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음악이 견우와 직녀라면, 우리는 김창완만큼 완벽한 오작교를 찾아낼 순 없을 것이다. 제 6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트레일러가 김창완을 선택한 건 그렇게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저는 음악의 힘을 믿는 아티스트가 좋아요, 음악 앞에서 교만하지 않은 사람, 기꺼이 음악의 노예가 되겠다는 사람. 음악의 제왕이 되겠다는 사람은 싫어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허진호 감독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영화 스스로 진화하고 발전하길 바라는 깊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일 거예요.”
올해 초 출연한 연극 으로 맺어진 허진호 감독과의 인연은 트레일러 출연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여름 한 나절 촬영 끝에 호젓한 시 한 편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의 조니 뎁 같으면 좋겠네! 생각하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분장을 했어요. 머리도 폭탄 맞은 것처럼 하고 귓바퀴에 음표도 그려 넣고 아! 타투는 제가 직접 그렸죠.(웃음)” 일주일의 축제동안 수없이 반복된 이 1분 4초짜리 트레일러에서 김창완은 물고기가 아니라 음표를 낚는 데 더 열중인 엉뚱한 강태공, 혹은 즐거운 로커로 등장한다. 그래서 감히 부탁해 보았다. 음악 대신 영화를 낚아 달라고. 그런데 결국 낚시 끝에 잡혀 올라온 것은, 한 번도 날 것이지 않은 적이 없었던 펄떡이는 그의 삶이었다. 1. (The General)
1927년 | 버스터 키튼, 클라이드 브러크먼
“최근 무성영화들을 굉장히 흥미롭게 다시 보고 있어요. 뭐랄까? 영화의 순정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특히 은 너무 너무 신나요. 흥분될 정도야. 열차 안에서 성룡도 못 따라 할 액션을 하는 버스터 키튼을 보고 있으면 현재 사람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제한적인가를 느끼게 해줄 정도죠. 요즘 영화는 ‘가상현실’에 너무 마음을 많이 빼앗기고 있는 게 아닐까요. 영화의 힘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힘으로 진화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영화 에는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중에 누가 더 위대하냐”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무성영화 시대의 거장으로서 그 둘의 위대함을 저울질 하는 건 여전히 무모한 시도다. 하지만 채플린에게 얼굴의 드라마가 있었다면, 키튼에게는 몸의 드라마가 있었다. 그 중 은 아크로바틱으로 웅변하는 무표정의 소영웅, 버스터 키튼의 재기가 가장 돋보였던 작품. 2010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시네마콘서트’의 일환으로 을 라디오멘탈의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짜릿한 기회를 마련했다. 2. (The Visitor)
2007년 | 토머스 맥카시
“몸이고 마음이고, 늙음 그 자체가 서글픈 게 아니고, 늙은 몸을 늙은 마음이, 혹은 늙은 마음이 늙은 몸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어려운 일 같아요. 그걸 얼만큼 감당 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하물며 죽음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의 노화도 못 견디는 사람도 있는 거죠. 우연히 찾아든 이방인들, 난생 처음 눈뜬 음악이라는 즐거움이 의 주인공에게도 결국 그 무료한 삶을 바꾸게 만들었던, 감당하게 해준 힘이었던 거죠.”
남자는 권태롭다. 올해 나이 62세. 대머리에, 미남도 아니다. 교수라는 번듯한 직업이 있긴 하지만, 삶은 이미 운동을 정지한 채 까칠한 굳은살만 쌓여가고 있다. 그런 그가 시리아에서 온 한 남자와 세네갈에서 온 한 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아프리카 드럼, 젬베도 만난다. 배우 출신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감독 토머스 맥카시는 이처럼 ‘이방인’과 ‘음악’이 잔잔한 노인의 삶에 용해되면서 만들어내는 예상을 뛰어넘는 화학작용을 특유의 따뜻하고 위트 넘치는 시선으로 담아낸다. 3. (Rebecca)
1940년 | 알프레드 히치콕
“히치콕 영화중에는 도 좋지만 는 정말 떨리는 영화예요. 요즘은 영화의 순위가 오로지 관객 동원으로 평가가 되는데, 그것보다는 얼마나 영화에 헌신했는가, 하는 것이 새로운 기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일회용 티슈처럼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영화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히치콕의 영화를 봐요, 세월이 가도 언제나 아니 세월이 갈수록 좋은 영화잖아요.”
“아름다운 것 보다 더 중요한 걸 당신은 가지고 있소. 따뜻함, 겸손함, 배려하는 마음. 상냥함. 같은 것…”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질투와 콤플렉스로 괴로워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여자에게 진실은 중요치 않다. 누가 남자의 전 부인을 죽였는가. 그 사실 역시 일종의 맥거핀일 뿐이다. 알프레도 히치콕의 대표적인 심리 스릴러 는 잔잔한 가운데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과 사실 사이에 걸친 팽팽한 줄을 놓치지 않는다. 4. (Crazy Heart)
2009년 | 스콧 쿠퍼
“얼마 전 라는 책을 보면 사람이 얼마나 언어적인 동물인가, 언어란 것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느꼈어요. 하물며 음악은 어때요.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티스트가 음악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음악 스스로 찾아와 주는 그런 만남을 기대하고 있어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이래도 안볼 꺼야? 하는 영화들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요. 물론 는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영화였고요.”
왕년에는 잘 나가던 컨트리 가수였지만 지금은 술병에 의지해 살아가는 구제불능의 중늙은이 배드 블레이크(제프 브리지스). 그 앞에 구원과도 같이 나타난 젊은 여자 진 크래독(매기 질렌홀). 한 때 음악 위에 군림하던 남자 곁에 이제 음악은 조용히 찾아와 빈 어깨를 내민다. 제프 브리지스와 매기 질렌홀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의 ‘미친 심장’을 장착한 토머스 콥의 동명 소설은 이보다 더 좋은 수 없는 호흡을 내뱉는다. 5. (Once)
2006년 | 존 카니
“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봤어요. 좋죠. 좋아. 행복하게 해주는 영화잖아요. 관객의 입장에서 저는 영화의 힘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의 힘이 있듯이. 일부러 힘주어 만든 영화가 아닌데도 그런 영화의 힘이, 음악의 힘이 함께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Falling slowly…’ 노래 말 그대로 전 세계가 천천히 빠져 들었다. 더블린 거리의 외로운 뮤지션 남자와 체코 이민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여자의 짧게 스쳐지나간 그러나 영속될 교감의 순간을 담은 영화. 아일랜드에서 날아온 이 나지막한 목소리는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관객들을 불러 모았고 인디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국내 2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시켰다. “손 좀 줘 봐요.” 영화와 음악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가 덥석, 앞에 앉은 인터뷰어의 손을 부여잡는다. “따뜻하죠? 마음과 마음이 교류하는 건 그렇게 복잡한 테크놀로지가 필요한건 아니에요. 물론 테크놀로지의 발전 역시 정말 가슴 떨리는 일이죠. 하지만 그것이 결코 마주 손을 잡고, 마주 바라보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나누는 것을 따라오진 못해요.” 그의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그 마음에 주단을 깔고 전해진 온기가 이내 심장까지 덥히는 순간이었다. 음악의 힘이다. 영화의 힘이다. 아니 김창완의 힘이다.
사진. 이원우
글. 백은하 one@
올해 초 출연한 연극 으로 맺어진 허진호 감독과의 인연은 트레일러 출연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여름 한 나절 촬영 끝에 호젓한 시 한 편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의 조니 뎁 같으면 좋겠네! 생각하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분장을 했어요. 머리도 폭탄 맞은 것처럼 하고 귓바퀴에 음표도 그려 넣고 아! 타투는 제가 직접 그렸죠.(웃음)” 일주일의 축제동안 수없이 반복된 이 1분 4초짜리 트레일러에서 김창완은 물고기가 아니라 음표를 낚는 데 더 열중인 엉뚱한 강태공, 혹은 즐거운 로커로 등장한다. 그래서 감히 부탁해 보았다. 음악 대신 영화를 낚아 달라고. 그런데 결국 낚시 끝에 잡혀 올라온 것은, 한 번도 날 것이지 않은 적이 없었던 펄떡이는 그의 삶이었다. 1. (The General)
1927년 | 버스터 키튼, 클라이드 브러크먼
“최근 무성영화들을 굉장히 흥미롭게 다시 보고 있어요. 뭐랄까? 영화의 순정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특히 은 너무 너무 신나요. 흥분될 정도야. 열차 안에서 성룡도 못 따라 할 액션을 하는 버스터 키튼을 보고 있으면 현재 사람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제한적인가를 느끼게 해줄 정도죠. 요즘 영화는 ‘가상현실’에 너무 마음을 많이 빼앗기고 있는 게 아닐까요. 영화의 힘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힘으로 진화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영화 에는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중에 누가 더 위대하냐”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무성영화 시대의 거장으로서 그 둘의 위대함을 저울질 하는 건 여전히 무모한 시도다. 하지만 채플린에게 얼굴의 드라마가 있었다면, 키튼에게는 몸의 드라마가 있었다. 그 중 은 아크로바틱으로 웅변하는 무표정의 소영웅, 버스터 키튼의 재기가 가장 돋보였던 작품. 2010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시네마콘서트’의 일환으로 을 라디오멘탈의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짜릿한 기회를 마련했다. 2. (The Visitor)
2007년 | 토머스 맥카시
“몸이고 마음이고, 늙음 그 자체가 서글픈 게 아니고, 늙은 몸을 늙은 마음이, 혹은 늙은 마음이 늙은 몸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어려운 일 같아요. 그걸 얼만큼 감당 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하물며 죽음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의 노화도 못 견디는 사람도 있는 거죠. 우연히 찾아든 이방인들, 난생 처음 눈뜬 음악이라는 즐거움이 의 주인공에게도 결국 그 무료한 삶을 바꾸게 만들었던, 감당하게 해준 힘이었던 거죠.”
남자는 권태롭다. 올해 나이 62세. 대머리에, 미남도 아니다. 교수라는 번듯한 직업이 있긴 하지만, 삶은 이미 운동을 정지한 채 까칠한 굳은살만 쌓여가고 있다. 그런 그가 시리아에서 온 한 남자와 세네갈에서 온 한 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아프리카 드럼, 젬베도 만난다. 배우 출신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감독 토머스 맥카시는 이처럼 ‘이방인’과 ‘음악’이 잔잔한 노인의 삶에 용해되면서 만들어내는 예상을 뛰어넘는 화학작용을 특유의 따뜻하고 위트 넘치는 시선으로 담아낸다. 3. (Rebecca)
1940년 | 알프레드 히치콕
“히치콕 영화중에는 도 좋지만 는 정말 떨리는 영화예요. 요즘은 영화의 순위가 오로지 관객 동원으로 평가가 되는데, 그것보다는 얼마나 영화에 헌신했는가, 하는 것이 새로운 기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일회용 티슈처럼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영화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히치콕의 영화를 봐요, 세월이 가도 언제나 아니 세월이 갈수록 좋은 영화잖아요.”
“아름다운 것 보다 더 중요한 걸 당신은 가지고 있소. 따뜻함, 겸손함, 배려하는 마음. 상냥함. 같은 것…”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질투와 콤플렉스로 괴로워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여자에게 진실은 중요치 않다. 누가 남자의 전 부인을 죽였는가. 그 사실 역시 일종의 맥거핀일 뿐이다. 알프레도 히치콕의 대표적인 심리 스릴러 는 잔잔한 가운데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과 사실 사이에 걸친 팽팽한 줄을 놓치지 않는다. 4. (Crazy Heart)
2009년 | 스콧 쿠퍼
“얼마 전 라는 책을 보면 사람이 얼마나 언어적인 동물인가, 언어란 것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느꼈어요. 하물며 음악은 어때요.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티스트가 음악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음악 스스로 찾아와 주는 그런 만남을 기대하고 있어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이래도 안볼 꺼야? 하는 영화들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요. 물론 는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영화였고요.”
왕년에는 잘 나가던 컨트리 가수였지만 지금은 술병에 의지해 살아가는 구제불능의 중늙은이 배드 블레이크(제프 브리지스). 그 앞에 구원과도 같이 나타난 젊은 여자 진 크래독(매기 질렌홀). 한 때 음악 위에 군림하던 남자 곁에 이제 음악은 조용히 찾아와 빈 어깨를 내민다. 제프 브리지스와 매기 질렌홀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의 ‘미친 심장’을 장착한 토머스 콥의 동명 소설은 이보다 더 좋은 수 없는 호흡을 내뱉는다. 5. (Once)
2006년 | 존 카니
“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봤어요. 좋죠. 좋아. 행복하게 해주는 영화잖아요. 관객의 입장에서 저는 영화의 힘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의 힘이 있듯이. 일부러 힘주어 만든 영화가 아닌데도 그런 영화의 힘이, 음악의 힘이 함께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Falling slowly…’ 노래 말 그대로 전 세계가 천천히 빠져 들었다. 더블린 거리의 외로운 뮤지션 남자와 체코 이민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여자의 짧게 스쳐지나간 그러나 영속될 교감의 순간을 담은 영화. 아일랜드에서 날아온 이 나지막한 목소리는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관객들을 불러 모았고 인디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국내 2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시켰다. “손 좀 줘 봐요.” 영화와 음악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가 덥석, 앞에 앉은 인터뷰어의 손을 부여잡는다. “따뜻하죠? 마음과 마음이 교류하는 건 그렇게 복잡한 테크놀로지가 필요한건 아니에요. 물론 테크놀로지의 발전 역시 정말 가슴 떨리는 일이죠. 하지만 그것이 결코 마주 손을 잡고, 마주 바라보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나누는 것을 따라오진 못해요.” 그의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그 마음에 주단을 깔고 전해진 온기가 이내 심장까지 덥히는 순간이었다. 음악의 힘이다. 영화의 힘이다. 아니 김창완의 힘이다.
사진. 이원우
글. 백은하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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