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정치에 대해 얘기한다. 여야 국회 정상화가 또 결렬되었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며, 막말과 폭언이 오가는 인사청문회 신문 기사를 보며 인터넷에서 점심시간에 술자리에서 다들 한 마디씩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비난과 냉소, 한숨으로 이어진다. 정치에 대해 얘기하기란 쉽다. 그러나 현실 정치를 보여주기란 녹록치 않은 일이다. SBS 은 남편을 잃고 정치에 입문하게 된 서혜림(고현정)이 대한민국의 부당거래들을 거부하며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되는 역경을 보여주려 한다. 과연 그녀의 선한 의지만으로 어지러이 얽혀있는 정치라는 복마전을 뚫을 수 있을까? 작가와 감독이 교체된 내홍을 겪은 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최지은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말한다. /편집자주

SBS 을 정치에 비유하면 ‘공약’이라 할 수 있다. 선거철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쏟아낸다. 임기 1년짜리 보궐 선거에 후보로 나선 서혜림(고현정)의 참모 왕중기(장영남)가 해수 온천 테마파크 건설과 풍력발전 시설 설치 등 실현 불가능한 약속이라도 내세워 표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사는 데 첫인상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의 시작은 강렬했다. 종군기자였던 남편(김태우)이 피랍되어 죽음을 맞이한 것을 계기로 국가와 국민, 정치의 관계에 눈을 뜬 서혜림은 “내 아이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라는 절규로 이야기를 관통하는 화두를 던졌다. “국민은 국가가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관철시키는 서혜림과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 하도야(권상우)의 활약은 46명 승조원들의 목숨과 함께 진실 또한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천안함 사건, ‘스폰서 검사’로 대표되는 검찰 부패 문제,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정치인들의 망언 등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과 극단적 대비를 이루며 통렬한 판타지를 제공했다. ‘절대선’ 대 ‘절대악’의 구도가 아닌, 미래의 정치개혁을 위해 현재 손을 더럽힐 수도 있는 강태산(차인표)과 순수한 열정을 지닌 서혜림의 공조도 흥미로운 정치 서스펜스의 탄생을 기대하게 했다.

일차원에 머무르고 마는 현실 묘사
<대물> vs <대물>│대한민국이, 정치가 그렇게 간단합니까
vs <대물>│대한민국이, 정치가 그렇게 간단합니까" />그러나 국회의원이 된 서혜림이 자신의 공약이었던 간척지 개발 건에서 정치인들의 땅 투기 의혹에 부딪혀 검찰수사를 요청하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는 것처럼 ‘현실’ 속에서 공약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작가와 감독이 차례로 교체된 역시 현실적 난관에 부딪히며 이야기를 펼쳐 나가고 있지만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것처럼 그림은 갈수록 어그러지고 작아진다. 은 강태산의 입을 빌어 “49%의 악 속에 피는 51%의 선의 꽃, 그게 바로 정치”라 말하며 그 복잡하고 이율배반적인 게임 안에서 서혜림의 분투를 보여주겠다는 태도를 취하지만 진짜 ‘정치’의 속성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산호그룹 회장 김명환(최일화)과 여당 대표 조배호(박근형)는 서혜림의 지역구에 LCD 공장을 유치하는 문제를 비롯해 수많은 거래를 하지만 각각 ‘돈’과 ‘권력’을 상징하는 이들 사이에는 별다른 긴장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강태산이 짜는 판에 맞추어 손을 잡거나 놓을 뿐이다. 선거중립의 원칙을 중시하는 백성민(이순재) 대통령은 서혜림을 위한 추경예산 지원을 거절하지만 김명환에게 다른 후보의 공약을 지원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레임덕에 시달리는 대통령, 정치권의 중심에 있는 여당 대표, 무시할 수 없는 재력을 지닌 재벌 총수의 관계를 단순히 수직적 상하관계로 볼 수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 등원한 서혜림이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히는 과정 역시 일차원적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초선 의원을 향해 상명하복을 강조하며 하나의 거수기쯤으로 취급하는 당 지도부, 날치기 법안 통과에 앞서 서혜림에게 “정치에는 힘의 논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고 타이르는 강태산은 마치 시청자들을 향해 ‘현실 정치의 기초와 실제’를 가르치는 것처럼 직접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드러낸다. 다양한 이익 주체들의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존재하지 않는 만큼 서혜림이 그 바닥을 헤쳐 나가는 방식도 치밀한 정치력이 아닌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호소다. TV 토론에서 “정치가 썩었다고 외면하지 말고 회초리로 바로잡아 달라”던 혜림의 발언은 ‘선한 정치’를 위한 모범답안에 가깝지만 그것을 통해 힘을 모으고 변화를 가져오려는 움직임이 뒷받침되지는 않는다.

사건은 있지만 정치는 없다
그래서 에는 사건은 있지만 정치는 없다. ‘액션 검사’ 하도야가 사우나에 칼을 들고 가서 조폭 두목과 대면하며 자신을 습격했던 괴한의 뒤를 캐고 조배호로부터 버림받았던 딸 장세진(이수경)은 복수를 위해 아버지의 비자금 자료를 모으지만 남은 것은 서로 엉성하게 이어진 음모에 휘말리는 주인공들뿐이다. 고작 대학병원 외과 과장 자리 하나를 놓고 벌어진 MBC 의 정치보다 긴장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이 정치 드라마는 과연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만들기’를 어떻게 구현해 나갈 수 있을까.
글 최지은

“내 아이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SBS 은 단 2회 만에 서혜림(고현정)의 남편(김태우)을 피랍과 죽음속으로 몰아넣었고, 불행 속에서 울부짖는 그 한 마디로 혜림이 어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지를 짧고 굵게 표현해냈다. 피랍된 남편을 구출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은(못한) 나라에 대해 아이가 물어보면 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이 나라의 정치적인 현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때는 실생활로 다가오지 않았던 삶의 ‘정치성’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자 실생활 그 자체가 되고, 한 평범한 주부를 정치인으로 바꾸어 놓는다.

흥미롭게도 이 드라마에서 두 갈래의 큰 축을 끌고 가는 혜림과 하도야(권상우)는 모두 일종의 정치적 각성을 경험한 존재들이다. 혜림의 삶을 뒤흔든 것이 남편의 피랍과 죽음이었다면, 도야에게는 아버지가 국회의원에게 당한 굴욕과 수모가 계기가 된다. 두 주인공에게 모두 정치적인 각성을 경험하면서, 이를 통해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목표가 생기게 되고, 이 목표의 실현을 위해 도야는 검사가, 혜림은 국회의원이 된다. 이들에게 그 각성은 이후의 삶을 변화시킬 만큼 큰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그 경험이 제공한 스스로의 상식, 자신이 정한 정의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다. 혜림과 도야는 국회에서, 검찰청에서 모두가 ‘네’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는 존재들이다. 이는 이들의 올곧음과 정의로움, 타협하지 않는 성정을 담아내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정치 현실을 경험하며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인 설정이다.

날이 갈수록 단순해지는 이야기와 캐릭터
<대물> vs <대물>│대한민국이, 정치가 그렇게 간단합니까
vs <대물>│대한민국이, 정치가 그렇게 간단합니까" />그래서 의 이야기와 캐릭터는 날이 갈수록 단순해진다. 혜림이 국회의원이 된 이후 조배호(박근형)가 어둠 속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강태산(차인표)이 자신의 야욕을 키워가는 동안 혜림은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올곧음을 어필하는 일 외에는 어떤 것도 하지 못한다. 이와 동시에 에둘러 가지 않고 직접 말하는 서혜림과 의 화법은, 회를 거듭해가면서 식상해진다. 그녀가 처음 시위 현장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외친 “내 아이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라는 한 마디는 비 내리는 유세 현장에서, TV토론회장에서 조금씩 더 길이를 늘려가며 반복된다. 그녀의 직언에 속 평범한 사람들은 감동하고, 동조한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는 몇 마디의 말로, “회초리를 들어주세요”라는 순진무구한 부탁으로 감동을 주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혜림의 말이 감동적이라면 그것은 그나마의 ‘직접적인 말’ 조차 듣지 못했었던 우리 정치의 불행한 현실 때문이지, 그 말들이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 속에 녹아들어가 진짜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 ‘대한민국’은 실제의 대한민국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단지 속의 대한민국이 서혜림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논리가 어떤 식으로든 구현되는 곳이라는 점에서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은 SBS 의 코믹하고 과장된 현실 풍자와 비슷한 수준의 현실 인식 정도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걸 더 단순하고 경직된 방식으로 풀어간다. 이야기를 한 국가의 범위로 확대시켰으면서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국가적인 사건들과 확대된 정치판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지 않은 은 그래서 판타지의 공간도 되지 못한다. 도야는 반복해서 정치판이 ‘아사리판’이라고 말하지만, 의 정치판에는 엄연히 질서정연한 논리가 있다. 그리고 혜림은 그 질서를 맨 아래에서부터 무너뜨리며 거슬러 올라간다. 에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있다면 그 정도다. 은 진짜 ‘아사리 판’인 이 나라와 이 나라의 정치 상황을 단순화시켜, 부패한 거대 권력과 이에 맞서는 또 다른 정치권력, 그리고 하도야로 대변되는 검찰의 무용담을 만화처럼 펼쳐놓는다.

현실과의 거리감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혜림이 납치된 이후 병실에서 깨어나자마자 “유세장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는 장면이나, “썩은 정치에게서 눈을 돌리지 말 것”을 부탁하는 TV토론회 발언은 실제 정치 일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현실 정치의 은유가 아니라, 현실 정치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한 트릭이다. 의 세상은 이미 혜림이 대통령이 될 만한 곳이다. 속 대한민국이 현실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그 안의 국민들은 혜림처럼 단순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싸움만 하는 거짓말쟁이들” 속에 홀로 선 “착하고 훌륭한” 혜림을 구분하는 건 닭 무리들 속에서 학을 찾아내는 것만큼 쉽다. 그런 세상 속에서 혜림은 분명 “생각보다 더 큰” 존재, ‘대물’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진짜 ‘아사리판’에서 볼 때, 의 사람들은 너무 멀어서 가짜처럼 보인다. 반도 지나오지 않았는데 느껴지는 이 현실과의 거리감을, 은 어떻게 좁혀갈 수 있을까.
글 윤이나

글. 최지은 five@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