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즐거움이 듣는 즐거움으로 변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오디오 북이 새로운 출판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EBS 라디오가 지난달부터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하며 오디오 북에 대해 높아진 관심도를 보여주고 있다. 만약 오디오 북이 당신 앞에 주어진다면 어떤 기준으로 책을 들어야 할까. 책의 저자와 내용은 물론, 누가 읽어주는지 역시 중요할 것이다. 다음은 외모나 퍼포먼스, 배경을 보지 않고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선정한 책 읽어주는 남자들이다. 뒤돌아 설 이유도,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지만 다음의 목소리 중 마음에 드는 보이스가 있다면, 내 맘의 속 책 읽어주는 남자로 지명해보는 것도 좋겠다.
변성기를 막 벗어난듯 조금 쉰 목소리, 여기에 ‘우쭈쭈’한 애교가 더해지면 양세형의 ‘초동안 보이스’가 탄생한다. 양세형은 “자리주삼! 자리주삼!”, “오키! 동키!” 등 A-A식의 연결형 구조를 통해 운율감을 형성함과 동시에 울림소리 ‘ㅁ’을 사용한 ‘∼삼’이나 ‘∼셈’과 같은 종결어미로 노래하듯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한다. 또한 게임의 상황을 구연하는 양세형은 “우쭈쭈 피용”과 같은 의태상징어로 분위기를 연출해 듣는 이의 관심을 높이기도 하는데, 이런 그가 아동 도서를 읽어준다면 때론 동요같이 때론 실감나는 만화처럼 들리지 않을까. 주의가 산만해 수퍼 내니가 필요한 아이라도 양세형이 읽어주는 책이라면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의 목소리로 아이를 재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난하셈? 책 그냥 잠들려고 읽는 거임?”이라며 수면을 거부하는 아이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시간을 정해서 들려주는 보호자의 주의가 요구되는 바이다.
그 남자의 책: <이 야채가 안 먹혀요>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최소점수는 60점(2종 보통). 필기시험은 실기시험을 위한 하나의 관문일 뿐이지만, 필기시험 문제가 쉬워졌다고 해도 모두가 합격하는 것은 아니다. 야구해설가 허구연이 읽어주는 운전면허교재라면 필기와 실기를 동시에 노려볼 만하다. 빠른 입놀림으로 많은 양의 정보를 한 번에 전하는 그의 문제풀이는 단기간 고득점을 원하는 수험자들에게 지루할 틈 없이 다가온다. 종종 빠른 속도 때문에 ‘ㅓ’,‘ㅕ’,‘ㅔ’ 등의 모음이 ‘ㅖ’로 통일되어 소리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런 특이한 발음은 듣는 이의 귀를 쫑끗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애매한 문제를 풀어줄 때 발휘되는 그의 ‘대쓰요’는 제한속도를 이해하는데 탁월하게 작용하고, ‘크브’(커브)를 돌 때, 기어에 ‘볘나’(변화)를 줄 때도 용이하다. 다만 외국인(영미권)은 다음의 교재는 사용하지 않길 바란다. ‘대쓰요’를 ‘That`s Yo’로 오역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그 남자의 책: <(1종 보통) 우셰한 합격 전략>
없어진 물건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며칠 후 그 물건이 돌아온다는 김도균의 말이 사기꾼처럼 들리지 않는 건, 또박또박 한 글자, 한 마디를 전하는 그의 말에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설의 기타리스트↘기타의 신. 김도균입니다. 호호호” 자기소개마저도 나긋나긋 내뱉는 그의 말투는 경상도 사투리와 서울 말씨가 절묘하게 섞여 리드미컬하게 들린다. 부쩍 늘어난 외모고민에 ‘트륏먼트’라는 해결책을 조금은 부끄러운듯 하지만 진지하게 얘기하는 귀여운 기타리스트. 이런 김도균의 보이스라면 긍정이라는 추상적인 자기계발서의 기본 개념도 건실하게 그래서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을까. 하지만 예상치 못한 개념을 설명할 때면 가끔 다음과 같은 모호한 수식어가 붙여지기도 하니 참고하자. “그런 건 아닙니다. 이렇게. 뭐 그런 건 아니고, 이제 이렇게 뭐 이렇게 조금 이렇게 어떤 그러한 여러 가지 얘기들을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고렇게 인제”
그 남자의 책: <행복의 록 스피릿>
굵직한 남성의 저음에 흔들리지 않는 여심이 있을까. 하지만 로맨스 소설을 소화하기 위해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본문에 포함된 단어 하나, 느낌표 하나마저도 살려줄 수 있는 표현력은 기본사항이며 집에 가서 혼자 봐야할 정도의 낯 뜨거운 장면도 자연스레 읽어줄 수 있을 뻔뻔함은 필수사항이다. 이런 까다로운 심사조건을 통과할 목소리는 많지 않지만 이병준의 목소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깊게 내린 저음에 더해진 “∼돠아”형의 마무리. “돠아~~아”의 울림은 마치 목욕탕에서 듣는 듯, 우리의 달팽이관을 통과하면서 무게감 있게 하지만 끈적끈적하게 들려올 것이다. 자동 에코 사운드를 장착한 목소리에 연륜이라는 내공을 겸비한 이병준의 보이스로 더 로맨틱해질 책들을 만나보자. 단 한 번 듣기 시작하면 24시간 동안 그 울림이 귓가에 남아있다고 하니, 다음날 토익이나 기타의 듣기평가를 준비하시는 분들은 이점 주의하시길.
그 남자의 책: <오 마이 러브×2>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 광희는 “아! 스어울이에요”라고 답한다. 감탄사 ‘아!’로 잡은 첫 음을 쭈욱 이어나가면 광희 특유의 하이톤 보이스가 완성. 끝만 올리면 되는 서울말이지만 광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 특이한 서울말을 구사한다. 여기에 광희는 “시완아! 시완아!” 같이 동일한 어휘를 반복하거나, “우리 시완이”에서 처럼 ‘우리’라는 일인칭 대명사를 활용해 친근한 느낌을 더한다. 외로울 때나 슬플 때 함께 수다를 떨어줄 친구가 필요한 날이라면, 광희가 읽어주는 잡지로 기분을 내보자. 허나 종종 광희는 ‘이별드립’이나 ‘마젤토브’ 등과 같이 의미를 쉽게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사용하니, 이런 부분은 미리 예습하고 듣는 것이 좋겠다.
그 남자의 책: < Ah! Ah! >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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