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4월 24일에 태어났다.
연기하기 잘했구나 싶을 때는 가족들이 즐거워 할 때다. 나는 우리 가족이 영순위다. 그러다보니 19살에 에 출연 할 때부터 내가 집에 들어갔을 때 맞아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무래도 결혼을 늦게 할 것 같다. 지금 이렇게 바쁜데!
때는 대본을 보지 않고 현장에 와서 연기했다. 윤성현 감독님은 치기어린 고등학생의 성장을 보여주는 독립영화 에서 연기했던 주인공 태훈과 나 사이에서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를 찍었는데 너무 힘들게 느껴지는 거다. 연기할 때 힘을 빼는 것도 어렵지만, 또 다시 힘주기는 더 어려웠다. 그래서 윤성현 감독님한테 책임지라고 했다. 도대체 이 뭐기에 드라마도 못 찍게 하냐고. 하하.
날라리 반장이 별명이었다. 성적은 중상위권이면서 선생님 말은 잘 안 듣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폈는데, 선생님께 “저 담배 핍니다. 근데 학교에서는 담배 안 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애들은 미쳤다고 했지. 그리고 중앙고등학교 동아리 연합회장도 했는데, 뽑히고 나서 학교를 한 번도 안 나갔다. 물론 축제 때는 즐기러 가고. 하하.
예산을 더 받아낸 적도 있었다. 원래 소신이 뚜렷하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 “해 주세요”가 아니라 왜 해 줘야 하는지 근거를 대야 한다고 배웠다. 학교 다닐 때 예산 더 달라고 이런저런 서류를 준비해서 선생님께 내미니까 검토 하실 수밖에 없었을 거다. 어쨌든 할 일은 다 했다. 하하
트위터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한다. 혹자는 이걸 팬서비스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주위에 사람들이라고는 스태프들이 전부다 보니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호기심이 많다. 쉬는 시간에 트위터 보면서 사람들하고 대화하면 재밌다.
때는 “나 주인공이야” 하고 다녔다. 그게 아님을 느끼고 와장창 무너졌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열심히 안 했던 것 같다. 연예인이라고 사람들이 알아보니까 연기를 겉 멋 들어서 했던 거지. 최근에 다시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오그라들고 미치겠더라.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싶다. 하하
택배나 PC방 아르바이트도 하고, 별걸 다 해봤다. 먹고 사는 문제 아닌가. 3년 전에 MBC 찍을 때였지만 뭐 세상 살면서 힘들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겠냐. 배우들이 보기엔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보이는 부분에 돈을 많이 쓰고, 스태프들과 나눠 가지다보면 남들 월급 받는 수준이지.
4~5평짜리 구제 옷가게를 운영한 적 있다. 1200만 원 갖고 친구와 시작한 소자본 창업이었는데, 옥션이나 11번가에도 우리 물건을 올려놓고 팔았다. 밤에 청계천에서 물건 떼다가 팔았는데 나름대로 장사 잘됐다. 물건이 정말 좋았거든. 하하하! 그 때가 찍을 때였는데, 그 이후로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다.
일일연속극인 를 꼭 하려고 했던 이유는 할머니 때문이었다. 지금 몸이 좋지 않으신데 매일 손자 얼굴 보시면 6개월은 더 사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애 늙은이 같다’, ‘연기 20년은 한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철이 빨리 들었다. 지금 아역배우들 보면 어른처럼 말하는데 아마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사실 ‘나도 앤데’ 이런 생각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애 늙은이면 또 어때.
글. 박소정 기자 nine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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