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다른 차원의 음악이다. 음악성이나 국적, 장르를 따져보자는 건 아니다. 선연한 전자음은 청량하고, 반복되는 비트에 둘러싸여 읊조리는 보컬은 모호하게 귀를 간지럽힌다. 2011년 2월 EP 앨범 < Disco Elevator >로 데뷔해 지난 4월 첫 정규 앨범 < Haute Couture >를 발표한 글렌체크의 음악은 머리보다 몸을 먼저 움직이게 만든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으며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김준원과 강혁준, 여기에 지난해 말 합류한 류전열 역시 인터뷰 내내 그들의 음악처럼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느낌으로 마음을 들썩이게 했다. “저스티스가 손으로 십자가 모양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도 상징적인 제스쳐를 만들고 싶다”고 말할 때는 록스타를 꿈꾸는 소년이, “밴드는 음악으로 돈을 버는 대신 즐거움을 줘야 한다”고 말할 때는 누구보다 프로다운 뮤지션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음악 페스티벌에서는 개 같이 놀고 싶다”며 신나게 웃던 표정이 가장 선명하게 남은 밴드, 글렌체크를 만났다.4월 중순에 두 번째 단독콘서트를 했다. 지난해 12월에 했던 첫 번째 단독콘서트와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류전열: 공연 준비하는 과정이나 결과물, 시도했던 것들까지 확실히 달랐다. 지난번보다 훨씬 더 우리가 하고 싶었던 걸 많이 보여줬다.
강혁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공연장에 술 반입이 안됐던 거다.
류전열: 그런데도 다들 가방에 넣어 와서 막 마셔. (웃음)
강혁준: 공연 다음날 청소를 하는데 막걸리랑 맥주병이 막 나오더라. 관객들이 신나게 논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김준원: 그냥 우리 마음대로 하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 좋은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공연을 하는 것도 있지만, 중요한 건 한 작품으로써 우리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공연장 규모나 자금 문제 때문에 하고 싶었던 걸 전부 시도하진 못했는데, 80% 정도는 이루지 않았나 싶다.
“한국 음악, 외국 음악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공연할 때 뒤에 깔리는 영상 콘셉트를 잡는 일이나 포스터 디자인에도 참여를 했다더라. 전체적인 스타일링을 중요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준원: 밴드도 회사처럼 하나의 정체성을 갖고 사람들한테 알려야 하니까 당연한 일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음악을 팔면 사람들은 사고, 우리는 돈을 버는 대신 즐거움을 줘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밴드가 노래에만 신경을 쓰면 큰 회사의 직원 밖에 안 되는 셈이다. 마음대로 이 회사를 운영하고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지는 거지.
재미있는 게 콘서트 제목은 < Pret-A-Porter >(고급 기성복을 선보이는 패션쇼 무대), 이번 정규 1집의 제목은 < Haute Couture >(고급 재봉이란 뜻으로 맞춤 제작된 옷)다.
강혁준: 사실, 우리는 정규 앨범을 내지 말고 그냥 EP로 가자는 이야기도 했었다. 요즘은 다 EP, 싱글 시장이니까. 그래도 정규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우리가 존경하는 밴드들도 다 냈으니 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웃음) 정규 앨범이 훨씬 멋있으니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했나.
김준원: 앨범이 두 달 후에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작업이 너무 안 돼서 다 같이 일주일 동안 프랑스와 벨기에에 다녀왔다. 비행기 값이 가장 싸기도 하고, 내가 프랑스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아무튼 거기서 길거리 연주자가 치는 타악기 소리나 성당에서 나오는 소리 등을 녹음해서 작업할 때 참고하곤 했다. 8번 트랙인 ‘Concorde’ 같은 경우에는 대략적인 아이디어와 제목만 정해놓은 상태였는데, 다녀와서 리듬과 멜로디를 짜 넣었다. 이미 만든 트랙들, 앞으로 만들어야 할 트랙 아이디어들을 쫙 적어놓고 작업을 하다 보니 여행에서 얻은 아이디어들이 잘 떠오르는 것 같았다.
제목을 먼저 지어놓고 여기에 맞춰서 곡을 쓴다는 개념이 독특하다. 틀을 먼저 만들어놓고 곡을 나중에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던데, 이런 방식의 작업이 좀 더 편한 건가.
김준원: 편하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르기도 한다. 가령 앨범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첫 곡은 이런 느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있지 않나. 각각의 곡도 당연히 좋아야 하지만 전체를 들었을 때 하나의 작품이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첫 곡부터 갑자기 세게 나오면 안 된다. 스토리를 생각하면 대충 그림이 나오는 거다. 처음에는 긴장감을 줬다가 뭔가 확 터졌다가, 다시 긴장감을 주는 앨범을 만들자고 생각하면서 곡을 하나씩 집어넣는다. 그렇게 하다보면 건축처럼 하나씩 뭔가 쌓이기 시작한다.
다른 음악에 비해서 보컬이 많이 튀지 않는다. 또렷하게 잘 들리는 것도 아니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가사는 무엇을 염두에 두고 쓰나.
김준원: 목소리라는 것은 어디에 집어넣어도 사람 소리인 걸 알지 않나. 거기다가 가사를 통해서 짧고 굵게 텍스처를 주는 거다. 딱딱 몇 가지만 이야기하는 식으로. 가사가 계속 바뀔 필요도, 길게 쓸 필요도 없다. 패턴이 있으면 멜로디가 좀 복잡하더라도 친숙하게 들리니까.
강혁준: 한국 대중가요나 다른 밴드들이 보컬의 비중을 너무 많이 둬서 우리가 비교적 적게 두는 것처럼 보이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다른 악기들과 똑같이 한다. 균등하게 분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사를 다 외국어로 쓰는데 신디사이저가 얹히니까, 처음 들었을 때 우리나라 밴드가 만든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강혁준: 한국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들을 때 외국 음악 같다고들 한다.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외국 음악이 뭐야?’ 하는 의문이 있다. 이건 한국 음악, 이건 외국 음악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물론 해외에 살면서 영어 가사로 된 노래를 접할 기회가 더 많았으니까 영향을 받았을 순 있다. 하지만 의도한 건 아니다.
김준원: 실은 우리가 음악 공부를 제대로 한 게 아니다. 이론상으로 봤을 때 이게 맞는지 아닌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마음대로 음악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만드는 데 있어서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외국 음악을 많이 들었다 한들, 그땐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서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땐데 그 영향을 받았어도 얼마나 받았겠나. 그렇게 치면 우리나라에서 음악 웬만큼 듣는다는 사람들이 곡을 만들면 우리보다 더 잘하겠지. (웃음)
“라이브 할 때는 악기까지 다 바꾸면서 새로 편곡을 한다” 음악을 들었을 때 클럽에서 듣는 걸 염두에 두고 만든 듯한 느낌도 있다. 이건 의도했던 부분인가.
김준원: 좁은 공간이나 집에서 연주하는 걸 생각했다. 특히 이번 정규앨범은 창고나 부모님이 집을 비우셨을 때 애들이랑 모여서 놀던 때의 느낌을 많이 떠올렸다.
그래서 어떤 음악을 듣고 자랐냐는 것만큼 뭘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성장했는지가 좀 더 궁금했다.
강혁준: 자연을 되게 많이 봤다. 미국에 살 땐 밖에 나가면 다 잔디밭이고 숲이었다. 한국의 초등학생들이나 중학생들은 놀 때 다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지만, 우리는 컴퓨터를 할 데가 거의 없어서 숲에서 나무 타고 놀았다.
김준원: 큰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냐면, 한국은 놀 때도 규칙이 정해져 있다. 놀이터만 해도 구조나 놀 수 있는 방법 같은 게 다 정해져 있고, 어른들이 애들한테 너무 높은 데 올라가면 다치니까 하지 말라는 말도 많이 하고. 우리는 그런 게 없었다. 다치면 다치는 거지 뭐. 그런 게 정신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음악을 만들 때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그냥 듣기 좋으면 되고, 멋있으면 되고.
‘The Closure’로 음악을 시작했던 강혁준과 김준원이 글렌체크라는 이름을 달고 방향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런 정신 때문이었을까.
김준원: 그땐 ‘지금이라면 음악을 만들어서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돌아보면 굉장히 멍청했던 것 같다. (웃음) 잔잔하고 쳐지는 곡들을 주로 만들었는데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무대를 장악할 수 있는 센 음악, 이것보단 좀 더 강렬하지만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앨범에서는 좀 보들보들하더라도 라이브 때는 강렬하게 편곡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음반 자체는 듣기 좋게만 만들고, 라이브 할 때는 악기까지 다 바꾸면서 새로 편곡을 한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음악을 같이 해온 건데, 드러머인 류전열의 합류는 밴드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김준원: 우리가 원래 3인조를 항상 꿈꿔왔었다. 그게 가장 멋있어 보이고, 밴드에 최적화된 것 같았다.
강혁준: 밴드가 안정돼 보이는 느낌이랄까.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류전열: 이번 앨범에 새로운 악기들을 많이 넣어봤는데, 오로지 나의 영향만은 아니다. 타악기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같이 찾아보고, 악기 상가에 가서 모르는 악기들도 쳐봤다. 그러는 도중에 북도 치고 벨도 쳤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와서 라이브 공연 때 그걸 가지고 갔다. 다들 여러 악기에 관심이 많으니까 그렇게 되는 거다.
음악이든 아니든 서로 취향이 굉장히 잘 맞는 것 같더라. 가령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의 팟캐스트를 함께 만든다든지.
김준원: 지난해 단독 공연 전에 홍보 방법으로 생각한 거다. 표를 팔아야 하니까. 그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여서 300장 파는 것도 힘들었다. 그나마 있는 팬들을 통해서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팟캐스트를 재미있게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은 표도 다 팔았지. (웃음) 우리가 원래 허세 부리고 내숭 떠는 거 되게 싫어한다. 대놓고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고, 술 먹고 우는 것보다는 그냥 꼬장 부리거나 때려 부수는 사람을 좋아하고. 셋 다 그런 스타일이니까 얘기하다보면 잘 통한다. 팟캐스트도 ‘좋은 밤 되시고요’ 이런 건 절대 안 하고 무조건 욕하고 막말하는 식으로 가야한다고 합의했다. 우리나라가 원래는 깡인데, 요즘엔 그런 게 너무 없다. (웃음) 지금 2회까지 나왔는데 앞으로도 콘서트 표 안 팔리면 해야지.
류전열: 최후의 수단이다. (웃음)
김준원: 그런데 녹음하고 편집하는 데까지 하루 종일 걸린다. 노래 만드는 거랑 비슷하더라.
“페스티벌에 나간다면 광란의 시간을 보낼 거다” 작업 외에 머리 식히는 시간에는 셋이 도대체 뭘 하고 노는지 좀 궁금하다. (웃음)
류전열: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고전 게임도 많이 한다. 요즘 사람들이 안 하는 걸 막 찾아서 한다.
김준원: 친구들을 더 모아서 콘셉트 파티도 한다. 예를 들면 레트로 패션 파티? 절대로 멋을 내면 안 되고, 제일 촌스럽게 입고 와야 한다. 그럴 땐 바지를 막 가슴까지 올려 입고 와서 음악 틀어 놓고 같이 술 마시면서 논다. 전열이 형이 이런 걸 정말 잘 한다. 되게 센스 있다. 형을 보면서 ‘뭐지? 저 형은 미쳤다’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옷걸이를 뜯어서 자기 몸에 넣고 발망이나 파워숄더로 연출한다. (웃음)
강혁준: 다른 사람들한테 이기려고.
류전열: 나도 하면서 놀랐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강혁준: 약간…. 본능인 것 같아.
가뜩이나 공연도 늦은 시간에 많이 하는데, 그런 식으로 놀면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나.
류전열: 힘들다. (웃음) 계단을 못 올라가겠다.
김준원: 몸이 많이 안 좋아진 것 같다. 공연을 자주 하는 게 그냥 우리한테는 체력관리인 것 같다. 합주도 계속 하다 보면 생각보다 운동이 되거든. 우리는 합주를 되게 많이 한다. 만약 다음 달에 공연이 있다, 그러면 그 전달부터 하루 종일 편곡을 바꿔가면서 매일 한다. 매번 하는 거라도 계속 한다. 몸에 배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 앨범이 나올 땐 음악을 비롯한 모든 부분에서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있다. 스스로는 좀 더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나.
김준원: 다큐멘터리도 찍어보고 싶다. 우리가 하는 짓들을 찍는 건데, 팟캐스트보다 수위가 좀 더 올라갈 수도 있다. (웃음) 그리고 최근에 펑크랑 디스코를 많이 들어서, 다음에는 이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똑같은 건 재미가 없으니까. 사실 진짜 우리의 목표를 간단히 말하자면, 팬들이 공연에 와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려고 하는 습관들을 다 버리게 만드는 거다. 그 순간을 즐기라고 라이브를 하는 거지 않나. 우리는 그 무대에 서기 위해서 준비도 많이 하지만, 무대에 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같이 즐기려고 한다. 왜 사진을 찍어, 놀아야지. (웃음)
그런 점에서, 만약 올해 어떤 페스티벌에서든 공연을 하게 된다면 본인들은 어떻게 놀 작정인가.
김준원: 광란의 시간을 보낼 거다.
강혁준: 막 술 취해서 놀겠지.
류전열: 개 같이 놀아야지. 네발로 막 기어 다니면서. (웃음)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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