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모든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은 오전 6시에 방송을 시작, 다음 날 새벽 2-3시에 끝냈다. 지상파 방송사보다 한 두 시간 더 방송하는 셈이다. 그 방송들에는 JTBC 같은 드라마부터 TV조선 같은 뉴스까지 지상파처럼 모든 장르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종편은 케이블 TV나 IPTV를 설치해야 볼 수 있다. 모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다.
새벽에 몇 시간 방송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MBN과 조선 TV는 종일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3대 음악 기획사가 모인 SBS 의 ‘K팝 스타’를 두고 ‘신한류 월드아이돌 스타발굴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JTBC 를 볼 이유는 없어 보인다. KBS 과 TV조선 같은 중장년층 대상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종편의 몸은 tvN이나 OCN과 같은 지역에 있지만, 그들의 룰은 지상파를 따른다. 지상파처럼 편성하고, 지상파처럼 만든다. 그러나, TV조선은 저녁 7시에 제작된 지 10년이 지난 시트콤 시즌 3을 방영한다. 주말에 처럼 한참 지난 영화를 편성하는 건 덤이다. JTBC 에서 김혜자는 옥상에서 빨래를 넌다. 그 옥상은 누가 봐도 세트인 것을 알 만큼 조악하다. 지상파처럼 편성하지만 케이블 TV처럼, 또는 그보다 못하게 투자한다. 그 결과는 지난 1월 평균 시청률 0.3%로 나타났다. 얼마 전에는 채널 A가 한 시간여 동안 방송사고를 내고도 ‘아무도 모르는’ 일도 벌어졌다. 여당이 날치기통과까지 하며 종편을 허가한 것에 비하면 굴욕적인 일이다.
케이블, 지상파가 감춘 욕망을 채우다 지상파는 점유율 싸움이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채널로 최대한 높은 시청률을 올린다. 같은 KBS 일일드라마가 무조건 20% 이상의 시청률을 올리는 이유다. 케이블 TV는 다르다. tvN 가 지상파 오락프로그램만큼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대신 의 ‘남녀 탐구생활’은 지상파에서 그 형식을 패러디할 정도의 화제성이 있었다. 특정 시청자들을 끌어모으는 콘텐츠를 통해 화제를 만들고, 화제는 영향력이 돼 광고를 끌어온다. tvN은 케이블의 생존방식을 가장 제대로 증명했다. tvN은 개국초에도 로 5%에 가까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선정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TV조선 에서는 얼마 전 개그우먼이 개그맨의 발을 핥았다. 채널 A는 개국 당일 20여 년 전 동영상을 근거로 당시 ‘고등학생’이던 강호동의 야쿠자 연루설을 보도했다. 그래도 두 채널의 시청률은 오르지 않았다.
선정성의 문제를 떠나 은 KBS 만으로는 부족한 시청자의 어떤 욕구를 만족시켰다. 페이크다큐의 형식을 통해 남녀의 치정문제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에는 앞에서는 상사에게 욕하고, 뒤에서는 상사가 먹는 차에 침을 뱉는 현실의 직장생활이 있었다. 지상파에서 볼 수 없는 무엇. tvN은 시청자가 굳이 시청료를 내고 케이블 TV를 봐야 할 이유를 제시하면서 채널 브랜드를 만들었다. 는 tvN의 현재다. 의 출연자와 연출자는 모두 지상파 출신이다. 대신 상금 1억 원을 건 개그팀 간의 리그제를 통해 경쟁을 부각시켰다. tvN은 지상파와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무기는 여전히 지상파와 다른 것을 시도하는 데 있다.
지상파, 미디어에 맞춘 진화를 시작하다 종편 콘텐츠 중 노희경 작가의 이 가장 높은 평균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디서 방영되건,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볼 시청자는 있다. 지금 종편은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가 필요하다. 마니아적인 지지층을 가진 작가는 그 중 한 방법이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게다가 ‘종합편성’ 채널이다. 교양과 뉴스도 있어야 한다. tvN처럼 몇 개의 오락 콘텐츠만으로 브랜드를 만들 수 없다. 중장년층은 보던 지상파를 보면 된다. 젊은 세대는 tvN을 비롯한 CJ E&M의 채널들을 볼 수 있다. 종편은, 누가 볼지 짐작이 안 간다.
미디어의 성격에 따라 콘텐츠의 성격을 바꾸는 것은 오히려 지상파다. MBC의 자회사 손바닥TV는 스마트폰 전용 방송이다. 당연히 저예산으로 만들어지고, 프로그램들은 라디오처럼 스튜디오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에서는 청소년 성교육으로 유명한 구성애가 콘돔을 모형성기에 직접 씌우며 사용법을 알려주고, 여성의 마스터베이션에 대해 길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는 출연자들이 뉴스 사이에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관을 드러내고, 여야 정치인들이 리포터로 출연해 편파성을 띄고 정치 현안에 대해 말한다. 이상호 기자는 정치인 김근태의 사망 당시 그에게 고문을 가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과를 받으려고 그의 집에 찾아갔다. 거대한 지상파일지라도, 스마트폰에서는 마치 처럼 움직이려고 한다. 손바닥 TV는 미디어에 따라 콘텐츠의 내용과 형식이 전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TV라고 다 같은 TV가 아니다. 그리고, 종편보다 지상파가 이 사실을 더 잘 알고 있다.
종편, 명분과 수익 사이 길을 잃다 바보가 아니라면, 종편 제작진들이 이런 문제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종편은 정치적 산물이다. 날치기를 통해 탄생했고, 네 채널이 동시에 허가받은 것은 사업자들마저 원치 않았다. 공짜로 지상파와 케이블 사이의 ‘황금채널’을 배정받은 것 역시 케이블 사업자나 시청자의 요구와 상관없었다. 시장의 요구와 상관없이 태어난 방송국은 시장 대신 자신들의 상황에 콘텐츠를 맞춘다. 지상파와 외양은 비슷해야 하니 다양한 성격의 콘텐츠를 종합편성한다. 하지만 지상파처럼 많은 콘텐츠를 만들 수 없으니 케이블 TV처럼 재방송이 계속된다.
TV조선은 를 밤 9시에 편성하며 이 시간에 방영하던 메인뉴스 을 8시로 당겼다. 일간지를 모회사로 둔 방송국이 개국 2개월 만에 메인뉴스 시간대를 바꿨다. 종편은 ‘종합편성’이라는 명분과 현실적인 수익 사이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케이블 채널에서 종합편성을 해도 성공할 것이라는 오판, 종편 채널이 네 개라도 괜찮을 거라는 오판,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에 좋은 채널을 배정받으면 큰 준비 없이도 이길 수 있다는 오판. 종편의 경영진은 방송시장을 신문시장처럼 공략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종편의 문제는 전략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마음먹은 전략을 세울 여지조차 없다는 데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있다. 모든 콘텐츠의 완성도를 극도로 높이면 된다. 드라마처럼 외주제작이 활발한 장르는 좋은 작품을 구매해 계속 시청자들을 끌어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을 만든 미국의 HBO처럼 드라마의 경향을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는 종편 관계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종편은 모두 망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 건 그들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됐다. 시장이 아닌 정치논리에 따른 방송이란 그런 것이다.
글. 강명석 기자 two@
새벽에 몇 시간 방송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MBN과 조선 TV는 종일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3대 음악 기획사가 모인 SBS 의 ‘K팝 스타’를 두고 ‘신한류 월드아이돌 스타발굴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JTBC 를 볼 이유는 없어 보인다. KBS 과 TV조선 같은 중장년층 대상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종편의 몸은 tvN이나 OCN과 같은 지역에 있지만, 그들의 룰은 지상파를 따른다. 지상파처럼 편성하고, 지상파처럼 만든다. 그러나, TV조선은 저녁 7시에 제작된 지 10년이 지난 시트콤 시즌 3을 방영한다. 주말에 처럼 한참 지난 영화를 편성하는 건 덤이다. JTBC 에서 김혜자는 옥상에서 빨래를 넌다. 그 옥상은 누가 봐도 세트인 것을 알 만큼 조악하다. 지상파처럼 편성하지만 케이블 TV처럼, 또는 그보다 못하게 투자한다. 그 결과는 지난 1월 평균 시청률 0.3%로 나타났다. 얼마 전에는 채널 A가 한 시간여 동안 방송사고를 내고도 ‘아무도 모르는’ 일도 벌어졌다. 여당이 날치기통과까지 하며 종편을 허가한 것에 비하면 굴욕적인 일이다.
케이블, 지상파가 감춘 욕망을 채우다 지상파는 점유율 싸움이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채널로 최대한 높은 시청률을 올린다. 같은 KBS 일일드라마가 무조건 20% 이상의 시청률을 올리는 이유다. 케이블 TV는 다르다. tvN 가 지상파 오락프로그램만큼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대신 의 ‘남녀 탐구생활’은 지상파에서 그 형식을 패러디할 정도의 화제성이 있었다. 특정 시청자들을 끌어모으는 콘텐츠를 통해 화제를 만들고, 화제는 영향력이 돼 광고를 끌어온다. tvN은 케이블의 생존방식을 가장 제대로 증명했다. tvN은 개국초에도 로 5%에 가까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선정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TV조선 에서는 얼마 전 개그우먼이 개그맨의 발을 핥았다. 채널 A는 개국 당일 20여 년 전 동영상을 근거로 당시 ‘고등학생’이던 강호동의 야쿠자 연루설을 보도했다. 그래도 두 채널의 시청률은 오르지 않았다.
선정성의 문제를 떠나 은 KBS 만으로는 부족한 시청자의 어떤 욕구를 만족시켰다. 페이크다큐의 형식을 통해 남녀의 치정문제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에는 앞에서는 상사에게 욕하고, 뒤에서는 상사가 먹는 차에 침을 뱉는 현실의 직장생활이 있었다. 지상파에서 볼 수 없는 무엇. tvN은 시청자가 굳이 시청료를 내고 케이블 TV를 봐야 할 이유를 제시하면서 채널 브랜드를 만들었다. 는 tvN의 현재다. 의 출연자와 연출자는 모두 지상파 출신이다. 대신 상금 1억 원을 건 개그팀 간의 리그제를 통해 경쟁을 부각시켰다. tvN은 지상파와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무기는 여전히 지상파와 다른 것을 시도하는 데 있다.
지상파, 미디어에 맞춘 진화를 시작하다 종편 콘텐츠 중 노희경 작가의 이 가장 높은 평균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디서 방영되건,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볼 시청자는 있다. 지금 종편은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가 필요하다. 마니아적인 지지층을 가진 작가는 그 중 한 방법이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게다가 ‘종합편성’ 채널이다. 교양과 뉴스도 있어야 한다. tvN처럼 몇 개의 오락 콘텐츠만으로 브랜드를 만들 수 없다. 중장년층은 보던 지상파를 보면 된다. 젊은 세대는 tvN을 비롯한 CJ E&M의 채널들을 볼 수 있다. 종편은, 누가 볼지 짐작이 안 간다.
미디어의 성격에 따라 콘텐츠의 성격을 바꾸는 것은 오히려 지상파다. MBC의 자회사 손바닥TV는 스마트폰 전용 방송이다. 당연히 저예산으로 만들어지고, 프로그램들은 라디오처럼 스튜디오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에서는 청소년 성교육으로 유명한 구성애가 콘돔을 모형성기에 직접 씌우며 사용법을 알려주고, 여성의 마스터베이션에 대해 길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는 출연자들이 뉴스 사이에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관을 드러내고, 여야 정치인들이 리포터로 출연해 편파성을 띄고 정치 현안에 대해 말한다. 이상호 기자는 정치인 김근태의 사망 당시 그에게 고문을 가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과를 받으려고 그의 집에 찾아갔다. 거대한 지상파일지라도, 스마트폰에서는 마치 처럼 움직이려고 한다. 손바닥 TV는 미디어에 따라 콘텐츠의 내용과 형식이 전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TV라고 다 같은 TV가 아니다. 그리고, 종편보다 지상파가 이 사실을 더 잘 알고 있다.
종편, 명분과 수익 사이 길을 잃다 바보가 아니라면, 종편 제작진들이 이런 문제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종편은 정치적 산물이다. 날치기를 통해 탄생했고, 네 채널이 동시에 허가받은 것은 사업자들마저 원치 않았다. 공짜로 지상파와 케이블 사이의 ‘황금채널’을 배정받은 것 역시 케이블 사업자나 시청자의 요구와 상관없었다. 시장의 요구와 상관없이 태어난 방송국은 시장 대신 자신들의 상황에 콘텐츠를 맞춘다. 지상파와 외양은 비슷해야 하니 다양한 성격의 콘텐츠를 종합편성한다. 하지만 지상파처럼 많은 콘텐츠를 만들 수 없으니 케이블 TV처럼 재방송이 계속된다.
TV조선은 를 밤 9시에 편성하며 이 시간에 방영하던 메인뉴스 을 8시로 당겼다. 일간지를 모회사로 둔 방송국이 개국 2개월 만에 메인뉴스 시간대를 바꿨다. 종편은 ‘종합편성’이라는 명분과 현실적인 수익 사이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케이블 채널에서 종합편성을 해도 성공할 것이라는 오판, 종편 채널이 네 개라도 괜찮을 거라는 오판,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에 좋은 채널을 배정받으면 큰 준비 없이도 이길 수 있다는 오판. 종편의 경영진은 방송시장을 신문시장처럼 공략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종편의 문제는 전략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마음먹은 전략을 세울 여지조차 없다는 데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있다. 모든 콘텐츠의 완성도를 극도로 높이면 된다. 드라마처럼 외주제작이 활발한 장르는 좋은 작품을 구매해 계속 시청자들을 끌어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을 만든 미국의 HBO처럼 드라마의 경향을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는 종편 관계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종편은 모두 망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 건 그들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됐다. 시장이 아닌 정치논리에 따른 방송이란 그런 것이다.
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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