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모도바르의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
성형외과 의사인 로버트(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열성적으로 진행 중인 인공피부 연구가 성공적임을 확신한다.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집에 감금해 둔 여인, 베라(엘레나 아나야)를 통해 인체 실험을 거쳤기 때문이다. 비밀이 새어 나갈 염려는 없다. 전신 수트를 입힌 채 방 안에 가둬 둔 그녀는 24시간 카메라로 감시되고 있으며, 그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가정부 마릴리아(마리사 파레데스) 뿐이다. 결과를 위해 과정의 부도덕함을 감수하는 냉혈한이지만 로버트에게도 숨겨진 아픔은 있다. 아내는 수년 전 자동차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고 세상을 떠났으며, 그는 아내의 이름을 따서 인공피부를 ‘갈’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의 실험대상인 베라는 죽은 아내와 너무도 닮았다. │알모도바르의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
믿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알모도바르의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
피부를 잃은 갈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거기엔 자신의 얼굴이 없었다. 에서 피부는 인간의 가장 바깥의 것, 눈에 보이는 것, 외면을 결정짓는 존재다. 로버트가 사람의 외모를 변형시키는 직업을 가진 것이나, 그의 아내와 딸이 눈에 보이는 것을 믿음으로써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면이 외면으로 드러나는 것인가, 외면이 내면을 결정짓는 것인가. 닭과 달걀의 순서와 같은 이 질문에 대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짓궂은 실험을 제시한다. 그래서 베라는 로버트의 실험 대상인 동시에 감독에게도 실험을 위한 인물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티에리 종케의 에서 알모도바르 감독은 감금된 여인과 그녀를 지배하는 남자의 관계를 빌려왔다. 그러나 복수와 죗값의 사슬을 그리는 원작과 달리 에서 사건의 원인과 감정의 기원은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베라가 로버트의 방에 도달하게 된 과정은 실험을 위한 준비일 뿐, 관찰해야 할 대목은 새로운 피부를 얻은 베라가 로버트의 방을 나서는 순간인 것이다.
실험이라는 단어를 빌려오지만, 영화는 결코 냉정하거나 과학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타오르는 듯한 색채감은 다소 차분해졌지만,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금기의 향연은 감독의 인장을 새기듯 멈추지 않고 등장하며 모든 인물들은 욕망을 넘어 선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오직 피험체인 베라만이 탐욕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혐의의 인물로 남겨지는데, 그녀는 감독이 생각하는 궁극의 여성, 완성된 피부다. 갈과 혼동되는 순간 베라의 피부는 형이상학적으로 완성 되었으며, 허물처럼 바디 수트를 벗은 그녀는 완벽한 여자가 된다. 그리고 완성된 베라를 통해 영화는 지극히 보편적인 질문에 대해 가능한 한 지엽적이고 확고한 대답을 도출해 낸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드러나는 베라의 욕망은 곧, 영화가 지지하는 가치들의 총체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이후로 살아남은 여성들에 천착하던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제 다음 단계의 고민을 시작 했다. 덩어리로 바라보던 이야기 속에서 여성과 삶을 핀셋으로 집어 올려 하나의 샬레 안에 내려놓았다. 불편하고 위험한 실험에서 눈을 돌릴 수 없는 이유가, 그러한 실험을 거듭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알모도바르 감독은 가장 열렬히 여성을 고민하고 욕망하는 사람이다.
글. 윤희성 nine@
성형외과 의사인 로버트(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열성적으로 진행 중인 인공피부 연구가 성공적임을 확신한다.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집에 감금해 둔 여인, 베라(엘레나 아나야)를 통해 인체 실험을 거쳤기 때문이다. 비밀이 새어 나갈 염려는 없다. 전신 수트를 입힌 채 방 안에 가둬 둔 그녀는 24시간 카메라로 감시되고 있으며, 그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가정부 마릴리아(마리사 파레데스) 뿐이다. 결과를 위해 과정의 부도덕함을 감수하는 냉혈한이지만 로버트에게도 숨겨진 아픔은 있다. 아내는 수년 전 자동차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고 세상을 떠났으며, 그는 아내의 이름을 따서 인공피부를 ‘갈’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의 실험대상인 베라는 죽은 아내와 너무도 닮았다. │알모도바르의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
믿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알모도바르의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
피부를 잃은 갈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거기엔 자신의 얼굴이 없었다. 에서 피부는 인간의 가장 바깥의 것, 눈에 보이는 것, 외면을 결정짓는 존재다. 로버트가 사람의 외모를 변형시키는 직업을 가진 것이나, 그의 아내와 딸이 눈에 보이는 것을 믿음으로써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면이 외면으로 드러나는 것인가, 외면이 내면을 결정짓는 것인가. 닭과 달걀의 순서와 같은 이 질문에 대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짓궂은 실험을 제시한다. 그래서 베라는 로버트의 실험 대상인 동시에 감독에게도 실험을 위한 인물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티에리 종케의 에서 알모도바르 감독은 감금된 여인과 그녀를 지배하는 남자의 관계를 빌려왔다. 그러나 복수와 죗값의 사슬을 그리는 원작과 달리 에서 사건의 원인과 감정의 기원은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베라가 로버트의 방에 도달하게 된 과정은 실험을 위한 준비일 뿐, 관찰해야 할 대목은 새로운 피부를 얻은 베라가 로버트의 방을 나서는 순간인 것이다.
실험이라는 단어를 빌려오지만, 영화는 결코 냉정하거나 과학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타오르는 듯한 색채감은 다소 차분해졌지만,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금기의 향연은 감독의 인장을 새기듯 멈추지 않고 등장하며 모든 인물들은 욕망을 넘어 선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오직 피험체인 베라만이 탐욕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혐의의 인물로 남겨지는데, 그녀는 감독이 생각하는 궁극의 여성, 완성된 피부다. 갈과 혼동되는 순간 베라의 피부는 형이상학적으로 완성 되었으며, 허물처럼 바디 수트를 벗은 그녀는 완벽한 여자가 된다. 그리고 완성된 베라를 통해 영화는 지극히 보편적인 질문에 대해 가능한 한 지엽적이고 확고한 대답을 도출해 낸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드러나는 베라의 욕망은 곧, 영화가 지지하는 가치들의 총체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이후로 살아남은 여성들에 천착하던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제 다음 단계의 고민을 시작 했다. 덩어리로 바라보던 이야기 속에서 여성과 삶을 핀셋으로 집어 올려 하나의 샬레 안에 내려놓았다. 불편하고 위험한 실험에서 눈을 돌릴 수 없는 이유가, 그러한 실험을 거듭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알모도바르 감독은 가장 열렬히 여성을 고민하고 욕망하는 사람이다.
글. 윤희성 nin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