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덕 PD “집을 지어준다는 느낌으로 무대를 만들고 싶다”" />
박경덕: 아휴, 버라이어티보다 더 빡세다. (웃음) 예능 PD가 제일 힘들어 하는 게 이삼 일 밤 새워서 편집하는 건데, 음악 프로그램은 그게 없어서 상대적으로 쉽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까 무대에 대한 콘티를 그리면서 머릿속으로 편집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현장에서 달라질 수 있고. 그런 스트레스와 부담이 엄청나다.
요즘엔 유튜브를 통해서 전 세계로 영상이 퍼지니까 더 부담이 되겠다.
박경덕: 특히 해외 팬들이 많은 인기 가수들은 아예 유튜브를 염두에 두고 무대를 만들고 싶어 한다. 빅뱅 같은 팀의 영상은 이백 만, 삼백 만까지 조회 수가 올라가니까. 전 세계인들이 다 보는 셈이기 때문에 기획사들이 해외의 무대를 표절한다든가 하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해외에서 현장 취재 요청도 많이 온다. 많이 뿌듯하고, 좋은 무대를 많이 만들어서 이런 흐름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카메라 팀 회의 말고 조명 팀 회의도 따로 한다” 박경덕 PD “집을 지어준다는 느낌으로 무대를 만들고 싶다”" /> 좋은 무대라는 점에서 최근 의 빅뱅 무대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컴백 무대 중 인트로에서는 와이어, ‘BLUE’에서는 물의 사용, ‘FANTASTIC BABY’에서는 대형 세트의 사용 등 곡마다 완전히 다른 콘셉트를 선보였다.
박경덕: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를 믿어준 양현석 씨에게 감사한다. 무대 구성을 우리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멤버들의 스케줄 같은 부분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단지 ‘차별성 있는 무대를 만들어 달라’고만 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BLUE’는 물, ‘BAD BOY’는 거리의 느낌과 곡의 그루브한 분위기, ‘FANTASTIC BABY’는 음악과 빛깔이 정확히 일치하는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공개방송에서 물을 사용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닌데,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인가.
박경덕: ‘BLUE’에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 오죠’라는 가사가 있다. 생각해 보니 빅뱅도 그런 시간을 겪었고. 거기서 시작했다. 인트로에서 빅뱅이 와이어로 공중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고, 아직 얼어있던 상태의 그들이 천천히 녹아가는 구성을 떠올렸다. 물이라는 게 얼음이 녹아서 흐르는 느낌이 있지 않나.
물의 사용방식이 독특하다. 천장에서 떨어지며 ‘BLUE’라는 글자를 새기는 물과 LED로 표현된 물, 바닥에 깔린 물 등 여러가지 이미지로 표현했다.
박경덕: 물을 활용한 전 세계의 세트들을 많이 뒤져봤는데, 생각 외로 어려웠다. 수영장 바닥처럼 해도 빛깔이 안 살고 아예 블랙으로 깔아도 안 되고. 그러다 찾은 게 일본 21세기 박물관에 있는 수영장이었다. 물 아래로 사람들을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서, 위에서 보면 밑에 사람들이 있고 밑에 있으면 위가 보인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은 우리 작가 중 한 명이 SBS 출신이라 거기서 나왔던 아이템을 제안한 거다. 그 무대에서 지드래곤은 순간순간 손가락으로 하늘을 쏘는 액션을 해서 때맞춰 글자가 딱 떨어지는 것처럼 연출하더라. 참 대단하다 싶었다.
그런 이미지는 곡의 뮤직비디오나 안무에서 설명되는 부분이 아니라서 떠올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박경덕: 그 작업이 제일 어렵다. 생방송이다 보니까 그런 이미지를 백 퍼센트 투과할 수 있는 팀도 많지 않고. 우선 노래를 듣고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이미지를 생각한다. 그것들은 가수와 기획사가 일 년 넘게 고민해서 내놓은 결과물들이니까.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 비슷한 이미지거나 무대에서 구현하기 어렵다면 새로운 이미지를 뽑아내려고 한다. 내가 음악을 전문적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기도 한데, 대신 콘티 작업을 조금 더 오래 한다.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가수들의 컴백 첫 방송 전에는 타 방송 모니터를 안 하는 방법도 있다.
기획사 측과의 협업도 무시할 수 없을 텐데, 어떤 과정을 거쳐 무대를 만들어가나.
박경덕: 요즘은 K-pop 스타들이 워낙 바빠서 콘셉트가 일찍 나오지 않지만, 컴백 3, 4주 전부터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고 2주 전부터는 확실한 비주얼 콘셉트를 받는다. 빅뱅의 무대는 한 달 전쯤부터 고민을 시작한 경우다. 그리고 나는 드라이 리허설(화장을 하거나 의상을 착용하지 않고 하는 리허설) 때부터 가수들에게 무대 의상을 입힌다. 그래야 현장에서 조명이나 색감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누군가 확 튀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색감이 약하다 싶으면 조명을 더 진하게 넣는 식으로 조정하게 된다.
원색의 빛으로만 무대를 채운 지난주 ‘FANTASTIC BABY’처럼, 빛과 색에 특히 신경을 쓴다는 느낌이다.
박경덕: 우리는 카메라 팀 회의 말고 조명 팀 회의도 따로 한다. 조명과 LED, 가수들의 무대 의상을 모두 점검하면서 색깔을 맞춘다. 무대를 한 색으로 맞추는 것만큼 안무의 포인트가 되는 부분에서 변화를 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생방송으로 거의 스무 곡을 하다 보니까 모두 이렇게 할 순 없지만, 한 두 곡씩 늘려가고 있다.
과거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카메라 워크나 편집이 중요했다면, 는 거기에 색감이나 세트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미장센을 만드는 것 같다. 나인뮤지스의 ‘Ticket’에서도 조명이 골드에서 핑크로 바뀐다든가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박경덕: 안무를 보면서 조명과 무대 전체의 콘티를 같이 만들어서 하나로 정리한다. 그러면서 안무의 동선이 확 퍼지거나 하면 색감을 바꾸는 거다. 원하는 색감이나 무대를 뽑아내기 위해 LED 팀이나 세트 감독, 작가들까지 거의 전 세계 잡지를 다 본다. (웃음) 아무래도 요즘 시청자들은 색감 같은 것에 굉장히 민감하니까. 특히 패션 컬렉션들을 보는 게 도움이 된다. 천재들이 만든 콘셉트와 색감이 다 응축돼 있다.
“늘 새로움을 고민하는 스태프들에게 고맙다” 박경덕 PD “집을 지어준다는 느낌으로 무대를 만들고 싶다”" />
과거보다 연출자가 총괄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겠다.
박경덕 : 아무래도 카메라와 조명, 세트 모두 각자 보여주고 싶은 부분들이 있으니까 스태프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게 중요하다. 잘못하면 모든 부분들이 다 강하게 나와서 무대가 이상해져 버릴 수도 있다. 가령 세트 하나를 만들 때도 미술 감독, 세트 디자이너와 함께 회의를 하지만 돈과 사이즈, 시간문제가 있기 때문에 서로 포기할 걸 포기하면서 조절하게 되는 거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나의 무대가 완성되는데, 빅뱅처럼 매주 다른 걸 만들어내는 게 어렵지 않나.
박경덕: 고민이다. 스무 곡의 콘티를 짜다보면 ‘이번 주에 새 콘티가 몇 개지?’ 하고 따져 보게 된다. 기존의 노래에 변화를 주기가 어렵긴 하지만 방송에 한 번 나간 걸 보면 욕심을 더 내고 싶어진다. 웬만한 스태프들은 이런 시도를 반대할 텐데 우리 팀은 오히려 어떻게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을지 연구한다. 고마운 일이다.
‘새로움’이라는 점에서 빅뱅을 좁은 원형 무대에 집어 넣은 ‘BAD BOY’가 인상적이었다.
박경덕: 개인적으로 그 무대를 굉장히 좋아한다. ‘BAD BOY’는 그루브를 타며 몸을 흔드는 느낌이 좋아서 팬들도 같이 호응하는 모습을 생각했는데, 이런 세트가 어울리는 것 같았다. 사실 현장에서는 빅뱅이 ‘이렇게 좁은 우리에 저희를 가둬두시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웃음) 드라이 리허설을 해보니까 멤버들의 동선이 계속 꼬이기도 했고. 하지만 결국 빅뱅의 힘이 컸던 무대였다. 멤버들이 애드리브를 자유롭게 보여줬고, 덕분에 안무 대신 표정이나 액션 컷을 충분히 넣을 수 있었다. 워낙 현장에서 바뀌는 부분까지 프로페셔널하게 계산해서 매주 다른 느낌을 잘 뽑아내는 팀이니까 가능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고민은 없나. ‘FANTASTIC BABY’의 첫 방송에서는 세트 안에 머물러 있던 멤버들이 갑자기 무대 밖으로 나왔다. 뮤직비디오처럼 편집을 한 건데, 생방송을 전제로 하는 음악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부담이 됐을 것 같기도 하다.
박경덕: 그 부분에 대해 의견이 많았다. 생방송의 느낌을 살리는 건 하나의 룰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스무 개 무대 중 대부분을 생방송으로 하니까 그 중 특별한 무대 몇 개는 이렇게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FANTASTIC BABY’도 처음부터 탁 튀어나오는 느낌을 과장되게 가보자고 생각했다. 대신 뮤직비디오처럼 감정의 흐름이 과도하게 끊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룰이 주는 한계를 깨고 난 뒤로는 더 자유로운 시도가 가능해졌나.
박경덕: 맞다. ‘BLUE’와 ‘FANTASTIC BABY’를 찍을 때 가 썼던 기존의 카메라 6, 7대로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아서, 카메라를 추가해 다른 앵글로도 촬영을 했다. 이제 두 곡은 그런 앵글이 없으면 심심하다. (웃음) 이렇게 카메라 무빙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내 안에서도 새로운 영감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의 무대는 기존의 생방송과 뮤직비디오의 개념 사이에 있다는 느낌이다.
박경덕: 카메라 감독님들의 경우 신인 팀들의 멤버 이름은 물론 안무 디테일까지 다 공부하신다. 그래서 어느 포인트에서 어떤 시도를 해야 할지 정확히 파악하는 게 가능하고, 전반적으로 카메라 움직임도 더 많아진다. 예를 들어 ‘FANTASTIC BABY’에서 음정이 쭉 올라가면서 대성이 손을 치켜드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롱테이크로 그대로 따라간다. 이런 건 카메라 팀의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거니까 정말 감사하다.
“아시아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박경덕 PD “집을 지어준다는 느낌으로 무대를 만들고 싶다”" />
샤이니의 ‘셜록’에서는 잔상 안무가 나오는 장면에서 기존의 풀샷이나 바스트샷 대신, 무릎에서 얼굴 정도까지만 자르면서 카메라가 가로로 이동하더라.
박경덕: 보통 샷이 바스트-클로즈 업-웨이스트-풀 이런 식으로 가는데, ‘엉샷’이라는 걸 새로 개발했다. 엉덩이 샷이다. (웃음) 엉덩이를 쓰는 안무가 너무 많고 중요하다 보니까 같이 담을 수 있는 샷을 넣게 됐다. ‘셜록’도 그 장면을 풀로 담으면 어정쩡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역동적이면서도 전체적인 움직임을 함께 담을 수 있는 샷이 필요했다. 사실 내가 조연출을 한 적이 없어서, 오히려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요즘은 워낙 비주얼 시대니까 이런 것도 시도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샤이니의 무대는 안무 자체의 완결성이 워낙 높아서 연출자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정해진 룰 안에서 창조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건데.
박경덕: 그 친구들은 정말 빈틈이 많지 않다. (웃음) 비주얼 콘셉트나 안무가 빈틈없이 짜여 있는 것이 SM의 특성이기도 하고. 완성도 있는 무대나 퍼포먼스를 준비해오는 친구들은 영상이나 조명, 또는 특수 효과로 어떻게든 치고 들어가서 뭔가를 붐업 시켜야 되는 것 같다. 흥을 확 일으키는 방법이랄까. 그러면 가수들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특히 샤이니는 춤이 보여주는 각이 중요한 팀이지만, 키 같은 멤버는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느낌도 굉장히 좋다. 이런 부분을 살려내기 위해 안무뿐 아니라 표정을 잡아내는 것에도 더욱 신경을 쓴다.
그런 부분에서 를 비롯한 요즘 음악 프로그램 무대는 뮤직비디오와 생방송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이런 무대에 대한 호응이 굉장히 높은데, 만드는 입장에서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박경덕: 아무래도 방송 무대는 뮤직비디오보다 좀 더 쇼를 보는 맛이 있다고 본다. 뮤직비디오는 정해진 컷과 표정만 반복하지만 무대 위의 쇼는 다양한 요소들이 모두 보이니까. 그리고 K-pop 가수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무대다 보니 해외 쪽의 관심도 큰 것 같다.
K-pop의 인기가 해외로 뻗어나가는 상황에서 음악 방송 연출을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박경덕: 어렵지만 행복하다. 유튜브에 올라간 가수들의 영상에 수많은 나라의 언어로 달린 댓글을 보는 것도 즐겁고. K-pop이 세계적인 무대에 올라선 만큼 우리나라 음악과 방송도 수준이 높아진 거다. 예전에는 어떤 무대를 보면 일본 거 같아, 미국 거 같아, 이랬는데 이제는 우리만의 무대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무대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는 거지.
를 보면 무대 위라는 설정 안에서 무엇이든 가능한 가상의 공간을 만든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무대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하고 있는 건데,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무대란 무엇인가.
박경덕: 현실적 제약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무대를 만들어놓고 너희들이 와서 부르라는 식의 연출을 아주 안할 수는 없는 거다. 하지만 가능하면 많은 가수들에게 ‘그들의 무대’를 주려고 한다. 그건 생방송의 개념과 반대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 무대의 주인이어야 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너희들의 집을 지어준다’는 느낌으로 무대를 만들고 싶다.
그러나 방송사의 시스템 상 언제까지나 연출만을 맡을 수는 없을 거다. (웃음) 두 번째 단독 연출작에 대한 계획이 있나.
박경덕: 글로벌한 기획에 관심이 많다. 때마침 한류가 터지기도 했고, 국경 없이 모든 게 통합되는 시대니까. 이렇게 될수록 중요한 건 언어를 뛰어넘는 공통적인 감수성인 것 같더라. 아시아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더 자세한 건 올 가을쯤에 말씀드리겠다. (웃음)
인터뷰. 강명석 기자 two@
정리.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SBS 의 시청률은 평균 4% 정도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속 빅뱅 무대 영상의 조회수는 적게는 2만, 많게는 5만까지 올라간다. 전 세계 어디서든 K-pop 가수들의 무대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음악 프로그램이 음반과 음원 홍보 통로로만 기능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방송 무대는 가수들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장이다. 특히 는 빅뱅의 컴백 무대에서 와이어로부터 LED, 그 밖의 특수 효과등을 쓴 것은 물론, 매주 다른 콘셉트의 무대를 꾸며 화제가 됐다. 또한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조명이나 독특한 카메라 워킹은 방송이 끝날 때마다 가수의 팬들이 유튜브로 를 찾아보게 만들고 있다. 이 모든 무대를 총괄하는 의 박경덕 PD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고민이 많다”면서도 “새롭지 않은 건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가 진화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가 첫 단독 연출작이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비해 어떤 것 같나.
박경덕: 아휴, 버라이어티보다 더 빡세다. (웃음) 예능 PD가 제일 힘들어 하는 게 이삼 일 밤 새워서 편집하는 건데, 음악 프로그램은 그게 없어서 상대적으로 쉽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까 무대에 대한 콘티를 그리면서 머릿속으로 편집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현장에서 달라질 수 있고. 그런 스트레스와 부담이 엄청나다.
요즘엔 유튜브를 통해서 전 세계로 영상이 퍼지니까 더 부담이 되겠다.
박경덕: 특히 해외 팬들이 많은 인기 가수들은 아예 유튜브를 염두에 두고 무대를 만들고 싶어 한다. 빅뱅 같은 팀의 영상은 이백 만, 삼백 만까지 조회 수가 올라가니까. 전 세계인들이 다 보는 셈이기 때문에 기획사들이 해외의 무대를 표절한다든가 하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해외에서 현장 취재 요청도 많이 온다. 많이 뿌듯하고, 좋은 무대를 많이 만들어서 이런 흐름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카메라 팀 회의 말고 조명 팀 회의도 따로 한다” 박경덕 PD “집을 지어준다는 느낌으로 무대를 만들고 싶다”" /> 좋은 무대라는 점에서 최근 의 빅뱅 무대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컴백 무대 중 인트로에서는 와이어, ‘BLUE’에서는 물의 사용, ‘FANTASTIC BABY’에서는 대형 세트의 사용 등 곡마다 완전히 다른 콘셉트를 선보였다.
박경덕: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를 믿어준 양현석 씨에게 감사한다. 무대 구성을 우리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멤버들의 스케줄 같은 부분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단지 ‘차별성 있는 무대를 만들어 달라’고만 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BLUE’는 물, ‘BAD BOY’는 거리의 느낌과 곡의 그루브한 분위기, ‘FANTASTIC BABY’는 음악과 빛깔이 정확히 일치하는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공개방송에서 물을 사용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닌데,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인가.
박경덕: ‘BLUE’에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 오죠’라는 가사가 있다. 생각해 보니 빅뱅도 그런 시간을 겪었고. 거기서 시작했다. 인트로에서 빅뱅이 와이어로 공중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고, 아직 얼어있던 상태의 그들이 천천히 녹아가는 구성을 떠올렸다. 물이라는 게 얼음이 녹아서 흐르는 느낌이 있지 않나.
물의 사용방식이 독특하다. 천장에서 떨어지며 ‘BLUE’라는 글자를 새기는 물과 LED로 표현된 물, 바닥에 깔린 물 등 여러가지 이미지로 표현했다.
박경덕: 물을 활용한 전 세계의 세트들을 많이 뒤져봤는데, 생각 외로 어려웠다. 수영장 바닥처럼 해도 빛깔이 안 살고 아예 블랙으로 깔아도 안 되고. 그러다 찾은 게 일본 21세기 박물관에 있는 수영장이었다. 물 아래로 사람들을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서, 위에서 보면 밑에 사람들이 있고 밑에 있으면 위가 보인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은 우리 작가 중 한 명이 SBS 출신이라 거기서 나왔던 아이템을 제안한 거다. 그 무대에서 지드래곤은 순간순간 손가락으로 하늘을 쏘는 액션을 해서 때맞춰 글자가 딱 떨어지는 것처럼 연출하더라. 참 대단하다 싶었다.
그런 이미지는 곡의 뮤직비디오나 안무에서 설명되는 부분이 아니라서 떠올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박경덕: 그 작업이 제일 어렵다. 생방송이다 보니까 그런 이미지를 백 퍼센트 투과할 수 있는 팀도 많지 않고. 우선 노래를 듣고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이미지를 생각한다. 그것들은 가수와 기획사가 일 년 넘게 고민해서 내놓은 결과물들이니까.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 비슷한 이미지거나 무대에서 구현하기 어렵다면 새로운 이미지를 뽑아내려고 한다. 내가 음악을 전문적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기도 한데, 대신 콘티 작업을 조금 더 오래 한다.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가수들의 컴백 첫 방송 전에는 타 방송 모니터를 안 하는 방법도 있다.
기획사 측과의 협업도 무시할 수 없을 텐데, 어떤 과정을 거쳐 무대를 만들어가나.
박경덕: 요즘은 K-pop 스타들이 워낙 바빠서 콘셉트가 일찍 나오지 않지만, 컴백 3, 4주 전부터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고 2주 전부터는 확실한 비주얼 콘셉트를 받는다. 빅뱅의 무대는 한 달 전쯤부터 고민을 시작한 경우다. 그리고 나는 드라이 리허설(화장을 하거나 의상을 착용하지 않고 하는 리허설) 때부터 가수들에게 무대 의상을 입힌다. 그래야 현장에서 조명이나 색감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누군가 확 튀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색감이 약하다 싶으면 조명을 더 진하게 넣는 식으로 조정하게 된다.
원색의 빛으로만 무대를 채운 지난주 ‘FANTASTIC BABY’처럼, 빛과 색에 특히 신경을 쓴다는 느낌이다.
박경덕: 우리는 카메라 팀 회의 말고 조명 팀 회의도 따로 한다. 조명과 LED, 가수들의 무대 의상을 모두 점검하면서 색깔을 맞춘다. 무대를 한 색으로 맞추는 것만큼 안무의 포인트가 되는 부분에서 변화를 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생방송으로 거의 스무 곡을 하다 보니까 모두 이렇게 할 순 없지만, 한 두 곡씩 늘려가고 있다.
과거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카메라 워크나 편집이 중요했다면, 는 거기에 색감이나 세트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미장센을 만드는 것 같다. 나인뮤지스의 ‘Ticket’에서도 조명이 골드에서 핑크로 바뀐다든가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박경덕: 안무를 보면서 조명과 무대 전체의 콘티를 같이 만들어서 하나로 정리한다. 그러면서 안무의 동선이 확 퍼지거나 하면 색감을 바꾸는 거다. 원하는 색감이나 무대를 뽑아내기 위해 LED 팀이나 세트 감독, 작가들까지 거의 전 세계 잡지를 다 본다. (웃음) 아무래도 요즘 시청자들은 색감 같은 것에 굉장히 민감하니까. 특히 패션 컬렉션들을 보는 게 도움이 된다. 천재들이 만든 콘셉트와 색감이 다 응축돼 있다.
“늘 새로움을 고민하는 스태프들에게 고맙다” 박경덕 PD “집을 지어준다는 느낌으로 무대를 만들고 싶다”" />
과거보다 연출자가 총괄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겠다.
박경덕 : 아무래도 카메라와 조명, 세트 모두 각자 보여주고 싶은 부분들이 있으니까 스태프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게 중요하다. 잘못하면 모든 부분들이 다 강하게 나와서 무대가 이상해져 버릴 수도 있다. 가령 세트 하나를 만들 때도 미술 감독, 세트 디자이너와 함께 회의를 하지만 돈과 사이즈, 시간문제가 있기 때문에 서로 포기할 걸 포기하면서 조절하게 되는 거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나의 무대가 완성되는데, 빅뱅처럼 매주 다른 걸 만들어내는 게 어렵지 않나.
박경덕: 고민이다. 스무 곡의 콘티를 짜다보면 ‘이번 주에 새 콘티가 몇 개지?’ 하고 따져 보게 된다. 기존의 노래에 변화를 주기가 어렵긴 하지만 방송에 한 번 나간 걸 보면 욕심을 더 내고 싶어진다. 웬만한 스태프들은 이런 시도를 반대할 텐데 우리 팀은 오히려 어떻게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을지 연구한다. 고마운 일이다.
‘새로움’이라는 점에서 빅뱅을 좁은 원형 무대에 집어 넣은 ‘BAD BOY’가 인상적이었다.
박경덕: 개인적으로 그 무대를 굉장히 좋아한다. ‘BAD BOY’는 그루브를 타며 몸을 흔드는 느낌이 좋아서 팬들도 같이 호응하는 모습을 생각했는데, 이런 세트가 어울리는 것 같았다. 사실 현장에서는 빅뱅이 ‘이렇게 좁은 우리에 저희를 가둬두시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웃음) 드라이 리허설을 해보니까 멤버들의 동선이 계속 꼬이기도 했고. 하지만 결국 빅뱅의 힘이 컸던 무대였다. 멤버들이 애드리브를 자유롭게 보여줬고, 덕분에 안무 대신 표정이나 액션 컷을 충분히 넣을 수 있었다. 워낙 현장에서 바뀌는 부분까지 프로페셔널하게 계산해서 매주 다른 느낌을 잘 뽑아내는 팀이니까 가능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고민은 없나. ‘FANTASTIC BABY’의 첫 방송에서는 세트 안에 머물러 있던 멤버들이 갑자기 무대 밖으로 나왔다. 뮤직비디오처럼 편집을 한 건데, 생방송을 전제로 하는 음악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부담이 됐을 것 같기도 하다.
박경덕: 그 부분에 대해 의견이 많았다. 생방송의 느낌을 살리는 건 하나의 룰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스무 개 무대 중 대부분을 생방송으로 하니까 그 중 특별한 무대 몇 개는 이렇게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FANTASTIC BABY’도 처음부터 탁 튀어나오는 느낌을 과장되게 가보자고 생각했다. 대신 뮤직비디오처럼 감정의 흐름이 과도하게 끊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룰이 주는 한계를 깨고 난 뒤로는 더 자유로운 시도가 가능해졌나.
박경덕: 맞다. ‘BLUE’와 ‘FANTASTIC BABY’를 찍을 때 가 썼던 기존의 카메라 6, 7대로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아서, 카메라를 추가해 다른 앵글로도 촬영을 했다. 이제 두 곡은 그런 앵글이 없으면 심심하다. (웃음) 이렇게 카메라 무빙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내 안에서도 새로운 영감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의 무대는 기존의 생방송과 뮤직비디오의 개념 사이에 있다는 느낌이다.
박경덕: 카메라 감독님들의 경우 신인 팀들의 멤버 이름은 물론 안무 디테일까지 다 공부하신다. 그래서 어느 포인트에서 어떤 시도를 해야 할지 정확히 파악하는 게 가능하고, 전반적으로 카메라 움직임도 더 많아진다. 예를 들어 ‘FANTASTIC BABY’에서 음정이 쭉 올라가면서 대성이 손을 치켜드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롱테이크로 그대로 따라간다. 이런 건 카메라 팀의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거니까 정말 감사하다.
“아시아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박경덕 PD “집을 지어준다는 느낌으로 무대를 만들고 싶다”" />
샤이니의 ‘셜록’에서는 잔상 안무가 나오는 장면에서 기존의 풀샷이나 바스트샷 대신, 무릎에서 얼굴 정도까지만 자르면서 카메라가 가로로 이동하더라.
박경덕: 보통 샷이 바스트-클로즈 업-웨이스트-풀 이런 식으로 가는데, ‘엉샷’이라는 걸 새로 개발했다. 엉덩이 샷이다. (웃음) 엉덩이를 쓰는 안무가 너무 많고 중요하다 보니까 같이 담을 수 있는 샷을 넣게 됐다. ‘셜록’도 그 장면을 풀로 담으면 어정쩡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역동적이면서도 전체적인 움직임을 함께 담을 수 있는 샷이 필요했다. 사실 내가 조연출을 한 적이 없어서, 오히려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요즘은 워낙 비주얼 시대니까 이런 것도 시도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샤이니의 무대는 안무 자체의 완결성이 워낙 높아서 연출자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정해진 룰 안에서 창조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건데.
박경덕: 그 친구들은 정말 빈틈이 많지 않다. (웃음) 비주얼 콘셉트나 안무가 빈틈없이 짜여 있는 것이 SM의 특성이기도 하고. 완성도 있는 무대나 퍼포먼스를 준비해오는 친구들은 영상이나 조명, 또는 특수 효과로 어떻게든 치고 들어가서 뭔가를 붐업 시켜야 되는 것 같다. 흥을 확 일으키는 방법이랄까. 그러면 가수들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특히 샤이니는 춤이 보여주는 각이 중요한 팀이지만, 키 같은 멤버는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느낌도 굉장히 좋다. 이런 부분을 살려내기 위해 안무뿐 아니라 표정을 잡아내는 것에도 더욱 신경을 쓴다.
그런 부분에서 를 비롯한 요즘 음악 프로그램 무대는 뮤직비디오와 생방송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이런 무대에 대한 호응이 굉장히 높은데, 만드는 입장에서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박경덕: 아무래도 방송 무대는 뮤직비디오보다 좀 더 쇼를 보는 맛이 있다고 본다. 뮤직비디오는 정해진 컷과 표정만 반복하지만 무대 위의 쇼는 다양한 요소들이 모두 보이니까. 그리고 K-pop 가수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무대다 보니 해외 쪽의 관심도 큰 것 같다.
K-pop의 인기가 해외로 뻗어나가는 상황에서 음악 방송 연출을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박경덕: 어렵지만 행복하다. 유튜브에 올라간 가수들의 영상에 수많은 나라의 언어로 달린 댓글을 보는 것도 즐겁고. K-pop이 세계적인 무대에 올라선 만큼 우리나라 음악과 방송도 수준이 높아진 거다. 예전에는 어떤 무대를 보면 일본 거 같아, 미국 거 같아, 이랬는데 이제는 우리만의 무대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무대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는 거지.
를 보면 무대 위라는 설정 안에서 무엇이든 가능한 가상의 공간을 만든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무대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하고 있는 건데,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무대란 무엇인가.
박경덕: 현실적 제약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무대를 만들어놓고 너희들이 와서 부르라는 식의 연출을 아주 안할 수는 없는 거다. 하지만 가능하면 많은 가수들에게 ‘그들의 무대’를 주려고 한다. 그건 생방송의 개념과 반대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 무대의 주인이어야 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너희들의 집을 지어준다’는 느낌으로 무대를 만들고 싶다.
그러나 방송사의 시스템 상 언제까지나 연출만을 맡을 수는 없을 거다. (웃음) 두 번째 단독 연출작에 대한 계획이 있나.
박경덕: 글로벌한 기획에 관심이 많다. 때마침 한류가 터지기도 했고, 국경 없이 모든 게 통합되는 시대니까. 이렇게 될수록 중요한 건 언어를 뛰어넘는 공통적인 감수성인 것 같더라. 아시아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더 자세한 건 올 가을쯤에 말씀드리겠다. (웃음)
인터뷰. 강명석 기자 two@
정리.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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