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 ‘아시아 영화의 창’에 소개된 은 홍콩의 외딴 리조트를 찾은 한국과 일본의 젊은 여성이 서로를 통해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독특한 작품이다. 여기서 두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상대방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누굴 누구로 정의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정말 정체성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건 이 작품 자체일지 모르겠다. 말레이시아의 신예 감독인 림 카와이가 연출을 맡고, 일본의 배우인 스기노 키키가 주연 겸 제작을, 한국의 김꽃비가 공동주연을 맡아 홍콩에서 찍은 이 영화는 과연 어느 나라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이 11일, QOOK TV 라운지에 모여 진행한 아주담담의 주제는 그래서 의미심장하게도 ‘우리는 아시아다’다. 국경의 한계를 넘어선 자리에서 ‘우리’는 어떤 영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 단초를 다음의 담담한 대화에서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주연 배우인 스기노 키키가 제작을 맡았다. 영화 제작 배경이 궁금하다.
스기노 키키 : 내가 림 카와이 감독과 만난 건 2년 전 PIFF에서였다. 그 이후로도 계속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이 사람과 작품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올해 3월, 같이 극장에서 프랑스 감독의 어떤 작품을 같이 보고나서 바캉스와 관련한 영화를 저예산으로 만들면 굉장히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게 됐다.

그걸 어떻게 구체화하려 했나.
림 카와이 : 작년에 영화제 때문에 홍콩에 갔다가 거기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 친구는 무이오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섬에 살았는데 처음 가봤지만 굉장히 재밌었고 만약 바캉스 영화를 찍는다면 이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일본으로 돌아가 키키 씨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키키 씨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 규모가 크고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이 있어서 그 전에 작은 규모로 찍어보자고 했다.

“언어가 달라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PIFF+10] 말레이시아 감독, 일본 제작자, 한국 여배우가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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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우인 김꽃비는 어떻게 캐스팅되게 되었나.
스기노 키키 : (김)꽃비 양과는 지난해 PIFF에서 만났다.
김꽃비 : 말한 것처럼 키키와는 영화제에서 만나 알게 된 친구인데 어느 날 이메일로 연락이 왔다. 지금 작업 준비하는 게 있는데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저예산 영화이니 그냥 바캉스 오는 기분으로 같이 하자고 해서 좋다며 같이 하게 됐다. 그런 기분으로 촬영하는 것도, 해외 감독과 작업한다는 것이 새로운 도전 아닌가. 여러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김꽃비의 전작 가 섭외에 영향을 미쳤나.
스기노 키키 : 당연하다. 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영화제에서 직접 만났는데 처음에는 영화의 그 배우인줄 못 알아ㅂㅗㅆ다. 이야기하다가 ‘아, 김꽃비 씨?’ 이런 식으로 알게 된 거다. 좋은 배우는 영화 안의 모습과 바깥의 모습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정말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고 같이 작업을 하고 싶었다.

의 양익준 감독도 카메오 출연을 하는데.
스기노 키키 : 남자 한 명이 필요했다. 우리가 아는 사람 중 누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딱 (양)익준 오빠가 떠오르더라.
김꽃비 : 정식으로 누군가를 캐스팅하기 어려우니까. 하하하. 친분을 빌어 쉬는 겸 도와달라고 한 거다. 양 감독님도 출연료는 아마… 하하하. 영화 보면 한 3일 쉬면서 바캉스 즐기는 기분으로 찍었겠구나 싶을 거다. 하하.

영화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 여자가 여행지에서 서로 교감하는 과정을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풀어낸다. 특히 후반부에서는 서로 상대방 국가의 말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림 카와이 : 사실 홍콩에 가기 전만 해도 김꽃비 씨를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처음에 예쁜 여자면 아무나 좋다고 했었다. 그러다 키키 씨와 미팅을 하는 과정에서 사진을 받았는데 두 사람의 분위기가 너무 닮은 거다. 외모는 닮지 않았는데 분위기로는 마치 같은 인물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같은 방 안에 같은 인물들이 있다는 설정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서로 영혼이 바뀌는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다.

영화 자체도 흥미롭지만 만드는 과정 역시 흥미로웠을 것 같다. 감독은 말레이시아인이고, 주연 배우는 일본인, 한국인 아닌가.
스기노 키키 :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 다섯 개의 언어가 현장에서 나왔다. 영어, 프랑스어, 광동어, 일본어, 한국어. 그렇게 서로 다른 언어가 오가는 현장에서 서로 말이 안 통해서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같은 성공을 기대한다”
[PIFF+10] 말레이시아 감독, 일본 제작자, 한국 여배우가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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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을 하는데 있어 언어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나.
림 카와이 : 일단 키키 씨와 이야기할 때는 일본어로 했고 김꽃비 씨와는 영어로 대화했다. 그러다 꽃비 씨가 일본어를 잘한다는 걸 알게 되어 일본어로 대화했고, 가끔 어려운 내용을 지시할 때에는 키키 씨가 번역해주었다.
김꽃비 : 감독님은 말레이시아어, 한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영어, 북경어, 이렇게 다섯 가지를 할 줄 아신다.
림 카와이 : 연출에 있어 특별히 어려움이 없는 게, 두 여배우가 너무 훌륭해서 내가 원하는 걸 다 이해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유롭게 맡기면서 촬영했다.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하. 원래 림 카와이 감독의 현장은 언제나 그렇게 평화롭나?
림 카와이 : 사실 현장이 그렇게 릴렉스한 분위기로 진행되진 않았다. 보통 영화 촬영을 하면 사전 준비 기간이 한 달 정도 되는데, 이번에는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감독이나 예술감독 없이 나 혼자 소품 같은 것들을 다 챙겨야 했다. 두 배우는 내막을 잘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하하하.
김꽃비 : 감독님이 굉장히 힘들어했다는 걸 안다. 내게는 워낙 잘해주시니까 힘들 건 없는데 감독님은 혼자 모든 걸 짊어졌다. 성격이 정말 좋은 분인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두 번인가 세 번 정도 화를 내는 걸 봤다. 그걸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럴 때 제작자는 뭘 했나.
스기노 키키 : 내 입장에서는 감독에게 착하게 굴어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론 심하게 빨리 찍으라고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도 가슴이 아팠다.

결과물은 어떤가. 처럼 투자대비 수익을 높게 올릴 수 있을 것 같나. 하하.
스기노 키키 : 아… 그렇게 되길 기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인사 부탁한다.
림 카와이 : 다들 영화를 보러 와주시면 좋겠는데 다 매진이 됐다고 하니 어쩔 수 없겠다. 나중에 한국에서 개봉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스기노 키키 : 똑같다. 한국에서 개봉하면 좋겠고 우리를 사랑해 달라. 하하하.
김꽃비 : 나는 아직 최종본을 못 봤고 내일 볼 거다. 어떻게 나왔을지 기대가 된다. 비록 예매가 매진됐어도 현장 구매가 가능하니 문을 두드려보길 바란다. 내일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 보고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PIFF+10] 말레이시아 감독, 일본 제작자, 한국 여배우가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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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PIFF

글. 부산=위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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