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로 활동하다 MBC <커피프린스 1호점>의 ‘와플선기’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서 ‘마성의 게이’ 민선우를 연기했던 김재욱의 이력을 텍스트로만 본다면 ‘모델 출신 꽃미남 연기자’라는 흔한 요약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한국인과 일본인, 반항아와 순정남 사이 어디쯤을 밟고 서 있는 것 같은 이 배우의 매력은 규정되지 않는 개성과 뚜렷한 자아에 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시선을 끄는 분위기는 그에게 종종 부담스러울 정도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게 만들기도 했지만 “결국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같아요. 그걸 어느 순간 알게 된 뒤로는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됐어요. 누구나 ‘저 사람한테만큼은 인정받고 싶어’라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것만 가지고 갈 수 있으면 돼요” 라고 담담히 말하는 김재욱은 놀랄 만큼 투명하게 자신을 내보이는 사람이기도 하다. SBS <나쁜 남자>의 홍태성 역으로 ‘귀족적이고 오만하면서도 아슬아슬한 매력을 지닌 새로운 얼굴의 남자 배우’를 찾고 있던 이형민 감독이 김재욱으로부터 남다른 가능성을 발견한 것 또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델과 연기 활동만큼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서울예대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김재욱은 학교 동기들과 함께 만든 3인조 밴드 월러스의 멤버이기도 하다. “부모님과 형이 음악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어요. 그러다가 록이라는 장르에 매료되었고 요새 학생들이 아이돌의 노래나 안무를 따라하는 것처럼 저도 노래하고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 것 같아요. 사실 동기들과 같이 음악 하자고 어울린 지 9년이 다 돼 가는데, 다들 게으르다 보니 제대로 뭔가 만들어나가기 시작한 건 월러스를 결성하고 나서예요. 작년에 5년 만에 무대에 섰는데, 그냥 미칠 것 같았어요. 원래 3월쯤 싱글 형식으로든 뭐든 음원을 발표하고 활동을 할 계획이었는데 <나쁜 남자> 촬영과 도저히 병행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잠시 미루게 됐어요.” 그리고 런웨이를 걸을 때와 카메라 앞에서, 혹은 무대 위에서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김재욱이 다양한 장르의 중독성 있는 음악들을 추천했다.
“최근에 접하고 아주 많이 듣는 앨범이다. 사실 솔로활동 당시의 존 메이어는 그리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뮤지션은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Wait Until Tomorrow’라는 노래를 듣고 한방에 뿅 간 케이스인데, 이런 행운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스티브 조던과 피노 팔라디노의 귀신같은 연주 위에서 존 메이어가 때론 화려하게, 때론 진지하게 춤을 춘다. 그들의 자유로운 연주가 더 와 닿는 건 이 앨범이 라이브 앨범이라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리스트에는 트리오 결성 후에 발표한 곡과 그가 솔로 시절에 선보인 곡들이 섞여있는데, 덕분에 그의 솔로앨범도 모두 들어 볼 정도로 그의 연주에 중독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Try’라는 곡을 추천하고 싶다. 요새 제일 좋아서.”
“내 세대의 록 키드들 중 누가 안 들어봤겠는가. 너바나라는 이름을. 내가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이들인 걸. 커트 코베인이라는, 이제는 어떤 상징이 되어버린 인물의 업적과 힘은 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믿는다. 나도 그 중의 하나일 뿐이고. 초등학교 (그땐 ‘국민학교’였다) 때 형 방에서 흘러나온 시끄럽지만 뭔가 멋있는 기타 사운드가 세상 어떤 소리보다 멋있게 들렸었다. 보통, 그리고 당연히 너바나를 대표하는 앨범은 < Nevermind >가 맞지만, 이 앨범의 성의 없어 보이는 사운드와 뭔가 허무함이 느껴지는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에 나는 더욱 애정을 가지고 있다. ‘Radio Friendly Unit Shifter’를 추천한다. 그리고 누구든 기회가 된다면 너바나의 공연실황을 봤으면 한다. 분명히 아직까진, 그런 에너지는 세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맨체스터 출신 ‘돌아이’ 형제들이 만든 미친 밴드의 대표 앨범이다. 한 점 꾸밈없는 연주와 목소리, 그 당시 젊은이들의 감성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가사들로 이루어진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은 앨범인 거다. 나는 그 정도로 오아시스를 좋아하고 또 좋아한다. 이제는 해체해 버려서 더 이상 그들의 새로운 앨범을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뭐 괜찮다. 작년에 있었던 두 번의 내한공연을 다 갔으니까. 그리고 오아시스 팬들이라면 그 둘이 결국 그렇게 갈라설 거라 은연중에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멋있지 않나. 앨범에서는 특히 ‘Champagne Supernova’를 추천한다. 작년 지산 록 페스티벌에서, 오직 그들의 공연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서 8시간 전부터 취해 있었다. 그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노래다. 물론 ‘I`m The Walrus’도 있었지만, 나에겐 이 노래가 하이라이트였다.”
“어린 시절, 아침은 항상 마루에서 들려오는 음악으로 일어났다.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셔서 여러 음악을 아침마다 틀어놓곤 하셨는데 카펜터스는 그 중 하나였다. 이들의 음악은 그 당시에, 예를 들면 부스스 일어났을 때 코를 간질이는 겨울의 냄새라든가, 집 뒷산의 새들 먹이로 창가에 식빵을 잘게 뜯어서 올려놓으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라든가, 지각할라 허둥지둥 학교로 가게 만들던 조급함 같은. 그저 따뜻하기만 한 내 추억들을 고스란히 가져다준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이다. 앨범에 담긴 ‘I Won`t Last A Day Without You’는 어릴 땐 몰랐던 곡이다. 친절하고 깨끗한 멜로디가 너무 좋다.”
“한 살 때 독일에 입양되어 발레리 트레벨야르라는 이름으로 자란 한국 소녀가 만든 밴드다. 아주 특별한 환경에서 키워낸 그녀만의 감성이 음악에 녹아있다. 공기를 따뜻하고 몽롱하게 바꾸어 놓는, 크레파스로 단편소설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암튼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보석 같은 음악이다. 앨범의 첫 곡 ‘Faking The Books’를 추천한다. 들어보면 비슷하게 느낄 수 있을 거다.” 김재욱이 선택한 마지막 앨범은 독일의 4인조 일렉트로팝 밴드인 랄리 푸나의 2004년 작 < Faking The Books >, 독일 남부 바일하임 지방의 동네 친구들이 모여 결성한 랄리 푸나는 1999년 < Tridecoder >로 데뷔한 이래 몽환적이면서도 애수에 찬 음악으로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4집 앨범 < Our Inventions >가 발매되었다.
사진. 이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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