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고수는 상위권을 형성할만한 인터뷰이다. 답변이 성의 없다거나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기자의 질문을 입으로 직접 되뇌며 대답을 고민했고, 예의도 깍듯했다. 다만 그는 ‘왜’라는 질문을 종종 원천봉쇄했다. 전치 3주의 부상을 입고서도 다 낫기 전에 촬영장에 향하는 이유에 대해, 소박한 생활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보다는 침묵과 함께 ‘원래 그런 거 아니에요?’라는 눈빛을 보여주는 그에게서 집요한 질문 공세로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왜’를 제거한 인터뷰의 최종 결과물에는 오직 ‘어떻게’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어떻게 작품에 임하고, 어떻게 인물을 만들어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것은 어쩌면 말 대신 행동과 결과물로 보여주는 이 남자의 삶의 방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아침부터 인터뷰인데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
고수 : 아니다, 문제없다.
이번 에서 몸을 굉장히 많이 쓴 것 같은데.
고수 : (강)동원이 같은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많았던 것 같다.
“남한테 피해주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다” 심지어 영화 안에서는 초인(강동원)이 조종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싸워야 하지 않았나.
고수 : 그런데 힘들게 해야 뭘 한 거 같더라. 하하하. 땀을 흘리고 뛰어다니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규남이라는 캐릭터가 쉽게 케이오 당하는 친구가 아니라 회복이 되게 빨랐다. 여기 (눈가 상처를 보여주며) 다친 것도 병원에서 3주 정도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굉장히 깊게 찢어져서 뼈까지 보일 정도로 파였었다. 처음에는 완전 시뻘겋게 멍이 들었다가 다음날에는 시퍼랬다가 그 다음부터 밑으로 멍이 내려오면서 천천히 빠졌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바로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일주일 만에 나은 건 아닐 텐데.
고수 : 나은 건 아니지만 찍었다. 다칠 때 찍었던 장면을.
그래야만 하는 일정이었나.
고수 : 세트 스케줄이고 빨리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지. 그래야 제작사를 비롯해 모든 입장에서 좋지 않나.
하지만 본인 몸도 소중하지 않나.
고수 : 소중하지. 하하. 소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하는 거니까. 물론 다들 이해해주지만 나 혼자만 조금만 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여럿이 편해질 수 있는 상황이니까. 내가 감수하는 게 맞는 거 아닐까 생각한다. 남한테 피해주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다.
말이 쉽지 누구나 그런 건 아니다. 그래서 고수라는 배우와 당신이 연기한 올곧은 캐릭터들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이번 영화의 규남 역시 옳은 일을 위해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진 상대에게 달려들지 않나.
고수 : 규남은 정의나, 그런 단어는 모를 거다. 워낙 그런 배움과는 거리가 먼, 무식할 정도의 친구니까. 단순히 자기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이 당하니까 거기에 분노한 것뿐이지.
그런 면모가 마음에 드나.
고수 : 마음에 들지. 이 친구는 뭘 바꾸고자 하는, 이기고자 하는, 취하고자 하는 친구가 아니다.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처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친구다. 햇볕을 쬐면 햇볕에 감사해하고, 한겨울에 날씨가 추우면 따뜻함을 찾아 갈 수 있다는 희망에 감사해하는 친구니까.
그런 소박함을 좋아하나.
고수 : 나? 그렇지. 다들 좋아하지 않나?
그런데 연예계라는 곳에서는 더 높이 올라가고 싶다는 야망이 결코 단점이 아닐 수 있다.
고수 : 그냥 자연스럽게 하는 것 같다. 내가 나를 봤을 때 뭐 큰 걸 얻으려하기보다는 자연스레 지금 하고 싶은 거 하고, 있는 그대로 사는 거 같다. 인위적으로 뭘 하려고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세상 돌아가는 대로. 하하. 막 일부러 저걸 구해야지 하진 않는다. 저게 가지고 싶으면 ‘아, 갖고 싶다’ 이러면서도 지금 당장보다는 언젠가 갖겠지 한다.
“연기 욕심보단 지금 내가 할 캐릭터가 더 중요하다” 규남도 그렇고 그런 소박함은 무엇을 얻기보다는 지키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혹 본인도 이건 잃고 싶지 않다는 게 있나.
고수 : 음… 건강? 아픈 건 싫으니까. 병 걸려서 아픈 거나 손 베어서 아픈 거는 다 같지 않나. 물론 큰 병에 걸려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이래저래 아픈 건 있지 않나. 아픈 건 안 좋은 거 같다.
그렇게 아픈 거 싫어하는 사람이 몸도 안 아끼고 촬영을 하나.
고수 : 그 때는 잘 못 느끼지. 아무래도 일을 할 때는 나와는 별개라는 생각을 하며 역할에 몰입하니까. 내가 아픈 게 아니라 역할이 아프다고.
그게 분리가 되나.
고수 :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내 정신을.
그런 식의 연기관을 가지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고수 : 따로 뭐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고,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방향인 거 같다. 작품을 할 때 캐릭터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지 않나.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자기 전까지 캐릭터 생각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가까워지고 그에 맞춰 생각하다보면 자기 생활과는 멀어지게 되는 거 같다. 한 번에 변신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서서히 변해 결국 캐릭터와 일치하는 거 같나.
고수 : 노력을 하는 편이지, 백퍼센트 그가 될 수는 없는 거 같다. 항상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끊임없이 갈망하지만 백퍼센트는 힘든 거 같다.
그래서 혹 본인과 닮은 캐릭터를 택하기도 하나.
고수 : 닮은 캐릭터를 찾는다기보다는 하다보면 캐릭터와 고수가 비슷해진다고 하는 게 맞겠다. 아무래도 기본적인 재료가 같으니까. 외모나 말투, 톤처럼 표현하는 재료가 비슷하니 완전히 다를 수는 없겠지.
그런 일관된 면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당신이 비열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고수 : 비열함이나 순수함이나 다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비열한 상황이라면 특별히 비열한 표정을 보이지 않아도 그래 보이지 않을까.
그런데 아직 당신에게서 그런 연기를 보진 못했다. 혹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은 있나.
고수 : 연기자로서의 욕심은 있지. 있지만 별로 크게 생각하진 않는다. 내 안에 그런 걸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면 작품 안에서 말도 안 되게 그런 표현이 나올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현재 들고 있는 시나리오가 중요하지 않나. 자연스럽게 그런 역할이나 상황이 들어왔을 때, 그 때 하면 되는 거다. 지금은 ‘이게’ 중요하다.
결국 다른 창작자의 문제인데 당신을 그런 역할로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나.
고수 : 있지. 가끔 작가님들이나 감독님들이 그런 말씀 한다. 나 같은 사람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참 좋겠다 싶어서 어떻게 하면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 그럴 거 같은 사람이 그런 것보다 안 그럴 거 같은 사람이 그러는 게 임팩트 있으니까.
글. 위근우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