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번 기회에 태권도나 좀 배워볼까봐.
응? 태권도? 갑자기 태권도는 왜?
이번에 ‘남자의 자격’ 못 봤어? 그 박상균 관장이라고 정우성 닮은 태권도 관장님 있잖아. 그 도장에 가서 등록하면 나도 그분의 자상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지 않겠어?
야! 자상하게 가르치는 건 이미 내가…!
넌 정우성 안 닮았잖아.
…해봤자지.
정말 그분은 얼마나 행복할까? 얼굴도 잘생겼어, 태권도도 잘해, 예쁜 애들 가르쳐. 진짜 일등 신랑감 아니야?
일등 신랑감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분도 삶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거다.
또, 또, 시비 건다.
시비가 아니라 태권도 사범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게 태권도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우선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건 달라. 이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리고 그저 아이들에게 태권도만 잘 가르친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고.
아니, 태권도장에서 태권도만 잘 가르치면 됐지, 뭐가 문제인데?
너 드라마 못 봤냐? 무열이(이민기)가 태권도장 관장 겸 사범이잖아. 거기서 애들 그만둘까봐 먹을 거 사주고 달래고 그러는 거 기억 안 나? 혹시 기회 되면 아파트 밀집 단지 근처 상가 몇 블록만 걸어 봐. 우리나라에 태권도장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걸? 얼굴이 정우성을 닮았던 강동원을 닮았던 태권도 사범으로 살기 위해서는 결국 관비가 생명이야.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는 태권도 외에도 다양한 경쟁력을 갖춰야하지.
경쟁력은 정우성 닮은 얼굴이 경쟁력이지.
그것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야. 학부모 상담이나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좋은 인상은 분명 강점이지. 하지만 아이가 아무리 운동을 즐겁게 배운다고 해도 부모님 입장에선 아이가 빨리 어떤 성과를 보여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아. 그것 때문에 본인이 태권도장을 운영하기도 했던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문대성 관장도 “부모님들에게 2~3년 꾸준히 시켜보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했던 거고. 어쨌든 사범 입장에선 이런 부모님들의 욕심 역시 만족시켜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게 되는 거야.
여러 가지 방법이라면?
이번 ‘남자의 자격’에서 태권도 띠 색깔에 대한 얘기가 나왔지? 공식적으로는 하얀 띠, 노란 띠, 파란 띠, 빨간 띠, 검은 띠가 있지만 아이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주황 띠나 보라 띠를 주기도 한다고. 태권도 검은 띠는 1단 이후부터 맬 수 있게 되는데 1단을 따기 위해서는 태극이라는 품세라는 걸 외워야 돼. 막 혼자 용권선풍각을 할 수 있어도 이걸 못 외우면 흰 띠야. 이 태극은 1장부터 8장까지 있는데 장이 올라갈수록 기술도 어려워지고 조합도 복잡해져. 그래서 순차적으로 배워야 하지. 이 때 흰 띠를 맨 초보자는 기본 앞굽이 자세나 앞차기, 돌려차기, 앞지르기 같은 기본 동작을 배워. 그 이후에 노란 띠를 매면서부터 태극 1장부터 3장까지 배우고, 세 개 품세를 완벽하게 마스터하면 파란 띠로 넘어가게 돼. 역시 4장부터 7장까지 익힌 뒤에는 빨간 띠가 되고, 가장 어려운 8장을 마스터하면 검은 띠, 즉 1단에 도전하게 될 기회를 얻게 돼. 그런데 이 과정이 거의 1년 정도 걸린단 말이지. 그 동안 실력이 차근차근 늘어간다고 해도 아이나 부모님 입장에선 뭔가 가시적으로 확 드러나는 게 영 없거든. 그렇기 때문에 그 사이에 다른 색 띠를 넣는 거야. 노란 띠와 파란 띠 사이에 초록 띠를, 파란 띠와 빨간 띠 사이에 갈색, 주황 띠 등을. 그래서 태극 2장을 익히면 초록 띠, 3장을 익히면 파란 띠, 5장까지 익히면 갈색 띠, 6장을 익히면 주황 띠, 이런 식으로 ‘눈에 보이는’ 승급을 시켜주는 거지. 물론 공식적인 띠 색깔 외엔 도장마다 다 좀 다르지만 그 개수는 거의 비슷해. 어쨌든 이런 방법이 등장하는 건 말 그대로 아이들의 학습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부모님이 만날 같은 색 띠라고 실망해서 그만두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해.
그런데 같이 들어온 아이들이라도 그 승급이라는 건 차이가 나지 않아?
당연히 재능과 집중력에 따라 천차만별이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아니 ㅇㅇ이는 벌써 파란 띠인데, 왜 우리 애는 아직 초록 띠냐’고 따지는 분들도 있고. 사실 그것 때문에 아직 품세 외우는 게 어설픈데도 그냥 승급을 시켜주는 경우도 있어. 하지만 결국 그렇게 배우면 빨간 띠 상태에서 1단에 도전하기까지 시간이 엄청 걸릴 뿐이지. 병장이 좋다고 입대 6개월 만에 시켜주면 결국 1년 넘게 병장으로 있어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도 고집을 피우면?
거기서 부모님을 잘 설득하는 것도 관장 혹은 사범의 능력이지. 그래서 태권도를 잘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힘들다는 거야. 기본적으로는 아이마다 능력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이해시키고 그럼에도 잘 가르치고 곧 승급할 수 있게 만들겠노라 약속하는 게 정석이지만 그런 게 잘 안 통하면 결국 남는 건 1품 이야기를 꺼내는 수밖에 없지.
그건 또 뭔데?
1품이라는 건 15세 미만의 아이가 1단을 딴 걸 1품이라고 그래. 아이나 부모님이 띠 색깔 욕심을 내는 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원해서 그런 건데, 사실 국기원 같은 곳에서 승단 딴 1품 외에는 공식적인 게 아니거든. 이번 ‘남자의 자격’에서 이윤석이 아무리 과거에 빨간 띠를 매었다고 해도 1단을 따기 위해 다시 기본부터 시작해야 하잖아. 하지만 만약 1품을 땄더라면 지금 품세를 다 까먹었어도 그걸 다시 배울 필요가 없는 거지. 공인 1단이니까. 이걸 부모님이나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거야. 가령 아이들에게 ‘너희들, 주황 띠까지 올라갔다가 도장 그만두고 나이 먹으면 무슨 띠야. 도로 흰 띠지? 그런데 1품을 따고 그대로 나이 먹으면 품띠는 뭐가 될까? 뭐긴 뭐야, 1단이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그러니 참고 1품 딸 때까진 같이 가자는 거지. 그런데 조금 슬프다. 나름 교육인 건데 그렇게 부모님 눈치를 봐야한다니.
눈치라기보다는 학부모와 발맞춰 가는 교육 방침 정도로 이야기하자. 사실 그걸 무시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것도 좀 위험한 발상이잖아. 아마 ‘남자의 자격’에 나온 그 관장님도 그 부분을 많이 고민했을 거야. 그러니까 도장 인사법이 ‘관장님, 저는 효자입니다’지.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야. 어쨌든 부모님들은 도장에 다니면서 인성적인 변화 역시 기대할 텐데, 이것 역시 단기간 내에 되는 건 아니거든. 대신 이런 식의 구호를 아이들 입에 배게 하면 효도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막연하게나마 인지하게 되는 거지. 물론 아버지가 ‘우리 아들 오늘 뭐 배웠어?’라고 할 때 우리 인사는 이러이러하다, 라고 설명해주는 장면을 안 노리진 않았겠지만.
정말 얘기 듣고 보니 우리 박상균 관장님도 도장 운영이 쉽지만은 않으시겠다. 제자가 되어서 직접 마음의 위로를 해드리고 싶어.
야, 너 같은 애들 가면 굳이 또 성인부 한 타임 더 만들어야 해서 관장님만 고달프셔. 다른 방법으로 도움을 드려야지.
무슨 방법?
가령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등록하러 간다거나…
야, 학부모가 되려면 결혼을 해야지.
내 말이.
글. 위근우 eight@
응? 태권도? 갑자기 태권도는 왜?
이번에 ‘남자의 자격’ 못 봤어? 그 박상균 관장이라고 정우성 닮은 태권도 관장님 있잖아. 그 도장에 가서 등록하면 나도 그분의 자상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지 않겠어?
야! 자상하게 가르치는 건 이미 내가…!
넌 정우성 안 닮았잖아.
…해봤자지.
정말 그분은 얼마나 행복할까? 얼굴도 잘생겼어, 태권도도 잘해, 예쁜 애들 가르쳐. 진짜 일등 신랑감 아니야?
일등 신랑감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분도 삶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거다.
또, 또, 시비 건다.
시비가 아니라 태권도 사범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게 태권도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우선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건 달라. 이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리고 그저 아이들에게 태권도만 잘 가르친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고.
아니, 태권도장에서 태권도만 잘 가르치면 됐지, 뭐가 문제인데?
너 드라마 못 봤냐? 무열이(이민기)가 태권도장 관장 겸 사범이잖아. 거기서 애들 그만둘까봐 먹을 거 사주고 달래고 그러는 거 기억 안 나? 혹시 기회 되면 아파트 밀집 단지 근처 상가 몇 블록만 걸어 봐. 우리나라에 태권도장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걸? 얼굴이 정우성을 닮았던 강동원을 닮았던 태권도 사범으로 살기 위해서는 결국 관비가 생명이야.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는 태권도 외에도 다양한 경쟁력을 갖춰야하지.
경쟁력은 정우성 닮은 얼굴이 경쟁력이지.
그것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야. 학부모 상담이나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좋은 인상은 분명 강점이지. 하지만 아이가 아무리 운동을 즐겁게 배운다고 해도 부모님 입장에선 아이가 빨리 어떤 성과를 보여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아. 그것 때문에 본인이 태권도장을 운영하기도 했던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문대성 관장도 “부모님들에게 2~3년 꾸준히 시켜보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했던 거고. 어쨌든 사범 입장에선 이런 부모님들의 욕심 역시 만족시켜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게 되는 거야.
여러 가지 방법이라면?
이번 ‘남자의 자격’에서 태권도 띠 색깔에 대한 얘기가 나왔지? 공식적으로는 하얀 띠, 노란 띠, 파란 띠, 빨간 띠, 검은 띠가 있지만 아이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주황 띠나 보라 띠를 주기도 한다고. 태권도 검은 띠는 1단 이후부터 맬 수 있게 되는데 1단을 따기 위해서는 태극이라는 품세라는 걸 외워야 돼. 막 혼자 용권선풍각을 할 수 있어도 이걸 못 외우면 흰 띠야. 이 태극은 1장부터 8장까지 있는데 장이 올라갈수록 기술도 어려워지고 조합도 복잡해져. 그래서 순차적으로 배워야 하지. 이 때 흰 띠를 맨 초보자는 기본 앞굽이 자세나 앞차기, 돌려차기, 앞지르기 같은 기본 동작을 배워. 그 이후에 노란 띠를 매면서부터 태극 1장부터 3장까지 배우고, 세 개 품세를 완벽하게 마스터하면 파란 띠로 넘어가게 돼. 역시 4장부터 7장까지 익힌 뒤에는 빨간 띠가 되고, 가장 어려운 8장을 마스터하면 검은 띠, 즉 1단에 도전하게 될 기회를 얻게 돼. 그런데 이 과정이 거의 1년 정도 걸린단 말이지. 그 동안 실력이 차근차근 늘어간다고 해도 아이나 부모님 입장에선 뭔가 가시적으로 확 드러나는 게 영 없거든. 그렇기 때문에 그 사이에 다른 색 띠를 넣는 거야. 노란 띠와 파란 띠 사이에 초록 띠를, 파란 띠와 빨간 띠 사이에 갈색, 주황 띠 등을. 그래서 태극 2장을 익히면 초록 띠, 3장을 익히면 파란 띠, 5장까지 익히면 갈색 띠, 6장을 익히면 주황 띠, 이런 식으로 ‘눈에 보이는’ 승급을 시켜주는 거지. 물론 공식적인 띠 색깔 외엔 도장마다 다 좀 다르지만 그 개수는 거의 비슷해. 어쨌든 이런 방법이 등장하는 건 말 그대로 아이들의 학습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부모님이 만날 같은 색 띠라고 실망해서 그만두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해.
그런데 같이 들어온 아이들이라도 그 승급이라는 건 차이가 나지 않아?
당연히 재능과 집중력에 따라 천차만별이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아니 ㅇㅇ이는 벌써 파란 띠인데, 왜 우리 애는 아직 초록 띠냐’고 따지는 분들도 있고. 사실 그것 때문에 아직 품세 외우는 게 어설픈데도 그냥 승급을 시켜주는 경우도 있어. 하지만 결국 그렇게 배우면 빨간 띠 상태에서 1단에 도전하기까지 시간이 엄청 걸릴 뿐이지. 병장이 좋다고 입대 6개월 만에 시켜주면 결국 1년 넘게 병장으로 있어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도 고집을 피우면?
거기서 부모님을 잘 설득하는 것도 관장 혹은 사범의 능력이지. 그래서 태권도를 잘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힘들다는 거야. 기본적으로는 아이마다 능력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이해시키고 그럼에도 잘 가르치고 곧 승급할 수 있게 만들겠노라 약속하는 게 정석이지만 그런 게 잘 안 통하면 결국 남는 건 1품 이야기를 꺼내는 수밖에 없지.
그건 또 뭔데?
1품이라는 건 15세 미만의 아이가 1단을 딴 걸 1품이라고 그래. 아이나 부모님이 띠 색깔 욕심을 내는 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원해서 그런 건데, 사실 국기원 같은 곳에서 승단 딴 1품 외에는 공식적인 게 아니거든. 이번 ‘남자의 자격’에서 이윤석이 아무리 과거에 빨간 띠를 매었다고 해도 1단을 따기 위해 다시 기본부터 시작해야 하잖아. 하지만 만약 1품을 땄더라면 지금 품세를 다 까먹었어도 그걸 다시 배울 필요가 없는 거지. 공인 1단이니까. 이걸 부모님이나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거야. 가령 아이들에게 ‘너희들, 주황 띠까지 올라갔다가 도장 그만두고 나이 먹으면 무슨 띠야. 도로 흰 띠지? 그런데 1품을 따고 그대로 나이 먹으면 품띠는 뭐가 될까? 뭐긴 뭐야, 1단이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그러니 참고 1품 딸 때까진 같이 가자는 거지. 그런데 조금 슬프다. 나름 교육인 건데 그렇게 부모님 눈치를 봐야한다니.
눈치라기보다는 학부모와 발맞춰 가는 교육 방침 정도로 이야기하자. 사실 그걸 무시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것도 좀 위험한 발상이잖아. 아마 ‘남자의 자격’에 나온 그 관장님도 그 부분을 많이 고민했을 거야. 그러니까 도장 인사법이 ‘관장님, 저는 효자입니다’지.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야. 어쨌든 부모님들은 도장에 다니면서 인성적인 변화 역시 기대할 텐데, 이것 역시 단기간 내에 되는 건 아니거든. 대신 이런 식의 구호를 아이들 입에 배게 하면 효도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막연하게나마 인지하게 되는 거지. 물론 아버지가 ‘우리 아들 오늘 뭐 배웠어?’라고 할 때 우리 인사는 이러이러하다, 라고 설명해주는 장면을 안 노리진 않았겠지만.
정말 얘기 듣고 보니 우리 박상균 관장님도 도장 운영이 쉽지만은 않으시겠다. 제자가 되어서 직접 마음의 위로를 해드리고 싶어.
야, 너 같은 애들 가면 굳이 또 성인부 한 타임 더 만들어야 해서 관장님만 고달프셔. 다른 방법으로 도움을 드려야지.
무슨 방법?
가령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등록하러 간다거나…
야, 학부모가 되려면 결혼을 해야지.
내 말이.
글. 위근우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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