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데뷔한 배우들은 남들보다 일찍부터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지만, 그만큼 보편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데뷔 25년차 배우 김혜수 역시 그런 딜레마를 겪었다. 그러나 그는 “또래들이 관심을 갖는 보편적 이슈에서 멀어지는 것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큐멘터리와 시사 이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MBC 국제시사 프로그램 와 만났다. 13일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혜수의 다큐멘터리를 향한 애정과 MC로서 에 임하는 포부를 들어보았다.원래 < W > 애청자였다고 들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 W >는 어떤 프로그램이었나.
김혜수 : 초기부터 < W >를 아주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 기획의도와 실제 방송이 일치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혹은 몰랐던 국제 문제들을 가장 객관적인 시각에서 인도주의적 태도로 접근하는 것 같다. 이슈를 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는 부분이 시청자인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 W >를 통해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됐다. 확실히 < W >는 지속적으로 시청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이승준 PD : PD인 나보다 더 많이 봐서 걱정이 된다. (웃음) 혹시 내가 어떤 아이템을 가져오면 ‘그거 언제 한 거 아니냐’라고 할까봐.
“를 만난 건 인생에서 굉장히 큰 기회” 방송을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아이템, 혹은 후속취재를 하고 싶었던 소재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김혜수 : 진흙쿠키를 만들어 먹던 아이티 섬 아이들, 이스라엘 군인 앞에서 발포중지를 외친 여성 후에이다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아이티 섬 외에도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는 나라는 많지만, < W >를 통해 실제로 굶주린 아이들의 상황을 보면서 추상적인 생각이 구체적으로 바뀐 것 같다. 그 후 해외 봉사 활동을 갈 기회가 생겼는데, 그 때 관계자들한테 현지인들에게 일시적으로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들의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놀라운 건, 그게 실제로 성사됐다는 점이다. 당시 그 생각의 출발점이 바로 < W >였고, 나의 단순한 아이디어가 실현됐다는 생각에 굉장히 고무됐다. 그리고 작년에 소개된 후에이다는 굉장히 예쁘고 좋은 교육을 받은 여성인데, 막연한 싸움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걸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한 번 방송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첫 방송에서 ‘일곱 번째 세대를 위하여’ 코너를 통해 다시 소개될 예정이다.
처음 시사적인 이슈나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김혜수 : 그게 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단지 어린 나이에 배우로 데뷔해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다보니 내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많이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개인적인 걱정에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것 같다. 배우 김혜수가 내 전부는 아니니까.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나, 그런 이슈들에 대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 나는 얼마나 많이 멀어져 있나 등을 많이 생각해 왔다.
이제 애청자에서 진행자가 되었는데, 소감이 어떤가.
김혜수 :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건 본인의 신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신념이 있는 사람들을 매주 2회 이상 만날 수 있다는 건 인생에서 굉장히 큰 기회라 생각해서 MC 제안에 응하게 됐다. 사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미지를 바꿔보겠다는 대외적인 이유보다는 관심사를 꾸준히 공부하고 그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더 앞선다. 오랫동안 < W >를 사랑해 준 시청자들, 전 진행자였던 최윤영 아나운서 그리고 제작진들의 노고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최윤영 아나운서가 5년 간 < W >를 진행해왔다. 당신이 본 최윤영 아나운서의 모습은 어땠나.
김혜수 : 많은 시청자들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 W >하면 최윤영, 최윤영하면 < W >가 떠오른다. 5년이라는 시간동안 국제시사 프로그램이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같고, 그 속에서 한 명의 진행자가 꾸준히 구성원으로서 참여했다는 건 분명히 훌륭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5년의 역사를 이어받는 입장인데다 프로그램 제목도 로 바뀌게 돼서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 같다. 혹시 미리 구상해 둔 김혜수만의 진행스타일이 있나.
김혜수 : 당연히 부담이 된다. 딱히 차별화 전략은 없지만, 아무래도 내가 전문 아나운서는 아니니 화술에 있어서는 최윤영 아나운서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굳이 아나운서 흉내를 내지는 않을 거다. 다만 세계의 충격적인 이슈들을 좀 더 일상적이고 편안한 톤으로 전달하면 나 자신한테도 친숙하고 시청자들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처음에는 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웠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내가 진행하더라도 < W >는 그냥 < W >일테니. 하지만 타이틀보다는, 김혜수가 됐든 최윤영이 됐든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의미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인간 혹은 생명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진실함에 기초를 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진정성을 가지고 임할 것이다.
“최근에는 여성 인권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김혜수 자체를 내세우기보다 프로그램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겠다는 말인데, 그럼에도 어떤 기본적인 콘셉트는 있지 않을까 싶다.
김혜수 : 개인적으로 콘셉트라는 말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 어떤 자리에 있든 목적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가 가진 색깔, 정신 안에서 얼마나 임무를 잘 수행하느냐가 중요하지, 외적인 모습이나 말투 같은 콘셉트를 생각할 여유는 지금 없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몸담고 있는 팀원들의 움직임을 따라잡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첫 녹화는 어땠나.
이승준 PD : 첫 녹화가 지난주에 있었는데,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해 보자더라. 다들 오케이 했고, 더 신경써야겠다고들 했다. 이런 김혜수 씨의 욕심이 우리 프로그램에 큰 힘이 될 거라 본다.
김혜수 : 미리 첫 회 영상을 준비해서 기자간담회에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들끼리 마지막으로 팀워크를 맞춰보자는 의미로 다시 하자고 부탁한 거다. 많은 분들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보내주고 있는데, 잘 하고 싶은 것과 잘 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 가급적이면 시청자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카메라 안에서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되는지 연습해 보고, 톤이나 스피드도 다시 한 번 체크해 보고. 첫 방송을 앞두고 걱정이 많다.
이승준 PD : 제작진으로서는 기분 좋은 긴장감을 얻고 있다. 벌써부터 아이템 선정이나 진행 멘트 작성에 있어서 제작진들이 김혜수 씨를 염두에 두고 있다. 김혜수 씨가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멘트에 살려내고 싶다고 해서 방송 전날 미리 리딩 멘트나 클로징 멘트를 보내줄 생각이고.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사회적 이슈가 있다면.
김혜수 : 관심 분야는 아동이나 여성 인권, 식량문제, 환경, 생태, 교육 등 굉장히 많다. 최근에는 여성 인권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유럽 쪽에는 이슬람계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의 히잡 착용을 국가적으로 제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게 종교적 혹은 문화적 탄압은 아닌지, 이런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첫 방송에서 소개될 후에이다처럼 작지만 실질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이 어떤 계기에 의해 그런 행동을 하는지도 궁금하고.
오드리 헵번을 비롯해 당신처럼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배우들이 많다. 특별히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인물이 있나.
김혜수 : 정해진 롤 모델은 없다. 누구처럼 되어야겠다는 타깃은 없지만,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싶다. 그래서 평생 학생으로 남고 싶다. 어떤 학생인지, 졸업은 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캠퍼스 자체가 많은 것들을 소통할 수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끌린다. 앞으로도 내가 더 풍부해지면 좋겠다.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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