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 “시대를 해부할 수 있는 방법이 수사물이지 않을까”" />
이승영 감독: 여기서 범인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범인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거~죠? (웃음) 더는 말할 수 없다.
“수사물을 통해 인간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제작진 “시대를 해부할 수 있는 방법이 수사물이지 않을까”" /> 스포일러보다는 결국 시즌 2에 대한 전망이 남느냐에 대한 궁금증이다.
이승영 감독: 처음 < TEN >을 시작할 때, 이러이러한 결핍을 가진 인간들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노라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에 있어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시즌 2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할 게 굉장히 많기 때문에 만약 여건이 된다면 계속 그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게 단순히 사건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남상욱 작가: 어떤 사건으로 죽은 이의 시체를 해부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드러나고, 그 사람을 해부하면 시대가 드러난다는 게 부터 < TEN > 기획까지 이어지는 생각이었다. 우리가 시대를 해부할 수 있는 방법이 수사물이지 않을까. 감독님께서 항상 인용하시는 게 ‘빌딩이 높아지면 그림자가 길어진다’는 마지막 대사인데 더 길어진 그림자를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는지가 < TEN >의 고민이었던 거 같다.
이재곤 작가: 사실 수사물이라는 장르에 대해 크게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는 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과정에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느냐, 였다.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모든 글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수사물을 통해 인간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미흡하지만 < TEN >에서 보여주려 했다.
‘더 길어진 그림자’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스스로 느끼는 동시대성이 어떤지 궁금하다.
남상욱 작가: 피곤이 극대화된 시대랄까. 어떤 직업군에 속해서 어떤 일을 하고 살아도 정말 피곤하다는 기분이 드는. 생각해보면 우리 캐릭터들은 피곤한 시대를 가장 피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다. 가령 8회의 백도식 과거 장면에서 볼 수 있는 ‘싫다, 싫어’ 하는 그 피곤함. 과연 그런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까. 언제 찾아올까. 그런 생각이 캐릭터에 반영되는 것 같다.
시즌 3가 사료에서 힌트를 얻었다면 동시대의 범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공부했나.
남상욱 작가: 일반인에게 판매되지 않고 형사들만 볼 수 있는 라는 잡지를 많이 참고했다. 국회도서관과 중앙도서관에만 있는데, CCTV에 담긴 영상 하나만으로도 행동에 담긴 의미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우리나라에 굉장히 똑똑한 형사님들이 많다.
이재곤 작가: 나는 자료보다는 상상력에 의존하는 편인 거 같다. 아마 그 상상력이라는 것도 예전에 봤던 영화 등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그런 동시대성, 그리고 10퍼센트의 미제 사건과 상위 10퍼센트의 특수전담반이라는 아이디어는 기획 단계부터 잡혀있던 건가.
남상욱 작가: 출발점은 동시대를 수사의 방식을 통해 드라마에 담아내자는 거였다. 우리나라 강력반 검거율이 공식 통계로 90퍼센트라 하는데 나머지 10퍼센트의 미제 사건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탐구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강력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이걸 다룰 때 미제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건들만 전담해 미제 사건이 되지 않게 하는 팀을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이승영 감독: 처음 기획부터 변하지 않는 건 그거다. 10퍼센트의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들을 잡는 10퍼센트의 괴물 형사들 이야기. 그 괴물들이 얼마나 어렵게 퍼즐을 던져놓을 것이며 그걸 풀기 위해 또 얼마나 똑똑한 형사들이 등장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재밌을 거라 생각하고 출발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헉’ 했다. 퍼즐을 내기도 힘들고 풀기도 힘들어서. 그렇게 약 3년 동안 대본도 못 내면서 계속 공회전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단조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제작진 “시대를 해부할 수 있는 방법이 수사물이지 않을까”" /> 그럼 언제쯤 제대로 출발했나.
이승영 감독: 작년 4월 정도로 기억난다. 기적적으로 해결이 됐다. 1회 1부에서 각자 따로 수사하던 주인공들이 소나기와 함께 교차하는 순간이 있지 않나. 3년 동안 안 써진 대본의 초고가 10시간 만에 나오고, 완고를 12시간 만에 써낼 정도로 굉장히 기적적인 대본이 나왔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도 중요한 장면이지만, < TEN > 특유의 구성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이승영 감독: 보통 케이블 자체 제작 드라마의 경우 지상파만큼의 스타 캐스팅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인공보다는 강렬한 느낌의 사건으로 어필하고 그 다음에 인물에게 감정이입하게 이야기를 짠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공식을 깬 거지. 백독사, 거짓말 탐지기, 괴물 잡는 괴물 이렇게 각 인물을 소개하면서 시작하니까.
그게 가능한 건 10퍼센트 괴물 형사들의 개성과 강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승영 감독: 대본 쓰는 건 나중이고, 일단은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을 수집해 와서 공부하듯 의견을 나눴다. 3년 전 기획할 때 표창원 교수를 만났었는데 이분은 실제로 수사 경찰을 하다가 유학을 다녀오고 경찰대학교에 계신 분이다. 이분으로 여지훈의 모델을 잡고, 서울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경장님을 인터뷰해서 남예리 캐릭터를 만들었다. 다만 남예리의 성격은 조안이라는 배우를 통해 더 뚜렷이 잡혔다. 대본 리딩할 때 다른 사람들을 캐릭터로 만들어 그리더라.
남상욱 작가: 사실 쓸 때는 백도식을 쓸 때 제일 재밌다. 제일 좋아하는 수사극이 인데, 여기서는 캐릭터에 대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그냥 형사라는 존재 자체로 캐릭터가 구축이 된다. 그렇게 리얼한 형사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멋있겠다 싶은 생각으로 만든 게 백도식이다. 김상호 선배님께서 정말 백‘독사’가 되어주셨고.
세 인물이 수사하는 영역도 각각 다르다.
남상욱 작가: < CSI >는 과학수사를, 는 범죄행동분석을 보여주지 않나. 미제 사건을 풀 괴물 같은 형사들이라면 그런 능력을 다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각 능력을 3개로 분할하려 했다. 그래서 여지훈과 남예리의 구분이 어려웠다. 남예리를 프로파일러라 규정하긴 하지만 법심리학자인 여지훈도 프로파일러다. 이 둘의 차이를 찾으면서 캐릭터 능력 분할이 더 명료해졌는데, 여지훈은 범인을 분석하고, 남예리는 피해자를 분석한다. 남예리가 TEN 팀에 들어가기 전에 근무했던 곳이 피해자지원센터인 건 그래서다. 이게 재밌는 게, 여지훈이 범인이라 생각하고 분석하던 사람이 사실은 피해자였을 때 남예리가 들어가면서 한 번 더 분석을 하게 되는 거다. 1부의 쌍둥이 언니처럼.
그런데 왜 능력을 분할했어야 했나. 즉, 왜 팀이어야 했나.
이승영 감독: 우리가 영웅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원톱 주인공으로 가는 게 맞다. 그런데 우리는 영웅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아닌 거 같다. 이 있고 가 있다면 후자가 영웅 이야기다. 마지막에 막 골프채로 범인을 패서 잡아내야 한다. 그런데 에서는 범인 얼굴이 한 번도 안 나오고, 잡고 싶은데도 좌절하는 과정에서 삶의 애환이 드러난다. 우리도 그렇게 처연히 바라보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만약 원톱 주인공이 뭘 쫓다 위기를 맞이하고 다시 통쾌하게 범인을 잡는 이야기라면 좀 더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는 있을 텐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단조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덕분에 단조의 분위기에 플롯도 다층적이다.
이승영 감독: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때 우리끼리 롤플레이를 할 때도 있다. 일단 사건이 일어나면 퍼즐이 던져진 거 아닌가. 그러면 수사 영역을 배분해야 하는데 한 사람씩 나는 백도식이다, 여지훈이다, 하면서 역할을 맡는다. 그러면서 나는 이걸 했으니 넌 이걸 해보라고 대화를 하다보면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굉장히 많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남상욱 작가: 수사물이라는 게 쓰는 사람 입장에선 하나의 설정만 살짝 고쳐도 이야기 전체가 무너진다.
이승영 감독: 헤밍웨이의 글에서 조사 하나 빼면 작품 전체가 무너진다는 말도 있는데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뭐 하나를 고치려면 무너뜨리고 다시 써야 한다. 하도 수정을 많이 시켜서 내 별명이 ‘오! 수정’인데 작가님들 고생 많으셨다.
“개인의 창작력을 짜내는 시스템은 개선되어야 한다” │제작진 “시대를 해부할 수 있는 방법이 수사물이지 않을까”" /> 감독의 수정 요구만큼 작가끼리의 협업 안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었을 텐데.
이재곤 작가: 큰 마찰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분명 욕망이 있다. 글에 대한 소유욕이건, 말하고 싶은 바를 말하려는 욕구들. 하지만 수사물이라는 장르가 워낙 복잡해서 그 욕심이 욕심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래서 남들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사건을 너무 꼬아놓아서 내가 미궁에 빠지는 경우에는 이쪽으로 토스를 하고. (웃음) 서로 건져내주지 않으면 죽는다.
남상욱 작가: 수사물 대본 작업이라는 게, 어느 순간 컴퓨터를 켜고 첫 페이지, 첫 문장을 써나가는 방식이 아니다. 기획 기간에 감독님, PD님, 이런 분들과 함께 다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시놉시스를 만든다. 미국의 경우 한 작품에 100명 이상 작가가 붙어서 한다는데, 우리는 그에 비해 가용 인력이 적긴 하지만 어쨌든 스케줄 안에서 협업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실제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제대로 건져내 준 경우가 있나.
이승영 감독: ‘미모사’ 편의 경우 처음 이재곤 작가님이 썼을 땐 범인이 죽음에 대한 예찬을 하며 멋있게 죽었다. 그런 사람에 대해 형사가 뭐라 반응할지가 중요했는데, 형사들은 그 철학을 듣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그 범인이 멋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가.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없는 면이 있어서 공회전하다가 공이 남상욱 작가에게 넘어갔다.
남상욱 작가: 그 때가 1회 1부는 마친 상황이었고 2부에서 반전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안 풀린 상황이었다. 그것만 6, 7개월 붙잡고 있었고, 아까 말했던 에서 시체 사진만 보던 시기라 우울함이 극대화되어 있었다. 그러다 ‘미모사’ 대본이 내게 넘어와서 엔딩을 써야 했는데 한 주도 안 써지는 거다. 새벽 4시인데 배가 너무 고파서 집에 있는 컵라면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는 거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불어터진 자장면을 먹더라도 사는 게 중요하다는 백도식의 대사가 나오고, 그렇게 범인을 살려 구속했다. 그건 ‘살다보면 너 같은 작가도 좋은 글 쓰는 날 오지 않겠느냐’고 내게 했던 말들을 옮긴 거다. 그러면서 극의 방점이 범인에서 백도식으로 옮겨졌다.
이승영 감독: 우리의 원칙이 정답의 문제는 같이 고민하되, 스타일은 창작자를 존중하자는 건데, 아마 그 때 유일하게 그 원칙을 못 지킨 것 같다. 그래도 그냥 내가 결정한 게 아니라 작가님께 대안을 만들어보자고 한 다음에 최종 엔딩에 대해 오케이를 받았다. 진심으로 오케이 한 거 아니에요? (웃음)
이재곤 작가: 진심이었습니다. (웃음)
시즌 1, 3 작업을 함께 했고, 이번에 < TEN >까지 하며 이 장르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었다. 꼭 시즌 2가 아니더라도 장르물 안에서 이 팀의 협업을 계속 볼 수 있을까.
남상욱 작가: 지금의 상태보다는 계속 인원이 보충되고 커나가야 한다. 개인의 창작력을 짜내는 시스템이 아니라 또 한 명의 똑똑한 사람이 붙어서 가지를 뻗어나가는. 정상적으로 쉬기도 쉬고 좋은 글도 쓰고 행복하게 하려면 시스템에 살이 붙어야 한다. 제리 브룩하이머 밑에 여러 팀이 있는 것처럼 감독님 밑에 여러 소그룹이 있는 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 같다. 우리는 먼저 경험했으니 노하우를 조금 더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 마디를 더해주고.
이승영 감독: < TEN > 팀에 돈과 명예가 있진 않다. 다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고통스럽더라도 배우고 싶은 분들은 한 두 시즌 머물다 가도 괜찮을 것 같다. 오래 머물기에는 시장이 아직 협소하다.
혹 다음 프로젝트로 정해진 건 없나.
이승영 감독: 뭐가 될지는 모르겠다. < TEN > 기획하며 라는 연애가 잔혹하게 이뤄지는 스릴러가 가미된 코미디가 있었는데 기회 되면 해보고 싶다. < TEN >에 대한 책임감도 있고.
책임져주길 바라는 이들이 많다.
이승영 감독: 정작 그 때 도망가는 분은 없을 거다. 사실 책임이 아니라 과분한 거다. 재밌게 봐주시니 기회를 주시는 거겠지. 혹 시즌 2가 안 되면, 그 인물들로 스핀오프 만들어도 좋을 거 같다. 백도식이 다시 강원도로 돌아가서 마을에서 일어난 찌질한 절도사건 같은 거 풀어내는 코믹 드라마로. 제목은 ? (웃음)
글.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테이프로 얼굴을 묶어 피해자를 질식사시키는 미제 사건 F가 7년 만에 다시 발생하고, 여지훈(주상욱) 팀장은 사라졌다. 이제 한 회만을 남긴 OCN 자체제작 드라마 (이하 < TEN >)은 지금까지 TEN 팀의 사건 해결 과정조차 마지막 대단원을 위한 에피타이저로 만들 만큼 커다란 궁금증을 지난주 시청자들에게 남겼다. 첫 회부터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이 수사 드라마는 그만큼 시청자와 ‘밀당’을 펼치는 원숙함을 보여준다. 아마 이것은 수사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던 MBC 드라마넷 시즌 1, 3를 연출한 이승영 감독과 역시 시즌 3에서 대본을 썼던 남상욱, 이재곤 작가의 팀워크이기에 가능한 지점일 것이다. 수사에 대한 스페셜리스트들이 모인 TEN 팀처럼, 수사물이라는 장르의 전문가로서 한국형 장르물의 전형을 만들어가고 있는 < TEN >의 세 제작진에게 수사처럼 꼼꼼하게 작품을 준비해온 과정을 들어보았다.가장 궁금한 것부터 묻겠다. 이번 < TEN > 마지막 회에서 F의 실체를 알 수 있을까.
이승영 감독: 여기서 범인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범인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거~죠? (웃음) 더는 말할 수 없다.
“수사물을 통해 인간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제작진 “시대를 해부할 수 있는 방법이 수사물이지 않을까”" /> 스포일러보다는 결국 시즌 2에 대한 전망이 남느냐에 대한 궁금증이다.
이승영 감독: 처음 < TEN >을 시작할 때, 이러이러한 결핍을 가진 인간들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노라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에 있어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시즌 2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할 게 굉장히 많기 때문에 만약 여건이 된다면 계속 그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게 단순히 사건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남상욱 작가: 어떤 사건으로 죽은 이의 시체를 해부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드러나고, 그 사람을 해부하면 시대가 드러난다는 게 부터 < TEN > 기획까지 이어지는 생각이었다. 우리가 시대를 해부할 수 있는 방법이 수사물이지 않을까. 감독님께서 항상 인용하시는 게 ‘빌딩이 높아지면 그림자가 길어진다’는 마지막 대사인데 더 길어진 그림자를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는지가 < TEN >의 고민이었던 거 같다.
이재곤 작가: 사실 수사물이라는 장르에 대해 크게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는 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과정에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느냐, 였다.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모든 글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수사물을 통해 인간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미흡하지만 < TEN >에서 보여주려 했다.
‘더 길어진 그림자’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스스로 느끼는 동시대성이 어떤지 궁금하다.
남상욱 작가: 피곤이 극대화된 시대랄까. 어떤 직업군에 속해서 어떤 일을 하고 살아도 정말 피곤하다는 기분이 드는. 생각해보면 우리 캐릭터들은 피곤한 시대를 가장 피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다. 가령 8회의 백도식 과거 장면에서 볼 수 있는 ‘싫다, 싫어’ 하는 그 피곤함. 과연 그런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까. 언제 찾아올까. 그런 생각이 캐릭터에 반영되는 것 같다.
시즌 3가 사료에서 힌트를 얻었다면 동시대의 범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공부했나.
남상욱 작가: 일반인에게 판매되지 않고 형사들만 볼 수 있는 라는 잡지를 많이 참고했다. 국회도서관과 중앙도서관에만 있는데, CCTV에 담긴 영상 하나만으로도 행동에 담긴 의미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우리나라에 굉장히 똑똑한 형사님들이 많다.
이재곤 작가: 나는 자료보다는 상상력에 의존하는 편인 거 같다. 아마 그 상상력이라는 것도 예전에 봤던 영화 등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그런 동시대성, 그리고 10퍼센트의 미제 사건과 상위 10퍼센트의 특수전담반이라는 아이디어는 기획 단계부터 잡혀있던 건가.
남상욱 작가: 출발점은 동시대를 수사의 방식을 통해 드라마에 담아내자는 거였다. 우리나라 강력반 검거율이 공식 통계로 90퍼센트라 하는데 나머지 10퍼센트의 미제 사건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탐구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강력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이걸 다룰 때 미제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건들만 전담해 미제 사건이 되지 않게 하는 팀을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이승영 감독: 처음 기획부터 변하지 않는 건 그거다. 10퍼센트의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들을 잡는 10퍼센트의 괴물 형사들 이야기. 그 괴물들이 얼마나 어렵게 퍼즐을 던져놓을 것이며 그걸 풀기 위해 또 얼마나 똑똑한 형사들이 등장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재밌을 거라 생각하고 출발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헉’ 했다. 퍼즐을 내기도 힘들고 풀기도 힘들어서. 그렇게 약 3년 동안 대본도 못 내면서 계속 공회전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단조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제작진 “시대를 해부할 수 있는 방법이 수사물이지 않을까”" /> 그럼 언제쯤 제대로 출발했나.
이승영 감독: 작년 4월 정도로 기억난다. 기적적으로 해결이 됐다. 1회 1부에서 각자 따로 수사하던 주인공들이 소나기와 함께 교차하는 순간이 있지 않나. 3년 동안 안 써진 대본의 초고가 10시간 만에 나오고, 완고를 12시간 만에 써낼 정도로 굉장히 기적적인 대본이 나왔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도 중요한 장면이지만, < TEN > 특유의 구성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이승영 감독: 보통 케이블 자체 제작 드라마의 경우 지상파만큼의 스타 캐스팅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인공보다는 강렬한 느낌의 사건으로 어필하고 그 다음에 인물에게 감정이입하게 이야기를 짠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공식을 깬 거지. 백독사, 거짓말 탐지기, 괴물 잡는 괴물 이렇게 각 인물을 소개하면서 시작하니까.
그게 가능한 건 10퍼센트 괴물 형사들의 개성과 강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승영 감독: 대본 쓰는 건 나중이고, 일단은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을 수집해 와서 공부하듯 의견을 나눴다. 3년 전 기획할 때 표창원 교수를 만났었는데 이분은 실제로 수사 경찰을 하다가 유학을 다녀오고 경찰대학교에 계신 분이다. 이분으로 여지훈의 모델을 잡고, 서울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경장님을 인터뷰해서 남예리 캐릭터를 만들었다. 다만 남예리의 성격은 조안이라는 배우를 통해 더 뚜렷이 잡혔다. 대본 리딩할 때 다른 사람들을 캐릭터로 만들어 그리더라.
남상욱 작가: 사실 쓸 때는 백도식을 쓸 때 제일 재밌다. 제일 좋아하는 수사극이 인데, 여기서는 캐릭터에 대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그냥 형사라는 존재 자체로 캐릭터가 구축이 된다. 그렇게 리얼한 형사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멋있겠다 싶은 생각으로 만든 게 백도식이다. 김상호 선배님께서 정말 백‘독사’가 되어주셨고.
세 인물이 수사하는 영역도 각각 다르다.
남상욱 작가: < CSI >는 과학수사를, 는 범죄행동분석을 보여주지 않나. 미제 사건을 풀 괴물 같은 형사들이라면 그런 능력을 다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각 능력을 3개로 분할하려 했다. 그래서 여지훈과 남예리의 구분이 어려웠다. 남예리를 프로파일러라 규정하긴 하지만 법심리학자인 여지훈도 프로파일러다. 이 둘의 차이를 찾으면서 캐릭터 능력 분할이 더 명료해졌는데, 여지훈은 범인을 분석하고, 남예리는 피해자를 분석한다. 남예리가 TEN 팀에 들어가기 전에 근무했던 곳이 피해자지원센터인 건 그래서다. 이게 재밌는 게, 여지훈이 범인이라 생각하고 분석하던 사람이 사실은 피해자였을 때 남예리가 들어가면서 한 번 더 분석을 하게 되는 거다. 1부의 쌍둥이 언니처럼.
그런데 왜 능력을 분할했어야 했나. 즉, 왜 팀이어야 했나.
이승영 감독: 우리가 영웅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원톱 주인공으로 가는 게 맞다. 그런데 우리는 영웅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아닌 거 같다. 이 있고 가 있다면 후자가 영웅 이야기다. 마지막에 막 골프채로 범인을 패서 잡아내야 한다. 그런데 에서는 범인 얼굴이 한 번도 안 나오고, 잡고 싶은데도 좌절하는 과정에서 삶의 애환이 드러난다. 우리도 그렇게 처연히 바라보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만약 원톱 주인공이 뭘 쫓다 위기를 맞이하고 다시 통쾌하게 범인을 잡는 이야기라면 좀 더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는 있을 텐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단조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덕분에 단조의 분위기에 플롯도 다층적이다.
이승영 감독: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때 우리끼리 롤플레이를 할 때도 있다. 일단 사건이 일어나면 퍼즐이 던져진 거 아닌가. 그러면 수사 영역을 배분해야 하는데 한 사람씩 나는 백도식이다, 여지훈이다, 하면서 역할을 맡는다. 그러면서 나는 이걸 했으니 넌 이걸 해보라고 대화를 하다보면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굉장히 많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남상욱 작가: 수사물이라는 게 쓰는 사람 입장에선 하나의 설정만 살짝 고쳐도 이야기 전체가 무너진다.
이승영 감독: 헤밍웨이의 글에서 조사 하나 빼면 작품 전체가 무너진다는 말도 있는데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뭐 하나를 고치려면 무너뜨리고 다시 써야 한다. 하도 수정을 많이 시켜서 내 별명이 ‘오! 수정’인데 작가님들 고생 많으셨다.
“개인의 창작력을 짜내는 시스템은 개선되어야 한다” │제작진 “시대를 해부할 수 있는 방법이 수사물이지 않을까”" /> 감독의 수정 요구만큼 작가끼리의 협업 안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었을 텐데.
이재곤 작가: 큰 마찰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분명 욕망이 있다. 글에 대한 소유욕이건, 말하고 싶은 바를 말하려는 욕구들. 하지만 수사물이라는 장르가 워낙 복잡해서 그 욕심이 욕심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래서 남들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사건을 너무 꼬아놓아서 내가 미궁에 빠지는 경우에는 이쪽으로 토스를 하고. (웃음) 서로 건져내주지 않으면 죽는다.
남상욱 작가: 수사물 대본 작업이라는 게, 어느 순간 컴퓨터를 켜고 첫 페이지, 첫 문장을 써나가는 방식이 아니다. 기획 기간에 감독님, PD님, 이런 분들과 함께 다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시놉시스를 만든다. 미국의 경우 한 작품에 100명 이상 작가가 붙어서 한다는데, 우리는 그에 비해 가용 인력이 적긴 하지만 어쨌든 스케줄 안에서 협업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실제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제대로 건져내 준 경우가 있나.
이승영 감독: ‘미모사’ 편의 경우 처음 이재곤 작가님이 썼을 땐 범인이 죽음에 대한 예찬을 하며 멋있게 죽었다. 그런 사람에 대해 형사가 뭐라 반응할지가 중요했는데, 형사들은 그 철학을 듣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그 범인이 멋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가.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없는 면이 있어서 공회전하다가 공이 남상욱 작가에게 넘어갔다.
남상욱 작가: 그 때가 1회 1부는 마친 상황이었고 2부에서 반전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안 풀린 상황이었다. 그것만 6, 7개월 붙잡고 있었고, 아까 말했던 에서 시체 사진만 보던 시기라 우울함이 극대화되어 있었다. 그러다 ‘미모사’ 대본이 내게 넘어와서 엔딩을 써야 했는데 한 주도 안 써지는 거다. 새벽 4시인데 배가 너무 고파서 집에 있는 컵라면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는 거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불어터진 자장면을 먹더라도 사는 게 중요하다는 백도식의 대사가 나오고, 그렇게 범인을 살려 구속했다. 그건 ‘살다보면 너 같은 작가도 좋은 글 쓰는 날 오지 않겠느냐’고 내게 했던 말들을 옮긴 거다. 그러면서 극의 방점이 범인에서 백도식으로 옮겨졌다.
이승영 감독: 우리의 원칙이 정답의 문제는 같이 고민하되, 스타일은 창작자를 존중하자는 건데, 아마 그 때 유일하게 그 원칙을 못 지킨 것 같다. 그래도 그냥 내가 결정한 게 아니라 작가님께 대안을 만들어보자고 한 다음에 최종 엔딩에 대해 오케이를 받았다. 진심으로 오케이 한 거 아니에요? (웃음)
이재곤 작가: 진심이었습니다. (웃음)
시즌 1, 3 작업을 함께 했고, 이번에 < TEN >까지 하며 이 장르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었다. 꼭 시즌 2가 아니더라도 장르물 안에서 이 팀의 협업을 계속 볼 수 있을까.
남상욱 작가: 지금의 상태보다는 계속 인원이 보충되고 커나가야 한다. 개인의 창작력을 짜내는 시스템이 아니라 또 한 명의 똑똑한 사람이 붙어서 가지를 뻗어나가는. 정상적으로 쉬기도 쉬고 좋은 글도 쓰고 행복하게 하려면 시스템에 살이 붙어야 한다. 제리 브룩하이머 밑에 여러 팀이 있는 것처럼 감독님 밑에 여러 소그룹이 있는 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 같다. 우리는 먼저 경험했으니 노하우를 조금 더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 마디를 더해주고.
이승영 감독: < TEN > 팀에 돈과 명예가 있진 않다. 다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고통스럽더라도 배우고 싶은 분들은 한 두 시즌 머물다 가도 괜찮을 것 같다. 오래 머물기에는 시장이 아직 협소하다.
혹 다음 프로젝트로 정해진 건 없나.
이승영 감독: 뭐가 될지는 모르겠다. < TEN > 기획하며 라는 연애가 잔혹하게 이뤄지는 스릴러가 가미된 코미디가 있었는데 기회 되면 해보고 싶다. < TEN >에 대한 책임감도 있고.
책임져주길 바라는 이들이 많다.
이승영 감독: 정작 그 때 도망가는 분은 없을 거다. 사실 책임이 아니라 과분한 거다. 재밌게 봐주시니 기회를 주시는 거겠지. 혹 시즌 2가 안 되면, 그 인물들로 스핀오프 만들어도 좋을 거 같다. 백도식이 다시 강원도로 돌아가서 마을에서 일어난 찌질한 절도사건 같은 거 풀어내는 코믹 드라마로. 제목은 ? (웃음)
글.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