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명의 교사가 자신의 수업 장면을 방송에 공개했고, 6개월 동안 전문가에게 수업방식을 코치 받았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진도에 따라 칭찬 스티커를 주기로 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지난 1일 종영한 EBS (이하 )는 교육이라는 거대한 화두에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실험으로 논리를 구축한 프로그램이었다. ‘과연 선생님이 누군가의 지도를 받을 수 있을까’, ‘설마 칭찬에도 역효과가 존재할까’라는 의심과 통념들이 보기 좋게 뒤집혔다. , 등을 통해 꾸준히 사람을 이야기해온 정성욱 PD가 그 중심에 있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살아가는 학교라는 공간을 다큐에 담아내며 “그저 믿고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취학을 앞둔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의 1년 2개월을 들어봤다.

지난 주 가 끝났다. 소감이 어떤가.
정성욱 PD: 기획단계까지 포함해 총 1년 2개월이 걸렸는데, 처음에는 막막하고 어려웠다. 무사히 10부작을 끝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는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될 듯”
정성욱 PD “EBS는 관찰, 고찰, 실험으로 승부한다”
정성욱 PD “EBS는 관찰, 고찰, 실험으로 승부한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막막하고 어려웠나.
정성욱 PD: 애초의 그림은 포괄적인 교육 다큐멘터리였다. 그러다가 ‘학교’로 좁혀졌는데, KBS 이나 SBS 와 같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미 많이 다룬 소재라 고민을 많이 했다. 같은 소재라도 다른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고, 또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소재 자체보다 그 소재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차별화가 필요했을 것 같다.
정성욱 PD: 어떤 아이템을 하든 상관없었다. 다만 관계에 대한 부분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녀 사이에 신뢰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배움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0.1%의 비밀’ 편도 자극적으로 풀어가지 않고, 그런 관계들이 공부를 잘하는 비법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학교 다큐멘터리라면 뭔가 센 걸 다뤄줘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풀어가면 너무 임팩트가 약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많았지만, 날 믿어달라고 설득했다.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편부터 얘기해보자. 도대체 어떻게 교사 코칭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된 건가. (웃음) 교사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전문가의 코치를 받는 게 쉽지 않은데.
정성욱 PD: 교육의 질이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선생님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래서 기획단계에서부터 선생님과 관련된 아이템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애환이나 고생은 다른 곳에서 많이 다뤘던 소재니까 교사 코칭 프로젝트를 하면 재밌겠다 싶었다. 총 52분이 신청해주셨는데, 의외로 젊은 교사분들이 많았다. 최종적으로 선정된 다섯 분의 평균 연령이 33세였다.

성공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나. (웃음)
정성욱 PD: 없었다. (웃음) 구성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아이템이 정해지면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는데, 이렇게 리얼한 프로젝트는 사실 힘들다. 실제로 다섯 분 중에 두 분이 도중에 포기하고 싶다고 얘기하셨다.

심지어 전문가들도 코치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나.
정성욱 PD: 별 수 있나, 믿고 기다려야지. (웃음) 이메일이나 전화, 문자를 통해 최대한 우리의 진심을 보여드리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판단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많이 드렸다.

결국 다섯 명의 교사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제작진으로서 그 과정을 지켜본 소감은 어땠나.
정성욱 PD: 현장에서 그 분들이 진심으로 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시더라. 심지어 코치를 해주셨던 조벽 교수님이 요즘 동료 교사들을 이끌고 강의를 해주시면서 교사 코칭 프로젝트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교사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반응도 꽤 좋았다.
정성욱 PD: 덕분에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는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될 것 같다. 한 8~90% 정도 확정됐다. 내가 제작에 참여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년 6월부터 방송될 것 같다.

“내가 아이를 가진 부모였기 때문에”
정성욱 PD “EBS는 관찰, 고찰, 실험으로 승부한다”
정성욱 PD “EBS는 관찰, 고찰, 실험으로 승부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반응도 분명 있었다.
정성욱 PD: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왜 선생님만 변해야 되냐, 학생이나 시스템도 함께 변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많았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걱정됐다. 본인들은 용기내서 도전한 건데, 그런 진심을 몰라주니까 속상하지.

새로운 시도뿐만 아니라 발상의 전환도 엿보였다. 특히, ‘칭찬의 역효과’ 편은 다소 충격적이더라. 처음부터 역효과에 중점을 두고 제작했나.
정성욱 PD: 예전에 잠깐 를 연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칭찬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칭찬의 역효과나 부작용에 관한 책 를 보면서 확신을 얻었다. 칭찬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는 워낙 많이 나왔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다른 얘길 해보고 싶었다.

본인도 한 아이의 부모로서 ‘칭찬의 역효과’ 편이 남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다.
정성욱 PD: 말 안 듣는 (웃음) 일곱 살 아들이 있는데, 나 역시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해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네가 이번에 1등 했구나, 똑똑하네’가 아니라 ‘네가 1등을 하기 위해 책을 많이 봤구나’ 이런 식으로. 아이에게 신경을 쓰고 기다리고 봐줘야 구체적인 부분을 칭찬할 수 있다.

부모라는 점이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에 영향을 준 부분이 있나.
정성욱 PD: 지나가는 말로 “너 일곱 살이니까 내년에 학교 가겠네”라고 했더니, 아들 녀석이 “학교가 무서워서 안 가겠다”고 하더라. 학교 가면 선생님이 만날 혼내지 않냐고. 미취학 아동이 벌써부터 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게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학교가 이렇게 무서운 존재가 됐구나 싶었다. 학생들이 받을 상처 때문에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어느 정도 포기한 것도 내가 아이를 가진 부모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1~2부 ‘학교란 무엇인가’ 편에서 세 학교를 촬영할 때 좀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겠다.
정성욱 PD: 학교 측에서 섭외 요청을 받고 격렬한 토론을 하셨다고 들었다.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 비춰졌을 때 학교나 학생들이 입게 될 피해나 상처를 많이 걱정하셨던 모양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고, 우리는 현재 학교가 안고 있는 고민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고민하다가 결국 전자를 택했다. 만약 제작진의 욕심대로 프로그램 완성도에만 몰두했다면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특히 교사들의 고민에 초점을 맞췄는데 어떤 이유였나.
정성욱 PD: 1~2부에서는 학교가 아이들을 위해 기다려주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그 안에서 아이들이 숨을 쉴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로는 울림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을 통해 학교가 앞으로 갖고 가야 할 고민을 표현해봤다.

“사람이 보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정성욱 PD “EBS는 관찰, 고찰, 실험으로 승부한다”
정성욱 PD “EBS는 관찰, 고찰, 실험으로 승부한다”
아침마다 교문에서 학생들을 기다리시던 흥덕고 교장 선생님이 인상적이었다. 아직도 저런 선생님이 계시는구나 하고 놀랐다. (웃음)
정성욱 PD: 진짜 그러셨다. (웃음) 대안학교인 이우학교 교장 선생님이 쓰신 를 보면, ‘가장 이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 눈에는 흥덕고 교장 선생님이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교사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가장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모습이다. 사회가 그렇지 못하니까 상식이 이상으로 보이는 것일 뿐이다.

서일고 교사가 도중에 촬영중단을 요청했다. 우려했던 부분이 현실로 나타났는데, 그 때 상황은 어땠나.
정성욱 PD: 평소에 잘 따라오던 학생들이 갑자기 과제를 안 해왔다. 아이들이 억압을 당할수록 틈만 나면 탈출하려고 하는데, 우리 카메라가 그 단초를 제공했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괜히 저희 때문에 죄송하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죄송하다, 아이들이 진심을 이해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답장을 주셨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저 선생님의 처분만 바라는 거지. 촬영을 접은 지 일주일 만에 ‘이제 괜찮다’고 연락이 오셨다.

일주일 만에 학교를 가보니 뭔가 변한 게 있던가.
정성욱 PD: 선생님이 많이 부드러워지셨다. 당신이 아이들을 너무 억압해서 그런 건 아닌지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하더라.

다큐멘터리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자극적이거나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았던 것은 실험이나 통계의 영향이 컸던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을 설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정성욱 PD: 자기 확신을 갖고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인간이 때로는 상황에 지배당하고 때로는 착각에 빠진다는 을 제작했었다. 시즌 1에서 세 명만 모여서 같은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한다는 ‘3의 법칙’을 얘기할 때, 내가 과학자가 아니다보니 법칙을 만든다는 게 겁이 났다. 그 때 만났던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가 내 고민을 듣더니 “당신이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 그렇게 얘기하라”고 말씀해주셨다. 시즌 2를 만들 때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실험 같은 경우는 지금껏 EBS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오면서 노하우가 많이 생겼다. 다른 방송국에 비해 취재력이나 제작비가 미흡하기 때문에 EBS는 관찰, 고찰, 실험으로 승부한다. 어떤 사건을 인문학적으로 풀다보니, 심리를 건드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실험을 하게 된다.

방영 당시 반응이 뜨거웠는데, 혹시 시즌 3 제작 계획은 없나.
정성욱 PD: 이미 기획안은 올렸다. (웃음) 언제 방송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해 얘기할 계획이다. 굳이 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보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돌이켜 보면 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뭐였나.
정성욱 PD: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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