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할 일 없을 때 시간을 가장 잘 보낼 수 있는 방법. tvN을 틀어라. tvN에는 24시간 내내 이경규와 신동엽이 함께 MC를 보고, 정형돈이 개그를 하는 걸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결혼하거나, 말도 안 되게 매운 음식들을 태연하게 먹는 사람의 이야기는 덤이다. 재방송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면 Mnet을 틀어도 좋다. 거기서는 유세윤이 미칠 듯한 코미디를 보여주고,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오디션 리얼리티 쇼가 벌어진다. 지난 4년 전 tvN은 종합 예능 채널을 표방하고 개국했고, Mnet은 지난해 로 케이블 TV 사상 최고 시청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0년 두 채널을 비롯한 대형 미디어 그룹의 방송사들은 과거와는 또 다른 케이블 TV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며 미디어 산업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Mnet과 tvN을 중심으로 최근 하나의 장르라고 해도 좋을 케이블 TV 예능 프로그램의 현재를 짚었고, 송창의 CJ미디어 본부장과 < UV 신드롬 >의 박준수 PD에게 각각 기획자와 제작 일선에 있는 연출자의 입장에서 케이블 TV의 예능에 대해 들었다. 아직 케이블 TV로 선뜻 채널이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도 마련했다.지난 23일, Mnet 시즌 2의 첫 회가 방송됐다. 평균 시청률은 4.2% (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였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6.282%. 지난 시즌 첫 회 시청률이 2.536%, 시즌 최고 시청률이 8.47%였던 걸 감안하면 상당한 반응이다. Mnet의 한 관계자는 에 대한 기대감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내부적으로는 10%를 기대하고 있다.” 참고로, 같은 시간대에 방영한 KBS 의 시청률은 8.3%였다.
가 예외적인 경우일 수도 있다. 에는 2억의 상금이 걸리고, 지난 시즌 이미 70만 명의 응시자가 몰렸다. 공중파 기준에서도 블록버스터 예능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케이블 TV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더 이상 ‘시청률 1%’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 건 분명하다. tvN 는 지난 20일 자체 최고 시청률인 3.47%를 기록했다. 는 이경규, 김구라, 김성주가 별난 인생을 사는 일반인 출연자들을 초대한다. 처럼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지도, 과거 tvN 처럼 불륜과 패륜이 범벅된 소재를 다루지도 않는다. 20일 출연자도 ‘매운 걸 잘 먹는 여자’였다.
어떻게 ‘케이블 TV’에 어울리게 바꿀까 와 는 CJ 계열의 두 방송사가 보여주는 케이블 TV 예능 프로그램의 어떤 흐름을 대표한다. 과거 같은 선정성 논란은 없다. 필요하다면 공중파 이상의 물량을 투입할 수도 있다. 처럼 공중파에서도 ‘1인자’인 이경규나 신동엽이 함께 진행을 하기도 한다. 과거 케이블 TV 예능 프로그램은 ‘공중파처럼’ 만들거나, 공중파에서 할 수 없는 걸 했다. MBC에브리원 와 KBS 는 각각 MBC 과 KBS ‘1박 2일’의 여성 버전이다. tvN < tvNgels >와 올리브 은 공중파 TV가 도저히 제작할 수 없는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Mnet 처럼 특정 스타를 대상으로 한 리얼리티 쇼나 온 스타일과 올리브 채널에서 볼 수 있는 셀러브리티와 패션 프로그램 정도가 예외였다.
그러나 최근 tvN과 Mnet을 비롯한 케이블 TV 채널들은 공중파와 최대한 같은 수준 위에서, 공중파와 ‘다르게’ 간다. tvN 는 지난 27일 2.72%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MC는 이경규와 신동엽이다. 그들이 대형 스튜디오에서 30명의 여성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광경은 공중파 어느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는 30명의 여자가 한 명의 남자를 조목조목 품평한다. 는 별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SBS 와 같은 소재를 다룬다. 하지만 의 핵심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직접 스튜디오에 데려다 놓고 이경규, 김구라, 김성주가 대결하듯 토크를 하는데 있다. 송창의 CJ미디어 본부장이 “프로그램 제작의 관건은 포맷. 어떻게 다르게 보느냐는 것”이라고 한 건 흥미롭다. 공중파에서도 소화할 수 있는 소재라도 어떻게 tvN, 또는 ‘케이블 TV’에 어울리게 바꾸느냐가 중요해진 셈이다.
케이블 TV에서 ‘리얼’의 정의 공중파와 다른 포맷은 곧 더 ‘리얼’한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 KBS 과 tvN 은 모두 출연자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몸에 좋은 식단을 소개한다. 하지만 은 출연자의 유전자를 검사해 현재의 건강 상태,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질병을 보다 집중적으로 파헤치면서 검사 결과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출연자의 표정을 잡아낸다. 공중파에서도 는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 의 매력은 단지 규모가 아니라 친하게 지내던 출연자들이 어느 순간 서로 경쟁하는 처지가 되는 것에 있었다. Mnet의 정유진 PD는 리얼리티 쇼에 대해 “일상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사람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Mnet의 리얼리티 쇼가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출연자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나 등 과거 Mnet의 연애 리얼리티 쇼는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일반인 출연자의 모습을 통해 자극을 줬다. 하지만 일반인과 스타가 만나는 Mnet 이나 여성 출연자가 ‘좋은 남자’를 골라내는 는 일반인이 겪는 상황 자체가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또한 UV를 앞세운 < UV 신드롬 >은 Mnet에서 그동안 만들어온 스타 리얼리티 쇼의 새로운 버전이다. 소녀시대가 패션잡지 에디터가 되는 이나 등 Mnet의 스타 리얼리티 쇼는 스타를 실제 상황에 넣고 그들의 ‘리얼’한 모습을 끌어내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 UV 신드롬 >은 정 반대로 UV에게 가상의 역사를 부여한 뒤, 그들이 실제 세상과 부딪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보여준다. 리얼한 상황에 당황하는 건 UV가 아니라 오히려 시청자들이다.은 Mnet의 스타 리얼리티 쇼가 그동안 그들이 해온 것들을 스스로 놀리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케이블 예능’의 탄생과 진화 공중파의 가장 대중적인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은 남녀노소 모두가 볼 수 있는 편안함을 준다. 그래서 ‘리얼’을 앞세우면서도 기존 버라이어티 쇼 특유의 즐거움을 준다. 반면 tvN과 Mnet의 예능 프로그램은 웃기면서도 리얼한 긴장과 자극을 준다. 아직 공중파만큼의 제작비나 시청률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마음먹으면 를 만들 수는 있는 대형 미디어 그룹은 공중파와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케이블 예능’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스토리온 는 박미선과 이성미가 일반인 여성들을 초대해 집단 토크를 벌인다. 출연자들은 연예인만큼 웃길 수는 없지만 슈어홀릭이나 재산 몇 억 이상의 주부 등 보다 생생한 에피소드를 끌어낼 수 있다. QTV 는 마치 SBS 의 ‘골드미스가 간다’를 연상시키는 여성 연예인들을 출연시킨 뒤, 설문조사를 통해 보다 자극적인 토크를 끌어낸다. 모든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중파가 ‘1박 2일’을 만드는 사이, 전체 시청률보다 타깃 시청자 시청률이 더 중요한 케이블 TV는 코너마다 인터넷 UCC로 돌아다니기 딱 좋은 tvN 로 젊은 층을 공략했다. 그리고 그 타깃 시청자를 하나씩 끌어들이며 성장하다 보니 어느새 공중파와는 또 다른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시청률 10%를 노리는 는 케이블 TV 예능이 그들의 방식으로 공중파와 같은 선상에 서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과거 케이블 TV의 예능 프로그램은 ‘비 공중파’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지금 케이블 TV는 ‘탈 공중파’로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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