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월드컵도 끝났네?
그러게 말이야. A조 첫 경기가 시작할 때만 해도 불면의 밤이 계속될 것만 같았는데 어느새 8강전, 4강전으로 경기가 줄어들더니 이제 결승전까지 끝나버렸네. 진짜 한 여름 밤의 꿈인 거 같아.
그런데 이번 결승전은 왠지 좀 무게감이 떨어지지 않아? 난 축구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월드컵 결승전 하면 브라질이나 이탈리아, 독일 같은 나라가 올라와야 할 것 같은데 네덜란드 대 스페인은 좀 2인자들끼리 싸우는 느낌이었어.
음… 역대 월드컵 우승국을 생각하면 그 말도 틀린 건 아닐 수 있어.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언제고 한 번은 우승을 했어야 할 무관의 제왕들이 첫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 경기라고 해야 할 거야. 그리고 네덜란드도 네덜란드지만 올해의 스페인은 정말 지구방위대라 해도 무방할 엔트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빅4 중 하나인 아스널에서 캡틴이자 공격의 핵인 파브레가스가 주전을 못하는 게 스페인이야. 그래서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 월드컵 우승팀으로 브라질과 스페인을 꼽았던 거고.
그렇게 잘하는 나라인데 그동안 왜 우승을 못했던 거야?
물론 그건 다른 나라가 스페인보다 더 잘해서겠지만, 분명 월드컵이라는 단기 토터먼트에는 실력 외의 다른 요소들도 많이 끼어들지. 선수 부상이라거나 일시적 컨디션 저하 같은. 또 아무리 좋은 기량으로 게임을 지배하더라도 결국 축구란 골을 더 많이 넣는 팀이 이기는 거니까. 그래서 좋은 축구를 하는 것과 이기는 축구를 하는 것이 별개라는 이야기도 있는 거야. 그리고 그 어느 팀보다 그 간극 때문에 우승을 못했던 나라가 네덜란드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번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결승전은 현대 축구의 역사에 있어 굉장히 흥미로운 순간이 아닌가 싶어.
정확히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거야?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흔히 현대 축구를 그 이전과 가르는 가장 확실한 기점은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한 네덜란드의 토털풋볼이라고 이야기 해. 토털풋볼의 특징은 공격수는 공격만, 수비수는 수비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누구든 공격과 수비를 한다는 거야. 흔히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고 하는데 결코 공 하나를 쫓아 전원이 개떼처럼 뛰어간다는 뜻이 아니라 전원 중 누구나 공격과 수비를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보면 돼. 상대팀 입장에선 서너 명의 공격수를 막고, 서너 명의 수비수를 제쳐 골을 넣는 게 아니라 열 명의 공격수와 열 명의 수비수와 상대해야 하니 얼마나 부담스럽겠어.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
이런 게 가능하려면 공격수와 수비수가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안 돼. 가령 공격수는 저 멀리 골대에만 서 있고, 수비수는 반대로 저 멀리 자기네 골대 근처에만 있으면 어떻게 전원 공격, 전원 수비가 가능하겠어. 그래서 토털풋볼은 공격 라인과 수비 라인의 간격을 좁혀. 좀 허접하지만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과거의 팀이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의 비율로 공간을 점유했다면, 토털풋볼에선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의 비율로 수비수와 미드필더, 공격수의 간격을 좁혀. 그러면서 말하자면 그라운드의 중원을 촘촘하게 장악하는 거지. 이렇게 각 포지션 사이 공간이 좀 더 가까워지면서 수비수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게 가능해지고, 공격수 역시 자기의 슛이 막혀서 상대팀 역습이 시작되면 중원에서 수비수가 되어 상대팀에게 압박을 줄 수 있지. 쉽게 예를 들어 이번 월드컵에서 수비수인 이정수가 두 골을 넣었던 것처럼.
그럼 우리나라도 토털풋볼을 한다는 거야?
네덜란드 출신 히딩크 감독의 지도를 받았으니 분명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80년대 이후, 대부분의 나라가 토털풋볼의 이념을 추구한다고 봐야겠지. 결국 축구에선 어느 팀이든 골키퍼를 제외한 열 명이 동일하게 뛰어야 하는 만큼 그 숫자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게 필요하거든. 네덜란드의 토털풋볼이 대단한 건 그런 이상적 플레이를 실제로 그라운드에서 실현시켰다는 것에 있고. 그런데 이 토털풋볼이 말 그대로 대세가 되면서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나름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를 하게 돼. 특히 1974년의 네덜란드가 공격적이고 보기에 아름다운 토털풋볼을 구사했다면 이번 월드컵에서는 좀 더 수비적이고 안정적인 토털풋볼이 대세를 이루게 돼. 대표적인 게 브라질과 네덜란드라 할 수 있지. 간혹 월드컵 중에 네덜란드 감독이 토털풋볼을 버리고 이기는 축구를 한다고 했더라는 뉴스가 있기도 했는데 사실 그건 정확히 말해 과거의 우아한 토털풋볼을 포기한다는 거지, 결코 토털풋볼을 버린다는 뜻은 아니야. 그에 반해 스페인은 과거의 네덜란드가 그리던 효율적이면서도 공격적인 토털풋볼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팀이었지. 그래서 이번 결승전이 흥미로웠던 거고. 그럼 왜 두 나라는 그런 방식의 축구를 하게 된 건데?
좋은 질문이야. 우선 스페인 얘기부터 하자. 원래 스페인은 많이 뛰기보단 패스 위주로 경기를 지배하는 팀이지만, 이번 월드컵에서처럼 패스를 통해 경기를 완벽하게 장악하는 모습은 분명 FC 바르셀로나의 스타일에 힘입은 바가 커. 샤비와 이니에스타로 대표되는 최강 미드필더들부터 바르샤 선수들이고. 그런데 그런 바르샤의 축구 스타일을 확립시키는데 가장 커다란 역할을 했던 선수가 바로 73-74 시즌에 바르샤에서 뛰고 1974년 네덜란드를 이끈 요한 크루이프야. 전방 공격수이면서도 중원의 사령관 역할을 했던 이 선수는 기본적으로 상당히 깡마른 몸이라 몸싸움을 이용한 드리블보단 깔끔한 개인기와 전술적인 패스를 선호했지.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 바르샤의 성격이 되었고, 이번 스페인의 성격이 되었지. 그에 반해 네덜란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최고의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우승을 하지 못한 팀으로 기억되거든. 그 아픈 기억의 중심에 선 것 역시 요한 크루이프지. 말하자면 이번 네덜란드는 그런 크루이프 스타일에 좀 더 실리적인 요소를 더해 우승을 하려 한 것이고, 스페인은 크루이프의 철학을 최고의 선수들이 가장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우승을 하려 한 것이지. 그래서 크루이프 역시 네덜란드의 우승을 바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축구는 스페인의 것이라 했던 거고.
그럼 이번 스페인의 우승은 그 크루이프라는 사람의 방식이 승리한 거라 할 수 있겠네?
음… 그렇게 말하면 멋있겠지만 그건 좀 유보해야 할 것 같아. 아까도 말했지만 이번 스페인 대표팀은 정말 역사상 이런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공수 최고의 선수들로 모여 있었거든. 또 이런 단기 토너먼트의 성적을 가지고서 수비적인 축구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거나 패싱 게임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하는 것도 설레발이고.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지. 실리적이고 안정적인 축구가 대세인 2010년에도 재미있고 공격적인 축구의 유통 기한은 끝나지 않았다고. 현대 축구에 있어 승리를 위한 공식을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다고.
그게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교훈인 걸까?
아니. 이번 월드컵의 진정한 교훈은 치킨 한 마리는 혼자 먹기 많다는 거야.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그러게 말이야. A조 첫 경기가 시작할 때만 해도 불면의 밤이 계속될 것만 같았는데 어느새 8강전, 4강전으로 경기가 줄어들더니 이제 결승전까지 끝나버렸네. 진짜 한 여름 밤의 꿈인 거 같아.
그런데 이번 결승전은 왠지 좀 무게감이 떨어지지 않아? 난 축구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월드컵 결승전 하면 브라질이나 이탈리아, 독일 같은 나라가 올라와야 할 것 같은데 네덜란드 대 스페인은 좀 2인자들끼리 싸우는 느낌이었어.
음… 역대 월드컵 우승국을 생각하면 그 말도 틀린 건 아닐 수 있어.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언제고 한 번은 우승을 했어야 할 무관의 제왕들이 첫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 경기라고 해야 할 거야. 그리고 네덜란드도 네덜란드지만 올해의 스페인은 정말 지구방위대라 해도 무방할 엔트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빅4 중 하나인 아스널에서 캡틴이자 공격의 핵인 파브레가스가 주전을 못하는 게 스페인이야. 그래서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 월드컵 우승팀으로 브라질과 스페인을 꼽았던 거고.
그렇게 잘하는 나라인데 그동안 왜 우승을 못했던 거야?
물론 그건 다른 나라가 스페인보다 더 잘해서겠지만, 분명 월드컵이라는 단기 토터먼트에는 실력 외의 다른 요소들도 많이 끼어들지. 선수 부상이라거나 일시적 컨디션 저하 같은. 또 아무리 좋은 기량으로 게임을 지배하더라도 결국 축구란 골을 더 많이 넣는 팀이 이기는 거니까. 그래서 좋은 축구를 하는 것과 이기는 축구를 하는 것이 별개라는 이야기도 있는 거야. 그리고 그 어느 팀보다 그 간극 때문에 우승을 못했던 나라가 네덜란드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번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결승전은 현대 축구의 역사에 있어 굉장히 흥미로운 순간이 아닌가 싶어.
정확히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거야?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흔히 현대 축구를 그 이전과 가르는 가장 확실한 기점은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한 네덜란드의 토털풋볼이라고 이야기 해. 토털풋볼의 특징은 공격수는 공격만, 수비수는 수비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누구든 공격과 수비를 한다는 거야. 흔히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고 하는데 결코 공 하나를 쫓아 전원이 개떼처럼 뛰어간다는 뜻이 아니라 전원 중 누구나 공격과 수비를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보면 돼. 상대팀 입장에선 서너 명의 공격수를 막고, 서너 명의 수비수를 제쳐 골을 넣는 게 아니라 열 명의 공격수와 열 명의 수비수와 상대해야 하니 얼마나 부담스럽겠어.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
이런 게 가능하려면 공격수와 수비수가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안 돼. 가령 공격수는 저 멀리 골대에만 서 있고, 수비수는 반대로 저 멀리 자기네 골대 근처에만 있으면 어떻게 전원 공격, 전원 수비가 가능하겠어. 그래서 토털풋볼은 공격 라인과 수비 라인의 간격을 좁혀. 좀 허접하지만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과거의 팀이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의 비율로 공간을 점유했다면, 토털풋볼에선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의 비율로 수비수와 미드필더, 공격수의 간격을 좁혀. 그러면서 말하자면 그라운드의 중원을 촘촘하게 장악하는 거지. 이렇게 각 포지션 사이 공간이 좀 더 가까워지면서 수비수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게 가능해지고, 공격수 역시 자기의 슛이 막혀서 상대팀 역습이 시작되면 중원에서 수비수가 되어 상대팀에게 압박을 줄 수 있지. 쉽게 예를 들어 이번 월드컵에서 수비수인 이정수가 두 골을 넣었던 것처럼.
그럼 우리나라도 토털풋볼을 한다는 거야?
네덜란드 출신 히딩크 감독의 지도를 받았으니 분명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80년대 이후, 대부분의 나라가 토털풋볼의 이념을 추구한다고 봐야겠지. 결국 축구에선 어느 팀이든 골키퍼를 제외한 열 명이 동일하게 뛰어야 하는 만큼 그 숫자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게 필요하거든. 네덜란드의 토털풋볼이 대단한 건 그런 이상적 플레이를 실제로 그라운드에서 실현시켰다는 것에 있고. 그런데 이 토털풋볼이 말 그대로 대세가 되면서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나름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를 하게 돼. 특히 1974년의 네덜란드가 공격적이고 보기에 아름다운 토털풋볼을 구사했다면 이번 월드컵에서는 좀 더 수비적이고 안정적인 토털풋볼이 대세를 이루게 돼. 대표적인 게 브라질과 네덜란드라 할 수 있지. 간혹 월드컵 중에 네덜란드 감독이 토털풋볼을 버리고 이기는 축구를 한다고 했더라는 뉴스가 있기도 했는데 사실 그건 정확히 말해 과거의 우아한 토털풋볼을 포기한다는 거지, 결코 토털풋볼을 버린다는 뜻은 아니야. 그에 반해 스페인은 과거의 네덜란드가 그리던 효율적이면서도 공격적인 토털풋볼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팀이었지. 그래서 이번 결승전이 흥미로웠던 거고. 그럼 왜 두 나라는 그런 방식의 축구를 하게 된 건데?
좋은 질문이야. 우선 스페인 얘기부터 하자. 원래 스페인은 많이 뛰기보단 패스 위주로 경기를 지배하는 팀이지만, 이번 월드컵에서처럼 패스를 통해 경기를 완벽하게 장악하는 모습은 분명 FC 바르셀로나의 스타일에 힘입은 바가 커. 샤비와 이니에스타로 대표되는 최강 미드필더들부터 바르샤 선수들이고. 그런데 그런 바르샤의 축구 스타일을 확립시키는데 가장 커다란 역할을 했던 선수가 바로 73-74 시즌에 바르샤에서 뛰고 1974년 네덜란드를 이끈 요한 크루이프야. 전방 공격수이면서도 중원의 사령관 역할을 했던 이 선수는 기본적으로 상당히 깡마른 몸이라 몸싸움을 이용한 드리블보단 깔끔한 개인기와 전술적인 패스를 선호했지.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 바르샤의 성격이 되었고, 이번 스페인의 성격이 되었지. 그에 반해 네덜란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최고의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우승을 하지 못한 팀으로 기억되거든. 그 아픈 기억의 중심에 선 것 역시 요한 크루이프지. 말하자면 이번 네덜란드는 그런 크루이프 스타일에 좀 더 실리적인 요소를 더해 우승을 하려 한 것이고, 스페인은 크루이프의 철학을 최고의 선수들이 가장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우승을 하려 한 것이지. 그래서 크루이프 역시 네덜란드의 우승을 바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축구는 스페인의 것이라 했던 거고.
그럼 이번 스페인의 우승은 그 크루이프라는 사람의 방식이 승리한 거라 할 수 있겠네?
음… 그렇게 말하면 멋있겠지만 그건 좀 유보해야 할 것 같아. 아까도 말했지만 이번 스페인 대표팀은 정말 역사상 이런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공수 최고의 선수들로 모여 있었거든. 또 이런 단기 토너먼트의 성적을 가지고서 수비적인 축구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거나 패싱 게임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하는 것도 설레발이고.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지. 실리적이고 안정적인 축구가 대세인 2010년에도 재미있고 공격적인 축구의 유통 기한은 끝나지 않았다고. 현대 축구에 있어 승리를 위한 공식을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다고.
그게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교훈인 걸까?
아니. 이번 월드컵의 진정한 교훈은 치킨 한 마리는 혼자 먹기 많다는 거야.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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