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가 있다. 배를 타고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섬에 도착한 그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꽁치를 굽는다. 한 마리는 남자를 위해. 한 마리는 여자를 위해. 연기 자욱한 그곳에서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다. 꽁치가 있고, 여자가 있고, 남자가 있고, 섬이 있으니까.

11월 17일 (수) 개막하는 ‘제 7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 재패니메이션의 모든 것’(이하 ‘일본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꽁치 두 마리>(상영제목 <고등어 두 마리>)는 일본 독립 애니메이션의 개척자로 불리는 구리 요지의 1960년 작이다. 어느 날, 이 섬에 한 과학자가 들어오면서부터 평화는 깨진다. 영리한 인간은 문명과 기계를 들여놓고, 정의와 이상을 말하고, 법과 규범을 부르짖으며, 통제와 시스템을 사랑한다. 섬은 집들로 가득차고 좁은 땅위에 지어진 집들은 점점 높아져간다. 감시와 독제가 시작되고, 이쪽과 저쪽이 나뉘어 서로 무기를 겨누고, 결국 전장으로 변한 섬은 최후의 날을 맞이한다. 그렇게 다시 둘만 남겨진 그들은 꽁치를 굽는다. 한 마리는 남자를 위해. 한 마리는 여자를 위해. 가끔 다투기도 하고 여전히 연기도 나지만, 행복하다. 여자가 있고, 남자가 있고, 꽁치가 있고, 한 없이 넓은 바다가 있으니까.

우주로봇전투가 아닌 섬세한 감성전달자



21세기 첨단 기술력이 도달하지 못하는 아날로그의 감수성이 재패니메이션에서 살아 숨쉰다.
슥슥 가벼운 터치의 셀 드로잉으로 50년 전 완성된 짧은 애니메이션 <꽁치 두 마리>는 21세기 첨단 기술력이 미처 도달하지 못한 깨달음의 지점으로 관객을 데려다 놓는다. 아니 이것은 ‘재패니메이션의 모든 것’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선보이는 올해 일본영화제 모든 상영작들의 공통점처럼 보인다. 린타로의 고전장편 <은하철도 999>, <아톰의 첫사랑>을 포함한 ‘테츠카 오사무의 작품집’, 신가이 마코토의 <그와 그녀의 고양이>와 곤도 아키노의 중독성 있는 퍼레이드 <전철일지도 몰라>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뉴 제너레이션의 여행’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재패니메이션’을 그저 우주로봇전투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일 것이다. TV 스폿, CF등 가장 상업적인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ROBOT CAGE` 작품집 역시 일견 투박한 듯 보이는 붓으로 이보다 더 섬세할 수 없는 감성을 전한다. 이나바 타쿠야의 <사랑의 구운 주먹밥>은 석쇠위에 홀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야끼 오니기리군의 애절한 사랑의 사연을 들을 수 있는 귀여운 스테이지고, <츠미키의 집>같은 가토 구니오의 작품들은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감성으로 스크린을 훈훈하게 데운다.

혹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3D <아바타>의 놀라운 기술력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면, <아스트로 보이>의 반갑지 않은 ‘귀환’에 당혹감을 느꼈던 관객이라면, 이제 잠시 스마트폰을 끄고, 트위터의 숨 가쁜 타임라인에서 벗어나 진짜 재패니메이션의 얼굴을 만날 시간이다. 아날로그의 따뜻한 품에 안길 수 있는 행복한 재회의 순간이 왔다. 날이 춥다. 바람이 분다. 꽁치를 굽고 싶다.

* ‘제 7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 재패니메이션의 모든 것’은 11월 17일(수) 개막작 <도쿄 매그니튜드 8.0>의 상영을 시작으로 신촌 메가박스에서 21(일)까지 열린다. 자세한 상영일정 및 작품 소개는 www.j-meff.co.kr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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