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7년 | 버스터 키튼, 클라이드 브러크먼
“최근 무성영화들을 굉장히 흥미롭게 다시 보고 있어요. 뭐랄까? 영화의 순정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특히 은 너무 너무 신나요. 흥분될 정도야. 열차 안에서 성룡도 못 따라 할 액션을 하는 버스터 키튼을 보고 있으면 현재 사람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제한적인가를 느끼게 해줄 정도죠. 요즘 영화는 ‘가상현실’에 너무 마음을 많이 빼앗기고 있는 게 아닐까요. 영화의 힘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힘으로 진화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영화 에는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중에 누가 더 위대하냐”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무성영화 시대의 거장으로서 그 둘의 위대함을 저울질 하는 건 여전히 무모한 시도다. 하지만 채플린에게 얼굴의 드라마가 있었다면, 키튼에게는 몸의 드라마가 있었다. 그 중 은 아크로바틱으로 웅변하는 무표정의 소영웅, 버스터 키튼의 재기가 가장 돋보였던 작품. 2010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시네마콘서트’의 일환으로 을 라디오멘탈의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짜릿한 기회를 마련했다.

2007년 | 토머스 맥카시
“몸이고 마음이고, 늙음 그 자체가 서글픈 게 아니고, 늙은 몸을 늙은 마음이, 혹은 늙은 마음이 늙은 몸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어려운 일 같아요. 그걸 얼만큼 감당 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하물며 죽음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의 노화도 못 견디는 사람도 있는 거죠. 우연히 찾아든 이방인들, 난생 처음 눈뜬 음악이라는 즐거움이 의 주인공에게도 결국 그 무료한 삶을 바꾸게 만들었던, 감당하게 해준 힘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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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 알프레드 히치콕
“히치콕 영화중에는 도 좋지만 는 정말 떨리는 영화예요. 요즘은 영화의 순위가 오로지 관객 동원으로 평가가 되는데, 그것보다는 얼마나 영화에 헌신했는가, 하는 것이 새로운 기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일회용 티슈처럼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영화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히치콕의 영화를 봐요, 세월이 가도 언제나 아니 세월이 갈수록 좋은 영화잖아요.”
“아름다운 것 보다 더 중요한 걸 당신은 가지고 있소. 따뜻함, 겸손함, 배려하는 마음. 상냥함. 같은 것…”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질투와 콤플렉스로 괴로워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여자에게 진실은 중요치 않다. 누가 남자의 전 부인을 죽였는가. 그 사실 역시 일종의 맥거핀일 뿐이다. 알프레도 히치콕의 대표적인 심리 스릴러 는 잔잔한 가운데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과 사실 사이에 걸친 팽팽한 줄을 놓치지 않는다.

2009년 | 스콧 쿠퍼
“얼마 전 라는 책을 보면 사람이 얼마나 언어적인 동물인가, 언어란 것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느꼈어요. 하물며 음악은 어때요.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티스트가 음악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음악 스스로 찾아와 주는 그런 만남을 기대하고 있어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이래도 안볼 꺼야? 하는 영화들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요. 물론 는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영화였고요.”
왕년에는 잘 나가던 컨트리 가수였지만 지금은 술병에 의지해 살아가는 구제불능의 중늙은이 배드 블레이크(제프 브리지스). 그 앞에 구원과도 같이 나타난 젊은 여자 진 크래독(매기 질렌홀). 한 때 음악 위에 군림하던 남자 곁에 이제 음악은 조용히 찾아와 빈 어깨를 내민다. 제프 브리지스와 매기 질렌홀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의 ‘미친 심장’을 장착한 토머스 콥의 동명 소설은 이보다 더 좋은 수 없는 호흡을 내뱉는다.

2006년 | 존 카니
“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봤어요. 좋죠. 좋아. 행복하게 해주는 영화잖아요. 관객의 입장에서 저는 영화의 힘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의 힘이 있듯이. 일부러 힘주어 만든 영화가 아닌데도 그런 영화의 힘이, 음악의 힘이 함께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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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원우
글. 백은하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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