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받기 좋아하던 소년은 연기자를 꿈꾸며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린 듯이 잘생기거나 엄청나게 개성 있는 동기들 사이에서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연기력으로는 행인1, 2 외의 배역을 따기 힘들었고, 점점 전공에서 멀어졌다. 오히려 학과 공부보다 더 몰두했던 학생운동이 그를 영화판으로 불렀다. 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었던 영화가 새로운 판로를 뚫어 배급에 성공하자 사무실도 생기고, 장비도 하나둘 사 모으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를 할 생각이 없었던” 영화학도 김조광수는 어느새 영화제작자가 되어 있었다. 순전히 “주변의 감독들을 데뷔시키기 위해” 시작했던 일은 , , , 등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화법으로 말을 걸어오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김조광수는 제작자로 참여한 퀴어영화 의 기자간담회에서 공개적인 커밍아웃을 했다.
“를 제작하고 나서 퀴어영화를 더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커밍아웃한 감독도 거의 없고,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내가 만들어볼까? 하면서 시작했죠. (웃음)” 커밍아웃과 함께 “명랑 쾌활한 퀴어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이 된 김조광수는 의 풋풋한 소년들을 통해, 제 10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의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한 의 군인과 ‘곰신’을 통해, “다수의 편견이 아닌 우리 스스로 말하는 게이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설렘을 느끼는 소년들은 누구나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할 만큼 간절했고, 군대 간 애인을 기다리는 연인은 여느 20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부정적인 시선이었어요. 게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부정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죠. 하지만 이성애자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듯이 동성애자들도 그렇거든요. 무조건 어둡고 불행하지만은 않아요. 우리도 행복하거든! 이런 걸 말하고 싶은 거죠. (웃음)”
아직은 “연습해가는 과정”으로 단편을 만들고 있지만 언젠가는 오페레타 형식의 뮤지컬 영화를 꼭 해보고 싶을 만큼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묵직한 스트레이트보다는 여러 번 날리는 가벼운 잽으로 편견을 바꿔놓고 싶은 감독이자 제작자인 김조광수가 추천하는 영화는 당연하게도 퀴어영화들이다. 그러나 ‘퀴어’라는 이름을 지우고도 충분히 의미 있고, 마음을 울릴 다음의 영화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에게 자리 잡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편견과 대면해보자. 1. (Brokeback Mountain)
2005년 | 이안
“이안 감독의 영화는 빼고 다 좋아해요. (웃음) 이성애자 감독이 이성애자 배우를 데리고 동성애자의 사랑을 그렇게 다룰 수 있다니 너무 놀라웠죠. 와, 어떻게 저렇게 인물들의 심리를 잘 묘사했을까 감탄하는 와중에 질투가 나기도 하고. 여자들의 캐릭터도 참 좋아요. 보통의 퀴어영화에서는 여성들이 보조적이거나 기능적으로 쓰이는데 여기선 여자들이 게이인 남편 때문에 겪는 아픔이 절절하게 그려졌잖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퀴어영화예요.”
깊은 산 속, 주변을 둘러싼 것은 수많은 양떼와 끝없는 침묵뿐이다. 그리고 곁에는 단 한 사람만이 있다. 한 여름의 방목장에 남겨진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이 동시에 사랑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먼저, 누가 얼마만큼 더 사랑했는지 중요하지 않을 만큼 둘은 오랫동안 서로를 그리워한다. 20년 동안이나. 남자와 남자의 사랑을 넘어 보는 이를 사랑 그 자체에 침잠시키는 영화.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극찬을 받았다. 2. (Happy Together)
1997년 | 왕가위
“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장국영이죠. 이 장국영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담았다면 는 장국영 내면에 있을 것만 같은 아름답지만 이기적인 모습을 잘 뽑아낸 거 같아요. 실제로 그런 사람으로 생각될 만큼요. 왕가위 감독도 이성애자 감독인데 그렇게 잘 찍어낼 수 있었다는 게 대단해요. 첫 장면에서부터 확 충격을 주면서 그 다음에 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인물들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한 연출도 좋았구요. 지금도 집에서 가끔 DVD로 볼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 등 도시에서 외롭게 사랑하는 젊은 연인들을 위로했던 왕가위 감독의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매번 “다시 시작하자”는 말과 함께 돌아오는 아휘(장국영), 그리고 매번 그 말에 속고 상처받는 보영(양조위). 보영은 아휘를 위해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날아가지만 그곳에서 다시 아휘에게 버림받는다.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연인이 보여주는 사랑의 잔인함은 오래도록 쓰라리다. 3. (Eternal Summer)
2006년 | 레스티 첸
“친구인 두 남학생과 한 동네에 사는 소녀. 한 친구가 남자애를 좋아하고 그 애는 소녀를 좋아하고, 남겨진 남자는 혼자 가슴앓이를 하는 전형적인 구조인데 좀 달라요.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풋사랑이 풋풋함에만 머무를 수도 있는데,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자 매력은 거기서 좀 더 깊게 들어간다는 거예요. 순정만화로 시작해서 이른바 야오이물을 즐기는 관객들이 좋아할 만큼만 갈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죠.”
캉정신(장예가)과 위샤우헝(장효전), 후이지아(양기)가 그리는 삼각관계의 화살표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아니 누구를 향하고 있지 않은지 알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위샤우헝을 사랑하는 캉정신과 그런 그를 좋아하는 후이지아. 그리고 후이지아를 마음에 담은 위샤우헝. 세 사람의 복잡한 감정은 쉽사리 정리되지 않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맴돈다. 그리고 영원한 것만 같았던 여름도 차츰 식어가면서 아이들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걸 깨닫는다. 4. (Heavenly Creatures)
1994년 | 피터 잭슨
“으로 유명한 피터 잭슨 감독의 초창기 작품이죠. 산적처럼 생긴 남자가 어쩜 그렇게 소녀들의 감수성을 섬세하게 묘사했는지! 사실 끔찍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얘기잖아요. 그런데도 어느 순간까지는 너무 예쁘게 그리다가 마지막에 확 몰아쳐서 파국을 맞게 되는 게 참 충격적이었어요. 중간에 등장하는 판타지도 지금 보면, 아 이 사람이 이래서 을 찍을 수 있었구나 싶죠. (웃음)”
때로 사춘기는 그 무엇보다 위험한 동기가 된다. 15세의 소녀 폴린(멜라니 린스키)과 줄리엣(케이트 윈슬렛)은 깊이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둘의 유대는 시간이 더해질수록 광기와 집착에 사로잡힌다.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은 소녀들의 왕국이 되어 현실로부터 도망친다. 그리고 둘은 유일한 도피처를 지키기 위해 “인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한다. 그 대상이 엄마라는 사실도 폴린과 줄리엣을 막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1954년 뉴질랜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이전에 피터 잭슨만의 판타지가 이미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영화는 51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5. (Mysterious Skin)
2004년 | 그렉 아라키
“원래 퀴어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90년대 초반에 퀴어영화가 운동적 차원에서 쏟아진 이유도 있었고, 주류와는 동 떨어져서 예술성을 추구하다보니까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영화를 제작하면서 언젠가는 퀴어영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으로 찾아보게 되었죠. 그런데 은 너무 좋았어요. 슬픈 과거가 숨겨진 이야긴데, 그 과거를 특별한 방식으로 드러내는데다가 끝까지 영화의 감수성을 균질하게 이어가는 점이 좋았어요.”
두 소년은 한 날 한 시 공유한 기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각자 다른 보호막을 작동시켰다. 브라이언(브래디 코벳)은 기억을 지웠고, 닐(조셉 고든 레빗)은 기억을 새로 썼다. 마침내 둘이 다시 만나 그 날의 일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보듬기까지 영화는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으로 흐른다. 비극적인 이야기와는 대조적으로 주연을 맡은 조셉 고든 레빗의 아름다움이 가장 빛났던 작품. “시나리오 작업 중인 장편은 30대의 결혼이나 가족제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거니까 마냥 발랄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의 압박을 위장결혼으로 돌파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는 걸 느끼죠. 이성애자 관객들과의 공감대도 끌어내고 싶어요. 동성애를 떠나서 한국의 결혼제도가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다루다보면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제작자로서 매번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영화를 만들어왔던 김조광수는 감독으로서 최근 작업을 마친 까지 세 편의 단편과 준비 중인 장편 에 이르기까지 줄곧 퀴어영화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예술적인 제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만의 강점이자 힘”이라고 말한다.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면 퀴어영화를 꾸준히 만드는 거란 답이 나오거든요. 실제로 단편을 2편밖에 만들지 않았는데 이른바 절 좋아하는 팬이 있다는 것도 제가 퀴어영화를 하지 않았으면 그럴 수 있었을까요?” 오랜 세월 아파하고 끌어안았던 고민을 엄청난 긍정의 에너지로 변환한 그라면 더 이상 마냥 발랄하지만 않은 이 땅의 청춘들로 다시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을까?
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를 제작하고 나서 퀴어영화를 더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커밍아웃한 감독도 거의 없고,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내가 만들어볼까? 하면서 시작했죠. (웃음)” 커밍아웃과 함께 “명랑 쾌활한 퀴어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이 된 김조광수는 의 풋풋한 소년들을 통해, 제 10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의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한 의 군인과 ‘곰신’을 통해, “다수의 편견이 아닌 우리 스스로 말하는 게이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설렘을 느끼는 소년들은 누구나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할 만큼 간절했고, 군대 간 애인을 기다리는 연인은 여느 20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부정적인 시선이었어요. 게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부정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죠. 하지만 이성애자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듯이 동성애자들도 그렇거든요. 무조건 어둡고 불행하지만은 않아요. 우리도 행복하거든! 이런 걸 말하고 싶은 거죠. (웃음)”
아직은 “연습해가는 과정”으로 단편을 만들고 있지만 언젠가는 오페레타 형식의 뮤지컬 영화를 꼭 해보고 싶을 만큼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묵직한 스트레이트보다는 여러 번 날리는 가벼운 잽으로 편견을 바꿔놓고 싶은 감독이자 제작자인 김조광수가 추천하는 영화는 당연하게도 퀴어영화들이다. 그러나 ‘퀴어’라는 이름을 지우고도 충분히 의미 있고, 마음을 울릴 다음의 영화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에게 자리 잡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편견과 대면해보자. 1. (Brokeback Mountain)
2005년 | 이안
“이안 감독의 영화는 빼고 다 좋아해요. (웃음) 이성애자 감독이 이성애자 배우를 데리고 동성애자의 사랑을 그렇게 다룰 수 있다니 너무 놀라웠죠. 와, 어떻게 저렇게 인물들의 심리를 잘 묘사했을까 감탄하는 와중에 질투가 나기도 하고. 여자들의 캐릭터도 참 좋아요. 보통의 퀴어영화에서는 여성들이 보조적이거나 기능적으로 쓰이는데 여기선 여자들이 게이인 남편 때문에 겪는 아픔이 절절하게 그려졌잖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퀴어영화예요.”
깊은 산 속, 주변을 둘러싼 것은 수많은 양떼와 끝없는 침묵뿐이다. 그리고 곁에는 단 한 사람만이 있다. 한 여름의 방목장에 남겨진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이 동시에 사랑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먼저, 누가 얼마만큼 더 사랑했는지 중요하지 않을 만큼 둘은 오랫동안 서로를 그리워한다. 20년 동안이나. 남자와 남자의 사랑을 넘어 보는 이를 사랑 그 자체에 침잠시키는 영화.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극찬을 받았다. 2. (Happy Together)
1997년 | 왕가위
“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장국영이죠. 이 장국영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담았다면 는 장국영 내면에 있을 것만 같은 아름답지만 이기적인 모습을 잘 뽑아낸 거 같아요. 실제로 그런 사람으로 생각될 만큼요. 왕가위 감독도 이성애자 감독인데 그렇게 잘 찍어낼 수 있었다는 게 대단해요. 첫 장면에서부터 확 충격을 주면서 그 다음에 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인물들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한 연출도 좋았구요. 지금도 집에서 가끔 DVD로 볼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 등 도시에서 외롭게 사랑하는 젊은 연인들을 위로했던 왕가위 감독의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매번 “다시 시작하자”는 말과 함께 돌아오는 아휘(장국영), 그리고 매번 그 말에 속고 상처받는 보영(양조위). 보영은 아휘를 위해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날아가지만 그곳에서 다시 아휘에게 버림받는다.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연인이 보여주는 사랑의 잔인함은 오래도록 쓰라리다. 3. (Eternal Summer)
2006년 | 레스티 첸
“친구인 두 남학생과 한 동네에 사는 소녀. 한 친구가 남자애를 좋아하고 그 애는 소녀를 좋아하고, 남겨진 남자는 혼자 가슴앓이를 하는 전형적인 구조인데 좀 달라요.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풋사랑이 풋풋함에만 머무를 수도 있는데,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자 매력은 거기서 좀 더 깊게 들어간다는 거예요. 순정만화로 시작해서 이른바 야오이물을 즐기는 관객들이 좋아할 만큼만 갈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죠.”
캉정신(장예가)과 위샤우헝(장효전), 후이지아(양기)가 그리는 삼각관계의 화살표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아니 누구를 향하고 있지 않은지 알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위샤우헝을 사랑하는 캉정신과 그런 그를 좋아하는 후이지아. 그리고 후이지아를 마음에 담은 위샤우헝. 세 사람의 복잡한 감정은 쉽사리 정리되지 않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맴돈다. 그리고 영원한 것만 같았던 여름도 차츰 식어가면서 아이들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걸 깨닫는다. 4. (Heavenly Creatures)
1994년 | 피터 잭슨
“으로 유명한 피터 잭슨 감독의 초창기 작품이죠. 산적처럼 생긴 남자가 어쩜 그렇게 소녀들의 감수성을 섬세하게 묘사했는지! 사실 끔찍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얘기잖아요. 그런데도 어느 순간까지는 너무 예쁘게 그리다가 마지막에 확 몰아쳐서 파국을 맞게 되는 게 참 충격적이었어요. 중간에 등장하는 판타지도 지금 보면, 아 이 사람이 이래서 을 찍을 수 있었구나 싶죠. (웃음)”
때로 사춘기는 그 무엇보다 위험한 동기가 된다. 15세의 소녀 폴린(멜라니 린스키)과 줄리엣(케이트 윈슬렛)은 깊이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둘의 유대는 시간이 더해질수록 광기와 집착에 사로잡힌다.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은 소녀들의 왕국이 되어 현실로부터 도망친다. 그리고 둘은 유일한 도피처를 지키기 위해 “인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한다. 그 대상이 엄마라는 사실도 폴린과 줄리엣을 막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1954년 뉴질랜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이전에 피터 잭슨만의 판타지가 이미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영화는 51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5. (Mysterious Skin)
2004년 | 그렉 아라키
“원래 퀴어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90년대 초반에 퀴어영화가 운동적 차원에서 쏟아진 이유도 있었고, 주류와는 동 떨어져서 예술성을 추구하다보니까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영화를 제작하면서 언젠가는 퀴어영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으로 찾아보게 되었죠. 그런데 은 너무 좋았어요. 슬픈 과거가 숨겨진 이야긴데, 그 과거를 특별한 방식으로 드러내는데다가 끝까지 영화의 감수성을 균질하게 이어가는 점이 좋았어요.”
두 소년은 한 날 한 시 공유한 기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각자 다른 보호막을 작동시켰다. 브라이언(브래디 코벳)은 기억을 지웠고, 닐(조셉 고든 레빗)은 기억을 새로 썼다. 마침내 둘이 다시 만나 그 날의 일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보듬기까지 영화는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으로 흐른다. 비극적인 이야기와는 대조적으로 주연을 맡은 조셉 고든 레빗의 아름다움이 가장 빛났던 작품. “시나리오 작업 중인 장편은 30대의 결혼이나 가족제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거니까 마냥 발랄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의 압박을 위장결혼으로 돌파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는 걸 느끼죠. 이성애자 관객들과의 공감대도 끌어내고 싶어요. 동성애를 떠나서 한국의 결혼제도가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다루다보면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제작자로서 매번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영화를 만들어왔던 김조광수는 감독으로서 최근 작업을 마친 까지 세 편의 단편과 준비 중인 장편 에 이르기까지 줄곧 퀴어영화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예술적인 제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만의 강점이자 힘”이라고 말한다.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면 퀴어영화를 꾸준히 만드는 거란 답이 나오거든요. 실제로 단편을 2편밖에 만들지 않았는데 이른바 절 좋아하는 팬이 있다는 것도 제가 퀴어영화를 하지 않았으면 그럴 수 있었을까요?” 오랜 세월 아파하고 끌어안았던 고민을 엄청난 긍정의 에너지로 변환한 그라면 더 이상 마냥 발랄하지만 않은 이 땅의 청춘들로 다시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을까?
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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