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마침내 로 그는 데뷔 12년 만에 첫 주연작을 가졌다. 못생긴 외모 탓에 취직이 안 돼 부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로 위장 취업한 방가에게선 도무지 김인권 외에 다른 이를 떠올릴 수 없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이건 하늘이 내려 주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연기력 때문이 아니라 얼굴 때문에 캐스팅 됐을 걸요? (웃음) 그동안 외모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를 하면서 이런 얼굴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죠. 전에 했던 작품들이 다 권상우, 송승헌, 다니엘 헤니에 다음에 하게 될 에서는 장동건, 오다기리 죠 같은 미남들과 나오니까 제가 설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웃음)”
그러나 그린 듯이 아름다운 남자들이 줄 수 없는 위안으로 이제는 어떠한 수식어 없이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게 된 김인권은 그가 아끼는 코미디 영화와 닮았다. “관객이 웃는 게 좋아요. 잘나고 멋있어서 관객을 대리만족 시키는 것보다는 보는 사람들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게 저랑 맞기도 하구요. 소외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위안이 되는 웃음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가 관객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처럼 김인권에게 웃음과 함께 큰 힘이 되었던 캐릭터 코미디 영화들을 소개한다.

1994년 | 척 러셀
“는 고등학교 땐가 대학교 때 봤는데 아직도 집에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예요. 정말 스펙터클하잖아요. 저 역시 그렇게 판타지까지 섭렵하는 캐릭터 코미디를 하고 싶은 욕심도 있구요. 물론 짐 캐리의 연기도 최고죠. 보셨어요? 정신착란을 연기하는 데 환장하고 봤어요. (웃음) 오히려 이나 같은 경우는 별 감흥 을 못 받을 정도로 캐릭터 코미디에서 빛을 발하는 배우 같아요.”
짐 캐리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영화. 평범한 은행원이 신비로운 힘을 지닌 마스크로 인해 문제적 캐릭터로 돌변하게 된다. 소심남에서 쾌남 스탠리 입키스로의 변신을 가능케 한 특수효과는 물론 CG보다 더 현란한 짐 캐리의 안면근육 연기가 돋보인다.

1983년 | 성룡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던 영화예요. 어렸을 때 아버지 장롱에는 성룡의 비디오가 쫙 꽂혀있었어요. 그 중에서 는 영화배우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제게 배우에 대한 첫인상을 심어줬어요. 성룡이 시계탑에서 떨어지는데 나중에 영화 끝나고 나오는 NG장면을 보니까 진짜로 떨어지는 거예요. 엄청 충격을 받으면서 ‘아, 영화배우란 저런 거구나’를 느꼈죠.”
매년 추석이면 맥컬린 컬킨과 함께 늘 우리를 찾아오던 성룡의 출세작. 성룡과 함께 홍금보와 원표까지 최고의 홍콩 스타들이 총출동 한다. 해적을 소탕하기 위한 성룡의 고군분투가 원맨쇼에 가깝게 그려진다.

1999년 | 주성치, 이력지
“주성치하면 이죠. 특히나 이 영화는 제 상황하고 많이 비슷했어요. 주성치도 시골에서 배우가 되고 싶어서 도시로 와서 고생하는데 저도 그 당시에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배우가 되고 싶었거든요 배우가 되고 싶은 소외받고, 아주 못 사는 사람이 굉장히 낙천적으로 행동하면서 벌어지는 코미디를 보면서 ‘와, 저거 정말 환상이다’ 했죠.”
배우를 꿈꾸는 엑스트라 사우(주성치)와 호스테스 피우(장백지)의 로맨스는 눈물과 웃음을 동반한다. 가장 로맨틱해야할 키스신에서도 코미디를 포기하지 않는 주성치에게는 ‘희극지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1994년 | 강우석
“대학교 때 수원까지 걸어서 무전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서울에 오는 길에 봤던 영화예요. 같이 본 친구는 촬영감독, 저는 영화감독이 꿈이어서 지치지 않고 봤어요. 박중훈 선배가 인질로 잡힌 마누라가 죽기를 바라면서 구하는 척을 하는데 정말 웃겼죠. 그 때 충무로에 시나리오가 나오면 진지한 건 최재성, 웃긴 건 박중훈에게 들어갔대요. (웃음) 부터 , 까지 당대 최고의 배우였는데 최근에 을 보면서도 ‘그래, 역시 박중훈이야’ 했죠.”
코미디 배우로서 박중훈의 능력치를 한껏 보여주는 영화. 사랑스러움이 특기였던 최진실이 표독스러운 ‘마누라’로, , 등으로 강한 남자였던 박중훈은 기죽어 사는 남편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2002년 | 윤제균
“윤제균-임창정 콤비가 만들어낸 명작이죠. 남자들의 판타지 같은 코미디라서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당시 한국 캐릭터 코미디 영화의 한계를 돌파했던 영화인 것 같아요. 주연부터 조연까지 다양한 캐릭터들도 재밌구요. 윤 감독님은 도 그렇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많으세요. 한 인물을 기억에 남게 하기 위해서 시나리오를 바꾸기도 하시고. 저도 그런 혜택을 받았죠. (웃음)”
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섹스 코미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성에 관한 젊은이들의 호기심과 연애관을 가볍고 코믹하게 그리지만 촌스러운 복학생이 퀸카 여대생을 사로잡은 건 결국 진심이었음을 보여준다.

한국인 태식이었을 때는 청년 백수로, 부탄인 방가가 되어서는 외국인 노동자로 소외당하는 태식은 현재 한국 사회의 온갖 병폐와 맞닥뜨린다. 그러나 시련에 부서지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방가 혹은 태식의 고군분투는 폭소를 터뜨리게 하고, 그 웃음소리는 결코 가볍지 않다. 동료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욕을 가르치고 기상천외한 부탄 노래를 부르는 김인권은 코미디의 예민함으로 관객의 웃음보를 찌르는 동시에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고, 제 목소리를 내게 된 이의 진심으로 깊이를 더하기 때문이다. 로 “하늘이 주신 기회”를 맞은 배우의 앞날은 어떻게 달라질까? 배우로서 더욱 깊어질 그를 보기 위해서라면 “늙어서 관객들에게 할 이야기가 쌓이면 다시 한 번 더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그의 감독 선언을 언제까지나 연기시키고 싶다.
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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