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유령의 존재를 믿어야만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직접 유령을 본 경험은 없지만 그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했을 때 ‘그럴 리 없어!’라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니시다 토시유키 씨가 연기한 무사 유령 로쿠베의 존재감이 정말 대단한 데다 제가 그 캐릭터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꼭 눈앞에 있지 않아도 언제든 떠올릴 수 있었어요.” 험상궂은 외모의 유령을 겁내기는커녕 손목을 붙들며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등 엉뚱하면서도 당차고 묘하게 성실한 호쇼 에미처럼, 데뷔 20주년을 훌쩍 넘긴 후카츠 에리에게 역시 소녀 같은 사랑스러움이 남아 있다. 그래서 여전히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대개 ‘왜?’라는 호기심이라는 후카츠 에리가 한국 관객들을 위해 낭만이 담겨 있는 영화들을 추천했다.
1959년 | 빌리 와일더
“마릴린 먼로가 출연한 많은 영화중에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슈가라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그만큼 잘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없을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소동이 일어난 끝에 주인공들이 행복해지는 마지막이 정말 좋아요. 5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영화적인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1929년 금주법 시대의 시카고, 악단 연주자 죠(토니 커티스)와 제리(잭 레몬)는 일자리를 잃고 갱단에 쫓기던 끝에 여장을 하고 여성 악단에 들어가게 된다. 술을 좋아하고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며 백만장자를 만나 부유하게 사는 것이 꿈인 슈가(마릴린 먼로)를 사랑하게 된 죠, 여장한 제리에게 반해 구애하는 나이 든 백만장자의 등장 등으로 복잡해지던 관계는 고전 코미디 영화답게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1961년 | 블레이크 에드워즈
“오드리 헵번의 영화 가운데 <로마의 휴일>이나 <마이 페어 레이디>도 좋아하지만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제목만 들어도 정말 가슴이 두근거리는 영화에요. 많은 돈을 얻어서 화려하게 살게 되는 것을 동경하면서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사랑해줄 사람을 기다리는 홀리의 외로움이 느껴져서 더 좋았던 작품이에요. 빗속에서 고양이를 찾아다니던 홀리와 창가에서 노래하던 홀리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스크린의 요정이었던 오드리 헵번은 유니세프 친선대사 활동을 통해 성녀의 이미지까지 얻으며 독특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지고지순하고 천진한 여성 못지않게 솔직한 욕망을 지닌 여성 캐릭터 역시 다수 연기했던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이러한 두 가지 면모가 한 인물 안에서 완벽하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1939년 | 프랑크 카프라
“<멋진 악몽>에는 프랑크 카프라 감독의 영화가 두 편 등장하는데, <스미스 워싱톤에 가다>는 한 순진한 남자가 우연한 기회에 정치가가 되어 불의와 싸우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이야기에요. <멋진 악몽>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승사자를 설득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영화이기도 해요. (웃음)”
정치에 문외한이던 순수한 인물이 본의 아니게 정치에 발을 들인 뒤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하고 마침내 선의를 이루어내는 드라마의 꾸준한 등장은 그 꿈의 실현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차가운 현실의 반증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미스 워싱톤에 가다> 역시 지나치게 순진하고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보이스카웃 단장에서 상원의원이 된 스미스(제임스 스튜어트)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행위) 장면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강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1946년 | 프랑크 카프라
“<멋진 악몽>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프랑크 카프라 감독 영화는 <멋진 인생>이에요. 우리 영화에 호쇼 에미와 유령이 나온다면 이 영화에는 조지 베일리라는 남자와 천사가 나오지요.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에 어째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답을 알게 되실 거예요.”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주인공 토머스와 앨빈이 매년 크리스마스에 만나 이 영화를 보며 우정을 다지듯 <멋진 인생>은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영화 중 하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자살을 시도하려던 주인공 조지 베일리(제임스 스튜어트)가 천사 클라렌스(헨리 트래버스)를 만나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이야기는 특별할 것 없어도 신의와 선한 마음씨로 삶의 터전을 지켜 온 사람에 대한 최고의 인정이자 가슴 따뜻해지는 위로다.
2011년 | 우디 알렌
“미타니 코키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예요. <미드나잇 인 파리> 역시 파리에 간 주인공이 역사 속의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는 환상적인 경험에 대한 영화인데, 실제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야기에 빠져들게 돼요.”
피츠제럴드, 피카소, 헤밍웨이는 모두 죽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만날 수 있다. 칠순을 넘긴지 오래인 노감독에게는 실례의 말이 될지 모르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번뜩이는 재기를 지닌 남자가 어느새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된 20세기 초의 서구 예술계를 멋지게 채색해 낸 환상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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