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대사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영화들
요조│대사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영화들
“두 번째라고 해서 익숙해지진 않더라구요. 음악이라면 늘 해오던 거니까 정상적인 범위의 긴장, 떨림이었을 텐데 영화는 긴장의 차원을 넘어서요.” 홍대로 대표되는 인디 음악 신을 대중적으로 알린 가수이기도 한 요조는 아직 배우라는 이름에 익숙하지 않다. 무대 인사나 기자회견에 자연스럽게 임하는 동료들이 대단하다고 느낄 만큼.

그러나 그녀의 짧은 필모그래피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영화평론을 가장 아카데믹한 단계로 끌어올린 정성일 평론가의 감독 데뷔작 에 이어 감수성이 가장 뛰어난 감독 중의 한 명인 김종관 감독의 장편 데뷔작 로 두 번이나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특히나 최근 개봉한 에서는 “최초의 상대배우”와 대화만으로 하나의 에피소드를 온전히 끌고간다. “실제 요조와 많이 동일시”했던 뮤지션 혜영은 연애나 사랑에 영 미지근하다. 늘 달콤한 목소리로 정성스럽게 사랑과 일상을 노래하던 무대의 그녀의 모습만을 기억한다면 혜영은 낯설다. 그러나 오래 산 고양이처럼 심드렁하게 연애의 한계와 사랑의 무용함을 얘기하는 요조의 모습은 반전의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노래하고 연기하고 아가씨, 요조는 영화 속 캐릭터로 때때로 일탈을 하는 동시에 여전히 음악으로 소소한 일상을 노래한다. “아멜리에처럼 사는 것”을 신조로 삼았기에 “남들은 너무나 당연해서 신경도 안 쓰는 걸 캐치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녀가 아끼는 영화들도 극적인 반전이나 특별한 사건 없이도 마음 한 구석을 건드렸던 것들이다. 다음은 요조가 자신을 깊숙이 찔렀던 한 장면, 주인공이 건넸던 가슴 아픈 대사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영화들이다.
요조│대사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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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ing Of Comedy)
1999년 | 주성치, 이력지
“은 정말로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예요. 사우하고 피우가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헤어질 때도 많이 울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또 울었구요. 주성치는 정말 멋진 배우인 것 같아요. 요즘의 중후한 모습도 멋지지만 같은 초창기 영화를 보면 젊었을 땐 또 너무 귀엽잖아요. (웃음)”

가장 로맨틱해야할 키스신에서도 코미디를 포기하지 않는 주성치에게는 ‘희극지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그러나 영화는 사우(주성치)와 피우(장백지)의 순애보를 결코 가볍지 않게 그려내 결국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로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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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aris, Texas)
1984년 | 빔 벤더스
“예전에 사진 촬영을 하면서 트래비스의 음악이 나왔는데 사진작가분이 봤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거기 주인공 이름이 트래비스라고. 전 당연히 밴드로 알고 있었는데 를 본 그 밴드가 영화가 너무 좋아서 주인공 이름을 밴드 이름으로 삼은 거더라구요. 주인공이 아내 제인과 부스를 사이에 두고 전화통화로 얘기하는 대사가 너무 좋아서 그걸 가사로 곡을 써보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장면을 아껴요.”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가 제자리를 찾기까지를 그린 는 강렬한 이미지로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빔 밴더스 감독의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에 등장하는 라이 쿠더의 연주 또한 영화를 잊지 못하게 만든다. 제 37회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요조│대사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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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way We Go)
2009년 | 샘 멘데스
“도 음악도 좋고, 특히 남자 주인공이 너무 귀엽죠? (웃음) 영화를 보고나면 일단은 이런 사랑스런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여정이 있는 로드무비니까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에피소드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어요. 저도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나이니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는 샘 멘데스 감독이 에 이어 내놓은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부부의 위선과 오해, 불신으로 안에서부터 곪아 들어갔던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커플과 다르게 미국 곳곳을 누비며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가는 젊은 부부는 건강하고 아름답다.
요조│대사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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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melie Of Montmartre)
2001년 | 장-피에르 주네
“를 보면서는 ‘아멜리에처럼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강하게 했어요. 그냥 되게 평범한 삶인데도 너무 재밌게 살잖아요. 남들은 너무나 당연해서 신경도 안 쓰는 걸 캐치하면서 누구는 핸드백을 다 엎었다가 다시 하나씩 정리 하는 걸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곡식자루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재미있어 하고. 저도 영화를 보고나서 사소한 걸 관심 있게 보는 버릇도 생겼구요. 실제로 아멜리에처럼 즉석사진기 밑을 뒤지려고 전철역에 가본 적도 많아요. (웃음)”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주변의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설레는 아멜리에(오드리 토투)에게 하루는 짧기만 하다. 따분한 나날을 보내는 이들에게 사랑의 기회를 선사하거나 추억을 만들어주는 아멜리에의 일상이 사랑스럽다.
요조│대사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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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e Darjeeling Limited)
2007년 | 웨스 앤더슨
“일단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상이 너무 예쁘죠. 캐릭터들도 하나하나 다 너무 웃기구요. 특히 삼형제가 엄마를 만난 다음에 나란히 서서 주문을 외우는 장면에선 너무 웃겨서 죽는 줄 알았어요. (웃음) 또 기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자극도 받았구요.”

에서도 역시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스타일링이 영화 곳곳에서 펼쳐진다. 침대칸 기차 안의 호사스러움, 여행용 트렁크들의 화려함이 좌충우돌하는 삼형제의 수난과 묘하게 엇박을 빚으며 웃음을 자아낸다.
요조│대사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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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는 빠르지 않다. 잘 마름질 된 답변을 잽싸게 내놓는 대신 자기 앞에 떨어진 질문을 주워 담은 뒤에 천천히 입을 뗀다. 그래서 “시원스럽게 말을 잘 하지 못해” 아쉬워하지만 그 느릿느릿한 속도는 요조라는 사람 자체에 집중할 시간을 벌어준다. 그녀가 “술을 너무 좋아한다”고 밝히고, 누군가의 음담패설에도 깔깔 거린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스스로 생각해도 허세스러운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릴 때의 낯간지러움에 대해 폭소를 터뜨리는 순간.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홍대 여신’이라는 관성적인 수식어 대신 그저 요조라는 이름 자체가 또렷해졌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도 신인배우라면 흔히 내놓을 수 있는 포부 가득한 대답 대신 ‘인연’이라는 화두로 풀어간다.

“아직 두 편밖에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영화는 진짜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거 같아요.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그래서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격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지금까지 한 두 편의 영화가 다 사람으로 느껴져요. 그 사람과 제가 인연으로 만난 거 같고, 그래서 다음 영화도 찍을 수도 있고 못 찍을 수도 있어요. 저도 모르는 어떤 인격이 나와 인연이 닿아 가지고 만나면 작품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인연이 안 나타나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죠. 마치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처럼요.”

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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