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 감독 “변태면 변태로서 변태답게 살아도 되는 거다”
이해영 감독 “변태면 변태로서 변태답게 살아도 되는 거다”
이해영 감독의 두 번째 영화 (11월 18일 개봉)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주변에서 채집한 사례들을 극화했다는 정보적인 측면도 있지만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현실적인 전제가 되기도 한다. SM 플레이어, 성인용품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고생, 리얼돌 마니아, 복장 도착자, 섹스에 집착하는 경찰관 등 은 ‘건전’의 기준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사람들이 이끌어간다. 흔히 말하는 “안전하지 않고 불건전한” 변태들이 감히 음지가 아닌 밝은 오후의 대로변으로 나온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얼마나 깨끗하냐고, 얼마나 건전하냐고. 조금만 달라도 사는 게 피곤해지는 이 땅에서 너무나 남다른 이들이 자기답게 사는 것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그러나 영화는 변태라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을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리고 가볍지만은 않게 보여준다. 영화 (이하 )에 이어 “자기가 자기답게 사는 것”을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그저 너무 재밌어서” 간절히 만들고 싶었다는 이해영 감독을 만났다.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6년 이후 4년 만이다. 정말 오랜만에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는데,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이해영 감독: 일반 시사 때 저 멀리서는 웃는 소리가 났는데, 앞뒤로 어르신들 있는 곳은 숙연한 분위기라 좀 괴로웠다. (웃음) 오히려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이 더 많이 웃어서 좋았다. 이 섹스코미디이기 때문에 여자 감독이 만든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여성을 판타지의 대상으로만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지수(엄지원) 캐릭터가 설정적으로 봤을 때는 바이브레이터를 쓰고 있다가 남자친구한테 들킨다. 그리고 환상장면에서는 거대한 바이브레이터를 타고 있다. 이런 부분이 대상화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여자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자 분들이 많이 반응을 해줘서 개인적으로는 뿌듯했다.

“을 하면서 영화 찍는 게 즐거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해영 감독 “변태면 변태로서 변태답게 살아도 되는 거다”
이해영 감독 “변태면 변태로서 변태답게 살아도 되는 거다”
준비 중이던 영화 의 제작이 중단되면서 본의 아니게 오랜만에 영화를 내놨다.
이해영 감독: 공백기라고 누가 쓰더라. (웃음) 하지만 그 사이 놀아 본 적이 없다. 정말 열심히 일하면서 지냈던 시간이라서 체감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거 정도? (웃음) 물론 오랜만에 영화를 내놓는데 이렇게 농담같이 가벼운 영화를 내놔도 되나, 라는 생각은 했다. 공백의 기간에 걸맞는 묵직한 영화로 나왔어야 맞는 거 아닌가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만들고 싶었고, 이 엎어진 다음엔 크지 않고 내 몸에 딱 맞는 옷 같은 영화를 한 편 찍어야 치유될 것 같았다.

그렇게 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치유가 좀 되었나.
이해영 감독: 남의 시나리오 받아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정말 이해영 같은 영화를 한번 해야 자신감도 생기고 새로운 영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 영화가 금방 끝날 줄 알았다. 워낙 가벼운 이야기고 예산도 많지 않은데다 엎어지고 그 다음 주부터 쓰기 시작했으니까. 딱 1주일 술 먹고 더 먹으면 죽을 것 같아서 그냥 빨리 쓰자 했다. 진짜 열심히 썼다. 전화기 꺼놓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다 영화 엎어지고 죽으러 간줄 알았다. (웃음) 3주 만에 트리트먼트를 썼는데, 그 분량이 44페이지였고 지금 영화에 나와 있는 신들이 다 그 때 들어있는 것들이다.

3주 만에 시나리오를 거의 다 썼다는 건 좀 자랑 같은데. (웃음)
이해영 감독: 그렇게 되나. 남들 다 그렇게 살지 않나. (웃음) 그만큼 너무 절실했다. 이 엎어진 소식을 사무실에서 듣고 나와서 정신을 차려보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더라, 본능적으로. 휴게소에 들려서 우동을 먹는데 서러워서 10분 동안 엉엉 울었다. 울다가 우동 걸려서 켁켁 거리기도 하고, 우동은 반도 못 먹고. (웃음) 마냥 전라도에 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리산에 올라갔다오고, 술을 먹고, 그때 많은 생각이 오갔는데 어떤 걸 해야 할까 라는 게 없었다. 비관해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 못살겠더라. 너무 바보같이 다 바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가장 젊고 활기찼던 시간을 남김없이 다 바쳤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나서 못 견디겠더라. 자기비관을 굉장히 많이 하다가 서울 올라와서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영화는 찍어야겠으니 막연히 썼다. 처음에 쓸 때 주변에서 많이 말렸다. 상업적이지 않을 수 있다, 투자받기 어려울 수 있다, 위험하다,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더라. 심지어 이 영화 찍으면 죽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감독생활 끝나고 매장이라고. 다들 저주를 퍼부었지. (웃음) 근데 나는 정말 이해영 같은 영화를 한 편 가볍게 찍지 않고서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나에겐 이 정말 절실한 구원의 이름이었다.

영화로 받은 상처, 영화로 치유하는 것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 정도 상황까지 같으면 영화에 오만 정이 다 떨어졌을 법도 하다.
이해영 감독: 영화가 좋아서가 아니고 생활비 때문에… (웃음) 능력이 부족한 건데 사생활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 진짜 아무것도 없다. 회의를 일요일 새벽 3시에 하자고 해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영화가 엎어지고 나니까 아무것도 없더라. 연애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취미도 없고. 막막한 거지. 영화 말고는 할 게 없으니까. 그래서 살려고 한 거다. 궁상맞게 연말에 집에서 텔레비전 보면서 있는데 정말 나는 나를 위해서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는구나 싶더라. 왜 이렇게 완벽하게 나를 없애고 영화만 바라보고 살았을까, 바보같이. 영화가 나에게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데. 그때 새해 결심을 했던 게 연애를 하는 사람으로 살자, 영화는 둘째 치고 연애를 하자였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것도 얼마 있다가 차였다. (웃음) 그러고 깨달았다. 이것도 구원이 아니구나, 영화나 열심히 하자고. (웃음)

그래서 결과적으로 은 구원이 되었나.
이해영 감독: 구원일지 아닐지는 흥행스코어에 따라 달라질 텐데 (웃음) 최소한 치유가 된 건 맞다. 그 전에 비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단순히 끝났을 때의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개념이 아니고 약간 달라졌다. 사람의 성격도 달라지고, 현명해진 거 같다. 어떻게 자신감을 가지면 오만하지 않고 기분 좋은 긴장으로 작용하는가의 수위도 알게 된 거 같고. 영화를 하는 게 되게 즐거운 일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현장이 즐거웠다. 24시간, 36시간 연속으로 찍기도 해서 힘들기도 했다. 를 찍을 때는 이렇게 힘들고 귀찮은걸 왜 할까 싶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되고, 선택할 일도 많고, 다들 나만 보고 있고. 그게 힘들었는데 하면서는 그걸 다 감독이 짊어질 필요도 없고, 모르는 건 물어보고, 함께 할수록 힘이 생긴다는 걸 알면서 즐거워졌다. 그게 큰 깨달음이었다.

“이 사람들을 햇빛 쏟아지는 광장으로 나가게 만들고 싶었다”
이해영 감독 “변태면 변태로서 변태답게 살아도 되는 거다”
이해영 감독 “변태면 변태로서 변태답게 살아도 되는 거다”
치유라고 말하지만 배우들도 많이 등장하고, 옴니버스식으로 느껴질 만큼 에피소들 간의 온도 차도 있다. 정작 영화를 만들면서는 쉽지 않은 현장이었을 것 같다.
이해영 감독: (류)승범이가 찍다가 그러더라. 이런 스케줄 처음 본다고 말이 되냐며. (웃음) 진짜로 가혹하게 찍긴 했다. 다행인건 배우들이 너무 많이 도와줬다. 그 누구도 심하게 ‘곤조’ 부리는 사람이 없었고,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한 번도 인상 쓰거나 서로 할퀴거나 하면서 찍지 않아서 복 받은 거 같다. 한국영화인들의 엄청난 힘 같은 게 있다. 영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내고야 마는. 그런 것들이 다들 뜨겁게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감독이 화를 안 내고 웃고 다니니까 그게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웃음) 때는 나를 지키기 위해 딱딱하게 웅크리고 고민만 많이 했다. 이번에는 농담도 많이 하고 같이 어울렸는데, 그게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에너지가 된 거 같다.

‘선수’라고 할 만한 베테랑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심혜진은 정말 발군의 캐스팅이었다. 에서 이상아도 그랬고, 오래 전 배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소환해서 새로운 면을 끄집어낸다.
이해영 감독: 심혜진 선배는 시나리오 쓰면서 0순위로 생각한 배우다. 때문에 기시감이 들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심혜진 선배랑 일하면서 너무 고마웠다. 비로소 전문가를 만난 느낌이랄까. 처음에는 연기할 때 왜 이렇게 힘을 안주시지라고 생각했다. 그게 밸런스인줄을 몰랐던 거지. 큰 그림을 내가 못 그리고 있었던 거다. 큰 그림을 그리고 보니까 모든 연기가 너무 정확하더라. “이번에는 이렇게 해볼까요” 그러면, “감독님이 원하면 그렇게 할게. 근데 이렇게 힘을 빼는 게 뒤에서 더 좋을 걸, 생각해봐” 라고 하신다. 두 가지로 찍었다면 틀림없이 선배님이 말하던 게 맞았다. 심혜진 선배는 실제로도 정말 복종하고 싶은 분이다. (웃음)

심혜진이 연기한 순심이라는 캐릭터가 영화에 중요한 뿌리였던 것 같다. 영화가 하고자하는 말을 직접적으로 담고 있으니까. 특히 성동일과 SM 플레이를 하다가 경찰서에 가게 되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말들을 다 쏟아내는 부분에서는 감독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해영 감독: 물론 약간 교조적일 수 있고 너무 직접적이긴 하지만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솔직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촌스러워서 주저 할 수도 있고 닭살 돋을 수 있는 대목인데 나는 별로 부끄럽지 않고 고민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솔직함은 캐릭터를 대할 때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선수끼리 다 아는데 뭘 그렇게 닭살 돋게 해, 라고 볼 수도 있는데 평범한 관객들한테는 좀 구체적이고 뾰족한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살다보면 변태엄마도 있는 거야”라는 말도 그런 맥락으로 보일 수 있다. 그게 진심이었다.

하지만 성과 관련된 것들이라면 무엇이든 편하게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인 한국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관객들도 있을 거고,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많은 선택이다.
이해영 감독: 이런 이야기를 의식이 바탕이 돼서 했다고 하면 그거야 말로 닭살 돋을 것 같다. 절실하게 너무 재밌다고 생각했다. SM에 관련된 이미지들을 시나리오 쓰기 전에 찾아보곤 했는데 너무 예쁘더라. (웃음) 부정적이고 지옥 같은 이미지인줄 알았는데 막상 찾아보니 귀엽고 깜찍한 것들도 있더라. 베를린에는 런던의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sexual/gender) 퍼레이드처럼 SM 플레이어들의 퍼레이드가 있더라. 우리나라로 따지면 종로 같은데서 일요일 오후 2시에 시민들이 솜사탕 먹고 유모차 끌고 나와서 구경하고, 그 대로를 SM 플레이어들이 코스튬을 입고 나오는 거다. 어떤 사람은 말이 돼서 마차를 이빨로 끌고, 여왕님이 가죽옷 입고 타고 있고. (웃음) 그런 이미지들이 굉장히 신선했다. SM은 소수 중에 소수고, 지하 감옥 같은데서나 남모르게 즐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햇빛 쏟아지는 휴일 대로변으로 나오니까 건강해보이고 아무렇지 않더라. 그러면서 이게 긍정적이고 귀여울 수도 있고 재밌게 풀어보고 싶은 야망이 컸다. 상업적으로 불리할 수 있고, 위험부담이 있었는데도 너무 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 눌러졌다. 그래서 에서도 이 사람들을 햇빛 쏟아지는 광장으로 나가게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뭐라 하건 거기서 우뚝 서서 자신들의 가장 내밀한 약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야망 같은 거였다.

“식물에게 발이 있었으면 그 발을 찍었을 거다”
이해영 감독 “변태면 변태로서 변태답게 살아도 되는 거다”
이해영 감독 “변태면 변태로서 변태답게 살아도 되는 거다”
영화에서는 장배(신하균)의 때가 꼬질꼬질한 발이라든지, 지수(엄지원)가 자주 보여주는 메니큐어를 바르는 발 등 유난히 발을 클로즈업한 신들이 많았다. 실제로 발에 페티시 있는 것 아닌가. (웃음)
이해영 감독: 그냥 발이 너무 좋다. (웃음) 풀드레싱을 할 때 신발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그게 곧 전체 그 사람의 스타일은 정하는 것처럼 중요한 건데, 이렇게 완벽하게 풀셋팅을 해도 한국에선 무너져버리게 된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까 세팅이 허물어져버린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꾸몄는데 밑동이 빠져서 뒤뚱하게 되는 것처럼. 이게 사람을 인간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신발을 벗고 양말바람으로 누군가와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친밀도를 높여주는 훌륭한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양말만 신고 있으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게도 되고, 바지도 구겨지고 뭐도 묻고, 떨어지기도 하고 그런걸 보면서 가까워지는 게 있다. 발이라는 게 인간적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내 발을 보여준다거나 누군가의 발을 본다는 거 자체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발 페티시라고 봐도 되는 건가? (웃음) 에서 사람들이 왜 이런 컷을 찍냐고 했는데 신하균 발, 엄지원 발, 개 발, 신하균 발, 일련의 네 개 컷들이 좋다. 가장 인간적인 걸 보여주면서 정서가 생기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날 발 페티시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도 않고 당당하다. (웃음) 발 페티시라고 하기엔 굉장히 남녀노소, 짐승의 발까지 다 담고 있으니까. 모든 생물을 다 사랑하는 인류애에 가까운 발 페티시다. 식물에게 발이 있었으면 그 발을 찍었을 거다. (웃음)

사실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변태라는 단어도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면서도 오용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이해영 감독: 너무 광범위하게 변태라는 말이 쓰이고 있어서 진짜 변태가 뭔지 모르는 거 같다. 통해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우리는 변태가 아니다’가 아니라 ‘변태면 어떠냐, 나 변태다, 이게 뭐가 부끄러운 일이냐’였다. 변태면 변태로서 변태답게 살아도 되는 거다. 그리고 변태라는 말의 어감이 귀엽지 않나. 뒷태, 옆태 같은 태 같기도 하고. (웃음) 근사한 것이 되기 위한 변태 같기도 하고. 변태라는 말이 되게 섹시한 거 같다. 자기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건강하게 느껴지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나이 60이 돼서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구나 깨닫고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는데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끝까지 못 깨닫는 사람들도 있고. 본인의 불행이, 자신의 충족되지 않는 어떤 면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모르고 있는 거다. 우리가 말하는 변태라는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자기를 규정한 다음에 어떤 노선으로 나가면 행복해지는 걸 아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정도의 자아성찰 레벨은 분명히 본받아야 한다고 본다.

엄정화의 노래 ‘페스티발’이 결말과 함께 등장하면서 축제 분위기로 영화를 정리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노래 들었을 때부터 영화에 대한 생각을 했던 건가.
이해영 감독: 처음에는 막연하게 신나는 노래, 어렵지 않은 대중음악이 나왔으면 했다. 때 ‘Like a virgin’을 했으니 이번엔 가요가 나왔으면 했고. 우연찮게 트리트먼트를 쓰다가 ‘페스티발’을 들었는데 와 닿더라. 그리고 직접적이긴 하지만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잘 반영되고 진심처럼 느껴졌고. 지금은 음악이 나오면서 다들 뛰어나가는데 원래는 세미뮤지컬 같은 느낌으로 캐릭터들이 한 소절씩 부르는 게 있었다. 그때 순심(심혜진)이 부르니 순심의 심정이 되고, 기봉(성동일)이 부르니까 또 기봉의 이야기가 되고. 각 캐릭터마다 너무 절절한 자기 얘기가 되더라.

그런데 엄정화나 마돈나 같은 아이콘들은 게이 커뮤니티에서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쓴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이해영 감독: 약간 그런 것도 있었다. 그들은 레인보우 플래그 같은 아이콘이지 않나. 대표깃발 같은 사람들이니 쓰면 좋겠다 싶었다. 영화 중간에 무지개 우산이 나오기도 하는데 조감독이 조심스럽게 오더니, “감독님 무지개는 동성연애자들의 상징 아닙니까”라고 하더라. (웃음) 근데 그건 그냥 무지개를 보여주고 싶어서 쓴 거다. 어떤 상징 때문이 아닌 그냥 무지개.

도 소년의 성장영화인 동시에 전복적인 영화기도 했다. 동구(류덕환)가 여자가 되고자 하는 것 자체가 기존의 질서나 세계를 무너뜨리는 거니까. 역시 귀엽고 유쾌한 와중에 세상에 싸움을 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해영 감독: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인 거 같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보수적인 어떤 것 때문에 누군가가 자기 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갖고 있다. 보수적인 걸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보수적인 건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를 지켜주는 기준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보수적인 것 때문에 비롯되는 두려움이 결국에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작용하고, 그러면서 그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자기 존재를 지우고 누르게 만드는 매커니즘 자체에 짜증이 난다.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맥락으로 넓히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답게 살 수 있는, 보수적인 사람도 보수적으로 살 수 있고, 진보적인 사람도 진보적으로 살 수 있고, 변태주의자도 변태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화두가 아직까지 뜨겁게 있다. 나 이 성적인 코드로만 가긴 했는데 다양한 측면에서 이런 얘기는 직간접적으로 계속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된 보수를 본 적도 없고, 폭력의 다른 이름으로 행사되었던 것 같다. 그것에 대해 최소한이나마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 이지혜 sev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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