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김운기 “뮤지컬 <달콤한 인생>은 드라마보다 선이 굵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71300510558933_1.jpg)
이동욱, 오연수, 정보석, 박시연이 출연해 2008년 소개된 MBC 은 참 불친절한 드라마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형식은 한 회를 놓치면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다층적이었으며, 네 명의 캐릭터가 내뱉는 대사는 한국 드라마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을 만큼 문학적이었고, 그들의 내면은 선과 악으로 구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치열했다. 회가 거듭될수록 점점 피폐해져가는 준수(이동욱)의 얼굴만큼 그 이야기를 따라가던 시청자들도 속이 바짝바짝 탔다. 2년의 세월이 흘렀고 작품 속 배우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준수와 혜진 그리고 동원과 다애는 뮤지컬 무대에서 다시 태어났다. 드라마만큼이나 뮤지컬도 참 불친절하다. 하지만 한동안 지극히 1차원적인 메시지만으로 가득찬 뮤지컬시장을 생각하자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특히 뮤지컬 은 지난 2008년 프랑크 베데킨트의 동명소설을 각색해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두루 받은 뮤지컬 의 작가 이희준, 연출가 김운기, 작곡가 박정아가 다시 뭉쳤다. 지난 7월 12일 열린 프레스콜 현장에서 “유일하게 중간에 박수 칠 수 있는 것”을 뮤지컬의 매력으로 꼽는 김운기 연출과 대화를 나눴다. 뮤지컬 은 7월 14일부터 12월 31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 4관에서 이어진다. 당신도 공연장에서 힘껏 박수 칠 수 있기를.수많은 드라마들이 있는데 왜 불친절한 드라마 을 뮤지컬로 만들었나.
김운기 : 기존의 많은 작품들은 사랑을 화두 삼아 이끌어내고자 하는 종착점이 미비한 상태에서 사랑을 다루고 있었다. 분명 각자의 드라마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은 그 종착점에 대한 메시지가 깊었다. 본질에 가까웠고, 사회적 개념을 보다 잘 읽고 있는 작품이라 판단했다.
“드라마에 비해 인물들의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했다”
![연출가 김운기 “뮤지컬 <달콤한 인생>은 드라마보다 선이 굵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71300510558933_3.jpg)
김운기 : 은 사랑을 단지 서로의 외로움을 제거하고, 정서적·육체적 행위를 공유하는 것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사랑을 통해 뭔가를 발견하고 있었다. 그 부분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100여 년 전 입센의 속 노라의 가출이 던지는 화두가 지금 현재도 유효한데, 에는 그것이 있었다. 진부할 수도 있는 화두일수도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요소를 찾을 수 있었다. 여권이 많이 신장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제도적, 환경적 상황 안에서 힘들어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촉매는 무엇인가, 하는 부분에서 이 작품은 좋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드라마는 준수를 중심으로 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뮤지컬은 좀 더 혜진의 시선에 맞춰진 작품인 것 같다.
김운기 : 그렇게 보기 보다는 우리가 좀 더 자유롭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드라마에는 한계가 있었다. 일종의 기호라고 볼 수 있다. 시청자의 기호. 그 기호를 벗어날 수 없었던 환경이 이해가 된다. 준수에서 혜진으로 혜진에서 준수로가 아닌, 매체 환경적인 요인에서 봤을 때 좀 더 자유롭기 때문에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준수라는 한 인물의 의식상태, 혜진이라는 한 여성의 사회적인 삶 혹은 인생에서의 가치관의 역경 등을 보다 더 분명하게 조명한다고 보면 된다.
드라마에서와 같이 뮤지컬에서도 회상신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연예술은 드라마와는 달리 다시 볼 수 없는데,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퍼즐과 같은 구조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김운기 : 선택적 문제다. 하지만 퍼즐구조가 내용을 담거나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수단은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있다. 목적이라는 본질이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태양을 설명하는데 설명하는 사람의 입장이 과거로 설명하느냐, 현재형으로 설명하느냐라는 체감의 온도만 유지한다면 그런 부분은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4명의 준수(최성원, 정민, 김진우, 강청광)를 비롯해 혜진(이진희, 정인지, 임미현), 동원(김태한, 이민재), 다애(임미현, 최지선) 역시 더블 혹은 트리플캐스팅이다. 장기공연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겠지만, 굳이 이렇게 많은 배우들을 무대에 올릴 이유가 있었나.
김운기 : 굳이 4명일수도, 10명일수도, 1명일수도 있다. 사실 준수라는 인물은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하는 캐릭터다. 한 여성이 가진 의식의 깊은 부분을 깨우는 인물이다. 결국 어떤 식으로 작동하느냐인 것이다. A로, B로, C로, D로 작동하느냐, 하는 부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얼마나 그들이 실하게 자기의 형질을 이용해 혜진을 깨우치게 하도록 작동하느냐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4명이 좋은 컬러들로 작동하고 있다. 준수들은 매력적인 친구들이니까 내가 설명하기 보다는 여성 관객들이 설명해주시는 게 더 나을 거다. (웃음)
그렇다면 혜진들은 어떤가.
김운기 : 이진희는 내가 볼 때 혜진이 현연(現然)한 것 같다. 어떻게 움직이든 어떻게 말을 하든 혜진이 말하고 있다는 설득력이 있다. 이미지는 만들어지는 것인데 만들어지는 이미지로서는 정인지가 잘 가고 있다. 나이는 많지 않지만 감정이 풍부하고 연기력이 좋다. 이러한 공간에서 이미지를 만든다면 정인지를 통해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혜진의 이미지일 것 같다. 임미현의 경우 혜진이 만약 적극적으로 변신한다면 저렇게 변할 것 같다. 사람은 수동적인 과정을 통해 변하지만 일정한 시점이 되어 자각하는 순간 적극적으로 변하지 않나. 수동적인 상태에 놓인 여인이 능동적으로, 스스로 변화되는 시점을 잘 만들어낸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증명하거나 확인할 수 있어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다.
동원의 경우 이완을 위해서인지 코믹한 요소가 많이 부각되던데.
김운기 : 폭풍전야. 긴장을 위한 릴렉스라고 보면 된다. 장치적인 부분도 있다. 그리고 하동원이라는 사람이 원작에는 샤프한 인물로 그려지는 편인데, 실제로는 그 사람이 유머감각도 뛰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요즘 최고의 남자에 유머감각도 들어가지 않나. 그래서 유머 있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런 이미지를 조금 더 부여했다.
그 외에도 드라마 속 캐릭터들이 뮤지컬로 들어와 어떤 부분이 강해졌나.
김운기 : 선이 굵어졌다. 드라마는 24부작이고 우리는 1시간 30분에 끝나는 것이니까 인물들의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해서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준수에게서는 좀 더 남성적인 면을 끌어내려 했고, 혜진에게서는 삶의 물음표를 좀 더 본질적으로 던져봤다.
“각색을 한다해도 원작의 본질은 안고 가야한다”
![연출가 김운기 “뮤지컬 <달콤한 인생>은 드라마보다 선이 굵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71300510558933_2.jpg)
그렇다면 원작에서 취한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김운기 : 원작의 정서적 심리는 안고 가고 싶었다. 완전히 버리고 새롭게 태어날 수도 있고, 중요한 부분만을 안고 가면서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가급적 원작에서 가질 수 있는 부분은 가져가고 싶었다. 드라마를 본 사람들에게는 그게 소중한 거다. 그 소중함을 안고 가고 싶었고, 동시에 드라마를 보지 않은 관객에게는 나름대로 원작이 주는 메시지에 플러스 알파, 베타를 주고 싶었다. 차이도 있고, 신선한 부분도 있고.
원작과 뮤지컬,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결국 혜진의 변화인가.
김운기 : 그렇다. 가장 중요하다. 원작보다는 좀 더 명료하게 처리돼 있을 거다. 매체의 차이가 있다. 드라마는 부연할 수 있지만 우리는 부연하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에 명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
지난 2008년에 작업한 는 베데킨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었고, 같은 원작을 사용한 에 비해 한국정서와 잘 결합된 수작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희준 작가는 외에도 , 로 원작을 뮤지컬에 맞게 잘 각색하고 있는데, 원작이 있는 작품을 각색할 경우 놓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김운기 : 원작 소스의 본질을 가지고 갈 것이냐, 다 버리고 일부만 가져갈 것이냐는 초반에 선택을 하고 가야한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원작을 선택하려면 원작의 부분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작은 백지에서 태어났는데, 백지에서 싹이 터오를때의 아픔을 보다 더 진지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작의 본질은 안고 가야한다.
최근 소설, 영화, 드라마까지 상당히 많은 원작들이 뮤지컬로 넘어오는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운기 : 바람직한 일이다. 브로드웨이에서도 8~90%의 뮤지컬들이 모두 원작이 있고 굉장히 원작에 충실하다. 을 보고 왔는데 영화랑 완전히 똑같았다. 똑같음에 감탄하기도 하고. 선진적인 뮤지컬의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드라마를 뮤지컬로 만드는 건 영화를 뮤지컬로 만드는 것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 공연문화의 첨병에 서있는 것이 뮤지컬이라면, 브라운관 스크린 문화의 첨병은 드라마다. 두 분야의 만남은 새로운 길을 틔워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특히 은 드라마틱하다. 드라마의 구조를 끌어안으면서도 뮤지컬로 갈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다.
사진제공. 다온커뮤니케이션즈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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