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세는 한국 가요계로부터 공로상을 받아야할지도 모른다. 농담 같지만 사실이다. 2003년 솔로 1집 앨범 < Dangerously In Love >를 발표한 이래 비욘세는 줄곧 국내 여자 가수들의 롤 모델이었고, 비욘세의 노래와 춤은 그들의 연습 대상이었다. 그리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은 비욘세가 없다면 돌아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비욘세가 ‘Crazy In Love’를 발표한 이후 여자 연예인들은 그의 춤을 연습해서 방송에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졌고, 버라이어티 쇼의 ‘댄스 신고식’에서, 오디션프로그램에서, 시상식과 각종 드라마의 나이트클럽 장면에서 비욘세의 노래와 춤은 끊임없이 반복됐다. 비욘세, 대체 당신은 누구시기에 방송·연예계에 이토록 깊게 뿌리를 내리셨습니까.연애버라이어티의 비욘세
사랑한다면 비욘세의 춤을 춰라. 2000년대 초중반 러브버라이어티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 매력을 발산해 이성에게 선택받기 위해, 혹은 한 컷이라도 더 나오기 위해 춤을 춰야 했다. ‘빰~빠밤빰’으로 시작하는 ‘Crazy in love’만 나오면 여자 출연자들은 어깨에 힘을 주고 도도하게 걸어 나왔다. 뮤직비디오는 과도한 노출 없이 야구 모자와 재킷으로도 섹시함을 연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고, 역동적인 춤은 몸을 흐느적거리곤 하던 이전의 ‘섹시 댄스’와 달리 건강한 느낌을 주었으니 춤 잘춘다는 인상을 주기에 제격이었다. 전혜빈과 채연은 그 시절 섹시 아이콘의 자리를 두고 SBS 의 ‘리얼 로망스 연애편지’에서 ‘Crazy in love’에 맞춰 댄스 배틀을 했고, 최근의 섹시 아이콘 현아는 KBS 에서 남자 게스트들의 얼을 빼놓았다. ‘댄서’로서의 능력과 ‘러버’로서의 매력을 동시에 발산하고 싶을 때, ‘Crazy in love’는 가장 먼저 배워야할 교보재다. 한창 때는 팀, 세븐, 현빈 같은 잘 생긴 남자들도 ‘Crazy in love’에 맞춰 ‘매력발산타임’을 가질 정도였다. 댄스 신고식에서의 비욘세
예능 프로그램에선 춤으로 출연을 신고한다. MBC , SBS ‘X맨’ 같이 수 십 명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통편집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시 비욘세의 춤만큼 좋은 게 없다. 비욘세는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에게 친숙할 뿐만 아니라, 따라 추면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동작들을 곳곳에 배치해 놓은 노래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발표 당시부터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었던 ‘Single Ladies’는 한국의 수많은 여성 가수들에게 축복이었다. 애프터스쿨의 유이는 팀에 합류한지 두 달 만에 SBS 에서 ‘Single Ladies’를 똑같이 재현하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고, 씨스타의 효린은 이 곡의 춤과 노래를 모두 소화해내면서 가창력과 춤 실력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이밖에 소희는 ‘Naughty Girl’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애프터스쿨의 가희는 에서 ‘Sweet Dreams’를 선보여 온 출연자가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게 만들었다. 많은 출연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단 한 번 자신에게 ‘단독샷’이 돌아오는 신고식의 기회, 그 때 비욘세의 춤을 제대로 소화할 수만 있다면 화면 네 귀퉁이에 ‘OH OH OH OH’정도의 자막은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다. ‘내가 바로 가수다’의 비욘세
가수라면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그러나 오르기 힘든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노래, 바로 ‘Listen’이다. ‘Listen’은 2006년 에 수록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가수들이 꾸준히 도전했던 노래다. 이 곡은 저음부터 고음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어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음역대가 넓은 발라드 가수들에게 선호된다. 주로 음악방송에서 스페셜 무대를 꾸미거나 선곡이 자유로운 라디오에서 ‘Listen’의 라이브를 들을 수 있었다. KBS 에서는 박효신과 테이가 스페셜 듀엣 무대로 ‘Listen’을 들려줘 남자 가수가 낼 수 있는 고음역대의 신세계가 무엇인지를 알려줬고, 최근에는 씨스타의 효린과 다비치의 민경, 시크릿의 송지은이 연말특집 에서 본인들만의 색깔을 지키며 노래하는 ‘Listen’의 합동 무대를 선보였다. 또한 양파는 6년 만에 KBS 로 컴백하면서 ‘Listen’을 불러 녹슬지 않은 노래실력을 증명했다. 가수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이 곡은 가창력 종결자의 곡으로 불린다. 일반인들이 장기를 뽐내는 에서도 ‘Listen’을 부르는 일반인들은 꾸준하다. 특히 시아준수에게 칭찬을 받은 14살의 ‘강릉소녀’ 김가람, 풍부한 성량으로 주목받은 ‘여고 빅마마’ 강고은은 함께 ‘Listen’을 부르며 노래 대결을 펼쳤다. 이만하면 ‘Listen’은 한국 가수들의 가창력 검증을 위한 공식 음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디션프로그램의 비욘세
SBS ‘K팝 스타’(이하 ‘K팝 스타’) 심사위원인 양현석의 말이 맞다. 어떻게 비욘세 보다 잘할 수 있겠는가. 비욘세는 이미 노래와 춤 실력의 월등한 가수로 인정받고 있고, 누구보다 자기 색깔이 확실한 가수다. 그렇기 때문에 비욘세의 노래를 불러 새로움을 주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비욘세의 노래는 듣는 건 쉽지만 부르기는 어렵다. 여러 난점에도 불구하고 ‘Irreplaceable’은 리듬이 살아있고 후렴구에서 가성과 진성을 오가기 대문에 노래를 제대로 소화만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제어할 수 있는 참가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최근 ‘K팝 스타’에서 박지민은 15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Irreplaceable’을 불러 박진영으로부터 ‘타고난 재능이 1등’이란 극찬을 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K팝 스타’에서 이미쉘이 부른 ‘Halo’, Mnet 의 신지수가 부른 ‘If I were a boy’ 등도 연습생들에게는 교과서와도 같은 노래다. 가창력과 리듬감을 모두 자랑하고 싶다면 비욘세의 노래 하나 쯤은 제대로 익혀놓자. 그러나 이승철 심사위원을 만난다면 “어차피 가요 시킬 걸 알면서 왜 팝송을 부를까”라는 질책을 받게 될 거란 것을 명심하자. 연말 시상식의 비욘세
연말 가요 시상식의 공헌도로 지분을 따진다면, 어떤 한국 가수 보다 비욘세의 것이 가장 크지 않을까. 매년 연말이면 그 해 비욘세가 내 놓은 음악, 안무, 무대 영상 등이 지상파 3사의 연말 시상식에서 재현되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는 비욘세의 새 앨범 의 수록곡인 ‘Run the World’가 그 주인공이었다. SBS 에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 씨스타의 효린, 티아라의 지연, 포미닛의 현아 등이 걸 그룹을 결성해 ’Run the World’를 선보였다. 각 그룹에서 춤을 잘 추는 멤버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지만, ‘Run The World’의 안무를 그대로 가져왔을 뿐, 노래를 재해석한 부분은 찾기 힘들었다. 또한 지난 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비욘세는 ‘Run the world’의 무대연출을 통해 가수와 영상이 함께 움직이며 여러 가지 이미지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KBS 에서 구준엽, 에서 동방신기가 선보였던 공연과 매우 흡사했다. 이쯤 되면 국내 연말 시상식이 아니라 ‘비욘세 헌정 시상식’이라 할만 하다. 만약 비욘세가 오랫동안 앨범이라도 안 내면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질 정도다. 왜 우리 나라에서 가수들은, 또는 가수가 되고 싶은 모든 이들은 비욘세의 노래를, 춤을, 무대를 따라하게 되는 걸까. 그만큼 비욘세가 대단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스스로 이른바 ‘레퍼런스’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일까.
글. 박소정 기자 ninete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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