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확실히 파헤쳐서 물어보는 편이예요. 100% 알아야지 안다고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스타덤이라는 별로 가는 로켓이 있을지언정, 배우가 되는 지름길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느리지만 게으르지 않은 배우 김태희. 그런 그녀가 고른 영화들이 꿈에 관한 영화라는 것, 대신 꿈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방법에 대한 영화라는 사실을 주목해서 볼 만하다. 숟가락으로 판 구멍으로 지옥을 빠져나오는 꿈같은 탈출기와 동화 같은 사랑을 꿈이 아니라 현실로 만드는 성실한 러브 스토리, 꿈을 이루기 위해 처절하게 노래하고 춤추는 소녀들이 등장하는 영화에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그녀의 행보를 지켜볼 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1993년 | 클린트 이스트우드
“저는 어렸을 때 너무 좋은 것도 너무 슬플 것도 없는 아이였어요. 감정기복이 심한 것도 아니고. 사실 < E.T. >같은 영화는 대부분 친구들이 다들 울면서 보는데 저는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나더라고요. <퍼펙트월드>는 집에서 가족들이랑 비디오 빌려서 봤던 것 같아요. 오래전 영화라 정확한 대사나 장면이 기억이 나는 건 아닌데 클라이맥스에서 펑펑 울면서 봤어요. 그러니까 저를 울게 만들었던 최초의 영화였던 거죠. (웃음)”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남들에게 다 주어지는 그 평범한 일상조차 주어지지 않은 소년. 그 소년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한 탈옥수. 하지만 이런 위험하고 불안하지만 가슴 설레는 만남은 주변의 선입견 속에 계속 위협을 받는다. 이들이 꿈꾸었던 ‘완벽한 세상’은 그렇게 특별 할 것 없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이들을 쫓는 형사 레드 역으로 출연했다.
1994년 | 프랭크 다라본트
“배우라는 직업인으로서는 장르를 가리면 안 되겠지만, 순수한 관객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는 대부분 휴먼감동스토리예요. 삶이나 사랑에 대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좋아하고요. <쇼생크 탈출>은 지금 봐도 전혀 옛날 영화 같다는 생각이 안 드는 영화예요. 탄탄한 스토리에다 배우들의 연기도 하나같이 너무 좋거든요.”
모두들 불가능이라 말하는 일에 도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신 그 불가능에 도전해 가능으로 이끄는 사람에게는 꿈이란 귀한 선물이 비처럼 내린다.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과 도덕적인 오욕을 씻기 위해 교도소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앤디(팀 로빈슨)는 숟가락 크기 같던 작은 희망을 결국 장대비 같은 희열로 바꾸는데 성공한다.
2006년 | 빌 콘돈
“<그랑프리> 때문에 제주도에 있을 때였어요. 갑자기 비가 와서 촬영을 못하고 숙소에서 TV를 켰는데 <드림걸즈>가 하고 있더라구요. 개봉 했을 땐 못 본 영화였는데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볼거리, 들을 거리가 너무 풍부한 영화였어요. 그런 영화 출연하고 싶은 욕심도 당연히 있죠. 뮤지컬 무대에 설만큼 엄청난 성량은 없겠지만 영화라면 노력한다면 감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의 제니퍼 허드슨의 피나는 노력을 겸비한 열정과 디바 비욘세의 태생적 우성인자를 겸비한 열정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가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신 그 두 명의 여인을 한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면 그 영화는 관객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패키지일 것이다. 시골출신 여성트리오의 성공 이후 질투와 욕망사이 엇갈린 각자의 행보를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외양을 통해 화려하게 그려낸 뮤지컬영화의 수작.
1999년 | 로저 미첼
“아무래도 여배우들에게 <노팅 힐>은 특별 할 수밖에 없는 영화잖아요.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저 역시 줄리아 로버츠처럼 용감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해요. 사랑에 빠져서 눈이 먼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사랑할 때면 눈이 멀었거든요. 올인 한다고나 할까. (웃음) <아이리스> 최승희와 가장 비슷한 점도 그건 거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무모하리만큼 용감한 행동을 하는 거요.”
여배우가 평범한 서점 주인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휴 그랜트 같은 남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영화의 O.S.T.를 통해 국민팝송이 되어버린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쓸쓸히 걸어가는 윌리엄(휴 그랜트) 뒤로 자연스럽게 바뀌던 사계절의 풍광을 담아낸 신이야 말로 이 영화의 백미.
2001년 | 샤론 맥과이어
“로맨틱코미디를 정말 좋아해요. 저는 사람들이 유치하다고 하는 것도 되게 재밌게 보거든요. <아이리스>의 최승희 대사에도 있지만 유치한 거 좋아하고, 소녀적인 감성에 낭만적인 상상 같은 거 많이 해요. 현실감각 없이 백마 탄 왕자를 꿈꾸기도 하고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브리짓 처럼요.”
아무도 필요 없었던 날들은 갔다. 재미로 사랑을 나누었던 젊은 날도 갔다. 셀린 디온의 ‘All by Myself’를 포효하듯 부르던 르네 젤위거의 망가진 모습만으로 주인공에 대한 모든 설명이 가능한 영화가 바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다. 매일 늘어나는 몸무게와 꼬이는 연애사, 도통 즐겁지 않은 직장 생활에 치이면서도 브리짓은 여전히 희망이라는 끈을 일기 속에 조용히 숨겨 놓는다.
“10월에 촬영이 들어갈 예정인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의 역할은 말도 많고 재치도 있고 발랄하고 천방지축이거든요. 대본만 봤을 때는 나의 이미지 내 성격과 동떨어져 있어서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열심히 해보려구요! (웃음) 그런데 이게 변신을 위한 변신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저한테도 어느 정도 그런 성격이 있긴 하니까 그걸 최대치로 끌어올려 보겠다는 생각이이거든요.” 앞만 보고 달리던 예쁜 말이 이제 주변의 풍광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승부를 가리는 흥미진진한 시합이 아니라 두고두고 보고 싶은 풍경화가 될 예감이 든다. 서른, 경주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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