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스타일도 종종 나오겠다.
김정현: 되게 이상한 조합도 많이 나온다. 평범한 티셔츤데 가죽으로 되어있고 재킷에 넥타이까지 잘 차려 남자가 꽃무늬 바지를 입기도 하고. (웃음) 그런 말도 안 되는 조합을 다 걸러내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보기에 괜찮은 캐릭터들을 남긴 후, 해당 그룹의 특성을 좀 더 살린다. 에서 주인공들이 런던, 이태리, 모나코, 뉴욕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데 각 도시의 특성에 맞는 설정을 프로그래밍에 더했다. 런던 같은 경우는 어둡고 타이트하게 입는 편이고 몸매는 날씬하게 피부는 창백하게 표현한다. 이태리는 까무잡잡하고 오렌지색 계역을 많이 쓰게 비율을 설정해서 특징을 준다.

애니메이터로서 한국인들의 특징은 어떻게 설정할 건가.
김정현: 이 일을 하고 나서 갖게 된 습관인데 어디를 가든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내가 지금 있는 곳으로 말하자면 오피스 지역 같은데, 관찰한 결과 비율을 설정해본다면 남자는 90% 정장을 입히고, 셔츠는 무늬 없이 단색으로 밝은 색, 타이는 무늬가 조금만 들어가게 할 것 같다. 양복은 어두운 회색이나 군청색으로. 여자는 블라우스에 가디건, 치마에 하이힐. 색도 튀는 색은 안 쓰고 무채색이나 파스텔 톤으로 설정 할 거다. (웃음)
송정진: 재밌는 게 회사 사람들 모두 다들 자기가 하는 작업에 따라 주변을 보는 눈이 바뀐다. 나 같은 경우는 예전에 를 할 때는 히컵이 드래곤을 훈련시키면서 물 위에 날아가는 신에서 물에 형체가 반사되는 걸 표현해야했다. 회사가 바닷가에 있는데 그 때는 출근하는 짧은 순간에도 계속 물만 보면서 가는 거다. ‘건물이 어떻게 바닷물에 반사됐지? 저게 어떻게 저렇게 보이지?’ 이런 식으로. 항상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관심사가 맞춰진다.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이 돌아가는 게 자연스럽다”
드림웍스에서 꿈을 꾸는 법
드림웍스에서 꿈을 꾸는 법
두 사람 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 가 일을 하고 있다. 특별히 드림웍스에서 일해야겠다는 계획이나 의지가 있었던 건가.
김정현: 그런 건 없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다. 전공 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미대 수업을 들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컴퓨터공학과 그림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걸 늦게 알게 된 거다. 지금 보면 그림과 컴퓨터, 이 두 개를 합치면 딱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보이는데 당시 한국에는 그런 걸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과에서는 좀 이상한 애, 미대에서는 공대생이 왜? (웃음) 이런 취급을 받다가 미국에 서로 다른 학문을 같이 묶는 걸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 일을 위해 온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막연했다.
송정진: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다시 전공을 정하기까지도 계획된 게 하나도 없었다. 학부에선 조소를 전공했지만 학교 다니면서도 전공에 회의를 느꼈고 졸업 하면 미술학원 선생을 하거나 대학원에 적을 두고 선을 보는 것밖에 없었는데 둘 다 끌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공부를 더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눈에 뜨인 게 컴퓨터그래픽이었다. 그렇게 엉겁결에 미국을 가게 됐다. 그때는 컴퓨터를 켤 줄도 몰랐다. 대학 때는 논문도 타자기로 썼고, 컴퓨터를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원하고 할 수 있는 것에 다가가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포토샵도 미국에 가서야 처음 접했다. (웃음)

그렇게 뚜렷한 계획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너무 대단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 아닌가. (웃음) 드림웍스는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10대 기업에 뽑히기도 했다.
김정현: 나도 신기하다. (웃음) 회사에서 오퍼를 받았을 때 친구들도 “진짜? 니가?” 그랬다. 학교에서 2주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같이 하는 멤버들이 서로에 대한 순위를 매겼다. 크리에이티브, 리더십 등의 항목이 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다른 건 다 평범했지만 다시 일하고 싶은 사람 순위가 60명 중에 손가락 안에 들더라. 아마 회사에서는 한국에서 온 사람인데 드림웍스라는 곳에서 잘 섞여서 일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우려를 좀 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드림웍스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고, 자유로운 소통을 모토로 삼는 기업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집에서는 부모님 말 잘 들으라고 교육받기 마련인데 일하면서 동료들과 문화적인 차이를 느끼진 않았나.
김정현: 낯설었다. 한국식 교육을 받은 시간이 상당히 길었으니까. 지금도 회사에서 조금씩 깨나가면서 편해지는 과정에 있다. 처음 느꼈던 가장 큰 차이는 리뷰였다. 사람들이 누구나 다른 사람 작품에 대해 리뷰를 잘한다. 윗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아래에 있는 사람도 자기 의견을 조목조목 잘 얘기 한다. 심지어 위에 있는 사람도 모르는 게 있으면 밑에 사람한테 물어본다. 상사와도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하고, 상사가 뭐라고 했을 때 아닌 것 같으면 바로 얘기하고. 의견이 돌아가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처음에 나는 상사가 이건 이런 거 같다고 하면 바로 “네” 이러면서 고쳤다. (웃음) 윗사람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 대해서 좀 어려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바로 바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얘기하고 왜 그런지 물어봐야 자기가 하는 일을 더 잘 이해하게 되더라.

송정진 애니메이터가 드림웍스에 온 1990년대만 해도 디즈니에 입사한 한국인이 국내 신문에 나기도 할 만큼 대형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입사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문화적인 차이를 더 크게 느꼈을 것 같은데.
송정진: 그 때는 한국 말 못하는 교포들이 몇 명 있었고, 나처럼 유학생 출신으로 계신 분이 딱 한 분 더 있었다. 그래도 워낙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늘 많아서 특이한 존재는 아니었다. 다만 신기했던 건 첫 날 누가 먼저 와서 “너가 새로 온 아이구나 반가워”하고 인사를 했는데 그 사람이 우리 부서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었다. (웃음) 같은 부서 사람이 아니라도 다들 먼저 와서 말 붙이고 다들 경력이 10년이 훌쩍 넘는 사람들인데 친절하고 먼저 다가오더라.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그 때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느꼈다. 나름 그 전에 게임회사에서 5년 정도 경력을 쌓아서 우쭐했던 게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성숙해질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가장 큰 자극이 된다”
드림웍스에서 꿈을 꾸는 법
드림웍스에서 꿈을 꾸는 법
드림웍스는 직원들의 삶의 질을 위한 투자로도 잘 알려진 기업이다.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서 여가 활동 지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야근도 시키지 않는다는데 사실인가.
송정진: 정말 막판 마감에 ?기지 않는 이상 야근을 금지시킨다. 정 해야 되면 토요일에 나오라고 하거나 저녁밥이라도 주변의 케이터링에서 원하는 걸 골라먹을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시간 외 근무를 시키면 회사 측에서 굉장히 미안해한다. 야근을 하거나 토요일에 나와서 일하면 직원들이 피곤하니까. (동석한 한국의 홍보 담당자 깊은 한숨) 또 회사 내에 체육관이 있어서 야외 수영장이나 농구 코트, 실내 암벽 등반 같은 걸 이용할 수 있다. 웨이트 워치 프로그램이라고 다이어트를 시켜주는 것도 있고, 담배 피는 사람들이 금연하겠다고 하면 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하지만 간식 타임이 제일 좋다. (웃음)
김정현: 오후 3시 되면 전체 메일이 온다. 아래에 아이스크림 차 와있으니까 내려와서 먹으라고.
송정진: 매주 수요일마다 메뉴가 바뀐다. 컵케이크 일 때도 있고 파운드 케이크나 프레츨 일 때도 있고.
김정현: 사실 이런 게 단순히 맛있는 것 먹고 스트레스 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통의 장이 된다. 아이스크림 차가 오면 사람들이 다 나오거든. 그러면서 다들 일 얘기 하는 거다. 서로 고민거리를 풀게 되고 혼자만 앉아서 끙끙 거리는 게 아니라 공유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가 된다. 또 단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다들 웃으면서 얘기하고. (웃음) 회사 입장에서 직원들 건강을 생각하는 것도 있고,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만들려는 것 같다.

그렇게 행복한 회사에서 시리즈부터, , , 등 여러 작품을 했다. 자신의 작업 중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김정현: 에서 트래픽을 설계한 거다. 영화 시작하기 전에 혼자서 갖고 노는 툴이 있었다. 도로에서 자동차가 지나다니고 신호가 바뀌고 교통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건데 에서 그런 게 필요하다더라. 갖고 놀던 걸 보니까 영화에 금방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아티스트한데 툴을 만들어줬다. 차가 몇 대가 필요한지 숫자만 입력하면 원하는 위치에 자동차가 쫙 깔리고, 시뮬레이션 버튼을 누르면 신호에 맞춰서 차들이 알아서 움직이면서 차선도 바꾸고 주차도 하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가능해진 거다. 평소 같으면 개발비나 개발기간이 걸려서 나왔을 텐데 아티스트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송정진: 워낙 이 영화 저 영화 많이 했다. (웃음) 같은 경우는 주인공이 타는 투명한 자동차 비주얼 디벨롭먼트랑 카 체이싱 같은 걸 했다. 에서는 로맨틱한 로마 시퀀스가 기억에 남는다. 로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시퀀스였다. 캐릭터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 다니고, 바티칸 궁전을 뒤로하고 노을을 보는 로맨틱한 장면이었는데 감독과 이 시퀀스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아트 디렉터가 이건 꼭 살려야 한다고 해서 영화에 나가게 됐다.

흔히 애니메이션의 힘은 상상력이라고 한다. 상상력이나 그걸 가능케 하는 창의성은 하루 아침에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인데 평소에 그러한 감각은 어떻게 자극받고 있나.
김정현: 현실세계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가상세계에 담는 일은 하는 거라서 일을 안 할 때는 가상보다는 현실을 보는 걸 좋아한다. 가드닝을 하면서 나무를 만지고 자라나는 걸 보고, 색깔이나 모양의 미묘한 변화 과정을 보면 정말 자연스럽다. 그걸 가상에서 100% 똑같이 표현할 수 없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느낌을 담을 수 있게 실재적으로 하는 활동이 좋다. 세일링을 하면서 물이 움직이고 바람이 불고 천이 펄럭이는 걸 보고,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거나 그 지역의 특성들, 그냥 주변에 있는 것들을 계속 관찰 한다. 현실에서 많이 보고 듣고 느끼려고 한다.
송정진: 나는 회사 직원들에게서 자극을 받는 것 같다. 보면 정말 다양하게 딴 짓을 한다. 어떤 친구는 게임룸에서 Wii를 하는 게 성이 안 차서 회사 안에 있는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하고 싶은 거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거 자체도 엉뚱한데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극장 스크린용 모션센스를 만들어서 스크린 앞에서 테니스 치고 볼링 치기도 했다. (웃음)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자기 그림을 그려서 전시를 하는 친구들, 꽤 유명한 사진작가나 단편영화, 다큐를 찍는 친구들도 있다. 정말로 다양한 일을 부지런하게 하는 주변 사람들이 가장 큰 자극이 된다.

글. 이지혜 seven@
사진. 이진혁 el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