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을 때마다 는 상반기 기대작에 대한 기사를 준비해왔다. 하지만 2012년 올해의 첫 ‘10 포커스’는 지구 종말에 대한 기획이다. 단순히 지난해부터 2012년 종말론이 유행해서가 아니다. 신작에 대한 기사는 상반기 혹은 새해에 무언가 좋은 게 나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현재의 종말론은 그런 가까운 미래에 대한 기대 혹은 희망을 잠식하고 있다. 그래서 는 기대작 분석이건 트렌드 예측이건 이 현상에 대한 진단 이후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재 종말론이 과거의 그것과 다른 이유에 대해 질문해보았다. 그리고 종말 앞에서 동시대의 사람들이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무엇인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공개하며, 지구 멸망에 대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더했다. 부디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백신으로 받아들여 주시길.2012년 새해 첫날 미국 아칸소에서는 수천마리 검정지빠귀가 의문의 떼죽음을 당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청어 수만 마리의 시체가 해변 위에 떠올랐다. 5125년을 한 주기로 계산하는 마야 달력에서 그 주기가 끝나는 날은 2012년이다. 중국의 주역을 수리적으로 분석한 그래프는 2012년에 0이라는 수치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 모든 현상은 영화 에서 보여준 것처럼 2012년 지구 종말에 대한 징조이자 예언인 걸까.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사실 그 결과를 우리는 알 수 없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도 예상하기 어려운 우리에게 앞으로 일어날 대격변이란 인간의 예측을 벗어난 것이고 그래서 말할 수 없다. 다만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일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들

최근 개봉한 영화 에서 핵전쟁으로 멸망을 경험한 후 세계를 새롭게 재건하자는 커트 헨드릭스의 계획은 그래서 흥미롭다. 여기서 핵전쟁은 일종의 종말이지만 그것보다 먼저 전제되는 것은 인류가 더는 진보할 수 없다는 역사의 종말에 대한 진단이다. 70억 인구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되고 있지만 한쪽에선 과식으로 다이어트가 필요하고 한쪽에선 기아에 허덕이는 지구적 부조리에 대해서는 모두가 전부터 알고 있다. 다른 건, 인류의 지혜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가 오리라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유명한 저서 을 통해 시장 경제와 자유 민주주의라는 두 체제가 지구를 지배하며 더는 새로운 시스템이 역사에 등장하지 않으리라 예견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체제가 된 2011년의 한국,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모습을 볼 때 그의 예측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더는 진보하지 않을지도 모를 역사의 끝이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종말론, 대형 이벤트 혹은 지금 가장 힘 있는 픽션

진보, 그리고 역사 발전의 서사가 무너진 시대에 역사 이후의 유토피아에 대한 서사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의 핵전쟁은 심판 이후의 유토피아 재건이라는 점에서 예수 재림 후 열리는 천년왕국의 서사와 거의 동일하다. 물론 최근 유통되는 종말론이 멸망 이후의 재건을 약속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은 현재가 앞으로 더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종말은 비루하게 쳇바퀴 도는 삶을 종결지을 대형 이벤트처럼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요컨대 종말론은 지금 가장 힘 있는 픽션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건 오는지 안 오는지도 모를 종말이 아닌 현재의 무력감이며, 새로이 만들어야 하는 건 노아의 방주가 아닌 종말론보다 매력적이고 창의적인 진보의 이야기다. 종말 앞에서도 희망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 한 그루의 사과나무 이야기처럼.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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