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지마 히데토시 “영화를 통해 선입견이 부서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영화를 통해 선입견이 부서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김태희의 남자’, 최근 일본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이렇게 불렸다. 지난 2011년 김태희와 함께 찍은 후지TV 은 국내에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이름을 더욱 알렸다. 김태희와 발군의 로맨스 호흡을 보여 준 이 드라마는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의외의 면모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하지만 일본 영화, 그 중에서도 주로 독립 영화나 저예산 영화를 통해 니시지마 히데토시를 만나 온 기존의 팬들에게는 조금 낯선 얼굴이기도 했다. 그가 이란 출신 아미르 나데리 감독의 영화 개봉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형이 남기고 죽은 빚을 갚기 위해 야쿠자의 인간샌드백이 된 고집스럽고 극단적인 영화광 슈지는 주로 조용히 고뇌하는 모습으로 기억되는 니시지마 히데토시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언젠가 크리스마스에는 홀로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 세 편을 내리 보기도 한 실제 영화광,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투영되어 있다. 다음은 신중하고 성실하게 대답을 고르는 모습이 미더웠던, 배우이기 이전에 그저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과의 대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참석했고, 한국에 자주 오는 것 같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으로 일본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관객과의 대화에 많이 참석했는데 관객들과 만나는 것을 통해 영화가 보다 충실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결혼관이라든지 영화제에서는 좀처럼 받지 않았던 질문들을 하시더라. (웃음)

드라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태희와 호흡을 맞춘 그 작품을 통해 당신을 알게 된 사람이 늘었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확실히 전보다 많은 관객들이 와주셔서 솔직히 굉장히 놀랐다. (김)태희 씨와 작업한 건 즐거웠다. 일본어가 굉장히 능숙했기도 했지만, 그다지 언어나 나라의 장벽 같은 걸 느끼지 못 했다. 오히려 사람이란 정말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의 코헤이는 굉장히 많이 표출하는 캐릭터였는데 의외의 면을 본 것 같았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예전에 드라마에서 해보고 싶은 게 세 가지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열혈 교사와 로맨틱 코미디와 굉장히 강한 형사.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줄곧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는 그다지 위화감 없이 연기했는데 방송 되고나서 “와, 놀랐어요”라는 반응이 많더라.

“실제로는 전혀 과묵하지 않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영화를 통해 선입견이 부서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영화를 통해 선입견이 부서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 동안 작품 속에서 왠지 과묵하고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의 이미지가 강했다. (웃음)
니시지마 히데토시: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웃음)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이 장난을 많이 치고 엄청 놀림을 당하는 편이다. 웃음이 나면 참지 못 하는 타입인데 웃느라 연기를 못 할 정도로. 영화에서는 얼이 빠져 있거나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을 주로 연기했는데 (웃음) 그래도 이나 같이 최근 1년 동안 했던 역할은 지금까지의 이미지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의 슈지는 극단적이다. 영화가 처한 현실에 대해 굉장히 도발적인 질문을 한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이 영화가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영화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과거엔 오락 영화와 예술 영화가 양립했었는데 지금은 예술 영화가 완전히 소외되고 있다. 오락 영화가 인기있는 건 당연하고 무방하지만 그것만 있게끔 되어버리는 건 공평하지 않다.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이 분명히 있는데 장소가 없다는 건 잘못된 게 아닐까. 기본적으로 영화에 대한 영화지만 예술과 관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면한 오락성과 자본의 문제와 그걸 어떻게 마주하고 돌파해나갈까, 이를 위해서 사람은 무엇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의 문제를 다룬다. 에너지와 신념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기도 하고.

원래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을 것 같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배우라는 걸 두고서라도 원래 아트하우스 계열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다른 작품보다 감정이입하기 쉬웠던 부분도 있다. 아미르 나데리 감독님과 2005년에 만났는데 그 후로 5년 정도 늘 감독님이 일본에 오시면 함께 영화를 보고 감상을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슈지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내가 많이 반영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예술 영화를 좋아했나?
니시지마 히데토시: 아니다. 평범하게 같은 걸 좋아했다. 직접 영화관에 가서 본 건 지금 멀티플렉스에 걸리는 영화들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라든지 성룡이라든지. 다만 아버지가 영화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집에서 찰리 채플린이나 알프레도 히치콕의 영화를 반복해서 보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에서 슈지가 무시하는 영화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꽤 많았다. B급 영화 같은 것도 좋아하고 어떤 영화라도 즐기는 편이다. 감독님이 내게서 끄집어낸 건 영화를 대하는 태도보다는 배우로서의 가능성 같은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니시지마 히데토시: 스스로는 꽤 신체적인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다. 몸 움직이는 것도 좋아하고 대사나 표정으로 연기하는 것보다 몸으로 반응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오는 건 조용하거나 천천히 움직이거나 하는 역할이었다. (웃음) 그런데 아미르 나데리 감독님은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평소에도 “너는 신체 능력이 높은 게 분명한데 왜 그걸 사용하지 않아?”라는 말을 했었다. 그게 이번 영화에서 “무엇보다 네 몸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어”로 발전했다.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험이었다. 굉장히 즐거웠다.

연기라고 해도 눈앞에서 주먹이 날아오는 건 원초적인 두려움일 것 같은데.
니시지마 히데토시: 그 순간엔 정신이 이상해졌기 때문에 무섭지 않았다. (웃음) 물론 맞는 걸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정말 리얼하게 궁지에 몰린 인간이 찍혀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쉽지는 않았다. 맞받아 칠 수 없지만 맞는 것 자체로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압도해야했기 때문에 내 안에 에너지가 쌓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영화는 상당히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일곱 번, 열 번 봤어요!”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 몇 번을 봐도 마지막에 맞는 장면에서 숨을 죽이게 된다고.

아미르 나데리 감독은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인데, 현장 분위기도 남달랐을 것 같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한 달 동안 누구와도 대화하지 말라고 하셨다. 잠깐이라도 누군가와 얘기할라치면 “저 쪽으로 가서 집중해!”라고 호통 치셨다. 누가 “안녕하세요”라고 해도 나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 했다. 미친 사람으로 여겨져도 좋으니 역에 집중해서 좋은 연기를 하는 게 현장을 이끈다고 하셨다. 하지만 현장은 굉장히 정중하게 연출하는 분이다. 촬영이 시작되면 일단 세트에서 스태프를 전부 내보내고 배우들을 한 사람씩 불러서 이 장면은 이런 내용이고,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걸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 과정이 모두 끝나면 스태프를 불렀다. 그런데 또 막상 촬영이 시작되면 모두 엄청나게 흥분했다. 나도, 감독도, 스태프도 미친듯이 소리 지르고. (웃음) 컷을 외쳐도 멈추지 않아서 조감독이 말릴 정도로 격렬했다. 물론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영화기도 했다.

“한국영화는 에너지가 강한 것 같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영화를 통해 선입견이 부서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영화를 통해 선입견이 부서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배우는 선택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에서 말하는 ‘진짜 영화’만 고집할 수는 없을 텐데.
니시지마 히데토시: 지금도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고 예산이 큰 상업영화도 한다. 일단 나 스스로 좋아한다. 그리고 어떤 작품이든 이 역은 니시지마여야 한다고 강하게 얘기해주는 누군가가 늘 있다. 프로듀서든 각본가나 감독이든. 사실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 않으면 그다지 선호되는 배우가 아니다. (웃음) 그래서 드라마든 오락 영화든 별로 의문을 갖지 않고 합류한다. “이 역할은 니시지마다”라고 확신하고 있는 그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뛰어들 근거가 있으니까.

그들은 당신에게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니시지마 히데토시: 뭘까? 물어 본 적이 없어서. (웃음) 다만 다들 뭐랄까, 좀 독특한 사람들이 많다. 무리 안에서 이단이라고 해야 하나, 좀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이다. 영화든 민영방송의 드라마 감독이든 NHK 다큐멘터리 연출자든 대화를 해보면 정말 그 장르에 대해 많이 알고 이해하고 있고 애정이 깊은 사람들이다. 일이니까 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들은 당신도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니시지마 히데토시: 글쎄. 나야 본인이니까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웃음)

영화를 좋아했지만 처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대학에 이과계열로 진학했는데 엔지니어의 길은 나랑 안 맞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뭘 할까를 생각하다가 영화를 떠올렸다. 그런데 영화 현장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냥 어려서부터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 상상했던 스튜디오 시스템이 여전히 기능하고 있던 시절의 이미지만 갖고 있었다. 촬영장에 매일 출근하면 돈이 없어도, 대학을 그만둬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어린애 같은 생각이었지. 그런 상태에서 영화와 관계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력서를 갖고 오라는 사람이 있어서 배우 사무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막상 현실은 달랐을 텐데.
니지시마 히데토시: 물론. 완전히 달랐다. (웃음) 스튜디오 시스템은 이미 없었고 매일 영화 촬영을 한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나?
니시지마 히데토시: 그렇다. 영화 현장이 왜 그렇게 좋냐는 질문을 들어도 사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좋다. 정말로 굉장히 힘든 것뿐이지만 역시 촬영 현장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축복받은 곳이구나, 행복한 거구나 생각하게 된다.

에서 “시대가 다르다구”라는 대사도 나오지만, 요즘 시대는 TV와 게임, 스포츠 등 굳이 영화가 아니어도 많은 것이 있다. 왜 꼭 영화여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니시지마 히데토시: 예를 들어 영화제에 가면 미국 영화는 물론 이란 영화, 아프가니스탄 영화, 쿠르드족 감독이 만든 영화를 다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각각의 앵글로 본 그 사회의 문제를 볼 수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있고, 어느 나라에나 훌륭한 감독이 있고, 그 나라의 생활이나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생각이 카메라에 담긴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이것만이 정의고 이것은 악이라고 단언할 수 없음을 영화를 보면서 배운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 부서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기대하고 있다고 할까. 이를 통해 쓸데없는 고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고. 물론 그림이나 음악으로도 가능하겠지만 나한테는 영화가 가장 힘이 세다.

영화 속 슈지의 100편의 영화 리스트에 이창동 감독의 도 있다. 당신도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한국 감독과 영화도 좋아한다고 들었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한국 영화는 영화제에서도 보고 DVD로도 본다. 확실히 일본 영화와는 다르다. 감독에 따라 전혀 다르기 때문에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에너지가 강한 것 같다. 특히 인상적인 폭력 신들도 많고 피로 표현되는 느낌이 대단하다. 나도 피범벅이 되는 거 좋아하니까 꼭 작업해보고 싶다. (웃음) 좋아하는 감독님은 물론이고 좋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는 분이 있다면 같이 해보고 싶다. 개런티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까. 가혹하거나 힘든 촬영이라도 좋다.

이 감독님이 꼭 불러주면 좋겠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누군가?
니시지마 히데토시: 엄청 많지만 나중에라도 본인들과 직접 만났을 때 부끄러우니까 말할 수 없다. (웃음)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